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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페미니스트, 20대 대선 그리고 이후를 이야기하다 (하)

 

혐오 선동으로 얼룩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나왔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절망했지만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매고 힘차게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이틀 뒤,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은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두려워하라. 여성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결의를 다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여전히 멈춰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2022인 릴레이 단식행동>을 시작했다.

 

▲ 대선 직후인 11일 열린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두려워하라. 여성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자회견 홍보물

 

또한 4.19 세월호 참사 8주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6월 1일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볼 시간이다. 이가현, 홍혜은 씨와 나눈 이번 대선에 관한 이야기는 선거 이후의 과제와 여성 정치/인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졌다.

 

-선거 결과가 정말 박빙이었어요. 다들 밤잠을 못 이루었을 텐데…

 

홍혜은(이하 혜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간발의 차로 이기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2.4%)이 조금 더 높게 나오길 바랐는데…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이가현(이하 가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게 너무 충격이긴 해요. 한국 사람들이 경력, 경험 같은 거 따지는 편이니까, 그런 부분이 투표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치인으로서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당선됐다는 게 충격이죠.

 

-양당 구도가 더욱 강화되는 바람에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 득표율이 낮았죠. 기후위기, 기본소득, 평등과 다양성, 돌봄 등 진보정치 이슈는 이제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분야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차악’ 후보를 뽑는 선거가 되다 보니, 청년들에게도 진보정당의 정책들이 소구력 있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혜은: 기본소득당의 경우엔 정말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기본소득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아는 분들이 꽤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다만 진보정당이라면서 지난 총선 때 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을 배출했는가에 대한 반감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기본소득을 지지함에도 기본소득당을 맘 편히 지지할 수 없는 거죠. 노동당의 경우는 ‘중년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가 강하기도 하고…

 

정의당은 사실 쇄신의 기간이 좀 짧았다고 봐요. 정의당도 메갈리아 이후에 당내에서 ‘여혐’ 관련 논란이 있었고 여성당원들이 탈당하는 일도 있었고요. 그 이후에 청년 정치인 장혜영, 류호정 의원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페미니즘, 인권, 기후위기 등을 얘기해 오고 있는데, 이것이 대중적인 메시지로 자리 잡기까진 시간이 짧았던 것 같아요.

 

가현: 정의당 내에 여전히 성평등 이슈보다 노동 이슈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기보다, 중앙당 차원에서 노동과 성평등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잘 짚어서 그 부분들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혜은: 그런 부분에서 정의당 의원들은 많이 노력을 했다고 봐요. 국회에서 장혜영, 류호정 의원이 여성가족위원회가 아니라 기획재정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들어갔잖아요. 여성이라는 정체성 외에,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교차적인 관점들을 드러내고 활약하고 있으니까요.

 

▲ 인터뷰 중인 이가현, 홍혜은 씨. 가현 씨는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이며 이번 대선 기간에 '이대남’ 프레임에 반대하며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20대 페미니스트 남성들)과 연대 활동을 펼쳤고, 혜은 씨는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로 대선 기간 TV토론회 등에서 청년 페미니스트로서 의견을 피력했다.  ©일다

 

가현: 전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너무 없었던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선거 운동을 하는 방식도 올드하고요. 일단 몇몇 사람들을 조직하고 누군가 간부를 맡으면 그 밑으로 쫙 모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런 식으론 안 되거든요.

 

혜은: 진보당의 기반이 노조(민주노총)인데, 김재연 후보가 3만7천 표 정도밖에 못 받았다는 건, 노조 표가 너무 적게 나온 것이죠.

 

가현: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보면, 진보당 송명숙 후보는 후보로서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선거 운동 방식이 여전히 ‘결집하라’인 것 같더라고요. 의제도 조금 더 새로운 것들을 발굴해야 하지 않나 싶고요. 예를 들어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거면, 적극적으로 군대 이슈나 전쟁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진보정치에서 여성 인재가 없지 않다고 봐요. 송명숙 후보도 있고, 이번 선거에 나온 김재연 후보도 좋은 정치인이라 생각하고요. 지난 2020년 총선 때 (당시 민중당) 비례 1번으로 나온 김해정 후보가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 있는데, 굉장히 말씀도 잘하시고 멋있더라고요. 이런 인재들이 지금 제대로 안 보인다는 점이 문제죠.

