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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없는 머시기마을 이야기⑤ 새벽이생추어리 방문기

▶ 애정결핍과 공동의존의 회복 『남은 인생은요?』 

 

남은 인생은요?

국계 이민자, 90년생 성sung이 시카고에서 쓴 트라우마 치유 에세이한국과 미국 두 문화를 가로질러 살아가는 세대의 이전에는 없었던 다른 목소리와 놀라운 서사『남은 인생은요?』는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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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회사에서 워크숍 장소를 정하던 중에 ‘돼지 박물관’이 거론됐다. 한쪽에서는 돼지들이 서커스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소시지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돼지 박물관. 활짝 웃으며 자신들을 먹으라고 홍보하는 고깃집의 소, 돼지 캐릭터만큼이나 기이하게 느껴졌다. 사내에서 맞장구치기와 분위기 띄우기를 주로 담당하던 나는 처음으로 소심하게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동물 학대네요.” 다행히 워크숍 장소는 근사한 숲으로 정해졌다.

 

살아있는 돼지를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2021년 11월부터 정기적으로 살아있는 돼지들을 만나러 ‘새벽이생추어리’에 방문한다. 새벽이생추어리는 농장에서 ‘공개 구조’된 돼지 ‘새벽’이와 제약회사에서 탈출한 돼지 ‘잔디’가 돼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공개구조(Open Rescue)는 활동가들이 신원을 감추지 않은 채 농장에 직접 들어가 감춰진 학살의 현장을 드러내고 고통받는 동물을 구조하는 직접행동이다. 이를 통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존 법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사회에 ‘구조할 권리’(Right to rescue)를 요구한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미국의 동물권 활동가 진 바우어(Gene Baur)가 동물들을 위해 만든 새로운 의미의 공간.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물 권리 개념을 담은 고유명사로서의 생추어리는 기존 축산업과 반대 개념으로,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 국내 최초 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 풍경.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산책을 즐기는 새벽 ⓒ새벽이생추어리

 

본격적인 새벽이생추어리 방문은 ‘머시기마을’의 글파티 기획 회의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글파티를 만들고 싶었다. 지역 거주민도, 퀴어도, 장애인도, 비건 지향인도 환대받는 글파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당사자나 관련 단체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강력하게 ‘새벽이생추어리’를 방문하자고 어필했다.

 

고진, 감래와 함께 살며 시야를 확장하다

 

내가 새벽이생추어리를 떠올린 것은 우여곡절 끝에 함께 살게 된 강아지들의 영향이 컸다. 이름이 없던 새끼 강아지들은 나를 만나 ‘고진’과 ‘감래’가 되었다. 고진이와 감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내 몸을 밟고 올라와 냄새를 킁킁 맡다가 목이나 팔을 베고 뻔뻔하게 자리를 잡는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있으면 내 발 옆에 자리를 잡고 방석도 없이 납작 엎드려 기다린다. 베란다에 빨래라도 널러 나가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히융히융 울어대는 고진, 감래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인간중심 사회에서 비인간동물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족쇄를 차고 사는 것만 같았다. 생각 없이 드나들던 카페나 식당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날이 많아졌다. 고진, 감래는 킁킁거리며 입구 쪽으로 향하지만 나는 “안돼!”하며 잡아끈다. 그럼 또 강아지들은 ‘그런가 보다’하며 가던 길을 간다.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가 고진, 감래를 만지려 다가오는데, 내가 안 된다며 피하자 화를 내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그깟 개새끼 좀 만진다고 뭐.”라며 당당히 소리쳤다. 나는 이성을 잃고 “너희 애새끼나 잘 간수해.”라고 맞받아쳤다.

 

▲ 같은 포즈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감래(왼쪽)와 고진(오른쪽) ⓒ미성

 

고진, 감래와 함께하면서 일상 곳곳에서 혐오나 배제를 마주했지만 그만큼 내 세상은 넓어졌다.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길에 사는 개나 고양이를 보면 귀엽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잊어버렸는데. 이제는 점점 마음이 저려왔다. 버림받은 동물들, 착취당하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고진, 감래가 떠올랐다. 고진, 감래와 그들의 차이가 뭘까. 누군가는 가족으로 사랑받고, 누군가는 먹히기 위해 죽임당한다.

