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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오브젝트> 모래시계: 다시, 여성의 시간

 

▶ 12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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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이 갑자기 팟, 하고 전원이 나가듯 끝난 해의 일이다. 잃기에도 잊기에도 지쳐 며칠 잠만 자다가 일어났더니 그동안 버틴 보람도 없이 일이며 관계에서 강 하류의 퇴적모래처럼 밀리고 또 밀려나 있었다. 할 수 있었던 일은 할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던 일은 영영 가망이 없어 보였다. 꽤 절망적이었다고 간단히 써도 되겠지만, 보통 그럴 때는 무력감과 무감각함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기 마련이라 나는 사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상태를 30분쯤 더 견디다가 목욕가방을 챙겼다. 일단 이 느낌 없는 느낌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미래목욕탕 주인아주머니가 눈인사를 하며 수건을 두 장 내주었다. ‘1인 1타월’이라고 적힌 빨간색 글씨가 수건이 나오는 구멍 옆으로 선명했다.

 

“쉬는 날이야? 항상 주말에 오더니.”

 

덕분에 수요일인 걸 알았다. 보통 토요일 이른 아침이나 일요일 나른한 오후에 들러 탕에 몸을 담그고 조금 긴 샤워를 했다. 냉탕 옆 한방사우나실에는 들어갈 엄두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가슴 높이 정도에 있는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혔다. 열기도 열기였고, 저 안은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 세계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사우나실 문이 열리고 차례차례 나와 찬물을 몸에 끼얹은 후 냉탕 안으로 쑥 들어가는 50대 이상의 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직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여러 형님이 있었고 더 많은 동생이 있었다. 나는 늘 최대한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날도 그러려고 했는데, 주인집 할머니와 피할 새도 없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여기, 우리 아래층 사는 아가씨.”

 

의지할 데리곤 수건 한 장밖에 없는 상황, 인생 민망함 순위의 상위에 링크될 만한 순간이었다. 주인집 할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사우나실에 들어서자마자 자리 잡고 있던 이들의 체온과 열기와 뒤섞인 시선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것도 난감한 노릇인데, 주인집 할머니가 어디 상견례 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차분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나를 소개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두 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건 내가 하고도 좀 어이가 없었다. 하나 다행은 사우나실에서 얼굴이 벌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이었다.

 

인사를 드렸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할 수는 없었다. 느낌이 없던 느낌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뒤이어 들어오는 몸들에 밀려 안쪽에 앉게 되었을 때야 그만 포기가 됐다. 30초쯤 있다가 힘든 표정으로 일어나는 거야. 1, 2, 3… 그때 사우나실 한가운데에 앉은 몸이 탁, 하고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 소리로, 정확히는 행위로 사우나실의 기류가 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 포함 사우나실을 꽉 채운 여덟 명의 시선을 한 번에 집중시킨 모래시계의 권력자, 옥상집 형님이라 불리는 그가 모래시계를 뒤집자 무슨 큐 사인을 받은 것처럼 몸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니까 어제 미미슈퍼 앓아누운 게 그 여자가 다녀가고 나서란 거잖아요, 형님?”

웬만해서는 외면할 수 없는 도입부였다.

 

▲ <여성과 오브젝트> 모래시계: 다시, 여성의 시간 (이미지 출처: 플리커)

 

마가렛 부인 역시 모래시계를 뒤집을 때는 탁, 하고 소리를 냈다. 티타임 멤버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6인용 원형테이블은 늘 만석이었다. 그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고 나는 영어를 쓸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건 영국인 집주인이었다.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자기 어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면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선뜻 좋다고 하자 집주인은 어머니의 나이가 80에 가깝고, 틀니를 끼고 있어 영어 발음은 부정확할 거라고 급하게 덧붙였다. 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나이지. 틀니도? 응. 나이와 틀니를 이유로 이미 좋다고 한 걸 취소할 수는 없었다.

