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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위헌’… 대안입법 논의
성폭력 범죄의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정 진술 대신 녹화 영상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한 규정(성폭력처벌법에 관한 특례법 제 30조 제6항)에 대해, 지난해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했다. 진술자에 대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하여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도 소송과정에서 증인소환 시 직접 법정에 출석해 반대신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선에서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대면하는 활동가와 법조인, 법 연구자들은 헌재의 결정에 즉각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피고인과 그의 변호사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2차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결정이 불러올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정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소병철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의 단체들이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1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위헌, 대안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선 대안입법에 관한 의견이 쏟아졌다.
▲ 1월 27일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 주관 하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위헌, 대안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 현장 (출처: 권인숙 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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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소병철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의 단체들이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1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위헌, 대안입법을 위한 긴급 토론회>에선 대안입법에 관한 의견이 쏟아졌다.
위협과 모욕, 성인도 견디기 힘든 반대신문을 받게 할 건가?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아동) 부소장은 “2020년 해바라기센터를 방문한 이용자 중 성폭력 피해자의 39.1%가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이라며,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특성을 고려할 때, 실제 발생률은 이 수치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겪는 후유증도 다양하다. “신체손상, 생식기 주위의 손상이나 질환, 성병, 임신, 임신중지 등의 신체적 증상부터 불안, 우울, 분노, 악몽, 해리, 외상 후 스트레스 등 광범위한 부정정서, 이로 인한 자해, 자살생각 등”도 있다. 김지은 부소장은 “일부 연구에서 이런 후유증들은 당시의 연령, 피해유형, 피해횟수, 피해 후 경과기간과 통계적 차이가 없다고 밝혀진 바 있다. 피해유형이 심각하지 않아 보이고 시간이 수개월 지났다고 하여 사건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촬영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피해자나 조사 과정에 동석하였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걸 최소화하고, 법정진술과 반대신문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김지은 부소장은 15년 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해자가 성폭력을 바로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일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동·청소년들이 직접 법정에 서게 될 경우 “가해자인 피고인의 부인 사실을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분노, 억울함, 두려움 등 상당한 부정정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피고인 변호인의 반대신문으로, 성인 피해자도 견디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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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또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고인과 피고인 변호인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 탄핵하기 위해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피해자를 겁박하고,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려는 목적으로 유도신문, 위협적이거나 모욕적인 신문, 장시간 강도 높고 반복적인 신문,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취약점 폭로 등이 이어진다”는 것.
헌재 결정은 “명백한 퇴행”이라고 비판하면서, 박아름 활동가는 대안입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김에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뿐만 아니라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선화 국회 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도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일반 사건처럼 반대신문을 받는다면 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여러 차례 진술하는 걸 피할 수 없게 되므로, 오히려 사법구제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피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유럽 ‘바르나후스 모델’ 참고한 대안입법 필요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헌재는 위헌 판결을 내리며 대안으로 “증거보전에 의한 증인신문 제도 활용”을 제시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피의자 참여 하에 이루어진 피해자의 진술을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거보전’ 절차 역시 반대신문이 허용되기 때문에 2차 피해를 방지하지 못하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반대신문권 기회를 보장하되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안으로, 증거보전 절차에서 이루어지는 영상물 녹화 시 피해자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영상촬영시 피해자에게 변호인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 검사는 반드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친아동적 장소에서 영상촬영을 해야 한다. ▷친족 간 성범죄인 경우 피의자의 직접질문은 불가하다. ▷반대신문 내용은 반드시 사전에 수임판사에게 제출해야 하며, 다른 질문을 하는 경우 반대신문을 종료한다. ▷영상촬영시 진술조력인, 신뢰관계자의 동석을 허용한다. 단 친족 간 성범죄인 경우 가해자의 친족이 신뢰관계자로 동석할 수 없다. 또한 피해자가 만16세 미만일 경우, 주 신문 및 반대신문은 검사 혹은 피의자측이 직접 할 수 없고 반드시 진술조력인을 통해 질문해야 한다.
▲ EU에서 설명하는 바르후나스(아동의 집이라는 뜻) 모델의 이미지. 성적 또는 신체적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에게 ‘하나의 문 원칙’(One Door Principle)에 따라 모든 필요한 서비스를 아동 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하나의 장소에서 제공한다. (출처 https://www.barnahu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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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입법조사관도 “피해 아동·청소년이 여기저기 다니며 피해사실을 반복해 말하고 질문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사법절차 참여가 사전 재판과정에서 마무리되도록 하는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피해 아동·청소년의 보호를 위한 모델로 주목 받는 ‘바르나후스(Barnahus) 모델”을 제안했다. ‘아동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후스 모델은 “성적 또는 신체적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에게 ‘하나의 문 원칙’(One Door Principle)에 따라 모든 필요한 서비스를 아동 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하나의 장소에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명화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여성폭력방지팀) 또한 ‘바르나후스’ 모델을 적용한 안에 대해 의견을 냈다.
이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경우 ▷아동 친화적이며, 학제간 및 다기관 센터를 설치하여 다양한 전문가가 한 지붕 아래에서 성폭력 피해 아동을 조사한다. ▷‘바르나후스’의 전문 조사 면접관이 ‘바르나후스’ 내 설치된 방에서 아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판사, 아동 보호 당국의 사회복지사, 경찰, 검찰, 변호인, 피해 아동의 대리인 등이 다른 방에서 조사를 관찰한다. ▷조사는 영상으로 녹화되어 법적인 절차(재판 포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조사 후 아동에 대한 건강 검진 및 아동·가족에 대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활용하여 바르나후스 모델을 한국적으로 구현하는 새로운 대안입법안”이 필요하다고, 정명화 변호사는 주장했다. 그 입법안에선 “피해자 조사자를 진술조력인, 아동 전문조사관으로 통일하고, 조사 장소 또한 해바라기 아동센터 혹은 그에 준하는 시설로 통일하며, 조사 장소내 인원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윤경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노르웨이가 채택하고 있는 바르나후스 모델의 촉진조사제도가 대안입법의 방향으로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의견을 보탰다. 문지선 법무부 형사법제과 과장 역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노르딕 국가들이 적용하고 있는 노르딕 모델을 참고하여 우리 법체계에 맞게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사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 방지하는 법제도 시급
앞서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박아름 활동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정당한 사유 없이 성폭력 피해자의 성이력 또는 그 밖의 사적 정보를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는)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에 관한 통념 또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수사 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방지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안입법의 시급성을 재차 강조하며, 김지은 부소장은 “이번 위헌결정의 대책이 서둘러 마련되지 않아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빈번하게 출석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2차 피해를 입게 될 경우, 사회적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처벌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결국 “아동·청소년 성폭력을 근절하지 못하고 더욱 만연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일침 했다. (박주연 기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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