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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를 읽고

▶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인 대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아들 성교육이 사회를 바꾼다 미투(#MeToo) 확산, 성평등한 성교육의 중요성 부각 초딩 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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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초’ 지역 대구에서 딸만 둘인 가정에서 태어나 엄마와 셋이 살았다. 여중-여고-교대를 졸업했고 지금은 초등교사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여성이 계속 많은 공간에서 살아왔던 셈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성차별의 경험을 ‘덜’ 겪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와 길을 나서면 ‘딸딸이’니까 아들을 낳아야 겠다는 말을 들었고, 매일 교문 앞에서 속옷 검사를 당했으며, 남학생이 반바지를 입거나 귀걸이 하면 F학점을 주겠다고 공언하는 교수에게 교육학을 배웠다. 대학원에 가서도 성매매 업소에 드나든 이야기를 하는 교수한테 ‘대들고’, ‘따지며’ 졸업을 했다.

 

이렇게 학교에 다니고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일한 시간이 30년 훌쩍 넘지만,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배운 적도 없다.

 

▲ 책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엮음, 엄혜진 신그리나 김서화 외 5인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1) 표지

 

학교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겐 언어가 필요했다. 플룻을 너무 배우고 싶지만 ‘여자애는 입에 무는 악기는 조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야금이나 바이올린 같은 걸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울고 있는 학생에게, 두 배의 수고를 감수하고서도 굳이 굳이 운동회 기념품을 분홍색(여학생용)과 하늘색(남학생용)으로 나누어 구입하는 동료 교사에게, ‘우리 학교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교장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지침이 절실했다.

 

최근 학교에서 접하는 성차별은 나의 성장기보다 덜 노골적이고 덜 폭력적일 수 있으나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었고, 좀 더 세련되고 포괄적인 양상을 보여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 발간 소식은 반가웠다.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들이 쓰고 교육공동체 벗에서 만든 이 책은 각 장마다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

-성평등 교육은 왜 위험한 교육이 되었나?

-경쟁 교육 체제는 성평등을 어떻게 상상하게 하는가?

-갈등과 긴장은 어떻게 배움이 될 수 있는가?

-젠더폭력 예방교육은 왜 반복해서 실패할까?

-성폭력 피해 예방을 넘어서는 교육은?

-여성성/남성성을 벗어나는 것으로 충분한가?

-연애와 사랑을 가르치는 페미니즘 교육이란?

 

저자들이 벼려낸 질문들 자체가 30년 넘게 느껴온 언어의 결핍을 채워주는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내가 학생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질문들부터, 교사로 학생들을 만나는 지금 갖고 있는 질문들, 페미니즘과 교육을 둘러싼 최신의 논의까지를 다 포함하고 있다.

 

페미니즘 교육의 토대 만들기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학교에서 성교육이 제도화되었다. 처음으로 성교육을 받았던 날을 기억한다.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한 사람의 강의를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성교육이라기보다는 위생교육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들린 생리대를 보는 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선 교사는 그 수업을 희화화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교사의 말을 되받아쳤는데, 너무 통쾌한 저항이라 나는 마음 속으로 기립박수를 쳤고 그 교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의 긴장감을 나는 아직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후에 받은 성교육 수업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안으로 움츠러들고 하얀 포장지에 싸여지는 느낌이었다. 생리대를 버릴 때는 생리대 포장지에 싸고, 휴지에 싼 다음 또 신문지에 싸서 버려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있으면 내 몸 역시 겹겹이 감추어지는 기분이었다. 학생 때 느꼈던 그런 기분들, 그리고 교사가 된 내가 성교육을 받고 또 진행하면서 느꼈던 거끌거끌함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성평등 교육이 학교에서 왜 위험한 교육이 되었나’, ‘갈등과 긴장은 어떻게 배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 책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엮음) 카드뉴스 중에서.  ©교육공동체벗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페미니즘만도, 교육만도 아닌, 페미니즘 교육을 아울러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나 민주주의, 빈곤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들은 교육을 통해 다루어지길 다급하게 요구받는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기후위기 교육은 다르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논의는 다르다. 사실 그러한 이슈들은 현재 뜨겁게 논의되고 있지만 사회에서 아직 소화되지 않았고, 그만큼 어떻게 교육하면 좋을지, 어떤 내용으로 다가갈지, 어떤 학생들에게 어떻게 지원되어야 할지 충분히 고민되지 못한 상태로 학교 현장에 던져진다.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지만 이들이 교육의 전문가들은 아니기에, 한편으로 교사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아니기에, 그 간극의 차이만큼 학교 교육은 미끄러지곤 한다.