 

첫 모임에서는 그들 대화의 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처음에는 서너 번 반복해서 말해주더니 그들은 곧 나를 잊고 그들만의 일상적 대화로 빠져들었다. 들리는 건 들리는 것대로, 또 놓치는 건 놓치는 것대로 신경이 쓰여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따뜻한 차가 들어가자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졸음을 쫓아보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게 모래시계였다. 차를 우려내는 중이라는 건 아예 잊고 모래시계를 멋대로 뒤집고 다시 뒤집고 계속 뒤집는 내 손을 마가렛 부인이 슬며시 잡으며 제지했다.

 

“차를 우려내는 동안 시간의 권력은 차를 내는 사람이 갖는 거예요.”

 

그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젊은이를 타이를 때 노인의 발음은 또박또박해진다. 아, 미안해요. 다른 노인들까지 합세해 괜찮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느라 잠시 내게 몰렸던 시선은 뒤늦게 도착한 노인이 들고 온 애플크럼블로 이동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따뜻한 애플크럼블 파이, 정말 맛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말들을 얼기설기 이해하게 된 건 네 번째 모임부터였다. 전쟁을 겪은 영국 화이트 70대 여성 노인들이라고 그들을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첫 모임이 끝난 후 나는 그렇게 기록했다. 모임이 거듭될수록 그들은 내 메모를 비웃듯이 그 조건들을 빠져나갔다. 무엇보다 그들의 시간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가능한 과거들과 미래들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들의 이야기는 직선의, 인과적인, 정량화된 시간선상에 있지 않다고. 처음에는 그게 너무 이상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대화만 해도 이런 식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고 몇 번을 말해. 앤 여왕 시절부터 말했잖아 내가.”

(과장법을 쓴 농담. 앤 여왕은 17세기 사람임)

“너무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딸은 평생 향수에 시달린다잖아.”

(갑자기? 앤 여왕은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읨)

“그녀는 자식들도 모두 잃었어. 마가렛 당신 말이 맞아. 우린 시간이 별로 없어.”

(아, 그래도 대화 시작점으로 다시…)

“향긋한 차를 마실 시간도 부족하지, 아, 그만 조지아가 떠올라서 슬퍼지네. 차 더 마실래?”

(조지아는 또 누구?)

 

마가렛 부인이 찻주전자에 찻잎을 추가로 넣고 끓는 물을 붓고 모래시계를 탁, 뒤집을 때까지 그들의 대화는 세기와 대륙을 가볍게 넘으며 이어졌다. 아, 조지아는 세 달 전 세상을 떠난 마가렛 부인의 반려견이었다. 

 

▲ 모래시계: 다시, 여성의 시간 (이미지 출처: 플리커)

 

한방사우나실의 모래시계가 한 번 더 탁, 하고 뒤집혔다. 아래가 위로, 위가 아래로 3분의 전복이었다. 3분은 고사하고 30초도 버티지 못할 것 같던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순전히 이야기 때문이었다. 목욕탕 고정멤버인 옥상집 형님과 다섯 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모래가 그만큼 흐른 줄도 몰랐다.

 

그들끼리는 이미 예고편과 사전제작본과 구체적인 등장인물이 공유된 상태였으므로 초면인 나에게는 생략과 압축이 많은 불친절한 서사이긴 했다. 그 점이 또 사람을 추측과 상상, 이야기 엮기라는 능동적 행위를 시도하게 하는 거 아니겠는가. 미미슈퍼에 찾아온 그녀가 누구인지만 듣고 나가자 했다. 그런데 이 형님동생님들도 영국 티타임 멤버들처럼 기승전결이 없었다.

 

“나도 그런 적 있었잖아. 첫째 낳고 한창 우울한데 웬 여자가 남편 동창이라면서 전화를 해서…”

“이따 집에 가면서 미미슈퍼 들러볼 사람? 형님 가면 나도 가고요.”

“그 장르 아니야. 애비가 사고 친 걸 미미슈퍼가 떠안게 된 건데. 옛날에야 흔한 일이었어도 요즘 시대에 무슨 그런 일이 있나 몰라. 오늘은 쉬라고 두고 내일 가보는 게 낫겠죠, 형님?”

