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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행진부터 유세단까지…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 인터뷰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
이건 차별금지법안과 평등법안에 적혀있는 차별금지 사유다. 이 중 ‘이것으로 인해 차별을 겪은 적이 있다’고 체크해 보라고 했을 때,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옛날이면 몰라도 지금은 그런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묻는다. 정말 그럴까?
연령차별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선 어렸을 땐 어리다고 무시당하고 늙으면 늙었다고 무시당한다. 또한 똑같은 노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성별이 무엇이며, 가족 형태와 상황이 어떤지(독거노인인지 아닌지), 어떤 학력을 가졌고 사회적 신분이 어떠한지 등에 따라 차별을 겪는 정도는 다 다르다. 차별은 복합적이고 중첩적이다. 이 사회의 누구나 경험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차별 문제를 타파해 보자, 이를 위해 기본법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시도한지 벌써 15년에 접어든다.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는 차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졌지만, 일부 반대 목소리를 두려워하는 거대 양당의 비겁한 태도가 차별금지법 제정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하지만 묵묵부답의 정치권과 달리,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시민사회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행동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이후에도,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30일 간의 부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 국회 앞 점거농성, 대선을 앞두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유세단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2022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외쳐야 하는 갑갑한 현실에 지지 않고 뜨겁게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를 찾아갔다.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도보행진 #평등길 1110을 진행 중인 김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작년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행동부터 지금 대선 정국의 유세단 활동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운동이 끊임없이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작년 초 성소수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보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해 왔던 사람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어요.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 이번에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그렇게 시작되었죠.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청원안 10만 달성을 했는데도, 국회가 답을 회피하더라고요. 한번 미루더니 11월까지 또 미루고… ‘도저히 안 되겠다. 국회를 압박해야겠다’ 싶어 도보행진을 하기로 했어요. 코로나19 상황이다 보니 집회를 하긴 힘드니까, 도보행진을 하면서 ‘시민들을 만나자,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의 목소리도 들려주자’ 한 거죠.”
-평등길 도보행진을 하며 30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동했잖아요. 도보행진 라이브 중계를 몇 번 봤는데 정말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었어요.
“도보행진 3~4일 전에 사전답사를 했어요. 일단 부산에서 천안까지 차를 타고 우리가 걸을 길을 다녔는데, ‘내가 정말 이 길을 걸어야 하는구나’ 싶어 현타가 오더라고요.(웃음) 하루에 평균 20km를 30일 동안 걸어야 하는데,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도보행진 출발 전날 KTX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면서, 완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물론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어떻게 설명하고, 무엇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야 하는지 등’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로서의 고민뿐 아니라, 개인적인 각오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거에요. 6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봄방학 할 때 즈음이었나. 한창 저를 놀리고 괴롭히는 애들이 었었어요. ‘좀 여성스럽다, 여자애들과 너무 친하게 지낸다’는 게 이유였죠. 어느 날 조회 시간에 유독 저를 괴롭히는 거에요. 제가 웬만해선 화를 내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그 땐 너무 참기 힘들어서 화를 내고 욕을 했어요. 저랑 정말 친했던 여자 친구가 말릴 정도였죠. 그때 제가 너무 성질을 부리니까 애들이 그 뒤로 안 놀리더라고요.
그 때의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더 이상 이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주는 모욕을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요. 도보행진이 그 마음을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힘든 고행길이 될 수도 있지만 전 오히려 희망을 가지려 했어요. 같이 걸었던 차제연의 미류 활동가랑, 우리끼리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모험의 길’이라고 컨셉을 정했어요. 모험을 하는 도중에 친구들을 만나고 용기, 사랑,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거라고.”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도보행진 #평등길 1110 중 ‘평등길’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미류 활동가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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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출발할 때부터 연대하는 사람들이 함께 걸어주었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씨와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들 등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더라고요.
“출발하는 날부터 달려와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차해도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도 그 중 한 명인데, 당일 아침에 소식을 듣고 바로 오셨더라고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을 외치며 청와대까지 걸어갔을 때도 같이 하셨던터라 도보행진의 전문가(?!)거든요.(웃음) 너무 든든했어요. 김진숙 지도위원도 함께 걸어주셨고요.
각 지역의 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이 함께해주셨어요. 여성인권단체, 장애인권단체, 이주노동단체, 비정규직철폐운동단체, 416연대 같은 사회운동단체와 정의당, 녹색당, 진보당 등 정당에서도 참여해주셨고 정말 많은 분들이 달려와 같이 걸었어요. 함께 걷지 못하더라도 유튜브 라이브 중계에 들어와서 채팅으로 응원해 주신 분들도 있었고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그 긴 길을 우리끼리 걸었으면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응원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계속 투쟁하자는 말을 들으니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어요.”
