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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귀국’ 아닌 ‘북송’은 역사적 사실인가?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6. 8. 11:29
재일조선인 눈으로 본 <북한행 액서더스>
 
작년 12월 한국에 출간된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 <북한행 액서더스>(한철호 역, 책과함께)에는 일본어판에는 없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1959년 12월 10일 밤. 북한으로 향하는 제1차 귀국자를 실은 도쿄발 열차 © 촬영-아사히신문사

1959년 12월부터 시작되어 총 9만 3천 340 명에 달하는 재일조선인들이 북조선으로 ‘대량 이주’한 것을 두고, 일본에서는 ‘귀국사업’ 혹은 ‘귀환사업’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북송’이라고 한다. 한국어판에 달린 부제가 재일조선인인 나에게는 ‘그들은 왜 북으로 보내졌는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몇 년 전에 한국의 연구서적 번역작업 과정에서 ‘북송’이라는 말을 둘러싸고 고민했던 기억이 선히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귀국’사업 혹은 ‘귀환’사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송’이라는 말을 그대로 北送(북송)이라고 직역할지, 帰国事業(귀국사업)이라고 번역을 할지 고민했었다.
 
이 고민은 단순히 번역의 차원을 떠나서, 1959년부터 시작된 재일조선인들의 ‘대량이주’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재일조선인들의 자발적이고 뜨거운 염원의 실현으로서의 ‘귀국’이라는 측면만이 아닌 북송, 즉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정부에 의해 북한에 ‘보내진’ 측면이 있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싹트게 했기 때문이다.
 
50년 전, 재일조선인들의 북한행 대량이주 ‘과정’
 
‘북송’이란 말뜻을 사전으로 풀어보면 ‘인간이나 물건들이 북으로 보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렇게 불려진 것은 단순히 국어사전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에 있어서 북조선은 반국가단체이지 결코 ‘국가’가 아니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일본에 재류하는 모든 조선인들을 ‘자국공민’이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북한으로 이주하는 것은 결코 ‘귀국’이 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승만 정권이 당시 재일조선인들을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교섭재료로 이용하는 것에 열심이었다는 점들을 감안하면, 북으로의 대량이주를 한국정부가 왜 ‘북송’이라고 불렀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은 어떠하였는가? 한국정부 측에서 붙인 정치적 용어로서의 ‘북송’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서의 ‘북송’은 실제로 있었는가?
 
바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테사 모리스 스즈키씨가 선명하게 해냈다는 것이 <북한행 액서더스>를 읽고 난 첫 소감이다.
 
<북한행 액서더스>는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들의 귀국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과 사실에 대해 밝혀내고 있다. 특히 기밀해제 된 제네바적십자국제위원회의 문서자료를 통해, 일본적십자가 귀국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부터 재일조선인의 귀국을 입안하고, 적십자 국제위원회나 북조선 측에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냈다.
 
공식기록엔 없는 진실, 일본적십자와 정부의 개입

1959년 니가타 적십자센터. 원래 미국 병사였다.

 

일본적십자의 공식기록을 보면, 일본적십자가 이 문제에 관여하게 된 것은 일본내의 조선인사회에서 일어난 귀국요구에 대한 순수한 인도적 입장이라고 적혀있다.
 
“1956년 4월에 소수의 조선인들이 적십자사 앞에서 북한으로 귀국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는 행동을 오래 계속했으며, 한편 한국에로의 강제송환을 기다리고 오오무라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던 조선인들 속의 몇 명은 한국이 아니라 이북에로의 송환을 호소하였던 바, 북한 측은 일본적십자사에게 이들 오오무라에 억류된 사람들의 희망에 따라 원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요청이 있었다. 우연히 그 해봄, 적십자국제위워회에서 파견된 특사 두 명이 재일조선인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중대성을 인식하고 그 대처를 북조선, 한국, 일본 적십자에게 제안을 했다. 1958년 중엽에 돌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로의 귀국을 요구하는 대운동이 재일조선인사회에 발생했을 때 각국적십자와 국제적십자가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제네바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자료문서의 기록 내용은 이와 다르다. 재일조선인들이 귀국요구를 한 최초의 움직임은 1956년이었는데, 그보다 이전의 날짜가 적힌 서한들이 많았고, 그것은 다 일본에서 발신된 것이라고 한다.
 
그 서한에 따르면 1955년 9월에는 일본적십자 사절이 적십자국제위원회에게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1956년 봄에는 벌써 일본관료들이 6만 명의 ‘귀환’에 대해 거론하고 있고, 일본적십자가 극비리에 ‘귀국자’들을 북으로 운반하는 선박을 찾고 있었다는 것.
 
저자는 이 자료와의 만남을 출발로, 공식기록에서는 ‘삭제’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찾아내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본정부가 전후에 일관하게 취해온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재일조선인정책의 ‘비인도성’과 ‘비복지성’이 ‘귀국정책’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실상을 낱낱이 밝혀냈다.
 
또한 재일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요구를 인도주의적으로 지원했다고 선전하는 일본의 역할이, 실제로는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들을 배제하고 몰아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입증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여기에 있다.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은밀한 공작의 산물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 "북한행 액서더스"

 

테사 모리스 스즈키씨는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자신이 ‘북한행 액서더스’의 하나의 결론을 내리길 원했고, 이후 발생한 고통에 대해 책임져야 할 한 명의 범인을 찾으려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뿐 아니라 남북한을 비롯한 미국, 소련, 중국 그리고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이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을 둘러싸고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개입했는지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밝혀냈다.
 
각국에 흩어진 관련자료들을 찾아내어 귀국사업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저자는 이 사업이 단순히 일본에 거주한 조선인의 북조선 행이 아니라, 냉전체제 하 관련국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이해관계와 공작의 산물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일본과 북조선 정부, 양국의 적십자, 총련, 일본 야당과 미디어, 적십자국제위원회 그리고 소련과 미국정부, 이 모두가 “귀국의 비극”이라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작은 섬’님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입니다.]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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