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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 김미진, 서지원 활동가 인터뷰(하)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을 찾아가 장애여성공감 김미진, 서지원 활동가를 만났다. 이동의 권리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젠더와 안전의 문제, 교육과 평등권, 그리고 탈시설 이슈까지 깊이 있게 이어졌다.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장애여성공감 김미진(왼쪽), 서지원(오른쪽) 활동가를 만나 이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다

 

-이동할 자유가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페미니스트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 중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서지원(이하 지원): 예전에 어디 밖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야하게 입고 다니지 마라’ 이런 얘길 들었을 땐, 내가 장애가 있으니까 그런 소릴 듣는 줄 알았어요. 근데 장애여성공감 활동을 하며 비장애인 여성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그들도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걸 알게 되었죠. ‘아, 이게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여성이어서 그랬구나.’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을 이제 더 자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노동에 대해서도 그래요. 15년 전부터 ‘춤추는 허리’(장애여성공감의 극단) 활동을 했고 지금은 상근활동가로 임금노동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내가 출근길에 이동하면 ‘이른 아침부터 어디 놀러 가냐’고 묻거나, 복지관 아니면 병원에 가는 줄 알죠. 장애여성은 보호가 필요하고, 집에만 있고, 돌봄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보는 거예요. 일하기 위해 이동하고 노동하는 몸이라고는 상상을 안하죠. 사실 저는 지금 하는 일을 하기 전에도 노동을 계속했거든요. 아이들을 돌보고, 학교도 보내고, 옷도 사 입히고, 또 활동도 하고, 연극도 하고요. 근데 그런 노동을 인정을 안 해주더라고요. 취미 생활한다고 여겨지고, 심지어 임금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남편만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 것처럼 여겨지고요.

 

-이동권은 자유롭고, 또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잖아요. 여성들에겐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더 중요한데요. 장애여성의 입장에서는 어떤 안전의 필요성을 느끼나요?

 

지원: 지금 제 머리가 굉장히 짧은데, 이렇게 하게 된 것도 이유가 있어요. 밖에 나가면 남성들이 말을 걸거든요. ‘어디가냐’, ‘놀러가냐’, ‘내가 도와줄게’ 이러면서요. 장애여성이라 만만하게 보는 거에요. 어리게 보고, 아이들한테 하듯 반말을 쉽게 하죠. 그런 것들이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휠체어를 허락 없이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하철에서 종종 지하철이 흔들리니까, 사람이 많고 그러면 지하철 손잡이가 아니라 서 있는 휠체어를 잡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휠체어도 그렇게 잡으면 흔들리거든요. 장애여성이라 만만해서 휠체어도 함부로 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말았으면 해요. 장애인석도 좀 비워줬으면 좋겠고요. 어떨 땐 휠체어가 가도 비켜주질 않아서 비켜달라고 말해야 하거든요. 왜 이렇게 꼭 말을 해야 할까… 싶을 때가 많아요.

 

김미진(이하 미진): 공감에서 그런 말을 많이 해요. ‘평등해야 안전하다.’ 이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사회로 나가는 진입을 막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다른 삶의 전략’ 을 세울 수 있어요. ‘다른 삶의 전략’은 공감에서 장애여성의 인권 사각지대-차별과 폭력, 일상적 폭력,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썼던 표현이에요. 다른 공간과 다른 관계로 이동할 수 있는 시작은 내가 어디든 가도 안전하다는 감각이지요. 차별이 없어야 안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꼭 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 차별인지 논의할 수 있고, 서로 인지할 수 있으니까요. 법이 만들어져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 지난 1월 22일, 출근길 지하철 타기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김미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의 모습. (출처: 장애여성공감)

 

-결국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려면, 이동권과 평등권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법과 제도적인 발판이 만들어져야 하고요.