-다양한 시민들도 만났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충북 영영군에 있는 심천에서 출발할 때였어요. 우리가 출발하는 장소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50~60대로 보이는 남성 분이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혹시 평등길 같이 가실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차별금지법이 뭐냐?’고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입은 옷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문구가 써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기본법이라고 설명을 드렸더니 ‘비정규직 차별도 포함이 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당연히 포함된다. 고용형태로 인해 임금이나 승진 등에서 차별이 발생했을 때 문제 제기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다’라고 했더니 ‘그거 나한테 정말 필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보행진에 대해 물으셔서 부산에서 국회까지 걸어간다니까 ‘정말 중요한 일을 한다’며 응원해 주고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가셨어요.
충북 옥천군에서 만난 분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목사님이었어요. 평등길 도보행진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더라고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작년에 우리가 하는 활동을 보게 되었고, 지역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듣다 보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죠. 일부 개신교 안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목소리가 있는 것에 대해서, 사죄 드린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우리는 ‘함께 목소리 내주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으니까 목사님이 미안해 하실 필요 없다, 함께 투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 분이 오후 내내 함께 걸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도보행진 #평등길 1110 중 416기억교실을 방문한 이종걸 대표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도보행진 중에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한번은 우리가 행진하는 길에 어느 교회 앞에 ‘평등법 반대’ 이런 현수막이 있더라고요. 같이 걷던 지역 활동가들이 그걸 보고 마음 상해 하긴 했지만, 그 현수막에 평등길 스티커를 붙여버렸죠.(웃음)
어떤 분은 미류 활동가한테 ‘요즘 세상에 차별이 어딨냐’고 얘기했대요. 정말 그 분은 차별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우리 사회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차별에 대해서 너무 둔감했기 때문이죠. 차별을 지적했을 때, ‘네가 너무 예민한 것’이라며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게 하는 구조였다는 걸 인지해야 해요. 지금은 누가 누굴 대놓고 차별하진 않잖아요. 차별은 은근히 진행되고, 양상도 너무 다양해졌고 복잡해졌어요.”
-그래서 개별적인 법이 아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거죠.
“맞아요. 차별금지법이 모든 차별을 둘러싼 변화를 위한 첫 시작이에요. 물론 이걸로 모든 게 바뀌진 않겠죠. 하지만 분명한 신호가 될 거예요.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에요. 여성이든 비정규직이든 비혼이든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 당하고 차별 당하면 안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원칙이잖아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모두를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운동에서 이동권 투쟁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죠. 저상버스가 생기고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이런 변화를 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든 교통약자가 누리고 있잖아요. 결국 모든 사람에게 연결되는 권리라는 거에요.”
-도보행진이 11월 10일 국회 앞에 도착한 이후 점거 농성에 들어갔었는데요. 정치권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더불어민주당에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이나 이상민 의원이 한번씩 방문했고 정의당 의원들도 농성장에 왔어요. 다만 우리가 국회 안에서 농성을 한 건 아니어서 많은 국회의원들을 볼 순 없었어요. 지금은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대선 정국이고, 국회는 휴업 상태라 국회 앞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차별금지법을 알리기 위해서죠.”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은 흥미롭더라고요.
“1월 11일 시작해서 2월 25일까지 진행될 거고 서울 25개 자치구를 포함해서 경기도도 3~4개 도시를 방문할 예정이에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량 및 사람들이 피켓 등을 들고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만나고, 저녁엔 지역별로 간담회를 열거나, 평등길 도보행진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평등길 1110>를 함께 보는 상영회를 개최하고 있어요.
▲ 지난 1월 20일 서울 마포구에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이 진행되었다.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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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단 활동이 쉽진 않지만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대선에서 누굴 뽑을지도 중요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우리 민생에 도움이 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외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죠. 비록 차량도 한 대 밖에 없고 인원도 많지 않지만 이렇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알리는 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유세단이 직접 가지 못하는 지역에도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행동을 하고 싶다면 차제연으로 연락 주세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는데, 15년째 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운동이 실패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잖아요? 오늘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운동이 한국 사회의 무엇을 바꾸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각 지역의 인권조례나 학생인권조례 등 차별금지 원칙을 실현하려고 했던 것들이 거부되거나, 철회되거나, 무산될 때마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매번 실패했던 건 아니에요. 정부, 지자체의 변화는 더디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 분명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작년 연말에 발표된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새 모범 단체협상안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비롯한 포괄적 차별금지 조항이 만들어졌어요. 이 단협안에선 ‘가족’을 법률혼으로 이루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및 동거인을 포함하며, 법률상 혼인으로 성립된 가족형태에 국한하지 않고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고려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함한다’고 규정했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목표는 물론 법 제정이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차별금지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원칙을 만들고, 그것이 통용되는 공간을 만들면서 동료 시민들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거죠.
지금 불안해 하는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거든요. 시민들이 더 압박해야죠. 우리의 주장이 유권자로서가 아니라 주권자로서 요구하는 것이라는 게 명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여러 경로로 드러났듯이 이제 사회적 합의 운운할 상황은 아니잖아요? 이미 사회적 합의는 이뤄졌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주권자의 명령이라는 걸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동참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일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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