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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멜리사 맥카시와 코미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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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찰리 채플린을 떠올릴 것이다. 채플린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달인으로, 저소득층을 대변하며 많은 이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채플린 속 여성 캐릭터는 어떠한가. 그냥 웃는 여자일 뿐이다. 많은 코미디 영화에서 이를 답습했다. 웃게 하는 사람은 남자고 웃는 사람은 여자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웃음을 원했다. 그러나 정작 웃기는 여자는 비호감으로 일축되었다. 웃는 여자는 사랑의 대상이지만 웃기는 여자는 그러지 못했다. 웃기는 남자는? 그의 능력은 엄청난 것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속에서 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여자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여자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업에도 그 낙숫물은 그대로 쏟아진다. 유치원 교사가 그러하고 간호사가 그러하다. 웃지 못할 상황에 수차례 놓이는 고강도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요구되어왔다. 유치원 교사였던 한 친구는 그 시절을 ‘원장님과 눈이 마주치면 “웃어!”라고 했다’며 회상하곤 했다. 과한 친절과 다정함이 당연한 듯,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싸가지”로 분류되었다.
웃음에도 허용되는 웃음이 따로 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온화한 미소다. ‘여자들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속담에서 그 요구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코미디언 김숙은 한 프로그램에서 여성 코미디언끼리 모여 깔깔 소리 내어 웃으며 “여자들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야 제맛이지”라고 응수했다. 이것이 진정한 코미디다. 불편함을 꼬집고 웃음으로 비트는 것 말이다.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 주인공인 수많은 코미디 영화에서 소수자들은 어디에 이입을 해야 할까. 그냥 관객석에 앉아 영원히 웃기만 해야 하는 걸까. 그것이 진정한 웃음일까. 웃음에서도 누군가는 배제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멜리사 맥카시가 나타나면 어떨까. 멜리사 맥카시의 영화를 중심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진정한 웃음이 필요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 영화 <더 히트>(폴 페이그 감독, 2013)의 장면 중 산드라 블록과 멜리사 맥카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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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왕, 멜리사 맥카시
멜리사 맥카시는 백인 여성 배우로 코미디의 왕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코미디의 왕>(1983) 속 주인공은 남성이었지만, 아니다. 멜리사 맥카시다. 그는 다수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기량을 뽐냈고, 웃음을 줬다. 다양한 영화에서 남성이 하던 역할들을 여성으로서 해내며 통쾌하게 비틀었다. 형사, 스파이, 과학자, 히어로는 물론 찌질한 패배자도 해냈다.
폴 페이그 감독의 <더 히트>(2013)는 전형적인 ‘투캅스’ 스타일의 형사 버디물이다. 엘리트 형사 역으로 산드라 블록이 나오고 여러모로 못난 형사로 멜리사 맥카시가 등장한다. 산드라 블록은 깐깐하지만 허술하고 멜리사 맥카시는 임기응변에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멜리사 맥카시는 그동안 형사물에서 수두룩하게 봐왔던 남자 형사처럼 거칠다. 남자관계도 거칠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한 옛 남자에게 거칠게 키스를 날리고는 버린다. <거꾸로 가는 남자>(엘레오노르 포리아트 감독, 2018)에서 볼 수 있었던 ‘미러링’이 이 영화에서는 덜 진지하고 유쾌하게 스크린을 장악한다.
폴 페이그 감독과 멜리사 맥카시는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에서도 멜리사 맥카시는 엉뚱한 신부 들러리로 등장한다. <고스트버스터즈>(2016)에서는 유령을 청소하는 과학자로 분한다. <고스트버스터즈>는 과거 남성 네 명이 주인공이던 원작 <고스트버스터즈>의 리메이크작으로, 여성 네 명이 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다. 남자도 나오긴 한다. 그동안 히어로 물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하던 ‘아이 캔디’(eye candy, 눈으로 보기에만 좋은 사람) 역할로, 크리스 헴스워스가 등장한다. 금발의 백치 미녀가 늘 해오던 역할을 금발의 백치 미남이 대신한다. 이 역시 코미디 장르다운 웃음 포인트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의 명대사로도 유명하다. 안전 경고등이 꼭 필요하냐는 교수의 말에 홀츠먼 역의 케이트 맥키넌은 이렇게 대답한다. “남자들을 위한 거죠.”