 

지원: 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에 코로나 확진이 되었거든요.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파트너가 먼저 확진 판정을 받은 상황이어서 방에 격리를 했는데, 활동지원사를 집으로 부를 수가 없는 거죠. 전 모든 일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데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굉장히 난감한 거죠. 애들이랑 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혼자 할 수가 없는 거에요. 몇 시간 동안 참다가, 결국 방문을 두드렸어요. 파트너가 확진자여도 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런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 격리되었을 경우) 문제에 대해선 행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에요. 나중에 저도 확진자로 판정이 나고, 아이도 큰 딸 빼고 확진이 돼서 다같이 격리 기간을 보냈어요.

 

그나마 전 활동가이고,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와 동료들이 있으니까 완전히 고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렇지 않은 장애인들은 어떻겠어요? 이것도 결국 이동권이랑 연결되어 있는 문제에요. 정보를 얻고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이동할 수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일단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지금 농성장에서는 장애인 교육권을 요구하는 집회도 계속되고 있죠.

 

지원: 이동권과 교육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결과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특정한 물리적인 장소로 몰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저는 강서구에 거주하는데요, 강서구는 장애인 복지관도 많고, 몇 년 전 서진학교(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학교) 설립으로 사회적 갈등이 생겨났죠. 사실 이 갈등은 25~26년 전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똑같이 있었어요. 신림동에 있던 우리 학교는 주민들의 항의로 경기도 광주로 이전하게 되었죠. 이렇듯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회가 특정 지역으로, 혹은 지방으로 모아두곤 하죠. 사람들은 쉽게 ‘이동하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거주지에 학교가 없으면 교육을 받기 위해 집에서 매번 장시간 이동해야 하고 이동 수단을 개인이 해결하거나, 때론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거예요. 사회는 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한계를 느낄 수 밖에 구조를 만들어놓죠.

 

▲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과·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장애인권 활동가들의 농성이 1년째 계속되고 있다. 현수막에 둘러싸인 농성장 모습.  ©일다

 

그리고 저는 신림동에 있을 때나 광주로 이전될 때나 늘 ‘특수학교’란 곳으로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학교생활을 했어요. 19년 넘게 사회와 분리된 삶을 살다 보니,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의 삶인데 내가 결정해본 적이 없었던거죠. 제가 성인이 된 스무 살 무렵엔 계단이 있는 지하 집에 살거나, 2층에 살았죠. 혼자 집밖으로 나가는 건 감히 상상도 못했어요. 현관 밖도 나가기 어려웠죠. 무료한 삶을 살다 구청에 신청해 컴퓨터를 배웠는데, 2층 집을 나오기 일주일전부터 저를 안고 계단을 내려와줄 사람을 섭외해야 한 거죠.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관없었어요. 그리곤 다시 나를 안고 계단을 올라가줄 아버지가 퇴근할 때까지, 일정이 끝나도 밖에서 서성였어요. 그 때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게 소원이었죠.

 

이동과 교육은 이렇게 떨어져서 이야기하기 어려워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의존하면 또 무능하다는 취급을 받게 되죠. 인간으로서 서로가 상호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맺는 것도 권리인데, 이동이 가능해야 교육을 받고, 교육을 받아야 노동을 하고 또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을 훈련하고 연습할 수 있죠.

 

미진: 탈시설하여 지역 사회에서 동료시민들과 관계 맺으며 살고 싶다는 말이 시설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인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저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니, 지역 사회에 있었지만 이동, 교육, 노동 등 사회활동이 제한적이라서 움추러 있었어요. 움직여야 관계가 시작돼요. 장애인 이동권은 ‘주어진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을 깨고 권리를 말하는 중요한 출발아닐까요.

 

저는 장애인과 사회가 갈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그러면 친구가 될 수 없어요. 갈등이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돌보고 공존하는 방식을 사회가 익히는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춤추는 허리’ 활동하면서 어떻게 멤버들이 같이 배우는 교육권을 확보할거야? 어떻게 우리가 함께 노동할 거야? 고민했는데, 사회가 이걸 함께 해야 해요. 일단, 장애를 가진 몸들이 이동해야 그것이 보여요.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단 것도 더 가시화됩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거, 다른 걸 해보려고 해도 스스로 위축되게 하는 거, 저는 이런 게 감금 같아요.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지 않아도 집에만 있어야 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 갈 곳이 없게 만든 것이 감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시설사회에 갇히게 하는 것과 뭐가 다르죠?

