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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서 만나] 영화 <어바웃 레이>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변규리 감독, 2021)이 화제다. 그간의 성소수자 영화와는 다르게 가족영화이기도 한 점이 특징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는 가족과 아예 동떨어진 존재로 표현됐다. 마치 가족에게 내몰려지는 것이 당연하기라도 한 듯 그들은 <트랜스 아메리카>(던컨 터커 감독, 2005)처럼 혼자 떠돌거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장 마크 발레 감독, 2013)처럼 아예 가족과 무관하거나 <나의 장미빛 인생>(알랭 베를리네 감독, 1997)처럼 이해받지 못해 상처를 받았다. 그런 상처들이 현실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퀴어 퍼레이드 기간 중 진행했던 프리 허그(Free Hug) 이벤트에서 포옹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가족에게 가장 숨겨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 영화 <어바웃 레이>(게비 델랄 감독, 2015) 스틸 컷

 

<어바웃 레이>(게비 델랄 감독, 2015)는 <너에게 가는 길>처럼 성소수자 주인공이 나오는 가족영화다. 레이는 16세 비수술 트랜스젠더 남성이다. 레이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성확정 수술을 앞두고 부모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법 앞에 마주한다. 레이의 가족은 레이가 나레이션으로 소개하듯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의 여자친구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사라져버린 아빠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문제에 처한다.

 

사건이 아닌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는 구조

 

영화는 검정 화면 위 레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생일날 촛불을 불 때마다 같은 소원을 빌었다. ‘남자이고 싶어요’”. 화면이 밝아지면 길이 보인다. 레이가 등장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려간다. 레이의 시점샷과 번화가 속을 달리는 레이가 교차되며 보인다. 그렇게 도착한 다음 씬은 병원이다. 여기서 레이는 부모 모두의 서명을 받아야 함을 통보받는다.

 

캐릭터를 설명하고 사건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영화와 달리 <어바웃 레이>는 오프닝 시퀀스와 바로 다음 씬인 병원 씬으로 주인공 레이가 헤쳐 나가야 할 사건을 짧게 요약한다. 이 영화는 ‘캐릭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에 대한 궁금함도 있지만 진행될수록 ‘이 캐릭터는 누구인가’에 더 궁금함을 갖게 만든다. 영화 속 사건은 이미 발발했기 때문이다. 레이를, 이 가족 개개인을 궁금하게 만드는 구조를 선택한다. <어바웃 레이> 타이틀에 꼭 맞는 구조다.

 

레이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우선 첫 장면부터 레이와 단짝처럼 함께하는 스케이트보드다. 청소년기의 고독을 다룬 <파라노이드 파크>(구스 반 산트 감독, 2007)에서도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한다. 스케이트보드가 가는 길은 레이가 가는 길이다. <파라노이드 파크>에서는 고속촬영으로 그 빠른 스케이트보드를 느리게 찍어 아름답고 고독하게 연출한 반면, <어바웃 레이>의 초반에는 적정한 속도와 거리를 두고 촬영한다.

 

특히 병원에 다녀와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답함을 안고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레이를 촬영할 때 거리감은 돋보인다.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오는 레이는 지루해 보인다. 껌을 꺼내 씹는다. 그리고 경비원은 레이를 이전 이름인 ‘라모나’로 부른다. 레이는 자신의 이름이 ‘레이’임을 정정하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친구와 놀기 위해 떠난다. 멀어짐과 자유로움의 수단으로 대변되는 스케이트보드는 레이의 셀프캠에서는 전혀 다른 컷을 보여준다.

 

▲ 영화 <어바웃 레이>(게비 델랄 감독, 2015) 스틸 컷

 

온전히 레이의 시점으로

 

그렇게 멀어지며 쌩쌩 달리는 레이의 시점샷은 어떨까. 레이는 스케이트보드 외에도 영상 편집과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직접 찍은 셀프캠을 편집해 그 위에 음악을 얹는다. 레이의 셀프캠 영상은 이 영화의 묘미다. 레이가 보는 “어바웃 레이”다. 달리며 길을 찍을 때는 빠르고 어지럽다. 길에서 레이는 혐오자인 반 친구를 만나, 여자 맞냐는 무례한 질문을 받는데, 그 혐오자의 모습이 셀프캠에 그대로 담긴다.

 

레이가 카메라를 밖으로 돌리면 빠르고 어지럽고 불안하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미소를 찍은 캠에서는 설렘과 아련함이 느껴진다. 레이가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이나 호르몬 주입을 기다리는 모습을 찍을 때는 편안하다. 이 모든 것이 레이의 삶이다. 이것은 카메라 감독의 시선도, 연출의 시선도, 그 어떤 시선도 반영하지 않은 레이만 아는 레이의 시선이다. 연출은 이를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제3자의 시선을 거둠으로써 레이가 레이를 표현하게 한다. 관객은 레이 안 어딘가에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성소수자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시점들이 있는가. 저들이 불편하다는, 저들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아니면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혐오자 무리의 피켓처럼 옹졸한 변명으로 버무려진 시점들은 카메라 앞에도 뒤에도 설 자격이 없다. 차별금지법 뒤에 따라붙는 수많은 반대 이유들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고, 성소수자의 이야기고, 레이의 이야기다. 그런데 국회는 어디를 찍고 있는가.

