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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북송사업을 보는 재일조선인의 시각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06.17 10:55

테사 모리스 스즈키 "북한행 액서더스"

<북한행 액서더스>가 내게 던진 질문
 
50년 전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재일조선인 ‘귀국사업’(북송사업)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진실을 밝혀낸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 <북한행 액서더스>.

이 책은 세계정치의 ‘큰 이야기’와 함께 개인의 삶이라는 ‘작은 이야기’, 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포괄적이고 넓은 시야로 보여주면서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북한행 액서더스>는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깊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을 던진다.
 
내가 의문으로 여기는 것은 이 귀국사업과 관련이 있는 모든 행위자들, 특히 북조선과 총련의 역할과 책임이 일본적십자와 일본정부의 책임과 나란히 병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근원적으로 여전히 불평등한 두 나라가 똑같이 ‘국가주의’의 잘못을 범한 나라로 나란히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는 나뿐일까?
 
50년 전, 조선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기묘한 협력관계”로 묘사된 북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읽으며,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과거 이 두 나라가 구식민지와 구종주국이라는 불평등한 관계였고, 현재까지도 그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지 의문이다.
 
또한 <북한행 액서더스> 전반에 깔려있는 전제, 즉 북조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대해서도 안타깝다. 사실상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붕괴된 세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가치는 어떤 ‘세계표준의 가치’와는 날로 멀어지고 이반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귀국(북송)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 중

특히 핵 위기, 미사일 발사문제, 납치사건, 탈북자 문제 등은 북조선을 ‘평화를 위협하는 나라’, ‘가난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서운 나라’로 규정하고 이를 강화시켜나가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북조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처럼, 저자 역시 그러한 ‘북조선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역사학자인 저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겪었던 나라라는 것을. 또한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된 조선인들이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그 노력이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외세에 의해 어떻게 무참히 짓밟혀 가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행 액서더스>가 재구성 한 “책략과 기만과 배신”의 ‘귀국사업’에서 이런 조선 근현대사의 깊은 역사성은 안타깝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나라’라는 것이, ‘조국’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인 문맥을 충분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지배와 분단을 겪은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민족해방, 민족의 존엄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긴요하고 중요했는지, 나아가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라는 것이 어떤 존재와 의미를 가지는지, 그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재일조선인들의 관계에 대한 본질을 알기 어려울 것이며, 귀국사업의 본질 또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북한행 액서더스>는 기밀해제 된 귀중한 자료들 속에서 새롭고 중요한 사실들을 발굴하고 귀국사업의 다면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귀국사업’을 우리 근현대사의 문맥 속에 깊이 재구성하지는 못하고 사후적인 관점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는 유감스럽다.
 
“귀국사업의 비극” 그 시작은 일본제국주의 지배
 

1959년 12월 10일 밤. 북한으로 향하는 제1차 귀국자를 싣고 도쿄 시나가와를 출발하는 열차 ©아사히신문사

저자는 귀국사업의 ‘비극’과 희생자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비극의 근원은 귀국사업 자체에서 찾을 일이 아니라, 그 후에도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는 조-일 관계와 그 관계 개선을 억제하고 막고 온 일본정부의 대북 적대정책과 동아시아의 냉전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재일조선인으로 내가 주장하는 바이다.

(한가지만 강조다면 우리는 1965년에 맺어진 한일조약이 이후 조-일간의 국교정상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그 엄청난 책임에 대해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에 두 나라 사이 관계가 정상화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더라면, “꿈에 좌절한” 귀국자들이 일본으로 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할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저자가 중요히 여기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식민지 지배와 거기서부터의 해방, 냉전이라는 중대한 사건에 휩쓸린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큰 이야기”의 진실 또한 중요할 것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를 낳은 것도, 재일조선인 문제가 발생한 것도, 그리고 실로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사업’이 일어나게 된 것도, 그 기원은 일본제국주의 지배에 있다. 거기에 냉전과 분단 때문에, 역사의 청산이 바람직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그 모순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59년의 첫 귀국사업이 시작한지 딱 50년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재일조선인 문제에 있어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지배 청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지배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필로그: 제목에 있는 “액서더스”라는 말은 ‘출국’, ‘이주’, ‘퇴거’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탈출’이라고 읽어낸다. 그것은 나 자신이 일본으로부터의 탈출을 소망하고 있는 한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탈출하는 조선인”.
 
이런 말도 떠오른다. ‘친일’도 아닌 ‘반일’도 아닌 ‘항일’도 아닌 ‘탈일’ 조선인. 그런데 그것은 과연 어떤 조선인일까. 어떤 모습일까. 나 자신과 이미 밀접히, 깊숙이 얽혀진 일본으로부터 벗어날 날은 오는 것일까…)  [‘작은 섬’/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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