지적인 여성 히어로들의 등장은 ‘여성은 수학과 과학에 약하다’는 편견을 뒤집어 놓는다. 그간의 괴짜 남자 영웅의 자리는 여자가 해도 충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고스트버스터즈>는 영화 상영 초반부터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 또한 이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다. 영화가 나온 해 핼러윈 때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주인공들이 입었던 복장을 입고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꾸역꾸역 남자 주인공에 이입해오던 여성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생긴 셈이다.
▲ 여성 히어로들을 등장시킨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 <고스트버스터즈>(폴 페이그 감독, 2016)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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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히어로는 벤 팔콘 감독의 <썬더 포스>(2021)에도 나온다. 멜리사 맥카시와 옥타비아 스펜서가 함께 주연을 맡은 히어로 버디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히어로들은 날씬하지도 젊지도 않다.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였던 그들의 체형과 나이는 더 이상 웃음거리가 아니다.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도 여성을 희화화하는데 일조했다. 못생긴 여성, 뚱뚱한 여성은 단박에 놀림거리로 전락했다. 그들은 이들을 ‘여성’으로 보지 않으며 ‘비여성’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여성 동료와 그냥 여성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여성’은 오직 연애 대상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KBS 다큐인사이트-다큐멘터리 <개그우먼>(2020)은 여섯 개그우먼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이를 매콤하게 꼬집는다. 그간의 웃음이 얼마나 혐오로 얼룩졌는지 돌아보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웃기는 여성은 이렇게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웃기는 여성은 감칠맛 내기 조연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스크린 앞에 홀로 설 수 있으며, 또 다른 웃기는 여성과 우르르 설 수 있다.
PC해서 개그를 못한다?
PC(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개그를 못하겠다는 말들은 이 코미디들 앞에선 무색한 변명이 된다. 왜 못 웃기나. 왜 게으르게 웃기나. 이렇게 재밌게 할 수 있는데, 왜 혐오와 편견으로 얼룩진 잔혹한 웃음을 만들어내는가. 풍자와 해학의 방향은 위를 향해야지 약자를 향하는 순간 혐오에 불과하다. 권력을 비트는 것이 코미디의 본질이다.
폴 페이그 감독은 꾸준히 여성 코미디를 만들어왔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는 스릴러 코미디로, 안나 켄드릭의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재미없고 찌질해 보이는 안나 켄드릭의 일상에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다가오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평범한 안나 켄드릭의 비범한 과거가 면면이 드러나고, 우리는 비범해 보이는 자와 평범해 보이는 자의 맞대결을 보게 된다.
평범한 여자 주인공을 소재로 한 코미디로는 미키 사토시 감독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6) 또한 명작이다. 하지만 영화 중간 호모포빅한 대사가 등장하고 웃음의 흐름을 해쳐 놓는다. 진정한 웃음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PC가 아닌 언PC(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함)이다.
▲ 영화 <스파이>(폴 페이그 감독, 2015) 중 멜리사 맥카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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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페미니즘 코미디 버전
폴 페이그 감독은 <스파이>(2015)에서 다시 한번 멜리사 맥카시와 호흡을 맞춘다. 스파이 영화하면 007이 떠오른다. 007 시리즈 속에서 여성은 어떠했나. 남성의 욕망을 위한, 남성 스파이의 섹시함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쓰인다. 마치 잘 차려입은 슈트와 다를 바 없다. ‘본드걸’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여성 캐릭터가 납작하게 그려졌다.
