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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유난히 큰 앞니, 자그마한 체구에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괴력을 가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여자아이. 말괄량이 삐삐는 지금도 케이블TV 어린이채널이나 가족뮤지컬 등을 통해 종종 만날 수 있다.

‘말괄량이 삐삐’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 1907~2002)의 원작 <삐삐 롱스트럼프(Pippi langstrump): 긴 양말 삐삐>를 바탕으로 제작된 TV 시리즈다.

폐렴으로 누워 있는 딸 카린에게 침대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작가의 이야기가 모아져 출판된 이 동화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시켰다. TV 시리즈는 지난 196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제작됐으며, 우리 나라엔 1977년에 KBS에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아동문학 패턴과 너무 달라 “아이들의 바른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출판을 거절 당하기도 했다. 교육자와 부모들의 우려가 컸지만, 동심과 모험이 가득 찬 이 책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특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들에게 아직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전체 줄거리는 이렇다. 해적인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커다란 별장에서 혼자 사는 삐삐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금화가 가득 든 가방을 갖고 항상 신나는 일과 아슬아슬한 모험을 즐긴다. 여기에 같이 사는 원숭이 닐슨과 말 한스, 옆집 사는 토미와 아니카가 모험에 함께 한다. 각 회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말괄량이 삐삐>에서 삐삐와 친구들이 벌이는 사건들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고전적 ‘소녀’ 캐릭터 깬 삐삐

당근색 갈래머리, 어른보다 힘이 세고 항상 놀라운 모험을 하는 이 소녀가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당돌하게도 삐삐가 어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삐삐는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어른을 향해서도 지적하고, “예의 없다”는 어른들의 잔소리 따윈 개의치 않는다.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삐삐 동화의 주제가 ‘권위에의 도전’인 만큼, 삐삐는 조그만 체구의 나이 어린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관, 선생님, 서커스 단장 등 주위 어른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게다가 삐삐는 어른보다 힘이 세고, 돈도 많지 않은가. 아빠와 엄마와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산다. ‘아이는 어른(부모)의 통제에 있어야 한다’는 지배적인 통념이 깨지는 것이다.

또한 삐삐의 캐릭터는 일반 고전의 ‘소녀’ 캐릭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정형화된 ‘착하고 예쁜’ 여주인공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지저분한 얼굴에 옷차림도 단정하지 않다. 짝짝이 알록달록 긴 스타킹에 자기 발의 두 배나 되는 구두를 신고 다니며 항상 껑충껑충 뛴다. 하는 짓은 ‘선머슴’ 같다. ‘여자아이’인데도 팬티가 들여다보여도 괜찮다고 하고, 화가 나면 말을 번쩍 들어올리기도 한다.

늘 ‘조신하기’, ‘단정하기’ 등을 강요 받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삐삐는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자유를 알려주며 그네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전형적인 성별 이미지를 교란시키는 통쾌함과 자유, 이것이 삐삐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삐삐의 행동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이상하고 비정상적일지 모르지만, 아이의 눈에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다. 폐차된 차로 하늘을 날기도 하고, 콜드크림을 잔뜩 바르고 천장을 기어 다니기도 하는 삐삐.

어른들은 삐삐를 버르장머리 없는 고아로 보지만 삐삐가 보기엔 그런 어른들이 더 이상하다. 그들은 삐삐가 친구들과 피리를 불며 멋진 파티를 열면 시끄럽다고 경찰을 부르고, 늘 금화만을 탐낸다. 삐삐가 보기엔 그들은 호시탐탐 자기를 고아원에 가둬 재산을 훔칠 생각만 하는 욕심쟁이 바보일 뿐이다.

주위의 모든 존재, 사람뿐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동물까지도 다 친구일 수 있는 삐삐는 어른들처럼 어떠한 경계를 두지 않는다.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과자를 만들어 먹거나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니느라 정신 없다.

때로는 우울증 걸린 할머니에게 금새 활기를 찾게 만들 줄 아는 사랑스런 소녀이다. 말썽꾸러기에 개구쟁이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온 세상이 금방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 같다.

삐삐를 부르는 환한 목소리
삐삐를 부르는 상냥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들쑥날쑥 오르락 내리락 요리저리 팔닥팔닥
산장을 뒤흔드는 개구쟁이들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어제도 말썽 그제도 말썽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요?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삐삐

잊고 있었던 주제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가. <말괄량이 삐삐>의 이야기를 회상해보며 그 시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이젠 아이, 조카들과 함께 주제가를 부르면서. 
최이윤정 일다는 어떤 곳? [어린이문학] “뭔가 좀 다른 그림책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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