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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벌써 몇 년 전, 서울 아현동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을 TNR(길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Trap]한 후 중성화[Neuter]한 다음 원래 살던 장소에 돌려보내는[Return] 것을 말한다)하는 활동에 한번 참여한 적이 있다. 고양이 집사로 살아온지 몇 년 차로 나름 동물권 관련 활동도 조금은 하고 있었지만 길고양이 TNR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다. 완전 초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시 받은 일을 잘 따르는 것이었다. 사람이 떠나고 버려진 물건들과 남겨진 건물 속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하기 위해 통덫을 설치하고, 통덫을 옮기기도 하고, 포획된 고양이를 병원으로 이동시키는 것. 고작 하루, 몇 시간 동안의 일이었지만 길고양이를 돌본다는 것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2020) 중 TNR을 마친 고양이를 방사하는 모습 (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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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길고양이를 돌본다는 건 단지 밥을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흔히 ‘캣맘’, ‘캣대디’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이들은 여러 돌봄을 하는 ‘케어러’(Carer)에 가깝다. 아프면 약을 주기도 하고, 긴급한 상황일 땐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영역 내 길고양이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도록 TNR도 해 준다.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밥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길고양이 급식소’도 만들고, 길고양이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목소리도 낸다.
그렇다면 길고양이가 살던 공간이 인간들의 상황에 의해 없어질 위기에 놓였을 땐 어떻게 될까? 이 케어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한국 ‘여성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아파트 생태계>(2017> 등을 만들어 온 정재은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그 질문에 접근한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동쪽 끝에 위치한 둔촌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250~300 마리(둔촌냥이 추산) 고양이들과,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돌봄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도시 주거의 현장을 드러낸다.
▲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중 아파트 모습 (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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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1979년, 준공되었을 때만 해도 ‘아시아 최대의 아파트 단지’라 불리기도 했다는 둔촌주공아파트는 2017년부터 재건축을 위한 주민 이주가 시작되었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2018년도는 이미 주민 이주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곳곳이 비어버린 낡은 아파트와 버려진 가구 등의 쓰레기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건 길고양이들이다. 흔히 길에서 보던 길고양이들 같기도 한데, 공순이, 뚱이, 반달이, 깜이, 예냥이, 노랭이 등의 이름이 있고 각기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고양이들. 이들은 사람이 떠나버린 공간에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이 떠났다고 해서 영역동물인 이들이 자신의 삶을 터전을 바꿀리 만무하고, 무엇보다도 이 고양이들은 이 공간이 곧 무너져 내린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런 고양이들이 계속 생존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나선 건, 아파트 단지 옆 동네 주택에 살아오면서 동네 변천사를 지켜봐 온 김포도 작가, 아파트 주민이자 캣맘으로 ‘둔촌냥이’ 활동은 물론 사라지는 아파트의 기록을 담은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인규 작가, ‘둔촌냥이’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들의 구조와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대표를 비롯한 여러 캣맘 그리고 활동가들이다.
고양이들의 이주를 위해 뛰는 ‘둔촌냥이’ 활동이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다. 이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기도 하지만 때론 누가, 어떻게 이 고양이들의 미래를 결정한 것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오랫동안 이 고양이들을 돌봐온 ‘캣맘’들과 동물권 활동가들의 관점 차이가 드러나며 갈등도 생긴다. 어떤 것이 고양이에게 안전한 이주가 될 것인지, 이주가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많아지고 불안해지지만, 고양이가 아닌 인간이 그 답을 알기란 어렵다. “여기 계속 살고 싶냐고” 물어도 답을 얻을 수 없으니까.
▲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중 아파트 단지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모습 (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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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열심히 움직이며 고양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단지 내 고양이들의 사진과 이름, 특징, 주로 지내는 공간 등이 담긴 노트를 제작해 들고 다니며 고양이의 숫자와 상태를 파악하고, 떠난 사람들의 몫까지 고양이 밥을 챙긴다. 떠나는 이들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양이 돌봄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 속 어느 캣맘은 솔직히 말해 (재개발로 인한) 이익을 바라고 이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고양이들을 돌보다 이렇게 떠나게 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헤어짐의 순간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그렇게 고양이들의 이주도 시작된다.