<스파이>는 이를 전복한다. 말끔한 슈트에 말 수 적은 마초 스파이가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웃음도 많이 주는 우리의 멜리사 맥카시가 주드 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멜리사는 스파이의 귀 속 장치에 존재한다. 이런 저런 정보들을 알려주고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내지만, 멋과 폼은 남성 스파이의 몫일 뿐, 열악한 사무실에 갇혀있는 멜리사에게는 아무 공도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주드 로의 부재로 인해 멜리사가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여기서도 성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동료 스파이는 여자라고 끊임없이 무시를 하고, (정작 사고는 본인이 다 치고 똥은 멜리사가 다 치운다) 다른 스파이 또한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엄연히 여자를 동료로 보지 않는 태도다. 여자는 일에 불필요한 존재 혹은 섹스의 대상으로만 치부된다. 과정 속에서 성차별적인 구조와의 충돌은 계속되지만 멜리사는 결국 멋지게 작전을 해낸다.
<스파이>는 ‘본드걸’을 납작하게 그려온 영화사에 복수라도 하듯 남자들을 납작하게 그린다. 허세에 절어있거나, 섹스에 미쳐있다. 통통한 체형의 젊지 않은 여성이 스파이임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작전은 실시된다. 자신들의 연애 대상에서 벗어난 여자들을 유야무야 취급한 대가를 악당들은 고스란히 받게 된다. <스파이>는 한마디로 007 페미니즘 코미디 버전이다
문소리의 코미디
한국의 코미디 배우 하면 필자는 가장 먼저 문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도 동명의 영화 <스파이>(이승준 감독, 2013)가 있다. 시놉시스만 찾아보면 스파이인 남성 철수 역의 설경구 중심의 이야기 같지만, 남편이 스파이인 지도 모르는, 그만큼 세상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기혼 여성 영희 역의 문소리의 ‘진화 서사’로 해석이 가능하다. 시댁에 치이고 남편에게 밀리던 문소리는 어쩌다가 스파이 작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침투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고뭉치 같지만 나중에는 큰 역할을 해낸다.
▲ 영화 <세자매>(이승원 감독, 2021)에서의 문소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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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코미디 연기는 진지해서 웃기다. 자타공인 최고의 배우 문소리의 연기가 어떤 장르에서 빛을 발하지 않겠냐마는 코미디 연기 또한 정말 예술이다. 과장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인다. 문소리 안에 들어간 캐릭터는 납작한 종이 한 장일지라도 두꺼운 백과사전으로 변모한다.
이는 <세자매>(이승원 감독, 2021)에서도 그러했다. <세자매>에서 문소리는 교회 성가대 지휘자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지휘하는 컷을 생각해 보자. 뻔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성스러운 표정으로 지휘하는 것. 문소리는 다르게 그렸다. 미소 대신 목을 꼿꼿이 세우기로 작정했다. 미소 대신, 감정이 넘치는 지휘 대신 목을 꼿꼿이 세운 것으로 교회 내 권위와 억지 우아함을 표현했고, 자칫 식상할 뻔했던 씬을 온전히 캐릭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세자매>라는 잔혹한 영화 속에서 그나마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통렬한 비판도 아니오, 풍자의 연출도 아니다. <세자매>는 풍자를 하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아주 잔혹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문소리는 거짓된 행복을 추구하는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멜리사 맥카시와 문소리의 코미디를 하루종일 보고 싶다.
슬픔과 코미디
웃음이 간절히 필요한 시대다. 아니, 사실 모든 시대에 웃음은 필요했다. 모든 시대에 슬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웃음은, 코미디는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에서 출발한다. 웃음은 슬픈 현실을 통쾌하게 비틀어 버리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준다. 현시대에도 슬픔은 빨래처럼 집집마다 널려있다. 슬픔이 발에 채여 걸음걸음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순간 당신에게 코미디를 권하고 싶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소개한 코미디들 역시 완벽하지는 못하다. 비인간동물을 비하하는 종차별적인 농담이 가끔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차별과 혐오의 앵글을 넘어선 유머의 등장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유머가 전폭 흥행하길 바란다. 그때 모든 약자들의 웃음소리가 프레임을 넘겠지. 코미디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일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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