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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오브젝트> 가위: 서로를 벨 수 없는 두 개의 칼날

 

실패한 관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관계 앞에서 지난 실패를 꺼내드는 복잡한 심리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미정의 경우는 그 실패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앞으로 나와 맺을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그럴 거라는 암시를 주기 위한 시작이었다. 명백한 실패로 남은 관계 대부분이 그런 허술한 보호막을 남기곤 했다. 그건 모녀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 <여성과 오브젝트> 가위: 서로를 벨 수 없는 두 개의 칼날.  (이미지 출처: 플리커)

 

“엄마가 이상해요.”

 

미정의 엄마, 점숙 씨가 미정과 나를 “친구하라고” 소개해 단둘이 어색한 식사를 한 지 한 달이나 지났을까. 자정 가까운 시간에 전화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어서 폰 화면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망설였다. 전화는 한 번 끊겼다가 다시 울렸다.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한 건 그때였다. 엄마, 라고 발음할 때 미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점숙 씨의 나이를 떠올렸다. 83세, 자정의 전화, 떨리는 목소리…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재빨리 어두운 창을 지나가는데 미정이 숨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가 거실 커튼을 자르고 있어요. 엄마가, 거실 커튼을, 계속…”

 

미정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미정은 아이이기도 했을 것이다. 미정의 나이는 미정이 점숙 씨와 같이 산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단 둘뿐이었어요. 미정은 어느 날, 아마도 둘 말고도 셋, 넷, 다섯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어떤 날에야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다. 누군가 나와 엄마를 묶어서 한 방에 던져 넣고 문을 쾅 닫아버린 기분이었어요. 그 말이 나를 퍽 놀라게 했다. 기록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노인들 중 첫 시간부터 또렷한 인상을 준 점숙 씨가 그 시간을 회고하며 쓴 문장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이 나 죽지 말라고 내 딸을 내렸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였다.

 

자식이 부모를 그렇게 살리기도 한다는, 여기저기에서 눈물 쿡쿡 찍어 닦는 교실 분위기가 나는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점숙 씨의 딸이라도 된 것처럼 숨이 턱 막혀서 창문을 열고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엄마 마음이 그런 거지. 젊은 선생님은 아직 모를 거야. 그런 말들이 뒤통수를 툭툭 쳤다, 영영 모를 일이긴 했다.

 

“따님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내가 포목점에서 일 받아 우리 딸을 키웠어. 착했어 애가. 딸이 남편이고 친구고 그랬지.”

“그러니까요. 딸은 딸이어야지 남편이고 친구면 안 돼요.”

 

말해놓고 나도 놀랐다. 그렇게 찍어 누르듯 말하려던 건 아니었다. 저러다 틀니가 빠지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로 점숙 씨가 오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게 왜 안 되는 일인가 하고. 옆 자리 은성 씨가 말하듯, 그 맛에 딸 키우는 건데, 하고. 링 위에 나 혼자 딸 대표로 서 있고 13명의 늙었으나 노련하고 실은 저 세상 내공인 엄마들이 으르렁거리는 순간, 아이고 모르겠다 심정이 되어서 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 딸들 힘들어요. 그만 좀 괴롭혀요!”

 

 

미정의 눈이 때꾼했다.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점숙 씨는 병원을 다녀온 후 줄곧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그러면서 미정은 조금 안도하는 듯도 했다. 전날 미정이 어르고 달래도 가위질을 멈추지 않던 점숙 씨가 나와 통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선히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하니 그럴만도 했다.

 

정황상 정숙 씨가 미정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는데 미정은 통화상으로는 그 점을 부정했다. 나 힘들게 하려고 고집 부리는 거예요. 낮에 싫은 소리 한 걸 가지고 참나. 반면 점숙 씨는 내 목소리를 금세 알아챘다. 선생님! 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뭐하세요, 내가 묻자 천이 좀 남아서, 라고 점숙 씨가 답했다. 늦었는데 그만 주무세요, 했더니 그래야겠다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다 했다.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아침에 커튼 보시고는 별 말 안하시고요?”

“엄마 잠든 사이 커튼 떼서 치워뒀어요.”

