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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청년 여성들의 노동이력과 삶
‘Z세대’(주로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라는 말엔 쿨하고 힙한 말들이 붙곤 한다. 그들은 다르다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이전과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대라며 ‘띄워주기도’ 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멋대로 행동하는데다 일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세대라며 경계하기도 한다. 실상은 어떨까? 1990년대생 노동자들은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까? 아니,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특히, ‘청년’ 이슈에서 자주 배제되는 청년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심각한 상황이며, 그것이 노동시장에서 이들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제대로 된 분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최근 실태조사를 진행, 지난 16일 <유예된 미래, 빈곤을 만드는 노동>이라는 제목의 대선기획 청년정책 토론회를 열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 2020년 ‘임금차별 타파의 날’(5월 17일)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코로나19 재난위기 상황에서 고용 위기에 처한 여성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모습.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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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부터 9월 24일까지 온라인을 통한 설문조사엔 총 6,188명이 참여하고 그 중 4,774명(여성 4,632명/ 남성 111명)이 유효 응답을 했다. 심층 인터뷰의 경우는, 주로 임금이 높지 않으며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2차노동시장(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등) 노동이력을 가진 전국의 여성 19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예상보다도 더 심각했다. 현실을 ‘버티고’ 있는 90년대생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 문제와 그 속에서 청년 여성들이 겪는 고난과 좌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Z세대가 왔는데, 여전히 조직문화는 ‘애교’ 요구?
이제 평생직장이라는 말의 의미는 희미해진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하는 ‘요즘’ 노동자들의 행보는 종종 이해 받지 못한다. 어렵게 입사한 공기업, 대기업을 퇴사하는 이들에겐 ‘배불렀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아니다.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최혜영 일하는아카데미 연구원은 “노동 권리 위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노동 환경이 문제”라 짚었다.
“90년대생에게 최소한의 법적 노동 권리 보장은 중요한 이슈이자, 지켜야 하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반해, 법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노동환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열정은 있지만 과도하게 계속되는 장시간 노동을 겪으며, 회사가 “직원의 피를 태워 불을 밝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 결국 회사를 ‘탈출’할 수밖에 없다.
억지스럽게 늘어나는 노동시간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채용공고에는 근무시간이 9시부터 6시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8시까지 출근할 것을 강요”받은 것도 모자라, “7시 55분에 출근해도 ‘너는 왜 딱 맞춰서 오냐, 회사에 불만 있냐, 적어도 7시 30분이나 40분에는 오라’고 질타를 받는 상황”은 직장생활을 평탄하지 않게 만든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이것이 우리의 관행’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한국의 직장문화 중 하나다.
“회식에서 (거래처 사장님이) 음료수를 사다 주시면 무조건 동영상을 찍어야 돼요. 막 이렇게 흔들면서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걸 해야 되는 거예요. 너무 하기 싫은데. 그게 일주일에 두세번 막 이렇게 되니까 아무리 웃고 밝은 척을 해도 이게 막 안 되는 거예요” - 심층 인터뷰 참여자 중
여성 청년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재롱과 애교’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처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여성 직원이 ‘애교와 재롱을 부리는 존재’로 동원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회식 자리에서 ‘흥’을 담당하길 강요 받기도 한다.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조직 부적응자’ 취급”을 당한다.
▲ 11월 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한 ‘대선기획 청년정책 토론회’ 첫 번째 <유예된 미래, 빈곤을 만드는 노동>에서,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심층 인터뷰 결과를 분석한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원의 발표 내용 중.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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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도 여전하다. 주로 ‘남성이 종사해 온 분야’일수록, 성차별 조직문화가 두드러진다. 여성들은 취직부터가 쉽지 않다. 대학시절엔 학업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취업에선 서류전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학점이 낮거나 자격증이 부족한 남자 동기들은 통과하는 서류전형인데 말이다. “여성도 뽑는다고 (밖으로는 공표)하지만, 사실 한번도 여성을 뽑은 적이 없다”는 말을 접하게 되는 여성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다른 분야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 이공계열을 전공한 심층면접 참여자 4명 중 3명이 결국 취업시 진로를 변경했다.
