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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밥 많이 먹는 색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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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많이 먹는 색시>와 <밥 안 먹는 색시>는 섬뜩한 블랙코미디의 1, 2부쯤 된다. 주인공 남자가 밥을 많이 먹는다며 자기 마누라를 패 죽인 뒤에 창자 속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 못지않다. 또 새 마누라가 몸을 열어 숨겨뒀던 거대한 입을 드러내는 장면은 괴기스러움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도 디지털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수십 편의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이야기판의 분위기는 자못 유쾌하다. 대부분 여성인 이야기꾼들은 이 으스스한 이야기를 눈도 깜짝 않고 천연덕스럽게 풀어놓고 있다.

 

(여자가) 밥을 하도 많이 먹으니깐, 신랑이 

“오늘 사람 열만 얻어서 일을 허니 열 사람 밥을 해 와라.” 

그리구서 인제 가서 일을 하니까 여자가 밥을 열 사람 몫아치 다 해 가지고 왔대.

(한국구비문학대계 2014년 경기도 고양시 이순래의 이야기)

 

주인공인 신랑은 ‘사람’이다. 밥의 주인인 그는 밥을 지어주는 ‘여자’가 식욕이 왕성하다는 걸 알았을 때 두려움에 휩싸인다. 여자가 감히 분수를 모르고 ‘사람’처럼 먹을 것을 탐하다니! 오늘날까지 여성의 몸은 음식으로 취급되어 왔다. 앵두 같은 입술부터 복숭아 뺨 등 부위가 나눠진 채 먹을거리로 표현된다. 귀한 딸은 ‘고명’이 되어 음식의 때깔을 보태고, 술 취한 여성은 ‘골뱅이’가 되어 ‘따 먹힌다’. 식욕과 성욕은 모든 인간의 욕망이라지만, ‘먹히고’ ‘대주는’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여성의 식욕은 출산과 수유 같이 뚜렷한(?) 명분이 있을 때에만, 그것도 환대받는 출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딸을 낳은 산모가 눈치 보느라 미역국을 마음껏 먹지 못했다는 사연은 차고 넘친다. 여성은 허기나 식욕을 밖으로 드러내도 안 된다. 밥상 앞에 남녀가 있을 때, 한 사람은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한 사람은 바가지에 담아 상 밑에 두고 퍼 먹는다면 둘 중에 누가 여성이겠는가? 바가지에 담겼을 누룽지나 식은 밥을 상대방이 숟가락을 놓기 전에 얼른 퍼먹고 일어나 숭늉을 내 와야 하는 사람이 누구였겠는가.

 

주인공 남자의 상식으로 여자는 ‘원래’ 고기 같은 건 안 좋아하고, 누룽지를 밥보다 더 좋아하며, 식구들의 다음 끼니를 남기려고 대궁밥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는 감히 건장한 남자처럼 먹으려 드니 이거 야단났다. 요샛말로 ‘된장녀’나 ‘김치녀’처럼 제 몫을 챙기고 입치레를 하면 집안 살림, 나라 살림을 어떻게 불리겠는가. 더구나 밥을 양껏 먹고 기운이 솟구쳐 남자를 업신여기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가 아닌가. 그는 아내의 숨은 욕망을 들춰내고자 뱃구레를 시험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 “일꾼이 왜 없냐?” 그래 보니까 

“이만 저만 해서 일꾼이 다 깨졌다. 그러니깐 그럼 이 밥을 다 먹고 가라.”고 그랬대. 신랑이 색시더러. (...) 그랬더니 여자가 앉아서 열 사람 먹을 걸 다 먹구서 들어갔대는 거야. 집엘 들어갔대.

 

아내는 이왕 해온 밥이니 다 먹고 가라는 남편의 말을 들은 대로 받아들인다. 둘만의 들판, 그녀는 그동안 억눌러두었던 식욕을 마음껏 드러낸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 아내의 폭발적인 욕망을 두 눈으로 확인한 뒤 남자의 두려움은 위태롭게 증폭된다.

 

신랑이 하두 황당하니까 ‘이 들어가서 뭘 허나.’ 하구서 보니까는, 그냥 콩을 볶더래, 콩을. 콩을 볶아서 그냥 먹더래.

“에, 이 년아.” 그러구 냅다데기, 하하하~, 배가 터져 죽었대. 

(...) 그러니깐 벌써 콩을 볶으면서 집어 먹은 데, 콩 들어간 데 벌써 밥이 삭구, 콩 없는데 밥이 안 삭구 그냥 있더래잖아.