 

잘했다는 말 대신 미정의 손을 잠깐 쥐었다 놓았다. 좀 무서웠어요. 미정이 미처 전화상으로는 말하지 못했던, 점숙 씨가 나와 통화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미정에게 보인 모습은 어쩐지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선명해서 마음이 아팠다. 나라면 뭘 할 수 있었을까.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가위를 꼭 쥔 채 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나를 향해 처음 보는 시선을 보낸다면. 그러니까, 돌연 가위 끝을 나에게 겨누고 손을 떠는 여자가 바로 내 엄마라면. 

 

▲ <여성과 오브젝트> 가위: 가장 가까이 스치는 칼날, 엄마.   (이미지 출처: 플리커)

 

“나는 바로 요양원 보내라. 피차 못할 짓이야.”

 

엄마는 점숙 씨네 이야기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저렇게 강하게 나올수록 조심해야 한다. 의지를 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필요 없다”는 “네가 알아서 사주면 하지”로, “신경 쓰지 마라”는 “그렇다고 안 쓰면 섭섭하지”로 들릴 만큼은 훈련이 되어 있었다. 엄마들의 이중 화법과 딸들의 자동번역은 비가시적 억압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소모적 기술이다. 그러니 저런 말에 너무 심심해서 오늘은 엄마와 한판 해야겠다가 아니면, “어, 그럴 생각이었어요”라고 답변해서는 안 된다.

 

엄마는 남편을, 나는 아빠를 잃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디에 얼마나 구멍이 났는지 피차 조심스러워서 함부로 뾰족할 수 없었다. 점숙 씨에게 미정이 남편이고 친구였다고 했을 때 유독 내적 반응이 강했던 건 나 역시 그즈음 거부할 새도 없이 같은 역할을 떠안고 있었서 였을 것이다. 한시적인 변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정 역시 자신이 지금까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을 줄은 몰랐을 거란 회의도 들었다.

 

미정과는 여러 조건이 다르긴 했다. 나는 생의 반 이상을 이미 혼자 살았고, 아빠와의 관계가 좋았다. 그랬다는 건 엄마와의 관계에서 기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는 의미다. 가족 안에서 한 관계가 부재하거나 와해되면 다른 관계의 정서적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다. 자기 역사에서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미정과 남편이 사라진 점숙 씨는 하나로 엮였다. 안정적이었던 삼각형 구도가 무너지고 엄마와 나, 단 둘이만 연결된 일직선이 돌연 화살이 되어 내 배꼽을 관통해버린 것처럼.

 

있으나 없는 혹은 없으나 있는 남편과 아버지들의 관계적 실패가 모녀 관계의 무의식적 충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딸들은 오래 바래왔다.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어요. 그 바람 안에는 엄마가 딸이 아닌 그 행복에 의지함으로써 더 이상 딸의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던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미정도.

 

“딸이 너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나?”

“정확히는 모르고 다섯 살쯤?”

“결혼도 안 하고 둘이 쭉 그렇게 살았으면 딸도 엄마 없인 힘들 거야. 네가 말을 잘 해봐. 딸도 준비를 해야지, 그러다 크게 무너진다.”

 

엄마 말에 다른 메시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점숙 씨 편에서 얘기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진심으로 미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딸깍, 하고 그 순간이 왔다. 때때로 어떤 기억들이 재배열되는 순간. 삶이 다시 쓰이는 듯한 그 순간, 새삼스럽게 체화되는 어떤 감정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를 잃은 엄마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우는 모습에 놀란 11살의 내가 목놓아 따라 울었던, 그 딸들의 시간이 후두둑 같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엄마가 나를 따라 울었다. 어디에 얼마나 구멍이 났는지 서로 살피는 울음인양 그닥 소리는 없이.

 

 

점숙 씨는 요양원에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멀리 갔다. 거실 커튼을 가위질하던 그날로부터 두 달쯤 지나서였다. 아침부터 자꾸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해서 미정은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소변을 보다가도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부러 계속 보를 내는 미정보다 조금 늦게 가위를 내던 점숙 씨가 거듭 “아, 내가 졌네.” 했다. 엄마가 이제 이런 규칙도 다 잊어버리는구나 하다가 미정에게도 그 순간이 왔던 것 같다. 기억이 딸깍 딸깍, 감정이 늦은 이유를 갖게 되는 순간.

