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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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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12월이다. 이맘쯤이면 사회 곳곳에서 ‘불우 이웃’을 돕자고 소리 높인다. 물론 정말 좋은 의도로 진행되는 일들이 많고, 그를 통해 도움을 받는 이들도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의 이야기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연말이니까, 어디 후원해 볼까?’하는 생각도 들 테다.

 

그런 연말의 ‘따스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 있었다.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여러 논란적인 발언들로 자진 사퇴한 노재승 씨는 지난 11월 자신의 SNS에 “가난하게 태어났는데 그걸 내세우는 사람들 정말 싫다. 가난하면 맺힌 게 많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이용한다. 정말 치졸하다”고 썼다. 가난하게 태어났는데 그걸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중년이 되어서도 몇십 년 전 수능 점수(혹은 학력고사 점수)와 출신대학에 집착하며 그걸 내세우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봐왔던지라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가난하면 맺힌 게 많다’는 말도 마음에 남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에 대해 아무 말이나 대뜸 내뱉는 사람들, 그리고 어렵게 지갑을 열긴 하지만 취약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데엔 관심이 덜했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연말 선물 같은 책이 나왔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지음, 후마니타스). 주거빈곤상태에 처한 홈리스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며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와 자원활동가들이 서울 남대문로5가 양동 쪽방촌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주민 여덟 명과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가 두 명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책이다.

 

▲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쓴 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후마니타스, 2021) 표지

 

이 책은 가난의 얼굴로 ‘대표되는’ 쪽방촌 주민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미래의 이야기를 담으며, 가난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찾아오게 되는지 드러낸다.

 

가난이 머무는 곳의 이야기

 

양동은 서울역 맞은 편, 남대문 경찰서 옆으로 난 언덕길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로 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던 곳이었고, 성매매집결지이기도 했고, 넝마주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의 잠자리가 된 공간이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 판자촌이 철거되고 도심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서울 힐튼호텔이 지어졌다. ‘사창가, 무허가 하숙촌, 우범지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양동이라는 이름을 남대문로5가동으로 변경하기도 했지만, 1998년 IMF 경제 위기가 온 뒤로 무허가 하숙촌은 쪽방으로 변경되었고, 가난한 이들이 찾아왔다.

 

2019년 10월 서울시가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 계획 변경안>을 가결함으로써 재개발 바람이 불었고 “2019년 말엔 400명가량이던 주민이 절반으로” 줄었다. “건물주 또는 건물주의 사주를 받은 관리자들에 의해 쫓겨난 것”이었다. “빈집인 상태로 개발을 시작해야 도시정비법과 토지보상법이 세입자들에게 보장하는 주거 이전비, 임대주택 공급 등과 같은 의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업종을 변경한다, 리모델링을 한다, 건물이 위험하다 등”의 여러 이유를 들며 집을 비우라 독촉했다.

 

그렇게 밀려났거나 밀려날 위기에 처한 쪽방촌 주민들. 이들이 대책없이 밀려나는 걸 막고자 노력 중인 ‘홈리스행동’은 주민들의 생애사를 듣기로 한다. 밀려나서 사라질 삶을 기록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덫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갈 곳 없는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감금되고, 착취되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재료로 소모될 때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는지” 질문하기 위해서다.

 


 

왜 쪽방촌에 사냐고요?

 

쪽방촌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게 되는 것들은 대개 처참한 장면들이다. 누워서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고, 화장실 등의 기본 시설도 갖춰지지 않았고, 제대로 된 창문이 없어서 환기도 안 된다. 양동 쪽방촌에 매주 도시락 배달 활동을 하는 신종호 해피인 서울역 위원장은 설명하기 어려운 쪽방촌 냄새가 있다고 표현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데) 마스크를 쓰고 쪽방에 갔다 오면 마스크에서 쪽방 냄새가 난다. 쪽방에 다녀오면 그 마스크는 다시 못 쓴다.” 이처럼 “환기가 안 되는 환경이다 보니 겹겹이 누적된 냄새”가 스며든 곳, 옆 집 사람 기침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소음에 취약한 곳,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기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쪽방촌이다.

