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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의 정여름 감독을 만나다

▲ 정여름 감독 영화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 33분,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스틸컷

 

미군들에게서 빌려온 수많은 눈들

 

정여름 감독은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를 하다가, 미군기지 내 ‘체육관’과 ‘포켓스톱’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미지들을 단서로 미군기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체육관’(PokeGym)은 게이머가 포켓몬을 이용해 대결을 벌이는 장소인데, 게임을 하면서 찍은 주변 사진들을 포켓몬고 측에 보내어 등록하는 과정을 거친다. ‘포켓스톱’(Pokestop)은 포켓몬을 잡는데 필요한 아이템 보급소를 말한다.

 

포겟몬고를 하면서 미군기지 내의 여러 장소와 기념물을 등록하는 미군들의 시선을 빌려옴으로써, 이제껏 군사기밀과 안보상의 이유로 지도에 표시될 수 없었던 용산 미군기지 안을 들여다보는 기획이라니! ‘신박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제목인 ‘그라이아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눈 하나와 이빨 하나를 함께 사용하는 데니오, 엔뉘오, 펨프레도라는 이름을 가진 백발의 세 자매 괴물로, 각각의 이름은 ‘무서운’, ‘전쟁을 좋아하는’, ‘깜짝 놀라게 하는’이라는 뜻을 갖는다. 하나의 눈과 세 개의 시선은 정여름의 영화에서 미군들에게 빌려온 수많은 눈들로 확장된다. 공식 기록영상부터 미군들이 올린 유튜브, 브이로그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복안(複眼)을 장착하고, 이제껏 없던 방식으로 미군기지를 가시화하는 방식이다.

 

사실 용산은 100여 년 동안 기지로 사용되어온 내력을 가진 곳이다. 1910년에 작성된 지도는 용산기지의 초기 시설과 도로 현황을 보여주는 자료다. 일본군은 조선에서의 영구 주둔을 위해 용산, 평양, 의주 세 곳을 군용지로 확정하고, 1904년 8월 15일에 한국주차군 사령관이 한일의정서 제4조에 의거해 용산 300만평 등 총 975만평의 토지 수용을 조선정부에 통고했다. 군사기지 공사는 190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13년 11월에 완공되었다.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을 만든 정여름 감독. (사진: 박상환) 

 

불꽃놀이와 기지생태계

 

미군기지를 재현한 기존의 많은 작업들은 ‘기지촌 여성’의 삶에 주목하는 일종의 전형성을 지닌다. <그라이아이>는 이러한 전형성에 ‘삑사리’를 내는 새로운 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미군기지 안 미군들의 일상을 그들의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미군과의 관계를 피해와 가해로 이분화해서만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요. 저는 오로지 그들이 모방하는 것(반복적으로 자체 생산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어요. 안에서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데, 미군들이 의외로 너무 쾌활하게 지내고 있더라고요. 기지 안에 있는 여러 시설을 과시하기도 하고요. 그들이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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