아니, 그래서 미미슈퍼에 찾아온 여자가 누구냐고요! 

 

결국 중요한 정보가 담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놓은 기분으로 사우나실을 나왔다. 사우나실 밖에 걸린 시계가 멈춘 게 아닌가 잠깐 의심했다. 30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현실은 고작 몇 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나보다 먼저 나갔던 주인집 할머니가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사우나실에서의 처음 기분 같아서는 요구르트 정도로 화해는 어림없어요, 였지만 아무 느낌 없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데 본의 아니게 일조하신 걸로 내적 합의를 봤다.

 

할머니와 나란히 요구르트를 마시는 그 잠깐 사이, 사우나실에서 나온 형님동생들이 냉탕으로 향했다. 벌써 3분이 지났다고? 나는 잠깐 갈등했다. 몸을 식히고 한 번 더 사우나실에 들어갈까 말까를 두고. 이번에는 시간 때문이었다. 모래시계의 시간. 그 시간에 교차되던 사우나실 안 여성들의 과거, 경험,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시간은 그들의 대화처럼 엉키고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런 것을 자꾸 정량화해 과거현재미래 일렬로 두려니 삶이 휘고 아픈 게 당연한 건가.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시간」에서 ‘아버지의 시간, 어머니의 종족’이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말을 빌려 시간을 경험하는 젠더적 차이를 언급한다. 역사, 진보, 생산의 주체였던 남성과 종족 잉태의 공간으로 치부되었던 여성이 체험하고 이해한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시간에 편입되길 희망했던 초기 여성주의 운동 이후로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성 자체를 거부하고 그 시간 바깥에 여성을 위치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리타 펠스키가 지적했듯 여성의 시간성에 부여된 구원, 자연, 순환, 연속성의 이미지는 근대화 기획과 무관하지 않다. 직선의 시간을 위로할 곡선의 시간으로 이상화된 여성의 시간이 여성을 아프게 한다. 되찾아야 할 건 남성과는 다른 시간의 체험들이 이루는 여성의 시간이다. 내게는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교차하고 동요하고 파장을 일으키는 이야기의 시간이 곧 여성의 시간이었다. 몇 시 몇 분 대신 그 동요와 파장을 가시화하는 모래시계 속 모래가 실은 자연모래가 아니라 입자 크기를 일정하게 맞춘 합성규사라는 건 얼마 전에 알았다. 그러니까, 모래시계의 모래도 자연모래가 아니고, 여성의 시간도 자연-모성의 시간이 아니다.

 

그날 나는 사우나실에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탈의실에서 옥상집 형님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면서 은근한 자식자랑과 본인 인기자랑, 주식투자 현황, 최근 배우기 시작했다는 피아노 선생님 근황까지를 듣고 나서야 미미슈퍼 이야기를 연결해 들을 수 있었다.

 

“배 다른 자매가 찾아왔다더라고. 그냥도 놀랠 노자인데 몸이 많이 아픈 모양이야. 미미슈퍼 걔가 마음이 약해서 내치지도 못하고 핏줄로 떠안게 생겼어.”

“형님은 시누이를 아직도 데리고 살면서 누구 맘 약한 걸 속상해하시나.”

“자네나 돈 더 뜯기지 말고 주머니 여며.”

 

마치 모든 사건이 소통하는 듯 이야기가 축조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역사였다. 문득 강 하류의 퇴적모래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앞으로도 여성의 시간은 때때로 솟아올랐다가 곤두박질치고 멋대로 뒤엉키거나 수많은 과거와 미래로 뻗어나가기도 할 것이다. 그 시간들이 이야기로 연결되며 우리를 회복시킬 터였다. 티타임 노인들은 자주 시간의 얼굴을 하고 꿈에 나타난다. 그들 대부분이 지금은 세상에 없으니 그건 죽음의 얼굴이기도 하다. 조지아가 마중을 나왔으려나? 이미 이야기가 된 기억들. 엘렌 식수도 쓰지 않았나. “여자는 자기 역사를 이야기 속에 끌고 다닌다.”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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