 

쪽방촌에 사는 이들에게 왜 여기서 사냐고 묻는다면 ‘돈이 없어서, 가난해서’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된다. 틀린 얘긴 아니다. 하지만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서울역 주변 쪽방에서만 70년 가까이 산 권용수 씨는 여덟 살 때 배고픔에 못 이겨 고향인 경북 안동 시골에서 무작정 기차를 탔다. 그렇게 서울 청량리 그리고 남대문에 온 그는 평생을 쪽방촌에서 살았다.

 

그가 늘 가난했던 건 아니다. “중동 바람이 불 때 사우디랑 이집트를 갔다 온” 그는 “당시 서울 잡부 수입이 한달에 8000원, 1만2000원 하던 때” 사우디에서 시간 당 3500원하는 일을 했다. “그저 일 많이 해서 돈 더 받는 것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애들 엄마랑 살 때도, 돈 잘 벌어도” 사는 건 늘 쪽방이었다. 그에겐 쪽방이 집이었으니까.

 

2017년부터 양동에서 살고 있는 김강태 씨는 어렸을 땐 부잣집에서 살았다. 무역회사 대표이사였던 아버지 는 지프차를 몰았고 “가정집에 연탄보일러가 있을까 말까 했을 때 기름보일러가 있는 집”에 살았다. 해군에 입대한 그는 삼촌이 해군 중장이고 아버지가 해군 중령 출신이었던 탓에 군 생활도 편하게 했다. 제대한 후엔 외항선을 탔다. 공무원 월급 두 배는 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란, 이라크, 미국, 캐나다, 브라질, 일본 등을 돌아다녔고 “워크맨도 사고, 카메라도 사고, 독일제 선글라스를 사고도 돈이 남을 정도”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의 배신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은 통장에서 다 빠지고 없었고 형은 집을 팔고 사라졌다. 형을 잡으려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이내 모든 게 다 싫어져 서울역에서 홈리스 생활을 시작했다. 장애인시설에 가서 봉사활동도 해 보고 양계장, 돼지 농장에서도 일했다. 열심히 일한 결과로 몸이 상한 그는 2017년부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고, 흡연 장소가 지정된 고시원보다 “담배 연기가 뽀얗니 어쩌니 누가 그런 소리 할 놈이 없는” 쪽방을 택했다.

 

2019년부터 양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김석기 씨는 지금의 쪽방이 자신의 첫 집이다. ‘불량 주거’라 불리는 쪽방에 살면서도 그는 “그냥 딱 요만큼 살면 된다”고 말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쌀이 나오는 동사무소가 근처에 있고, 운동을 할 수 있는 남산이 있고, 근처에 쪽방 상담소가 있고, 이제 65세가 되어 맘대로 전철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이 곳이 좋기 때문이다. “여기가 너무 좋아서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에게 “첫 집”인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다.

 

▲ 남대문로5가 622번지에 건축된 쪽방의 하나. 강남에 사는 건물주는 남아 있는 이들에게 손해배상을 운운하며 내용증명을 보내 퇴거를 종용했다. ©홍서현

 

왜 가난에서 못 벗어나냐고요? 

 

이처럼 쪽방에 살게 되고 계속 머물게 되는 건 단지 ‘돈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평생 살아온 곳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첫 집이라 애착이 가는 공간이다. 또한 일종의 커뮤니티가 생성된 경우도 있다. (남대문이라) 일감을 구하기 쉽고, 편리한 교통 시설이 있어 병원에 가기 용이하다는 등의 장점이 있기도 하다. 쪽방에서 살다 다른 지역의 임대주택으로 가게 되었음에도 “몇 개월 살다 다시 여기(양동)으로 오는” 경우가 있는 것도 그런 복합적인 이유다.

 

물론, 가난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수급 등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벗어날 기회가 없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이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가 없었나?’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동보호소, 근로 재건대, 머슴살이, 일용직 등을 전전한 장영철 씨는 “일할 때 돈을 못 받은 데도 많다”고 했다. 하루 일당을 받아야 하는데 자꾸 안주고 미루다가 책임 안 지고 도망가버린 인력 사무소 소장도 있었고, 마음 잡고 일을 같이 하려고 한 현장 건설사 직원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없는 회사’인 적도 있었다. 계속 일용직을 하다 보니 셋방은 꿈도 못 꾸고 쪽방과 노숙 생활을 오갔다.

