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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기획: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⑥ 탈 플라스틱

 

최근 몇 년간 각종 매체에서 전 지구적 쓰레기 재앙에 대해 보도하고, 시사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까지 쓰레기 문제를 다루고, 에코브리티(Ecobrity=Eco+Celebrity) 또는 그린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연예인들도 늘어나면서 자원순환운동(Zero Waste Campaign)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포장재의 양을 최소화하고 재활용을 용이하게 만든 에코 패키지(Eco Package) 제품을 선호하는 그린슈머(Greensumer=Green+Consumer)가 늘어났고 기업들도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 전 지구적 쓰레기 재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은 1인당 플리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탈 플리스틱을 위한 구조적 변화가 시급하다. (출처: pixabay)

 

사실 이러한 기업의 변화에는 소비자 행동주의(Consumer Activism) 즉 꽁초 어택, 빨대 어택, 트레이 제로, 화장품 어택, ‘스팸 뚜껑은 반납합니다’ 등과 같은 소비자들의 직접행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빨대를 선택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음료수에 붙어 있는 빨대를 모아서 음료 회사에 보내는 행동이 모일 때, 언론은 이 현상을 보도하고 여론이 움직이고 기업은 압력을 받는다. 일부 기업은 제품 변경에 따른 (일회적인) 비용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이러한 소비자의 요구를 따르기도 한다. 에코 패키지를 적용한 제품들은 그린슈머의 선택을 받는 것을 넘어서서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단가를 낮추기 때문에 기업이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빨대를 뺀 음료수, 플라스틱 뚜껑을 뺀 통조림 햄, 플라스틱 트레이를 뺀 김, 라벨을 뺀 생수와 같은 새로운 제품들을 만날 때면, 이 변화를 끌어낸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행동하는 사람들(Activists)과 단체들-녹색연합, 쓰담쓰담, 쓰레기덕질, 쓰레기없는세상을만드는방, 여성환경연대, 와이퍼스, 제로웨이스트홈, 환경운동연합 등-이 그들이다.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 시행, ‘라벨’은?

 

그런데, 에코 패키징을 기업의 선택에 맡기지 말고 모든 기업이 따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개별 기업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법과 제도를 바꿀 때 당연히 그 효능이 크다. 위에서 언급한 단체들 가운데는 기업을 상대로 직접행동을 하는 동시에,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입법운동까지 병행한 단체들도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부활(재활용 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개정)이나, 어구 쓰레기 관리 법제화(수산업법 개정) 등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작년 12월 25일부터 투명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가 전면 시행됐다. 2020년 12월부터 전국 공동주택(아파트)에서 먼저 시행되었고 만 1년이 지나 단독주택, 빌라, 상가 등으로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자원순환운동의 목적이 자원 이용을 최소화하고 재사용+재활용을 최대화하는 것인 만큼, 음료 포장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투명페트병을 별도로 분리배출하는 제도는 매우 환영할 일이다.

 

▲ 환경부의 재활용 공익광고 장면

 

“비운다! 라벨 뗀다! 압축한다!” 환경부 공익광고에서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 김동현 씨가 소개한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방법인데, 이 ‘라벨 떼기’가 문제다. 지난해 9월 한국소비자원이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경험이 있는 소비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분리배출 시 불편사항(중복응답) 1위가 ‘라벨을 제거하기 힘들다(70.6%)’였다.

 