 

미정에게 처음 가위바위보를 가르쳐주면서, 걸핏하면 가위바위보 규칙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점숙 씨가 하고 또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언니 손에 자란 점숙 씨에게 가위바위보를 처음 가르쳐준 사람도 언니였다.

 

“가위바위보 하자. 진 사람이 설거지하기.” 

점숙 씨가 가위를 내고 언니가 주먹을 냈다. 

“점숙이가 이겼네. 언니가 설거지할게.”

 

매번 그런 식이었던 언니 때문에 점숙 씨는 오랫동안 가위바위보의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위를 내면 이겼다. 가위는 천하무적이었다. 오빠가 언니에게 화를 냈다. 규칙을 멋대로 깨지마. 언니는 웃기만 했다. 점숙 씨는 어쩐지 언니가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 이유로 가위만 내던 버릇은 미정에게 가위바위보를 가르치고 멋대로 규칙을 바꿨다 말았다 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미정이 그걸 알고 계속 주먹을 내면 눈을 사납게 흘기곤 했던 점숙 씨가 이기고도 졌다, 에이 또 졌다, 한 그날 미정은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이상해요.”

두 달 전과 달리 미정은 울지 않았다. 

 

 

49재를 며칠 앞두고 미정에게 들렀다. 엄마가 따로 챙겨준 김치와 밑반찬으로 같이 밥을 먹고 과일을 깎아 텔레비전을 봤다. 점숙 씨와 함께 공부한 노인들이 49재에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그들이 번갈아 오고 간 덕분에 장례식도 썰렁하지 않았다. 미정은 여기 있지만 아직 여기에 도착하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음식을 따로 장만해야 할까요?”

 

떡과 적당한 답례품을 찾아보자고 내가 검색을 하는 사이, 미정은 안방에서 점숙 씨의 반짇고리함과 옷가지들을 들고 나왔다. 정리를 하려는 건지, 뭔가를 확인하려는 건지 모를 손놀림이었다. 그 손이 가위를 쥐는가 싶더니 수건으로 가위를 둘둘 말았다. 같이 보낼 건가 물으니 버리려고요, 했다.

 

“버릴 가위를 그렇게 새 수건에 싸는 사람이 어딨어요?”

미정의 손에서 가위를 받아들었다. 맥없이 내주는 손, 가위도 못 낼 그 손에 내 손을 포갠 채 한참 있었다. 어쩐지 너무 멀리 온 것 같은 피로감이 그와 나를 동그랗게 감쌌다.

 

“여기 두 칼날이 교차하는 부분을 고정시키는 얘, 이름 알아요?”

“사북요.”

“이거 아는 사람 잘 없던데. 어떻게 알았어요?”

“엄마한테 들었어요.”

 

사북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북이 잘 고정되어야 두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스칠 뿐 서로를 베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니까 어떤 엄마와 딸은 사북을 잃거나 애초에 갖지 못한 가위의 양날이었던 건 아닐까. 결코 서로를 벨 수 없는 운명이 어긋나버린 건 그들 탓이 아닐지도 몰랐다. 딸에게 사북을 가르쳐준 점숙 씨도 누군가의 딸이었으니까.

 

 

미정은 점숙 씨가 없는 세상에 그의 남편이나 친구가 아닌 딸로 남았다. 최근 그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넷째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통스런 분리와 죄책감의 연쇄가 간헐적으로 마음을 옥죄긴 해도 페르세포네이거나 엘렉트라인 세상의 딸들이 으레 그렇듯 미정 역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기억하고 또 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그에게는 의지할 관계가 여럿 있다. 미정을 떠올리면 나는 이런 문장을 쓸 용기가 생긴다.

 

딸들은 탯줄을 두 번 자른다.

 

[필자 소개] 김지승. 작가. 비영리단체 매체 기획자.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노인 서사에 관심을 두고 개인 연구와 여성/노인 대상 예술 수업을 진행 중이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을 썼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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