 

그는 2009년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던 중, 먹여 주고 재워준다는 소리에 인천까지 따라갔다. 그랬더니 “은행에 가서 신청서를 써서 대출을 받게” 했다. 영철 씨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었다. 그저 밥 주고 담배를 사 줄 뿐이었다. 또 다시 대출을 받으러 갔을 때 은행에서 도망갈까 생각도 했지만 은행 앞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명의도용 일당들은 영철 씨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회사를 만들었고 인터넷, 정수기, 공기청정기를 모두 영철 씨 명의로 계약했다. 핸드폰도 수십 대 개통했다. 영철 씨가 내야 할 세금이 8억, 핸드폰 요금도 800만원이 나왔지만, 조직이 전국에 깔려 있었고 탈출은 상상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영철씨 명의로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었을 때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폐암 수술을 받은 후 생긴 빚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를 잃고 결국 아버지 마저 보낸 김기철 씨는 홀로 남겨져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젖소 농장, 양계장, 연탄 배달, 엿장사 등을 하며 돈을 벌려고 했지만 “밥 먹어야지, 막걸리 한잔 해야지, 담배 피워야지” 하다 보면 남는 게 없었다. 술 먹고 폭력을 행사해 구치소에도 가는 등의 생활을 하다, 결국 서울역 노숙자들을 데리고 가는 병원 차를 탔다. 담배도 주고 좋아하는 커피도 준다길래 갔던 병원에선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쎈 약’들을 먹였다. 그에게 병원에 가자고 제안한 이는 정신병원에 환자 수를 채워 주는 브로커였다.

 

▲ 2021년 4월 16일 김기철 님이 병원 가는 길에 동행한 이동현 활동가 ©이은기

 

가난한 이들에게 그 가난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들러붙는다.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을 손쉽게 유혹하고 속인 후 자신의 잇속만 챙길뿐더러 더한 가난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건 이런 사람들 탓이고, 이런 상황을 방치해 두는 사회 탓이다. 아무리 일해도 남는 게 없는 사회,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에서 일하겠다는 사람도 있다”는 기업인들의 말을 듣고서 최저임금이 높다고 하는 대선후보가 나오는 사회, 가난한 이를 착취하는 사회.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나의 얼굴만 있는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다 피해자라는 건 아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쪽방촌 주민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범죄의 피해가가 되기도 했지만, 때때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가담한 사람이기도 했다. 방관자이기도, 무력한 시민이기도,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시민이기도 했다.

 

같이 사는 “아저씨”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양순 씨의 삶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어머니와 같이 산 50년 동안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강성호 씨의 삶은 답답하기도 하다. “내가 돈을 벌면 내가 사고, 내가 놀게 되면 다른 친구가 돈을 준다. 그래서 막걸리 값, 담뱃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기껏 벌어놓은 일당을 친구, 동료들과 공공재처럼 써 버리는 김강태 씨의 삶은 신기하고 한편으로 좀 부럽기도 하다.

 

이 책은 어떤 해답을 주지 않는다. ‘가난한 삶, 가난한 사람이란 이런 거라고!’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쪽방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 사람 중 한명인 최현숙 작가는 “대부분 장년층 남성들로 이루어진 화자들의 말과 대체로 20~30대 여성들로 이루어진 청자들의 질문은 서로 미끄러지곤 했다”고 썼다. 그의 말처럼 책 속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한편으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다. 누군가의 삶에 가난이 왔을 때 홀로 버티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함께 싸워야 한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올해 양동 재개발 지역 내 임대주택 건설 결정이 났다는 건 정말 희소식이다.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싸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이 싸움의 끝은 아닐 테다. 가난을 쉽게 낙인찍는 사회, 가난을 착취하는 사회를 끝내기 위한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박주연 기자)  [일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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