 

-선거 결과에서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있을까요?

 

혜은: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페미니즘의 가치를 이야기했고 그걸 밀어붙였잖아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또 거기에 반응한 20대 여성들이 6.9%로 (성별과 연령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니까요. 이건 주목할만한 부분이죠. 개인적으론, 첫 선거를 치른 18세의 선택이 어땠을지 궁금한데 그것까진 분석이 안 나오더라고요.

 

▲ 지상파 3사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 중 세대별 여성 지지율. (그래프 제작: 일다)

 

가현: 예전에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정치 같이 하자고 권유했을 때,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정치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냐’고 했었는데. 이젠 또 다른 예시가 생겼다는?(웃음) 정치 경력이 없어도 무려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거라면 진짜, 여자들이 정치 못할 이유가 있나 싶어요.

 

-말씀하신 대로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선거가 끝나고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에 2030 여성들의 입당이 늘었다는 소식이 있는데요.

 

혜은: 당원 가입이 의미가 있긴 하지만, 사실 당원으로서 얼마큼 활동을 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잖아요. 당비 내고 선거 때마다 한 표 찍는 것 정도론 세력화가 된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당원을 어떻게 모집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그냥 단순히 우리를 밀어주기 위해서 정당 가입하고 당비를 내달라, 맘에 안 들면 언제든 탈퇴도 할 수 있다, 후원금은 연말정산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해선 안 되죠. 정당이 무엇인지, 이 정치적 결사체가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또 정당 안에서 어떤 것들을 토론하고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얘기해야죠. 정당 안에서도 어떤 건 민감한 문제니까 그냥 얘기하지 말자, 이런 식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호소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일단 우리 OOO을 지지해 주세요’만으론 세력화가 안 된다는 거죠. 당원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할 수 있는 자리들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현: 저도 중요한 건 (당원 가입) 이후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이런 (입당 러쉬) 흐름도 있고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다가올 지방선거에선 광역·기초의원 30% 이상을 청년 공천으로 하겠다고 했거든요. (*인터뷰 이후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여성, 청년 확대를 재차 공표했다.) 그런데 어떤 청년들이 출마할 수 있을까요? 그걸 생각하면 대부분 지역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아닐까 싶어요. 그들에게 제의가 많이 갈 거고요.

 

기존의 여성, 청년 활동가들이 정치 영역으로 이동했을 때, 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또 견제, 감시할 것인가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이 정치권으로 가면, ‘너 그러려고 활동했냐’ 이런 얘기들이 나오면서 서로 단절되는 경우도 있어요. 시민사회가 이 정치인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그런 커넥션이 잘못 쓰이면 문제지만, 시민사회와 정치 영역의 관계에 대해 많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시민사회 운동에서도 (활동가 인재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좀 해둬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혜은: 청년 할당, 이런 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죠. 이번에도 하나 끼워주는 ‘토큰’식 공천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긴 한데, 중진 의원들이 빠지고 (여성, 청년들을) 밀어준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죠.

 

가현: 이번엔 지방선거니까 적어도 기초의원 자리는 좀 많이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길 바래봅니다.

 

▲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에서 지난 2얼 12일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진행한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부수자> 집회 모습. 약 3백명이 참여했다. (출처: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https://2022vff.campaignus.me)

 

-정의당에 장혜영, 류호정 씨가 있고 더불어민주당에 박지현 씨가 있지만 사실 이들만으론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이렇게 고작 한두 명이 정당의 변화를 책임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가현: 그래서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역할을 잘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혼자선 안 되고 세력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 세력이라는 게, 혜은 님이 얘기한 것처럼 단순히 지지자나 당원을 모집하는 걸로는 안 된단 말이죠. 지금은 좀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더불어민주당에서 어떤 이미지로만 이용하려는 건 아닌가 싶은 우려가 솔직히 드니까요.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그랬고, 꼭 위기 상황일 때 여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유리절벽’(기업 등의 조직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일에 여성을 고위직으로 앉히고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만들었으니까요.