 

레이의 시점을 통해 감독은 레이가 영화 속 아무에게도 직접 하지 않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한다. 한 명의 이야기를 오로지 당사자의 시점으로 모두에게 전하는 방식이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배제한 채 무언가를 논의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연출 방식이다. 레이의 영상과 음악은 당사자가 직접 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라는 힘을 가진다. 할머니가 그동안 이해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며 화해를 신청하는 씬이 있다. 레이는 화해를 받는 의미로 자신이 새로 만든 비트를 들려준다. 이는 자신의 시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레이의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 감독은 레이를 ‘트랜스젠더 남성’이라는 소수자성 하나로 납작하게 그리지 않는다. 많은 영화에서 소수자는 그저 소수자로만 등장할 때가 있다. 개인의 서사는 뭉그러진 채 ‘그 게이’, ‘그 레즈비언’, ‘그 트랜스젠더’로 남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레이가 레이로 남을 수 있도록 연출은 다양한 레이를 보여준다.

 

이 시점은 레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보이지 않게 한다. 레이가 압박붕대를 한 모습은 보여주되 레이가 압박붕대를 풀고 난 후의 컷은 거울 쇼트를 이용해 쇄골 밑에서 반사가 끊기게 한다. 트랜스 남성이 겪는 불편한 현실은 보여주되 고통을 재현하거나 그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는 성소수자의 신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 이해준 감독, 2006)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 영화 <어바웃 레이>(게비 델랄 감독, 2015) 스틸 컷

 

다양한 소수자와 혐오의 관계

 

소수자라고 해서 다른 모든 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다른 문제는 나의 문제와 다르며,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내가 이해받길 원하듯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나온다.

 

레이의 레즈비언 할머니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소수자인 레이를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평범한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냐는 무지한 말을 내뱉는다.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을 지키기 위해 평생 살아온 할머니는 레이의 삶을 부정한다. 할머니는 엄마에게도 말실수를 많이 하며 상처를 준다. 이런 할머니의 성격으로 인한 갈등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자칫하여 소수자들이 더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선에서, 소수자라고 해서, 정치적인 삶을 삶았다고 해서 모든 소수자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임을 말한다.

 

페미니스트의 이름표를 달고 트랜스젠더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물권 운동을 하면서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도 있다. 개인은 복잡하다. 소수자의 문제는 한 조각 한 조각 맞춰야 하는 퍼즐이지, 한 번 매듭을 풀면 모든 감수성이 풀려 평등의 물줄기가 촥 쏟아지는 호스가 아니다.

 

그들이 행하는 혐오는 명백한 혐오이다. 하지만 혐오를 하는 그들이 소수자 당사자이기 때문에 거기서 출발하는 혐오는 절대 아니다. 혐오를 비판할 때 또 다른 소수자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 됨을 영화에서는 단호히 선 긋는다.

 


영화 <어바웃 레이>(게비 델랄 감독, 2015) 포스터

 

가장 수동적인 입장에서 가장 능동적으로

 

레이는 미성년자로, 부모의 서명을 받아야만 성확정 수술을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입장에 놓인다. <너에게 가는 길>에도 나왔듯 성별 정정 신청을 하려면 수많은 서류들과 절차가 필요하다. 그 수많은 서류들과 절차는 수많은 차별을 대변한다. 레이는 이 답답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행동을 한다. 서명을 직접 받으러 아빠의 주소를 엄마의 메모지에서 찾아내 등교를 하지 않고 새 가정을 꾸리고 사는 아빠의 집으로 간다.

 

결국에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아빠의 입장도 변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끝내 서명을 받게 되고, 레이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신나게 춤을 춘다. 어두운 톤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레이가 웃는 모습은 몇 번 나오지 않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웃음은 이사를 하고 전학을 가서 자신이 치마 입었던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자고 엄마에게 말하는 씬이다. 엄마도 레이를 보며 웃는다. 마치 몇 안 되는 레이의 웃음을 기억하고 싶은 엄마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듯 카메라도 고속촬영으로 느리게 담는다.

 

레이는 끝내 모든 가족이 모이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제안한다. 엄마와, 할머니들과, 아빠와, 엄마와 관계가 있었던 삼촌과, 아빠의 새 가족들까지. 레이의 가족은 레이뿐만 아니라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다. 엄마 역시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불안과 함께 나아간다. 이는 레이의 마음을 넘어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레이가 이성애자 시스젠더인 엄마를 각성하는 역할로 쓰이지 않는다. 성소수자가 이성애자 시스젠더 캐릭터의 각성을 위한 역할로 쓰였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는 차이가 크다. 엄마는 레이의 행동에 충격을 먹어 방향을 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는데 미숙했고 시간이 걸렸으며 그 과정에서 레이에게 상처를 줬고 또 화해했을 뿐이다.

 

레이에 대하여

 

<레이에 대하여>는 백인 중산층 트랜스젠더 남성의 가족영화이며 비극이 아니다. 그렇다고 보고 나면 무조건 낙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레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레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적극적이었는지 레이의 시점을 통해 관객은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할머니도 엄마도 관객도 감독도 아닌 레이 자신이다. 그러니 감독은 레이의 셀프캠을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레이의 문제는 사실 레이가 결정해야 한다. 양육자는 지지하고 믿고 따라가야 한다. 차별금지법도 차별을 받는 당사자들이 정해야 할 문제다. 사회적 합의를 더 이상 차별의 빌미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레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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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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