 

동물보호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기 시작했고, 지역 유기견 쉼터에 찾아가 청소를 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쁠 때, 폭우가 쏟아질 때, 한파로 기온이 뚝뚝 떨어질 때. 동네에서 보던 고양이들이 걱정돼 잠이 안 왔다. 비단 개와 고양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 돼지, 말, 닭, 쥐, 고라니, 참치, 연어, 고래. 반질반질 튼튼해 보이는 가죽 지갑을 보고선 고진이와 감래의 말랑하고 따끈한 살결이 떠올랐다. 구내식당에서 마주한 고기는 피가 흐르던 살임을, 살아있던 생명임을 알게 됐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군소리 없이 고기를 먹기도 하지만. 가끔은 예쁜 카페의 휘핑크림이 올라간 시그니처 메뉴가 너무 궁금해 죄책감을 안고 주문을 해보기도 하지만. 완벽하진 않더라도 육식을 피하려 노력했다. 물건을 살 때 동물을 착취한 흔적이 있는지도 살폈다. 마음에 쏙 드는 지갑과 가방이 다른 생명의 피를 묻힌 물건들이라 생각하니 차마 구매할 수가 없었다. 아쿠아리움에 갇혀 어린 나이에 죽어간 흰고래 벨루가들의 사연을 듣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홀로 남은 벨루가, 벨라를 방류하라는 시위에 참여했다. 시야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새벽이생추어리’를 알게 됐다.

 

새벽이, 잔디와의 첫 만남

 

머시기마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했다. 우리가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마을의 범주엔 당연히 비인간동물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동물들의 이야기야말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평생 모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쩌면 모른 채 살아야 맘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직접 찾아가고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영, 웅, 다솜, 나까지 네 명의 주민이 모여 새벽이생추어리 방문팀을 꾸렸다.

 

새벽이생추어리는 운영 활동가인 ‘새생이’, 현장 활동가인 ‘보듬이’, 정기 후원을 하는 ‘매생이’까지 세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그 중 보듬이로써 현장 활동을 하게 됐다. 줌으로 진행되는 사전 교육을 받고 새생이 분들이 미리 보내주신 주의사항들을 숙지했다. 안전과 관련된 주의사항이 많았다. 위협이 많기에 생추어리의 위치를 노출하면 안 된다는 것, 새벽이는 밥 먹을 때 예민하니 밥을 주거나 밥그릇을 치울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 새벽이와 잔디가 놀랄만한 큰 몸짓을 하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 무엇보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주인은 새벽이와 잔디라는 점이 와닿았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봉사를 하러 가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식사가 될뻔했던 새벽이가 새벽이답게 살아감으로써, 제약회사로 추정되는 곳에서 탈출을 감행하다 구조된 잔디가 잔디답게 살아감으로써 그들은 투쟁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투쟁에 동행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처음으로 새벽이와 잔디를 만났다. 꽤 오랫동안 기대해 온 만남이라 적잖이 설렜고 그만큼 긴장했다. 다솜 또한 비인간동물들이 주인인 공간에 가는 건 처음이라 혹여 새벽과 잔디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보내는 짧은 활동 시간은 생각보다 치열했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잔잔했다.

 

▲ 배를 긁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잔디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활동하는 두 시간 동안 인간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고요를 느꼈다. 우거진 숲과 너른 들판, 해가 넘어가는 게 막힘없이 보이는 탁 트인 하늘. 그 안에 돼지들이 있었다. 돈가스로, 보쌈으로, 햄으로, 족발로만 만났던 돼지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답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새벽이는 새벽이의 속도대로 부지런히 밥을 해치우고 느릿느릿 걷거나 하늘을 바라봤다. 잔디 또한 잔디의 속도대로 천천히 밥을 먹다가 돌아다니다가 또다시 밥을 먹으러 왔다.

 

새벽이와 잔디는 몸집도, 외모도, 성격도 달랐다. 나보다 훨씬 커다랗고 무거운 새벽이는 밥을 다 먹고 무심한 듯 다가와 킁킁 내 냄새를 맡았다. 새벽이보다 훨씬 키도 작고 가벼운 잔디는 밥을 먹다가 뻔뻔하게 다가와 자신의 옆구리를 쓱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지켜보던 새생이 분이 배를 긁어주면 좋아할 것 같다길래 슥슥 긁어주니 그제야 만족스러운지 한참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누군가 새벽이생추어리에 다녀왔으니 돼지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나는 전보다 더 말을 아낄 것이다. “새벽이는 이렇고, 잔디는 이래.”라고 단언하기보다는 새벽이와 잔디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공들여 묘사할 것이다. 쌍둥이로 태어났어도 누구에게나 먼저 달려가 인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진이와, 누군가 자기를 쓰다듬기라도 할까 봐 부리나케 피하고 보는 감래가 다른 것처럼. 새벽이와 잔디는 너무 달랐고 단기간에 다 알 수도 없었다. 다른 돼지들 또한 백이면 백 각기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던 돼지에 대한 편견이 무너져내렸다. 탐욕스럽고, 지저분하고, 어리석은 돼지. 그렇게 생각해야만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기에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새벽이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할 일은 새벽과 잔디의 저녁밥을 챙겨주고, 찐삼이물(음수량 보충을 위해 물에 고구마나 호박, 미강을 섞은 것)을 만들어 먹이고, 똥을 주워 버린 후 지푸라기를 깔아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고진감래를 위해 매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은콩과 청경채, 사료를 섞은 식사를 맛있게도 먹는 새벽이를 바라보면 맘이 참 좋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봤다. 밥을 씹고 삼킬 때마다 펄럭이는 귀가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새벽이는 이토록 존엄한데 활동가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루라도 보듬 활동이 멈춘다면 새벽이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없다. 마땅히 누려야 할 자연의 아주 일부만을 차지한 새벽이.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구조된 새벽이.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의 식사가 되기 위해 갇혀있을 또 다른 수많은 새벽이들.

