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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 한국 상황에서 읽기

 

나는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친다. ‘젠더’나 ‘섹슈얼리티’, ‘여성’과 같은 단어들을 포함한 수업을 맡게 되는 나는 첫 출석을 부르며 학생들에게 수업을 듣게 된 이유나 동기를 묻고는 한다. 몇 해 동안 공통적인 답변 하나는 ‘젠더가 굉장히 중요해 보이는데 정작 젠더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젠더갈등이나 남녀갈등이 너무 심각한 것 같지만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류의 대답들이다.

 

▲ 안느 샤를로트 위송, 토마스 마티유 저/강현주 역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 표지 이미지 (출처: 청아출판사)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젠더’는 때로는 시대를 선도하거나 힙스터처럼 보이게 하는 유행어처럼, 때로는 사회를 뒤흔드는 갈등과 분열, 혼란의 핵심어처럼 이곳저곳에서 넘실댔다. 단어는 흔해졌지만 그 사용과 어감은 사뭇 상반된 것들이었다. 학생들이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표정으로 수업에 들어오는 것도 이해된다. 어떤 학생의 표현처럼 젠더는 ‘나쁜 건가요, 좋은 건가요? 써요 말아요?’ 수준으로 전락해, 누가 답을 정해주기를 기다리는 문제처럼 되어버린 지경이기도 하다.

 

나는 우선 질문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한 학기를 시작하고는 한다. 젠더는 하나의 개념적 도구이며, 이 개념이 등장해야 했던 이유와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먼저 집중하자고 말이다. 실제 다양한 젠더 연구와 젠더 분석의 결과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이 사회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풍부한 깊이를 더하는지, 기존의 인식과 체계들에 어떤 질문과 깨달음을 더하게 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젠더라는 용어가 어려운 것은, 그 개념 자체의 모호함과 난해함에만 있지 않다. 사실은 이 용어가 유통되고 활용되는 당대의 방식, 때로는 의도적이고도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발생하는 용어의 왜곡으로 인해 더욱 어렵다.

 

‘젠더 반대’ ‘학교 성교육 폐지’ 우경화하는 사회

 

오늘 소개하려는 책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Le Genre: Cet Obscur Objet Du Désorde)는 제목 그 자체로 현재 우리들의 곤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안느 샤를로트 위송(Anne-Charlotte Husson)과 토마스 마티유(Thomas Mathieu)는 이미 공동작업을 통해 그래픽 북을 펴낸 적이 있다.

 

▲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 저자인 안느 샤를로트 위송과 토마스 마티유의 또 다른 공동작업들. 일상 속 숱한 성희롱, 성폭력을 여러 에피소드로 풀어낸 <악어프로젝트-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이숲), “태초에 여성혐오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페미니즘-페미니스트의 일곱 가지 구호>(푸른지식) 표지 이미지

 

일상 속 숱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여러 에피소드로 풀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이에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설득했던 <악어프로젝트-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근대 이후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이론의 기본적인 논지를 차분히 되짚어가며 설명해준 <페미니즘-페미니스트의 일곱 가지 구호>는 어쩌면 페미니즘 초심자들(?)을 위한 가이드이자 그야말로 개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는 전작들처럼 결코 가벼운 안내서일 수만은 없어 보인다. 젠더 연구와 분석들이 제멋대로 농락당하고 왜곡되고 있는 최전선에서 젠더의 이해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젠더 반대’, ‘젠더이론 반대’와 같은 구호를 통해 반페미니즘을 기치로 삼고, ‘동성애 반대’, ‘학교 성교육 폐지’와 같은 요구를 행동 전략이자 실천으로 하는 혐오선동의 정치 한가운데에서 젠더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제목의 방점은 ‘이해’에 있기보다 ‘왜’에 있고 이를 위해 저자들은 줄곧 우경화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핫한 젠더 논쟁과 이슈들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한다. 반페미니즘 현상이나 혐오선동의 정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최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문제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배경은 지금 한국의 여러 상황들과 유비하며 읽어볼 만한 가치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민주 vs 혐오’를 ‘동성애 vs 가족’ 프레임으로

 

프랑스에서 젠더이론 반대, 혹은 학교 성교육에 대한 우파들의 개입은 201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5월 프랑스에서는 일명 “모두를 위한 결혼(le mariage pour tous)”으로 불리는 동성결혼법이 시행되었다. 법 개정의 핵심에는 동성간 결혼과 이들의 부모성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생식술 관련 논의가 놓여 있었다. 전통적인 이성애 가족만을 옹호하고, 동성간 결혼 반대, 동성부모 반대, 임신중지 반대를 외치는 우파 및 가톨릭 단체들은 ‘모두를 위한 결혼’을 좌절시키기 위해 “모두를 위한 시위(le marif pour tous)”를 조직했다. 이때부터 젠더는 프랑스 정치 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 안느 샤를로트 위송, 토마스 마티유 저/강현주 역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 중에서, 청아출판사, 2021

 