물론 생수나 탄산음료 중에는 라벨 제거가 수월한 제품도 있지만, 라벨 제거용 점선은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엉망이다. 대중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업들은 이미 무라벨 음료를 출시하기 시작했으니, 이 또한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수를 제외한 음료 제품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필수표시사항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무라벨 음료의 경우 반드시 묶음 포장해서 판매해야 한다. (생수의 경우 여타 음료보다 필수표시사항이 적어 병목이나 병뚜껑에 표시 가능) 단지 개개인의 귀찮음의 문제가 아니라 라벨 때문에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제도 시행에도 불구하고 PET 재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한다면, 무슨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가 속한 정치하는엄마들 안에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소모임들이 많다. 그 중 환경보건팀 온라인 채팅방에서 쓰레기 문제는 주된 이야깃거리다. 하루는 핀란드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유혜선 활동가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핀란드에서는 페트병 라벨을 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활용률이 높은 재활용 선진국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북유럽 및 주변 국가를 떠올리기 때문에, ‘라벨 떼기’가 당연히 그 나라들을 따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핀란드는 병, 캔, 페트병에 보증금(빤띠, Pantti)이 붙어 있는데 보증금 반환기(자판기 같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라벨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럼 빤띠 기계로 수거한 페트병 라벨은 누가 떼지?’ 이 질문에는 손세라 활동가(네이버 카페 제로웨이스트홈 스태프)가 답해 주었다. PET는 비중이 커서(1.35-1.38) 물(비중 1)에 가라앉기 때문에 라벨을 물에 뜨는 재질(예컨대 PP, 비중 0.90-0.92)로 만들고 물에 잘 녹는 수분리성 접착제를 쓰면 페트병을 침수하는 단순한 공정으로 라벨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거다. 잘게 부순 PET 조각(Flake)에 라벨과 기타 재질의 플라스틱 조각이 일부 섞여 있을 때 PET만 분리해 내는 재활용 기계도 있다고 했다. (참고 https://video.tomra.com/pet-clear-light-blue-vs-labels)

 

이처럼 재활용률이 높은 국가들은 분리배출·분리수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재활용품을 가져간 후 처리하는 기술과 공정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한국이 그런 기술을 도입하거나 개발할 재원과 기술력이 없는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속은 느낌이었다.

 

▲ 사이언스 어드밴스 보고서 중 국가별 1인당 생산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

 

자원재활용, 시민들은 적극적인데 ‘전시행정’하는 정부

 

분리배출 방식만 고도화하고 소비자 부담만 가중하면 결코 재활용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일 수 없을 것이다. (공익광고에 BTS가 출연해도 어림없다.) 2020년 10월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88kg)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미국(105kg), 영국(99kg)에 이어 세계 3위다. 즉 한국의 소비자에게는 편리하게 쓰고 쉽게 버린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만큼, 폐기물 처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긴 제품을 그만큼 많이 팔아서 돈까지 벌었으니 소비자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져야 하는데, 우리가 열심히 라벨을 뗄 동안 기업은 뭘 하고 있을까?

 

기업(재활용 의무대상자)은 자원재활용법 제16조에 따라 판매하는 제품에 분리배출 표시와 재활용 용이성 등급을 표시하고, 생산자책임재활용(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제도에 따라 재활용의무량 미달성 시 재활용 부과금을 낸다. 단 제조업자의 경우 연 매출액 10억 미만, 수입업자의 경우 연 수입액 3억 미만의 경우 재활용 의무대상에서 면제해 준다. 음료 한 병을 사 먹어도 분리배출해야 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왜 기업의 재활용의무를 면제해 주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게다가 재활용 부과금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부담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리가 독박을 쓰게 되는 구조다.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의 분리배출 의무만 강화하기 전에 기업의 책무를 강화하고, 쓰레기 책임에 있어 기업과 소비자 간의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다. 또한 선진국과 같은 효율적인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정치권의 역할인데, 믿어도 될까?

 

작년 10월 SBS 뉴스가 단독 보도한 기사 <라벨 떼고 투명 페트병 배출하라더니…시민들만 헛수고>에서 소비자가 라벨 떼고 분리배출 한 투명페트병을 재활용 업체가 수거한 다음 다시 일반 플라스틱과 섞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환경부 점검 결과, 전국의 민간 재활용품 선별시설 155곳 중 투명페트병 선별시설을 갖춘 곳은 33곳(약 21%)에 불과하므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라벨 떼는 수고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재활용 업체 현황을 알면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를 성급히 시행한 걸까?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저런 노골적인 전시행정을 강행했을까 싶다.

 

기업은 재활용 부과금을 내지만, 이를 제품 가격에 포함시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다. 환경부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먼저 기업이 생산 단계부터 포장재 사용을 최소화하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재질의 포장재를 사용하고, 업체마다 제각각인 포장재 재질을 가능한 한 통일하고 종류를 단순화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재활용 어려움’과 같은 등급 표시를 할 게 아니라 재활용하기 어려운 포장재는 퇴출해야 하는 것이다. 재활용 부과금은 일차적 조치가 아닌 부차적인 조치여야 한다.