힘들게 ‘남초 직장’에 들어가도 문제는 이어진다. “남성들끼리 ‘장난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농담과 말들이 ‘장난식’으로 이뤄진다. 문제제기를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히게 된다. 이는 승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하고 싶은 청년 여성에게 비전을 제시 못하는 사회
문제적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서 더 나은 환경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이직율도 높다.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박선영 중앙대학교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설문에 참여한 여성 4,623명 중 이직을 경험한 비율은 과반을 훌쩍 넘는 67.8%”라고 밝혔다. 한번 이직이 21.3%로 가장 높았고, 5번~9번 이직도 8.4%나 차지했다. 이직을 경험한 이들의 고용형태는 시간제(20.1%)와 기간제(16.2%)도 있지만, 가장 높은 비율은 의외로 정규직(48.4%)이었다. 또한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150~200만원 미만(32.2%)과 200만원~250만원 미만(21.2%)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자발적 퇴사가 2,487명(87%)으로 가장 높았고, 퇴사의 이유는 근로여건 불만족(급여, 근로시간, 작업 환경 등) 69.3%, 전망이 없어서 32.3%, 회사 내 인간 관계 24.3%, 휴식이 필요해서 21.6%, 권위적/성차별적 조직문화 15.2%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직을 위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탐색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것 외에도 여성 청년들은 “‘나이’ 압박과 불안”, “30살이 넘으면 이직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재취업을 서두르게 된다. 그렇다 보니 하향지원을 하게 되기도 하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럼에도, 이 90년대생 여성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더 나은 노동환경을 가진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고, 비전을 모색하기 위해 이직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이직”하며 ‘적당히 버티다가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편견에 맞선다. “하고 있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들에게 일은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통로다. 한편으로는 “능력을 키워 인정 받아야 낙오하지 않는다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군분투하지만 녹록지 않은 노동환경 속에서 20대 여성들은 “일에서 경험하는 좌절이 무기력, 절명, 우울감, 존재론적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일을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정신적·심리적 소진을 경험”한다. “노력해서 성공하는 것도 네 탓, 실패하는 것도 네 탓이라는 사회” 속에서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정신 건강은 물론 신체 건강에도 위험 신호가 켜진다.
그리고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을 하고 싶은 욕망과 해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기회가 축소되고 있다고 느낀” 이들은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두려움”을 갖게 된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코로나로 인한 경기 불황은 정규직들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2020년 1년 동안만 4곳 이상 직장을 옮겨야 했던 한 심층 인터뷰 참여자는 “막다른 곳’에 있다는 불안감에 뽑아주는 대로 취업을 했다”고 했다. 모두 정규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 11월 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한 ‘대선기획 청년정책 토론회’ 첫 번째 <유예된 미래, 빈곤을 만드는 노동>에서. 박선영 중앙대학교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의 발표 “설문조사를 통해 본 9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이력” 중.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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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여성의 미래계획에 결혼/출산이 있냐고?
잘 하고 싶은데, 잘 해야만 하는데 한국의 노동 환경은 여성 청년들을 자꾸만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불안은 미래를 그리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심층 인터뷰에 참여한 19명의 여성 중 “결혼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이는 7명”뿐이었는데 “이들조차도 경제적 불안정 등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실제 결혼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 참여자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계약직으로 있는 자신의 처지에서 결혼을 낳고 아이를 낳는 건 어렵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울 조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건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 정도로 현실의 일, 육아 병행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굳이 다른 사람이랑 살아야 하나 싶다. 둘이 살아서 두 배로 힘들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혜영 연구원은 이런 이야기들을 분석하며 “90년대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사회적인 성취를 하고 자신을 책임지고 삶을 꾸려가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렇다 보니 “결혼은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나는 일이 된다”는 거다. “가족관계에서 요구되는 책임의 확장,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결혼 여부와 상관 없이 계속 직업적 경력을 추구해 가는 전망”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10년 후엔 직업을 통해 전문가로 성장하거나, 승진을 하고 관리자가 되거나, 한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는 등의 직업적 발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90년대생 여성 노동자들은 향후 가족 구성, 향후 5~10년 사이에 누구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냐는 질문에 반 이상이 “반려동물과 나”(51.9%)를 선택했다. “법적 배우자+자녀”(30.1%)의 비율을 훨씬 상회하는 응답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90년대생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앞으로 계속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할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 박주연 기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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