아파트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만 했을까?
고양이들의 이주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길이 아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입양 보내기), 포획해서 이동시키기, 밥 자리를 이동시키며 자연스러운 이주를 유도하기. 어느 하나 쉬운 건 없다.
입양을 갈 수 있는 건, 사람들 잘 따르거나 사람과의 생활이 가능한 고양이 혹은 길에서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이들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한정되어 있다. 또 나이가 너무 많을 경우 입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린 고양이들이 대부분이다. 통덫으로 포획해서 길고양이들이 살만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또한 어느 정도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여야 한다. 고양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시켜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포획이 힘들거나 사정상 직접 이동이 힘든 경우엔 이동을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소통이 되지 않는 존재들을 이렇게까지 이주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아파트가 단지 사람만이 사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도 고양이를 비롯한 여러 길동물이 살아가고 있고, 아파트 내 나무와 꽃들로 이루어진 작은 숲엔 새들과 곤충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파트라는 인공적인 공간에 그런 ‘자연’을 만드는 건 인간에게도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 자연은 인간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린 쉽게 그 사실을 잊고, 공간을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다.
▲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중 텅 빈 아파트를 배회하는 고양이 모습 (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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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가 발행한 <도시정비구역 길고양이 보호활동 사례집>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서울시의 관리처분인가 단계의 재건축 지구는 31개소, 재개발 지구는 25개소”다. 이는 “서울시 자치구가 모두 25개라는 걸 생각하면, 한 두당 2개 지구에서 도시정비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도시정비’ 사업은 오로지 인간의 편의에 의해 진행되는 일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들은 이런 사업들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사라지면서 영문도 모른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기꺼이 길고양이들과 이웃이 되고자 한 이들만이 고군분투할 뿐이다.
도시라는 장소의 이면
보통의 노동자가 평생 일해도 살 수 없는 대도시의 아파트, 이제 몇 십억의 분양가, 매매가를 찍는 이 아파트의 수명은 예상 외로 길지 않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에도 30년이 지나자 재건축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아파트의 평균 수명은 보통 30년으로 이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도 무척 짧은 수준이다. 독일이나 영국은 120년 정도 버틴다고 하는데 한국에선 고작 30년 만에 여러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 살 수도 없는 아파트는 도시인들의 꿈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 끝을 알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고만 있다. 정말 누굴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채. 영화를 보다 보면 하나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다. ‘부동산 광풍’이 자리 잡은 도시 속에서 살 곳을 잃어가는 건 고양이뿐만이 아니라는 걸. 원치 않는 이주를 해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생존에 위협을 받는 건 인간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상이 주목하는 건 ‘잃어가는 사람들’,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속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목격하기 힘든, 길 위에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고양이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물론이거니와 쉽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과 연대의 장면을 말이다.
▲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3월 17일 극장 개봉했다. (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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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카메라가 담아내는 현장을 보면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커다란 무덤 같아서. (고양이의 죽음 등이 나오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길)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진짜 모습이구나.
극장에서 안 봐도 괜찮은 영화가 어디 있겠냐만은 이 영화는 정말 극장에서 보길 추천한다. 커다란 스크린 속 고양이는 그저 사랑스럽고, 고양이 이웃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엔 따뜻함이 넘쳐난다. 또한 도시의 민낯은 주거, 생존, 터전은 사라지고 부동산만 남은 이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가 직시해야만 하는 현장이다. 덧붙여, 감독의 제작노트에 따르면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든 건 9시간짜리 첫 편집본이라고 하는데, 그 9시간엔 무엇이 담겼을지 궁금하다. 언젠간 그 또한 공개될 수 있을까? (박주연) 일다
※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예고편 https://youtu.be/TuKEA3xRuZI
※ 김포도 작가가 발행 중인 고양이 잡지 [매거진 탁] https://instagram.com/magazine.tac
※ 이인규 작가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 https://instagram.com/hibyedca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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