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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강정에서 살며 싸우는 평화활동가 딸기

 

*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 강정 지킴이들은 지금도 해군기지 앞에서 반기지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 띠 잇기’를 하기 위해 깃발을 챙기는 딸기 활동가의 모습.   ©림보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1993년 국방부 합동 참모회의에서 나왔다고 했다. 2002년 예정지로 제주 화순항이 물망에 올랐지만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2007년 위미항이 다시 후보지가 됐다. 위미항 역시 지역주민의 반대로 철회됐는데, 그해 4월 26일 강정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졸속으로 결정됐다. 그 후로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 마을 공동체가 산산조각 났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 많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강정에 모여 싸운 지 10년이 되던 2016년 2월 26일, 해군기지는 완공됐다. 그러나 강정 지킴이들은 여전히 해군기지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하고 있다.

 

강정 지킴이로 강정에 살며, ‘평화바람’이라는 단체에 적을 두고 있는 활동가 딸기를 지난 여름 만났다. 7월 29일,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5,187일째 날이었다. ‘평화바람’은 2003년 이라크전쟁 파병에 반대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2007년부터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군산 미군기지 옆에 터를 잡고 군산 미군기지 감시활동과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강정에 사는/싸우는 이유

 

강정에서 살며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강정’ 하면 강정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용암 바위 구럼비가 떠오르곤 했는데, 딸기에게는 무엇이 중요한지 궁금했다. (구럼비는 2012년 3월 7일부터 파괴되기 시작해 지금은 해군기지에 가려진 상태다.)

 

“어떤 분들은 자연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저는 좀 달라요. 구럼비 자체보다는 그 구럼비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 여기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커요. 그 사람들하고 쌓아가는 관계, 그 안에서 얻는 배움이 저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초기에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소개하는 데 힘을 쏟았죠. 이제 해군기지가 다 지어졌는데도 남아서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아요.”

 

강정 지킴이들은 어떤 강요나 압박 없이, 부나 명예와 상관없는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직업적 운동가도 아니고 어디서 활동비를 주지도 않는데, 이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선택 자체가 다른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했다.

 

“강정 지킴이들은 그냥 ‘다르게’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세상의 기준이나 가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두 다 정치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고요. 엄청나게 사상이나 신념이 투철해서 원칙적이거나, 사회에 뭔가 주장하고 외치겠다는 것도 아니거든요. 희생한다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에요.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밥을 먹고 쉬는 일상을 사는 것처럼, 여기 사람들도 ‘다른’ 일상을 사는 거죠.”

 

▲ 올해 여름, 해군기지 반대 싸움 5,187일째 날에 딸기 활동가를 만났다. 7월 29일   ©림보

 

평화활동가들은 구럼비 발파를 막으려 바위에 매달려 봤지만 끝내 경찰들에게 끌려 나오고 감옥에 갇혔고, 기지 건설 공사를 막으려 애썼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사람들은 흔히 이기려고 싸운다. ‘아무것도 막지 못한 싸움인데…’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강정 투쟁은 어떤 의미고, 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뭘까.

 

“소성리(사드 배치 반대 투쟁)나 다른 싸우는 현장도 아마 그런 얘기를 숱하게 들을 거예요. ‘힘도 없는데 싸워봤자 소용없다, 기지 건설도 다 끝난 마당에 이런다고 얻는 게 뭐냐, 저건 엄~청 큰 거잖아, 자본, 권력, 국가. 국방부든 해군이든 어차피 이렇게 싸워도 못 이겨.’ 그러면서 끝에 꼭 이래요.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상처받지 말라고.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을 직접 겪다 보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시작할 때부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발을 담그고 조금이라도 같이 겪었는데, 몰랐던 사람처럼 떠나거나 포기한다는 게…. 여기를 떠나는 게 저는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반군사주의 운동, 평화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기

 

평화바람이 처음 이곳에 왔던 2008년, 강정마을은 저녁 8시만 돼도 불 하나 켜진 곳 없이 캄캄했다. 윤 씨, 강 씨, 고 씨 집성촌인데 윤씨 가문이 많았다. 명절이면 집마다 돌아다니며 같이 제사를 지내던 강정은 중문, 서귀포 등과 비교해도 개발이 덜 된 진짜 시골 마을이었다. 물이 많아서 이름도 물 강(江), 물 정(汀)인 이 마을은 제주에선 흔치 않게 벼농사를 지었다.