 

행동하는 소비자들과 환경단체들이 빨대 어택을 하면 빨대가 일부 줄어들고, 화장품 어택을 하면 화장품 용기가 일부 바뀌고, 김 트레이를 없애라면 일부 없어지는 값진 변화들… 시민은 이토록 적극적이고 기업은 역시나 소극적인데,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부다. 환경부가 제 역할을 했다면 시민들의 노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에 천착하는 정치인은 왜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걸까?

 

▲ 2019년 1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일회용품 보증금제 재도입 요구 기자회견 (제공: 쓰레기덕질)

 

화장품 용기의 90%가 복합 플라스틱 소재나 다른 재질이 섞여 있어 재활용이 어렵다는 사실조차 시민들의 요구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유는 지난해 3월까지 환경부가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재활용 용이성 등급 표시제도)에서 화장품을 제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시민들의 요구로 개선되었다. 이쯤 되면 다음 플라스틱 어택의 대상은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환경부가 돼야할 것 같다.

 

일회용컵만 아니라 ‘페트병 보증금제도’ 도입해야

 

오는 6월부터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된다. 무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시행되는 제도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카페 시장 규모는 세계 3위로 미국 261억 달러, 중국 51억 달러, 한국 43억 달러, 일본 40억 달러 순이다. 이를 인구수(2021년 기준)로 나눠보면 1인당 카페 이용금액은 미국 78.4달러, 중국 3.5달러, 한국 82.7달러, 일본 31.74달러로 한국인의 카페 이용률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카페 이용률이 높으니 당연히 일회용컵 사용량도 세계 1위 수준일 수밖에 없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의하면, 한국의 테이크아웃 컵 사용량은 연간 84억 개(종이컵 34억 개, 플라스틱컵 50억 개)에 달한다. 2007년 연간 7억 달러였던 카페 매출액 규모가 십여 년 만에 6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난 일회용컵의 폐기물 처리 비용은 판매자도, 소비자도 부담하지 않았던 거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을 앞두고 기업과 소비자 양측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이는 세계 시민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책임이다.

 

페트병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9년 초 언론을 통해서 국내 폴리에스터 제조 공장들이 일본산 폐페트병을 수입해서 기능성 의류나 운동화의 재료가 되는 장(長)섬유를 뽑아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페트병 분리배출·수거 문제가 대두되고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 시행까지 이어졌지만, 여전히 보여주기식 대책에 그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이 폐페트병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것은 자국 내에서 페트병 재활용을 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한국은 일본이 아니라 북유럽형 재활용 모델을 따라야 하는 이유다. 즉 페트병 보증금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손세라 활동가는 “엊그제 제로웨이스트 홈 카페에 페트병 주둥이에 남아있는 고리를 떼어내다가 손을 베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내 손을 거쳐 간 물건이 잘 재활용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각종 공구까지 동원해가며 애써 분리배출을 해보지만, 실상은 헛수고인 경우가 많다. 정부는 애꿎은 시민들만 달달 볶기 전에, 고품질 재활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자원순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생산 단계에서부터 자원 순환이 가능하게끔 만들도록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재활용 인프라가 받쳐주더라도 소재 자체가 재활용이 불가하다면 대책이 없다. 시민들만 헛고생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정책이 아닌, 실용적이고 검증된 쓰레기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혜선 활동가는 “핀란드의 분리배출 제도는 대체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쓰레기를 ‘적게’ 만드는 정책적 흐름이 느껴졌고, 역시 크게 다른 점은 빤띠라는 (유리병, 캔, 페트병) 보증금 제도였다. 결국 '교육'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릴 때 만들어진 가치관과 이를 체득하게 만드는 문화가 진짜 중요하다고 느꼈다.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이런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 오현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가족의 줍깅 모습

 

줍깅(줍기+조깅)=플로깅 문화가 놀랍도록 확산되고 있다. 행동하는 소비자들 모두가 활동가다. 활동가들과 환경단체들이 한국의 탈 플라스틱을 주도해 왔고, 세계 최초의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까지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 2022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모두가 한 가지 목표를 가지면 어떨까? 페트병 보증금 제도를 도입해서 재활용 선진국으로 한걸음 다가가는 것 말이다.

 

올해는 다같이 대한민국 정부를 어택하자!

2022년 플라스틱 어택은 세종특별자치시 도움6로 11 정부세종청사 6동 환경부 장관실로!

 

[필자 소개]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19대 국회의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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