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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들/Feminisms」 전시에 출품한 현대미술가 모모세 아야

 

「페미니즘들/Feminisms」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에서 올 초부터 3월 13일까지 열렸다. 다양한 관점으로 표현된 페미니즘 작업들 중에서, 가장 젊고 새로운 경향으로서 제일 마지막에 전시된 작품이 모모세 아야(百瀬文) 작가와 엔도 마이(遠藤麻衣) 작가가 공동으로 만든 영상작품 「Love Condition」이다.

 

▲ 모모세 아야(百瀬文) 작가와 엔도 마이(遠藤麻衣) 작가가 공동으로 만든 영상작품 <Love Condition>. single channel video, 1h15min40sec, 2020 ©ayamomose.com

 

영상 속 두 사람은 이상적인 성기에 대해 한 시간 이상 수다를 떨면서 찰흙을 만지작댄다. 그러다가 만들어지는 희한한 형체. 그 모양새가 오히려 남녀 이원론을 지탱해온 성기에 대한 의식을 바꾸어 놓는다.

 

‘손’, ‘입’…의미를 발신하고 타자와 교감하는 장소

 

모모세 아야 작가는 일관되게 인식의 틀을 뒤흔드는 영상작품을 만들어왔다.

 

“예술이란 스스로가 믿고 있던 것이 부서지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사회규범과 몸에 내재화된 권력 구조, 고정적인 자기동일성… 우리를 얽매는 몇 겹이나 되는 틀과 경계를 모모세 작가는 픽션을 통해 의식하게 한다. 그리고 영상을 보는 사람을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뒤흔든다.

 

「Social Dance」 작품에서는 농인 여성이 청인 남성 연인과 수어로 논쟁을 벌인다. 점차 감정이 격앙되자 남성은 여성의 손을 꽉 붙잡는다. 수어를 번역하던 자막도 순간적으로 중단된다. 타자의 ‘목소리’를 빼앗는 폭력이 드러난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여성도 있었어요. 질책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남성 관람객도 있었고요. 하지만, 여성을 피해자로 그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여성인 저도 다른 맥락에서는 저런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경우에 따라 일본의 여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국적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특권적인 위치일 수 있는 것처럼요. 이러한 질문을 다시 던지기 위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남성과 여성, 청인과 농인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뿐 아니라 모모세 작가의 작업에서는 손과 입에 대한 독특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

 

“손은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수어를 하는 등 의미를 발신하는 장이기도 하고, 서로 닿아 교감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언어를 발화하는 입 역시 상대를 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장이기도 합니다. 양쪽 다 의미와 육체를 통해 타자와 교감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 모모세 아야. 1988년 도쿄 출생. 현대미술작가. <듣지 못하는 기노시타 씨에게 들은 몇 가지>(2013)를 비롯해 <Social Dance>(2019), <Jokanaan>(2019), <Born to Die>(2020), <Flos Pavonis>(2021) 등의 영상작품을 여러 국가에서 제작, 발표하고 있다. 촬영_오치아이 유리코

 

재생산권 통제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서사

 

최신작인 「Flos Pavonis」는 지금까지의 작업 중 정치색이 가장 뚜렷하다. 작품의 계기는 최근 폴란드인 친구로부터 전해진 소식이었다. 임신중지 시술을 거의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온 나라에 항의 시위가 확산되었다는 것.

 

이 무렵 모모세 씨는 카리브해 지역에서 임신중지에 사용했던 약초 플로스 파보니스(Flos Pavonis)의 역사를 쓴 책을 읽고 있었다. 성적으로도 착취당하던 여성 노예는 주인의 아이를 낳고도 노예제 유지에 봉사해야 했다.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 여성들은 이 약초로 임신중지를 시도했다.

 

“노예제도에 대해 자기 몸을 내건 저항 행동이죠. 그것이 코로나 사태 속 폴란드와 연결되었습니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국가는 여성의 몸을 ‘아이를 낳는 장치’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가설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지가 너무 강한 것 같아 주저하기도 했지만, 아니, 이건 분노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작품 속에서 나탈리아라는 여성은 폴란드 여성들의 항의 시위로 소란한 바르샤바에서 그 비명에 연대하듯 방에서 계속해서 섹스를 한다. 그리고 모모세 씨는 인공임신중지를 금지당한 폴란드 여성들에게 연대하여 오키나와에서 자생하는 약초 오우코초를 캐러 간다.

 

“나탈리아가 섹스-프렌드와 맺는 관계는 혼인제도에서 삐져나온, 멸시당하기 쉬운 관계이지만, 살을 맞대고 서로 돌보는 신뢰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관리로부터 도피한 장소에서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고독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며 산다, 그런 투쟁의 방식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산다

 

모모세 아야 작가는 지금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의 공동체, 새로운 가족을 꾸려 산다. 두 명의 파트너도 예술가들이다. 모모세 씨는 이 관계에서 자신을 ‘아이’라고 부른다. “규범에 익숙해지는 일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성숙한 자아로부터 일부러 도망치는,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아이’에요.”

 

이렇게 새로운 가족을 꾸린 배경에는 원 가정에서 품었던 결핍감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완고한 페미니스트로 법률혼을 택하지 않은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철학은 지금도 자랑스럽고 존경하지만, 부모님은 항상 싸웠고, 이상과 현실이 괴리된 집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고통스러워서 내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을 다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딱 들어맞는 가족의 형태인 세 명의 공동체. “긴 시간을 들여 결국 여기에 이르렀다고 할까요? 하지만 저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가 싶어서 굉장히 고민했고, 함께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도 지금의 상태가 좋다고 해서요. 세상에는 일대일이 힘든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우연히 그런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물론 감정이 흔들리는 일은 있지만, 지금은 기적적인 밸런스로 평온한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나카무라 토미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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