 

페미니즘 교육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페미니즘 교육을 잘 이야기하는 글과 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라는 국민청원 운동이 제기되었지만, “정작 페미니즘 교육이 무엇이며 페미니즘 교육을 할 때 어떤 지식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9쪽) 않았다. 그저 필요하다, 중요하다는 메아리만 있을 뿐이었다.

 

이 책에는 페미니즘 교육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특히 “학교 간, 학생 간 서열주의를 강화하고 소수의 승자를 선별하여 다수의 낙오자로 만드는 교육 시스템”(23쪽)에 문제를 제기한다. 변화를 위한 모색과 계기들도 제시한다. “‘스쿨 미투가 학교에 남긴 각각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70쪽)에 주목하자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학교, 교육, 사회가 경쟁을 중시하면서 “‘성’을 언급하지 않는 것, 그것을 그냥 자연적이고 신체의 기질적 요소로만 남겨 두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이 ‘평등’이라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공정하다는 감각 위에 구성된 성평등의 새로운 이해”(109쪽)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에는 폭력이 젠더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면, 요즘은 공정과 차별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다루면서 구조적인 모순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이미 성평등은 이루어졌고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당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실태는 성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지 않으면서 평등을 이야기해온 교육이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은 공정담론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경쟁과 페미니즘 그리고 페미니즘 교육을 연결하여 분석하고 있다.

  

▲ 책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엮음, 엄혜진 신그리나 김서화 외 5인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1) 카드뉴스 중에서  ©교육공동체벗

 

사고의 확장, 관계의 확장을 통해 공존을 배우는 교육

 

이 책의 마무리는 연애와 사랑 같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연인과의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가 많다는 말을 다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성폭력 예방교육은 많이 받았고 그에 대한 대처는 머리에 그려지지만, 좋아하는 관계에서 오가는 긴장, 힘겨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조율하는 방법은 누구에게 조언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토로였다.

 

이 책은 “단지 연애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응하는 법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알려 주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267쪽), “자신의 생애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교육”(271쪽)을 제안한다. 연애와 사랑은 자신의 삶에 중요한 타자를 개입시키는 일이고, “타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애 전망을 변화시키는 일”(271쪽)이기 때문에 삶 전체를 두고 고민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서로를 돌보는 친밀한 관계의 삶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취약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돌봄’의 의미를 회복하고 “때로는 반려동물․식물이나 우정으로 맺어진 친구 등을 돌보는 것을 상상하면서 기존의 가부장적 관계 맺기의 틀을 넘어 관계를 확장하는 훈련”(273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교육은 참여자로 하여금 이후에 뭔가를 더 할 수 있고, 더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매끄럽게 잘 끝난 수업이나 정돈이 잘 된 공책 같은 것으로 교육이 잘 되었다고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성과 관련되어 이루어졌던 기존의 교육은 참여자에게 할 수 없는, 구체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만들어주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페미니즘 교육의 가능성은 좀 더 많은 상상력을 열어주고 있다. 성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전반에서 동원될 수 있는 관계를 더 많이 떠올릴 수 있었고, 고양이들의 털을 빗기는 순간과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로서의 내 삶을 관련지을 수 있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는 폭력적인 자본주의 경쟁의 상징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 경기장에서 혼자 앞으로만 질주하는 경주마가 되고 싶지 않다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살고 무엇을 교육하고/받아야 할까.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는 차이를 탐색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 소개] 진냥. 초등학교 교사, 큰 몸과 비수도권이라는 정체성으로 평등한 세상과 교육을 고민하는 노동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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