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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태일’이라는 세글자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항거한 그의 외침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노동자에게 울림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도 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그의 뜻을 이어가고자 한 이들이 그 해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를 만들었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등을 외치며 투쟁을 이어나갔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1977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였던 故 이소선 여사가 구속되었을 때 석방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으며, 자신들의 노동교실이 강제 폐쇄되자 그곳을 되찾기 위해 점거 투쟁을 벌였다는 것. 또 한 가지, 그 투쟁에 참가한 대다수가 10대, 20대의 어린 나이로 서울 평화시장에서 미싱, 재단 등의 노동을 하던 여성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1976년에 일어난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1979년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관련 기사: ‘전태일은 알지만 김경숙은 모르는 당신에게’ 시리즈 https://ildaro.com/8532)과 더불어 1970년대 노동운동사와 민주화 운동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의미를 평가 받아야 할 여성노동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중적으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김정영, 이혁래 감독, 2020) 포스터 (제공: 영화사 진진)

 

그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김정영, 이혁래 감독의 <미싱타는 여자들>이다.

 

노동교실에서 각성한 여성들

 

영화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져 보이는 언덕으로 세 명의 여성이 올라가는 장면을 지긋이 바라보며 시작한다. 들판에서 여성들이 발견하는 건 세 대의 미싱기다. 이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미싱기 앞에 앉는다. 미싱을 돌리는 손과 발은 능숙하고 매끄럽다. 맑은 하늘 아래 탁 트인 들판에서 즐겁게 미싱을 돌리던 이들이 말한다. “이렇게 쾌적한 데서 일하면 일이 저절로 될 것 같지 않아?”

 

웃으며 ‘뼈 때리는’ 말을 나누는 이들의 이름은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1970년대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3살, 16살의 나이에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한 봉제노동자들이다. 어린 나이에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들은 “사장이 퇴근하라고 해야 퇴근할 수 있는” 곳에서 “살려고 일한 게 아니라 죽으려고 일한거지”라고 회상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명절연휴를 앞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밤샘 노동에 “졸린 게 문제가 아니라 죽을 것 같아서” 탈주했지만, 결국 공장으로 돌아와야 했던 소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사장한테 비는 것이었다. 그들의 일터는 아동청소년 학대와 노동 착취의 현장이었다.

 

열악한 건 노동 환경만이 아니었다. 집에선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학교 대신 공장을 보냈고, 사회는 이들이 교복을 입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소년 요금 대신 성인 버스 요금을 받았다.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고 할 만큼 어린 여성노동자가 마주한 세상은 도처에 차별이 깔려있었다.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중 신순애 씨가 노조 친구들이랑 놀러 갔던 일을 이야기한다. (제공: 영화사 진진)

 

이런 여성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친구들과의 만남, 배움의 갈증을 해소해 준 건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교실이었다. ‘시다 몇 번’이 아니라 신순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 동전을 들고 다니는 것 대신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어 돈을 입금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곳이었다. “밥 먹는 게 좋았지만, 밥과 노동교실 중 택해야 한다면 노동교실을 택할 만큼” 노동교실은 각별했다.

 

퇴근 시간이 밤 10시가 아니라 저녁 8시로 맞춰져야 하는 이유도 노동교실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노동 시간이 지켜져 한다는 것, 근로기준법이라는 게 있다는 것, 노동자인 자신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걸 배워나갔다.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사춘기를 지나던 소녀들은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투쟁 현장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역사적인 ‘9.9 결사투쟁’과 남은 상처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던 노동교실은 1977년 강제 폐쇄된다. 이소선 노동운동가가 구속되고 청계피복노조를 향한 탄압이 강화되던 때였다. 노동자들은 곧바로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이소선 석방, 노동교실 폐쇄 중지 등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그러자 건물주는 노동교실 사무실 계약을 9월 10일에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노동교실을 뺏길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9월 9일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중 이숙희 씨가 사진을 보며 과거 일을 설명 중이다. (제공: 영화사 진진)

 

농성은 격렬했다. 사무실 안팎으로 경찰과 대치했다. 노동교실 건물에서 투신하려고 했던 임미경 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 투쟁은 경찰의 ‘아무런 법적 제재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끝났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씨를 비롯한 5명이 구속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이 경찰서로 끌려가 구류되었다.

 

유치장에 갇힌 여성노동자들은 말 못할 고충을 겪었다. 경찰은 대놓고 이들을 무시했다.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된 이들에겐 화장실 사용이 안내되었지만, 이들에겐 ‘X년’이라는 욕으로 돌아왔다. 면회도 금지되어 15일 동안 속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교도소로 이송되어 옷을 벗던 순간이 더 좋았다고 할 만큼 유치장의 대우는 처참했다. 경찰들은 “왜 9월 9일에 투쟁을 벌였냐”며(9월 9일은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날이다) 빨갱이라고 몰아세웠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냐는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이 사회에 정의가 있다고, 판사들은 정의로운 판단을 해 줄 거라고 믿었던 법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판사는 이들의 동기를 의심했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무엇보다도 충격인 것은 1962년 생으로 당시 만 14세였던 임미경 씨의 나이가 1960년생 만 16세로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서류 조작으로 임미경 씨는 소년원이 아닌 일반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신광용 청계피복노조 조합원이 “(투쟁을 이끌었던) 그 여성조합원들이 다 제2의 전태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중요한 9.9 결사투쟁 당시를 증언하고 회고하는 내용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진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밝히는 과정 속에서 이들은 마침내 오랜 기간 묻어두었던 상처를 꺼내 보인다. 또한 아픔과 후회, 자책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살기 위해, 배우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격려한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묻어두었던 아픔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것에 공감하게 되는 관객으로서도 쓰린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 고통은 오래 전에 나눠져야 했던 것이다. 취약한 위치에 놓인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노동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서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투쟁에 나섰을 때, 그들이 억울한 상황에 내몰려 상처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고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보듬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늦은걸까?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중 임미경 씨가 40년 전 자신이 썼던 시를 읽고 있다. (제공: 영화사 진진)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가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소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트위터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엔 매일매일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의 소식이 올라온다. “살려고 일한 게 아니라 죽으려고 일한 것”이라고 할 만큼 열악했던 노동 환경은 지금 얼마나 나아졌을까? “근로기준법을 배우고 우리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는 임미경 씨의 말은 지금의 노동자들에게도 유효한걸까?

  

영화의 마지막,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했던 11명의 여성노동자가 함께 노래 “흔들리지 않게”를 부른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이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기계가 아닌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늦지 말고 빨리 모여 들으라는 ‘빨간 신호’다. 그 신호에 반응하기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멋찐 언니들’이 만든 길이 있으니까. 거기서 조금씩만 더 나아가면 된다.  일다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예고편: https://youtu.be/YIq30uBrC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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