저자는 성적지향과 결혼에 대한 내용들이 어떻게 젠더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는 것으로 읽히게 되었는지 살핀다. 우파들의 수사 전략 속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구별되어야 하는 순간에는 뭉뚱그려지고, 서로의 관계성이 해명되어야 할 때는 그 관련성이 간과되면서 개념은 더욱 모호해지고 불안과 갈등의 부정적 이미지는 더해갔다. 이 책에 적힌 프랑스 우파 정치인들의 말과 글의 인용을 통해, 우리는 그런 ‘말-의미 바꾸기’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그럴듯한 말들 같지만 페미니즘의 용어와 개념들은 본래의 내용과 무관하게 교묘하게 뒤섞이고, 그 개념이 설명하고자 했던 내용들은 전혀 다른 것으로 이해, 유통된다.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취지에서 언급되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설명들은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호도된다. 여자에게 여성성을, 남자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규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자에게 여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말도 안 되는 억지처럼 보이게 만드는 식이다.

 

말과 그것의 의미가 순식간에 뒤바뀌는 것은 최근의 여러 정치 논란에서는 흔한 일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핵심이다. 이것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프레임을 구성하며 상황을 순식간에 변화시킨다. “모두를 위한 시위”의 주장과 활동들이 사실상 동성애 혐오에 불과하고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비판이 있자,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가족혐오’를 당하고 있는 진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때 ‘민주 vs 혐오’는 ‘동성애 vs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물론 이때 가족은 전통과 가치의 함의를 내포하는 반면, 동성애는 비정상 및 일탈과 같은 부정적이고 문제적인 이미지만이 덧씌워진다. 또한 여기서 가족이 오직 이성애 가족만을 의미한다는 것은 슬쩍 가려진다. 사람들의 관습적인 생각 속에서 가족을 ‘혐오’하는 것 또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의 맥락과 주요 인물들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한 문장 한 문장, 말풍선 하나와 다른 말풍선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의도된 정치적 목적 때문에 뒤틀린 개념이나 전치된 용어 사용들 바로 옆에서 저자는 젠더나 섹슈얼리티에 대해 다시 정리하고 설명하므로, 이를 충실히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반페미니즘 흐름 속에서 젠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 안느 샤를로트 위송, 토마스 마티유 작가의 그래픽노블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 작가 소개. (출처: 청아출판사)

 

극우정치와 반페미니즘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책에서 제기되는 상황들을 따라가다 보면 논란이 확장될 때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성애 이외의 다른 성적지향과 성적실천을 둘러싼 보수적 반응과 이들의 가족 이념의 강조가 기승을 부릴수록 학교 성교육은 늘 첨예한 이슈가 된다. 반젠더운동 진영에서는 ‘아이들은 건드리지 마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만 들으면 누군가가 아이들을 협박하고 위기로 내몰며, 그들의 삶을 완전히 송두리째 휘젓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책에는 브라질에서 헌정사상 가장 극우 대통령으로 불리며 ‘열대의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사례도 등장한다.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동성애혐오 프레임을 짜고, 학교 성평등 교육을 동성애 ‘조장’교육이라는 식으로 왜곡 선동함으로써 논란을 만들고 이에 힘입어 당선되기까지 했다. 이런 식의 주장을 일삼는 사람들은 흔히 젠더교육이 그 자체로 소아성애와 직결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젠더교육이 아이들을 심각하고 문제적인 위험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젠더규범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적 섹슈얼리티를 지칭하는 용어로 단박에 치환될 수 있는지의 논리적 연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젠더나 섹슈얼리티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구분 짓거나 명확히 분석하는 경우는 없다. 다양한 성적실천과 성범죄가 어디서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긴장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열을 올린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절체절명의 얼개를 구성하지만, 모든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의지도 없다. 실제 LGBT 청소년들의 어려움과 위험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기 일쑤다.

 

극우정치와 반페미니즘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반페미니즘과 극우정치는 항상 어느 지점에서 함께 행동하고 유사한 언어들을 공유하며 상호 영향력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이들이 젠더나 섹슈얼리티를 그토록 공통적으로 문제 삼고 거부하는 것은, 이 개념을 통해 사회를 분석하고 바라볼 시선이 섬세해질수록 우리가 기존의 통념과 질서들을 의문시하고 부술 힘을 갖출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젠더나 섹슈얼리티 연구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통념의 해체가 결국 민주주의를 갱신시키도록 부추긴다. 또한 누가 현재 인간다운 인간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그 경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젠더갈등을 부추기며 반페미니즘을 동력 삼아 선거에 승리한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 한국에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질문해보고 싶다. 대체 우리는 젠더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 단어를 언제 누구로부터 들었으며, 무엇이라고 알고 있나? 우리에게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같은 용어들은 과연 어떠한 전선과 정쟁 위에 있는가? <우리는 왜 젠더를 이해해야 할까?>는 얇은 그래픽 노블이지만 여러 번 반복하고 자료를 추가적으로 찾으며, 한국의 상황과 교차적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 한국의 상황 역시 우리로 하여금 ‘왜 젠더를 이해해야만 하는지’를 요청하고 있다.

 

[필자 소개] 김서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아들의 성적 대화>(2018) 작가이며, 공저로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2021)를 펴냈다.  일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인 대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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