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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의 미투(#MeToo)로 체육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미투 사건을 연달아 맡았던 나는 여러 문의를 받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주중의 일과에서 소화 못한 서면을 쓰려고 출근한 어느 일요일, 생면부지 신입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청소년 시절, 코치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는데, 2018년 3월에 제기한 고소가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고, 검찰에서는 기소중지가 되어있다고 했다. 사건을 열심히 취재하고 법도 공부한 흔적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딱한 사정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연락이었다. 기자는 ‘피해자가 가난한데, 만나주면 안 되냐’ 청해왔다.

 

그렇게, 다음날 밤에 내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신유용이었다. 2019년 1월 15일, 신유용의 첫인상은 벙거지 같은 모자를 눌러 쓰고 두꺼운 화장을 해서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급성 공황장애 증상이 온 상태였다.

 

가해자는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왔다. 신유용은 2018년 봄,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불안을 끝내고자 고소를 결심했다. 하지만 수사기관도, 국선 조력 제도도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엉킨 상황이나 피해자의 상태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았다. 피해자는 성인이긴 하지만 아직 학생이었고,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 없었다.

 

▲ 만16세에 학교 유도부 코치로부터 겪은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신유용의 ‘미투’ 형사재판 과정에서 지역 여성-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피해자를 지지하며 피켓팅을 하고 방청연대를 하는 등 큰 힘을 모아주었다. 고등학생 시절 피해자에겐 자신을 도와줄 어른이 없었지만, 이제는 곁을 지켜주는 많은 사람들이 생겼다.  (사진: 신유용 제공)

 

가해자가 처벌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SNS에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피해 사실도 공개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반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심석희 선수의 미투로 체육계 성폭력에 관심이 쏠리며 뒤늦게 전에 SNS에 썼던 피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의뢰가 밀려왔고, 피해자는 불안과 절망 속에 닥치는 대로 모든 인터뷰에 응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피해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던 끝에 공황장애 증상이 발현되어 쓰러졌다. 나를 만나기 직전에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온 것이라고 했다.

 

피해 사실을 듣고, 수사가 흘러온 과정을 살펴 보니 답답했다. 하지만 나에겐 사건을 더 맡을 여력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마침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에서 신유용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에게서 연락이 온 김에,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보려고 전화를 바꿔달라 했다. 검사가 ‘변호사님이 이 사건 하시는 거냐?’라고 반색했다. 일단 그렇다고 말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신유용의 고소 사건은 다행히 그동안 피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시한부 기소 중지된 경우였다. 담당검사가 추가 진술을 하겠냐고 물었고, 얼마든지 응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유용에게 방금 검사에게서 들은 형사고소 사건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군산지검에서 전화가 다시 왔다. 내가 이 사건을 맡았다고 위에도 보고를 했다면서, 당장 조사일자를 잡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아무래도 이 사건은 내가 할 팔자인가보다’ 말했다. 그러자 신유용이 말했다. ‘저는 어떻게든 변호사님께 꼭 맡아달라고 할 각오로 왔어요.’

 

 

2019년 40여일 정도의 남은 겨울 동안, 군산지검에서의 보완 수사가 4차례나 이어졌다. 조사는 오전에 시작되어 오밤중이 되서야 끝났다. 네 번 중 세 번은 마지막 기차 시간을 목전에 두고 끝났고, 나머지 한 번은 막차가 떠난 후까지 이어졌다. 조사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배석한 이도, 길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당시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이 만14세 미만이었다. 신유용의 피해는 만16세에 시작되었다. 코치의 성폭력이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의 지도를 받는 학생이었던 피해자는 신고하지 못했다. 법원 밖에서라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자신의 범죄 행위를 부인하거나 상황을 왜곡하거나 사실 관계를 달리 말하는 피고인의 죄를 다투는 법원에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유도부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로 오게 됐고, 같은 학교법인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코치로 부임한 가해자는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심각하게 행사했다. 신유용이 주말에 집에 다녀오면, 몸무게가 맻백그램씩 불어왔다는 이유로 ‘단무지’라고 불리는 노란 호스로 때리고 심지어 목을 졸랐다. 유도부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절할 때까지 맞은 적도 있지만, 말려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잖아도 서열이 분명한 운동부 안에서 코치의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유도 외의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폭력이 시작됐다. 처음 강제추행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폭행이 일어났고,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성폭행을 한 직후, 가해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유도부가 없어진다’, ‘둘 다 한국에서 못 산다’는 취지의 말들을 했다. 피해자는 어렸고, 앞이 막막했다. 혼자 4남매를 키우며 세차장에서 일하는 엄마는 학교에 자주 찾아올 수 없었다.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엄마에게 큰 절망을 안기게 될까 봐 걱정됐고, 엄마가 이 엄청난 상황을 해결해줄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묻는 검사도, 거드는 변호사도 숨이 가빴지만, 신유용은 꿋꿋했다. 그런 피해자가 눈물을 흘린 날이 있다. ‘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답할 때였다. 엉뚱하게도 엄마랑 동갑인 내 손이 곱고 말랑하다고 입을 떼더니, 손이 딱딱하도록 세차장에서 일하며 고생하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려하거나 논리적인 얘기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매일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입장에 이입시켜 주었다. 조사하던 검사도, 변호사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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