 

▲ 새벽이가 잠자러 방으로 가는 경사면이 미끄러워 나무판자를 잘라 계단을 만들고 있는 나영 ⓒ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생추어리에 다녀오는 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연에 파묻힌 생추어리에서 벗어나자마자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온통 어지러운 불빛과 차들로 빼곡한 도로, 높은 건물들로 가득한 하늘. 그토록 많은 소와 돼지와 닭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둔 채 그들의 핏자국 위에 인간들이 깔끔하고 안락한 삶을 누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인류의 죄를 다 씻을 수 있을까. 더딘 변화가 답답했다. 자주 막막했다.

 

생추어리를 몇 차례 다녀오며 기본적인 돌봄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했다. 추운 겨울 밤새 내린 비에 땅이 질척여 새벽이의 발이 푹푹 빠지던 날이었다. 어느 곳은 깊은 진흙이 되어있었고 또 다른 곳은 미끄럽게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얼음과 물을 걷어내 최대한 새벽이가 안전히 다닐 수 있도록 흙을 일구었다. 잠을 자는 방으로 가는 경사면 또한 너무 미끄러웠다. 계단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나영과 웅이 나무판자를 잘라 계단의 틀을 세우면 나와 다솜은 부드러운 흙을 모아 채웠다.

 

어느 날은 잔디의 목 쪽에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돌아다니다 날카로운 철근에 긁힌 모양이었다. 소독약을 들고 졸졸졸졸 쫓아다니다가 잔디에게 밀침을 당하고 휘청이기를 반복했다. 귀 청소를 할 때마다 내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 위까지 도망가던 감래랑 겹쳐 보여 웃음이 났다. 잔디도 할 수만 있다면 내 머리 위까지라도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까. 결국 잔디의 집에 함께 들어가 한참 잔디의 기분을 살폈다. 배를 긁어주고, 이부자리를 정돈해주고, 사료를 한 움큼 줘보기도 하고. 잔디가 잠자리 위에 편히 자리를 잡고 나서야 약을 바를 수 있었다. 약을 바르는 동안 잔디는 나를 참아줬다. 잠자코 기다려주는 잔디에게 고마웠다. 조금쯤 친해진 게 아닐까 내심 기쁘기도 했다.

 

▲ 생추어리의 주인인 새벽(왼쪽)과 잔디(오른쪽)가 산책을 하고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여전히 현실은 참혹하고 변화는 느리고 마음은 미어진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갈 거다. 생추어리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은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금의 산책, 지금의 식사, 지금의 노을에 집중하는 새벽이와 잔디를 따라 나도 덩달아 슬픈 마음도 답답한 마음도 지우게 된다. 새벽이와 잔디는 생추어리의 주인, 나는 손님인 관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누가 누군가를 소유하거나 먹거나 착취하지 않는 관계.

 

새벽이와 잔디는 꿋꿋하게 살아냄으로써 투쟁을 하는 동물권 활동가다. 먹히기 위해 살지 않고, 그저 삶의 주체로서 살아간다. 착취당하는 돼지들만이 존재하는 세상 속 새벽이와 잔디는 존재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새벽이와 잔디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투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계속해서 이 관계를 지속하려 한다.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감각이 소중하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나 느끼는 연대감이 귀하다. 새생이들의, 보듬이들의, 매생이들의 발자취가 모여 또 다른 새벽이에게 온전한 삶을, 또 다른 잔디에게 너른 들판을 선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긴 여정 속에 가벼운 발자국 하나씩 새기는 마음으로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갈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필진 소개] 미성: 머시기 마을 주민이자 보라글방의 글방지기이며 새벽이생추어리의 보듬이로 활동한다. 다양한 생명들과 연결되기를, 모든 존재가 평안하기를 꿈꾼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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