 

자연생태계 우수마을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기지가 뿜어내는 오염수로 바다에 기댄 생업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군인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 마을 분위기가 험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해군기지를 반대하던 주민들이 있다. 또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마을 총회를 만들어낸 주민들도 있다. 반면, 강정 지킴이들은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해군기지 유치를 막기 위해 강정으로 온 이주민들이다.

 

지킴이들은 지금도 매일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 백배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인간 띠 잇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멈추면 이 싸움이 멈추므로,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 올해 7월, 군산 평화박물관이 개관했다. 개관을 함께 준비하는 ‘평화바람’ 활동가들의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강정 지킴이 딸기. (사진 : 평화바람 제공)

 

더불어, 지킴이 간의 관계나 지킴이 내부 운영에서도 반군사주의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답게, 평화적인 방식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강정 지킴이들은 특히, 위계적인 문화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활동 경험이 많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 남성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쏠리지 않도록 애썼다. 단어나 표현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강정은요. 지금 소성리와 유사한 충돌이 매일매일, 한 2~3년 장기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늘 급박한 대응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나와 함께하고 있는 이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 같아요. 어디서 뭘 하다가 여기에 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별다른 호칭이 없어요. 그냥 다 이름을 부르고, 이름도 다 별명으로 불렀으니까. 누가 연행됐을 때 면회를 못 간 적도 있어요. 이름을 몰라서. 게다가 안에서는 묵비권 행사하고 있고… 하여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오랫동안 같이 활동해오다 보니 지금은 서로 나이도 알고 법적인 이름도 알고 지낸다고 했다. 몇몇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서로 별명을 부르고 있다.

 

“반군사주의 운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각자 활동하는 그룹이나 집단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좀 더 평화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강정 지킴이들은 요즘에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너무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게 좋게 말하면 쿨한 거지만, 다르게 말하면 인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 냉정함일 수도 있잖아요. 어떤 게 더 좋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국가폭력에 맞서는 것도 ‘폭력’이라면

 

딸기는 최근 자주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구조적인 폭력에 동의하거나 동참하지 않겠다는 ‘저항 선언’으로 충분한 걸까.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데, 폭력과 비폭력을 어떻게 봐야 할지 논의하다 보면, 구조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까지 폭력이라고 매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왜 너희는 평화운동을 한다면서 경찰한테 소리를 질러? 왜 비폭력으로 한다면서 폭력적으로 경찰하고 싸워? 왜 연좌하면서 저 사람들 일하는 거 방해해? 왜 불법적으로 행동해? 그게 평화운동이야?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아요.”

 

모름지기 싸움이란 서로 힘의 균형이 맞아야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강정, 소성리 모두 국가-군대, 국방부, 청와대-와 싸운다. 말이 싸우는 거지, 사실 너무 압도적으로 힘의 차이가 나다 보니 집단 구타를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관여하는 삼성물산, 대림 같은 거대한 자본의 힘을, 저항하는 사람들의 힘과 같은 선상에서 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딸기는 고민스럽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게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새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저항하는 약자들의 의견 표시가 급진적으로 들릴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해왔던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걸 누군가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그런 표현방식이 불편하겠죠. 그렇다고 불편한 감정 때문에 그런 표현방식을 국가폭력과 같다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구조적인 문제를 이해한다는 게 진짜 어려운 거구나, 뼈아프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 해군기지 반대 입간판. 2014년 11월 25일 촬영.   © 림보

 

사회를 바꾸어 낼 좋은 공기가 될 것

 

사실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의 옆에서 함께한 활동가들도 내상을 입는다. 열심히 싸웠는데, 해군기지는 결국 지어졌고, 친구들은 감옥에 갔고, 우리는 계속 왜 조롱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화가 났던 때가 그에게도 있었다. 특히 그 화는 하루에도 열 번 넘게 강정 길바닥에서 공권력에 밀려 옴짝달싹 못 하던 때, ‘쉬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에게 향했다.