 

-이동권과 탈시설과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 장애계에선 탈시설지원법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미진: 탈시설 한 분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그것을 지원하도록 예산을 확보해 달라는 거예요. 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권도 보장해 달라는 거고요. 탈시설이 왜 필요한지는 당사자들을 보면 알아요. 저도 사실 장애여성공감 활동을 하기 전엔 탈시설의 의미에 대해서 잘 몰랐고, (시설에서 생활하던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서 생활을 해나가는 게) 쉽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공감 쪽으로 신아재활원에서 탈출한 분이 오셨거든요.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좋다. 시설에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또 다른 탈시설 한 분들도 보았는데, 얼마 안 있어 얼굴이 바뀌어요, 정말. 말도 늘고, 목소리도 커지고요.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는 눈빛도 달라지더라고요. 탈시설은 가능하고, 가능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 사회가 준비가 덜 됐고, 아직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들 하는데, 비장애인들은 꼭 뭐가 준비되어야만 시도하나요? 가능하지 않은 것도 도전하잖아요. 함께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1월 장애여성공감이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원 앞에서, ‘차별 금지법이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을 벌였을 때 든 피켓. (출처: 장애여성공감)

 

지원: 예산 이야기에 대해서 역차별이라고 공격하는 것 같아요. 사회 전체가 비장애중심으로 설계되었는데, 장애인이 받는 억압과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예산을 배정하는 게 왜 문제일까요? 그리고 실제 예산을 보면 올해 장애인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원이지만 탈시설 예산이 24억원밖에 안됩니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와 평등, 존엄을 보장받으며 이동하고 관계를 맺게 하는데 예산이 쓰이지 않고,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쓰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장애여성공감이 지원하는 탈시설 장애여성만해도 활동지원 시간이 월 300시간 정도인데, 안정적인 시간 확보가 되지 않아 시설로 재입소하려고 하기도 했어요. 구청도, 서울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재입소를 이야기해요. 우리의 권리는 헌법 밖인가.

 

-현재 출근길 지하철 타기 행동은 멈추고 삭발 투쟁으로 이동권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선 더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진: 지하철 타기 행동을 할 때, 지하철 통로에 서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그 냉랭한 공기 때문에요. 정말 강력하게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 반대까진 아니지만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 짜증을 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있으려니 정말 숨이 막히더라고요. 근데 그 사람들 보니까 다들 폰을 들고 있더라고요. 그걸로 좀 정보를 찾아보면 안 되나 싶었어요. 우리가 왜 이런 방식으로 이동권 투쟁을 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찾아보면 좋을 텐데…. 이미 손에 폰 있잖아요. 한 번만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현재 삭발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동권 투쟁은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차별로 인해 배제된 다양한 존재들을 떠올리게 해요. 장애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투쟁일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해 주세요. 서로를 돌보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니까요. 투쟁 현장의 치열함을 보면서, 그 속에서 평등을 향한 결연한 의지와 실천을 발견하는 시민들이 우리와 연대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거 같아요.

 

지원: 우리가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21년 동안 무엇을 외쳤는지, 시민들이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불편함을 느낄 순 있는데, 그 동안 출근시간에 등장하지 못했던 존재들, 가지 못하게 가로막히고, 갈 곳이 없었던 뒤틀리고 꼬인 몸들이 지하철에 등장한 것을 더 분명히 봐주세요. 그만하라고 하지 말고, 우리를 분명히 보세요. 우리도 낯선 세계에서 다른 시민들을 만나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같이 상상했으면 좋겠어요. <박주연 기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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