 

강자의 두려움은 쉽게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다. 밥을 그렇게 먹고도 남몰래 콩을 볶아 먹다니! 그는 아내가 고소한 샛서방이라도 몰래 둔 것처럼 분에 못 이겨, 그녀를 때려죽인 뒤에 그릇된 욕망의 최후를 들여다본다. 그렇지만 드러난 것은 욕망덩어리의 괴물 같은 몸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이 베푼 뜻밖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열 그릇이나 되는 밥을 꾸역꾸역 먹었으며, 그 밥을 삭히려고 콩을 볶아먹었던 것이다. 그녀는 죽어서야 ‘당신과 다를 바 없는 몸’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 ‘앵두’ 같은 입술부터 ‘고명’ 딸, 골뱅이, 된장녀, 김치녀까지… 먹을거리로 비유되며, 가족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할 ‘여자’가 왕성한 식욕(욕망)을 드러냈을 때, 가부장제는 공포에 휩싸인다. (출처: pixabay)

 

남자는 첫 마누라와 달리 숨 쉴 만큼만 먹으면서 부모조상 잘 섬기고, 집안 살림 일구고, 남편 기죽지 않도록 잠자리 해주고, 아들을 쑥쑥 낳아줄 여자를 사방으로 구하러 다닌다. 그러다가 바라던 대로 입이 벌레 주둥이만큼 작은 여자를 찾아낸다.

 

그래서 인자 그 며느리 쫓가내삐고, 입이 작은 며느리로 인자 하나 또 얻었어. 얻어놓은께, 입은 작아서 보는 디{보는 데서는} 밥은 안 먹는디, 자꾸 양슥은{양식은} 찧어 놓으면 굴어삐고, 찧어 놓으면 굴어삐고 해싸.

(한국구비문학대계 2011년 경남 남해군 이옥지의 이야기)

 

두 번째 여자는 거식증에 비길 정도로 식이장애를 겪는 듯이 보인다. 거식증은 죽음을 부르는 심각한 질병이지만 남자의 집에서는 애당초 며느리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 유일한 걱정은 이 여자도 혹시 남모르게 숨겨둔 욕망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은 새로 얻은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한다.

 

한편 여자는 남편의 전처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고 있으므로 살해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변형시킨 채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대로 먹어준다. 하지만 그녀는 호락호락 굶주림을 참고 있지 않았다.

 

그리 인자 망을 봤다. 망을 본께, 들어오더니 쌀을 그만 많이 퍼가지고 나가서 밥을 해가지고, 밥을 한 솥 해가지고 이만한 댕이다가{대야에다가} 한 댕이 퍼가 오더니, (...) 손에다가 물을 묻히 가지고 이 주먹만치 뚤뚤뚤 뭉치더니, 요요 꼭디, 정시리{정수리} 여 따까리를{뚜껑을} 떼고, 욧다 그만 주 옇어삐고, 주 옇어삐고 그만 순식간에 밥 한 다랭이로 다 주워옇어 비더란네.

 

그녀는 또 다른 입을 키우고 있었다. 부정당한 욕망을 차곡차곡 머릿속에 저장하여 덩치를 불려온 것이다. 머리 전체가 거대한 입이 되었다는 건 허기가 정신적인 문제로 나아갔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더 이상 굶주림을 참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을 어떻게 막겠는가.

 

여러 채록본의 결말은 다양하다. 아내가 머리뚜껑을 따거나 가슴을 열어젖히고 숨겨뒀던 거대한 입을 드러내자 놀라자빠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있고, 또다시 쫓아내거나, 쫓아냈던 전 마누라를 도로 데려오기도 한다. 밥 안 먹는 마누라를 찾느라 장가를 아홉 번이나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이좋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론이 드문 것은 여성의 몸과 욕망에 대한 남성중심의 폭력적인 시선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판의 그녀들은 아름다운 화해를 선택할 수 없었다. 대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때로는 으스스하게 때로는 깔깔대며 끝없이 이야기하기로 한 것이다. 남성 권력은 여전히 세상에 없는 몸을 상상하며 ‘밥 많이 먹는 마누라’를 공격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들은 끄떡없이 다시 살아나 먹고 놀고 말할 것이다. 머리 뚜껑이 열린 여자가 섬뜩한가? 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온 몸이 입으로 바뀐다면 모든 것을 삼켜버릴 수도 있다.

 

[필자 소개] 심조원. 어린이책 작가, 편집자로 이십 년 남짓 지냈다. 요즘은 고전과 옛이야기에 빠져 늙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인 팥죽할머니의 회원이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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