 

“쉬라니, 헛소리하고 있어. 그럼 당신이 와서 여기 있던지! 하면서 하나도 수용하지 못했어요. 여기서 나갈 수 없고, 나갈 생각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바쁘고 투쟁에 몰두한 것도 있지만, 일단은 너무 많은 사람이 그런 압박 속에 있으니까, 누구 하나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나 봐요. 네 옆에 있어 주는 나, 옆에 있어 주는 한 사람으로서의 나, 그런 역할을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뭔가 마음을 돌보려면 거리를 두거나 이곳을 떠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나가기는 싫었던 거죠.”

 

누군가가 빠지면 남겨진 누군가는 더 힘들어 질 게 뻔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동료를 두고 시간을 내어 자기 마음을 살필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계속 화가 쌓이고 지쳐가면 개인의 삶뿐 아니라 결국 ‘조직’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근데 미국에서 온 평화훈련 활동가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을 돌보는 건, 현실에 발 딛고 서 있기 위해서지 마음속 깊은 곳을 탐험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에 발을 잘 딛고 서기 위해서 잠시 마음을 돌보고 다시 돌아오는 게 목표’라고요. 그 말에 아주 마음이 놓였어요.”

 

2018년 초, 딸기는 강정 지킴이 중 한 명인 호수정주를 통해 ‘평화의 문화 만들기’라는 국제훈련을 만나게 된다. 인권, 정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겪는 괴로움, 고통 혹은 트라우마를 털어내고 현재에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마음을 돌보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떠나지 않아도, 지금 여기서 자기 마음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딸기의 마음에 들었다. 잠깐의 환기를 통해서도 마음을 돌볼 수 있다니! 하며 훈련을 확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그래 지금 잠깐 5분 정도 시간을 내는 것뿐이다. 잠깐 환기를 하고 다시 나는 돌아올 거니까. 잘 있으려면 환기를 해야지.”

 

‘평화의 문화 만들기’ 훈련을 받고, 또 다른 이들에게 열심히 전하는 활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딸기는 이곳에서 왜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았는지 다시 생각할 여유를 얻었던 모양이다. 강정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망과 분노가 같이 자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강정에 머물고 있는 건, 뭔가 얻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강정에서 평화운동 하면서 보람되고 행복했던 순간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도 자꾸 안 좋은 것만 계속 생각하는 거예요. 아쉬웠던 거, 어려웠던 거. 코로나 때문에 최근엔 못 했는데, 한여름 생명평화 대행진이 있어요. 더운 날 하루에 20km씩 3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맨날 끌고 다니는 데 당연히 너무 힘들죠. 저녁이면 물집 다 잡히고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은 그걸 어떻게 10년 가까이 했을까 싶어요. 힘도 들었지만 보람이나 행복, 그런 좋은 에너지가 훨씬 컸으니까 했을 거예요.”

 

딸기는 낙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자신의 활동이, 강정에서 지킴이들과 함께 하는 어떤 노력이, 강정뿐만 아니라 소성리나 여러 투쟁 현장에서 쌓고 있는 많은 사람의 경험이, 당장 우리의 삶이나 운동을 어쩌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분명히 사회를 바꾸어 낼 좋은 공기가 되어 곳곳에 흘러 다닐 거라고 확신한다.

 

그는 우리가 바뀐 미래가 아니라 문제투성이인 현재를 산다는 걸 인식한다. 미래가 낙관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장 티 나게 바뀌지 않더라도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이 싸움이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제, 딸기가 지키고 싶은 것은 바로 자신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이제야 찾았고, 그 방식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힘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가 강정에서 배운 삶의 방식과 태도를 잘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필자 소개] 림보. 아내다움이나 엄마다움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그 밖에 여러 가지로 늘 심기 불편한 채, 글을 쓴다. 함께 쓴 책으로 <십 대 밑바닥 노동>, <회사가 사라졌다> 가 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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