 

혜은: 박지현 비대위원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권인숙 의원을 꼭 언급하고 싶어요. 어쨌든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건 권인숙 의원이잖아요. 전 권인숙 의원이 박지현 비대위원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불어민주당과 페미니스트 정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젊은 여성들에게 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 것도 맞지만, 자기 분야가 확실하게 있고 그에 관한 경력이 있는 여성들에게도 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방선거가 바로 6월 1일인데요. 제발 좀 변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목하는 부분이 있나요?

 

가현: 진보당의 손솔 씨가 서울 서대문구의원으로 출마 선언을 했어요. 열심히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서 사람들 조직하고, 공부하고,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서 주목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진보당 쇄신의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노동당의 경우도, 이제 노동의 형태와 방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맞게 이미지를 새로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다가오는 6.1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의원 예비후보로 활동 중인 진보당 손솔 후보. (출처: 손솔 페이스북)

 

혜은: 저는 확실하게 페미니스트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싶어요. 페미니즘 의제를 확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요.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서 계속 논의를 진전시켜 온 부분들이 있잖아요. 논쟁적이더라도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나올 거라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 손솔 씨도 그렇고,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의 행보도 궁금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주권자로서, 앞으로 어떤 부분을 주목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 좋을지 제안한다면요?

 

혜은: 윤석열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응해서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건, 애초에 이 부서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봐요. 정부 모든 부처에 성인지 관점을 가진 전문가를 배치하기엔 인력도 부족할뿐더러 그들이 흩어져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잖아요. 여가부 폐지가 아니라, 관점으로써 페미니즘이 국가의 전체적인 정책과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매번 여성들이 (범죄로) 죽어간다,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겪는다, 여성들이 돌봄노동에 내몰려 문제가 된다 등등의 이슈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정말 페미니즘을 경유한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여성의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자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노동자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또 가족을 만들고 재생산을 하고 싶기도 한 거잖아요. 근데 지금은 정책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입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단편적인 사람이 된 것마냥 어떤 루트를 따라가야 하는 거에요. 그런 정책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현: 정부 인선에 어떤 정체성의 사람들이 들어가는지도 주목해야 하죠.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였지만 ‘서울대 50대 남자’가 주도하는 정부에서는 여성과 소수자들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을 후퇴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그것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보다도 더 평등으로 나아갈 의제를 더 크게 주장함으로써 정치권이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페미당(창당모임)의 경우 대선 때 후보들한테 정책질의서를 보내고 이런 저런 활동을 했는데, 계속 이런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고요. 이번 선거에서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민주당이 페미당이다, 정의당이 페미당이다 그런 얘길 했는데 진짜 페미당은 아직 창당도 못했거든요.(웃음) 2024년 총선엔 페미당 이름으로 출마하고 싶어서 계속 창당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특히 코로나 이후의 페미니즘 정당 운동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어요.

 

혜은: 사회운동을 살리려면 그런 의지를 가진 시민들이 퇴근하고 2~3시간이라도 자기 삶에 연결된 문제에 대해 말하고 고민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정당활동도 마찬가지에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윤석열 당선인은 주 52시간 노동도 적다면서 120시간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참… 민주 시민이 되려면 정말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되거든요. 항상 얘기가 반복되는 게, 진보정당이 지역사회, 시민사회와 연결되지 않아서 힘이 없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근본적으로 왜 그럴까? 생각하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도 일단 야근하면 집에 가서 자야 돼요. 일을 줄이면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 노동시간 단축과 생활임금 보장, 참여소득… 그런 이야기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끝>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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