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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시대, 다시 쓰는 페미니즘] 인공지능 시대의 페미니스트 윤리

※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가끔 동료들과 하는 이야기 중에 ‘새벽 3시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실험을 한 번 돌리는 데에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수 일이 걸리는 딥러닝 연구 분야 특성상, 자는 시간 동안 실험이 돌아가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짜는 일은 드물고, 주로 코드의 일부를 수정하다 보니 일이 간단해 보여 “이거 하나만 고치면 프로그램이 돌아가겠지..”하면서 코드를 고치지만, 실행을 하면 그 다음 에러가 발생한다. 새벽 세 시 무렵에만 이상하게 프로그램이 문제 없이 실행되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피곤한 채로 업무를 마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프로그래밍 직군은 원격 프로그램을 이용한 재택근무가 용이하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도 이렇게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 외에도 매일 쏟아지는 수십에서 수백 편의 프리프린트(pre-print) 논문들을 파악하고, 사이드프로젝트(side project)를 장려하고, 퇴근하고 나서도 프로그래밍 방법론이나 새로운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등, 자기계발을 끝없이 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들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곳이 개발자 커뮤니티이다.

 

이렇게 숨가쁘게 돌아가는 개발자 커뮤니티에 있다 보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필연적으로 느낀다. 한창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주니어 개발자의 경우가 특히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세상에 발표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 일반적인 이 커뮤니티에서, 나 또한 다른 ‘성공한’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을 해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해내고,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일상은 누가 돌보지? 

 

그러나, 이렇게 불안을 조장하는 현상은 개발직군만의 특징이 아니다. 불안을 유발하여 더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개인의 시간을 통제하는 현상이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타율적 효율성에 휩쓸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성을 내가 운용하기 위해서 내 삶을 구성하는 여러 시간의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리고 시간의 재배치 작업을 나 혼자 진행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통제가 다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윤리이다..... (강현주)

 

 

≪일다≫ AI와 페미니즘, 우리에겐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

※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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