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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시민불복종 기후운동 ‘엔더 겔랜더’(상)

 

새만금 간척지, 부안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밀양 송전탑, 제주 신공항, 설악산 케이블카, 강정마을 해군기지, 신고리 원전…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난 20년 간 정부와 시민사회가 크게 대립했던 ‘개발 대 환경보전’ 이슈들입니다. 주변 생태계와 지역사회를 해칠 만한 건설 사업에 지역 주민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반대했다는 점에서 시민불복종 사례들이기도 합니다.

 

‘시민불복종’의 정의를 찾아보면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존 롤스)를 말합니다. 정치학자 오현철(2001)은 시민불복종 행동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좀 더 넓게 정의했어요. 1)항의와 설득: 전단 돌리기, 피켓 시위, 철야 농성, 시국 토론, 가두 행진 2)비협조: 보이콧, 학생시위, 사회활동 중지, 파업, 납세거부, 불매운동, 투표거부, 징집거부 3)개입: 연좌 농성, 도로 점거나 차단, 기술 설비나 시설의 봉쇄, 포위, 도로나 시설물의 점거, 경제 사회적 대안기구 건설, 태업.

 

이렇게 구체적으로 열거하니, 앞서 든 사례들이 좀 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더 이상의 개발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정의로운 녹색전환'이 필요하다고 외쳤던 그 때 그 메시지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들어선 지금도 중요할 뿐 아니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습니다. 특히,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미래 세대'가 나서기 시작했죠. 대표적으로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가 청소년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피켓 시위, 결석 시위 등의 기후 직접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 3,500~4,000명의 시민들이 2016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독일 동쪽 국경지대에 있는 루사티아(Lusatia) 갈탄광에서 대규모 액션을 벌였다. 당시 탄광 및 석탄발전소 소유주인 스웨덴 국영기업(Vattenfall)이 철수하면서, 시민들은 시설을 폐쇄하라고 요구했지만 다른 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 탄광은 2038년까지 탈석탄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단계적으로 문을 닫게 된다. 현재 광산 4곳 중 1곳을 휴양림과 인공호수로 바꾸고 있다. 이미지 출처: ende-gelaende.org  

(동영상: 1분30초) https://youtu.be/xa0dTUQL-Eo

국경 없는 기후위기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민운동이 여느 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는 독일에는 ‘탈석탄’을 요구하는 시민불복종 행동이 많습니다. 독일 정부가 탈핵 플랜과 ‘2045년 탄소중립 선언’을 내놨지만, 석탄과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여전히 대량으로 생산/수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후편지에서는 탈석탄 시민 캠페인 중 가장 광범위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엔더 겔랜더’(Ende Gelände)에 대해 알아봅니다.

 

‘더러운 석탄’ 생산을 끝내라! 대규모 직접행동

 

‘엔데 겔랜더’(Ende Gelände; here no further)는 2015년에 결성된 기후정의 시민불복종 연합체입니다. 독일 중서부에 있는 라인란드(Rheinland) 갈탄광에서 시민들이 직접행동을 벌이면서 시작되었죠. 이곳 광산은 1890년대에 처음 개발되었는데,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이산화탄소 배출원으로 꼽힙니다. 2003년 이래 소유주는 독일 에너지회사(RWE Power)이며, 2033년까지 영구 철수가 가능할지 검토 중에 있습니다.

 

석탄의 일종인 갈탄(brown coal)은 화석연료 중 가장 저렴해서 산업화 시대 때부터 널리 쓰였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석탄’(dirty coal)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요,  ‘환경오염’이라는 부정적 외부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갈탄에는 탄소 함유량이 적어 같은 양의 석탄보다 효율이 낮아요. 반면 수분은 많이 머금고 있어서 공기 중 자연발화 위험이 높죠. 추가 비용을 들여 바짝 말려야 비로소 연료로 쓸 수 있습니다. 유황도 많이 들어있어서 갈탄광 인근 지하수는 지속적으로 산화됩니다. 이런 환경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계속해서 갈탄을 생산/사용했고, 오늘날에도 세계 최대 갈탄 생산국입니다. 독일 기후정의 활동가들의 주요 타겟이 될 수 밖에요.

 

2015년 엔데 겔랜더의 첫 ‘대규모 액션’(mass action) 참가자는 1,500명이었는데 2019년에는 6,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쯤 되자 이전에는 ‘일부 극좌파들의 단발성 시위’라고 보도하던 주류 언론들도 보다 진지하게 이들의 목소리를 담게 되었죠. 결국 엔데 겔랜더는 주요한 기후 캠페인으로 사회에 각인됐습니다.

 

단체는 탈석탄 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독일과 주변 국가들의 산업 자본주의 시스템, 그리고 남반구 국가들을 대상으로 계속되는 식민제국주의적 착취를 강하게 비판해왔습니다. 널리 알려진 구호로 “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기후 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가 있어요.

 

현재는 매년 여름에 열리는 대규모 액션을 준비하고, 화석연료 관련 이슈에 상시 대응하기 위해서 100여명의 활동가가 열댓 개의 워킹 그룹에서 상시 활동합니다. 독일과 인근 유럽 국가에 수십 개의 지역 모임도 생겼어요. 세계적인 기후 시위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을 비롯한 여러 기후정의운동 그룹들과 긴밀히 협력합니다.

 

각 액션은 직접행동으로써 목표하는 바가 있는데요, 활동가들은 갈탄광 입구를 몸으로 막아서거나 채굴장 안에 진입해서 생산 시설을 중단시켰습니다. 석탄발전소로 가는 도로 또는 채굴된 석탄이 운반되는 철도를 점거하기도 했고요. 액션은 몇 시간에서 며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데, 사전에 정한 시한이 끝나거나, 기업 또는 정부 당국에 요구한 사항이 관철될 경우 공식 종료합니다.

 

▲ 2020년 기준, 독일 각 주의 발전소 생산량 및 연료별 비중을 보여주는 지도. 짙은 갈색이 갈탄, 회색이 석탄이다. 서부 노드라인베스트팔렌주, 동부에 브란덴부르크와 작센 주에 갈탄 발전 비중이 여전히 높다. 독일은 세계 최대 갈탄 생산국이다. (출처: 독일 연방 환경청)


위법행위로 고발될 경우,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가

 

앞서 시민불복종 운동은 ‘위법 행위’일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실제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엔더 겔랜더는 직접행동 참여자들에게 국가나 기업으로부터 법적, 행정적 고발을 당하거나 처벌이 가해질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경찰 등 당국의 신분증 열람 요구를 거부할 것, 외국인 시위자의 경우 농성이나 점거 현장 전면에 나서지 말 것, 소송을 당했을 경우 법률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 주된 가이드라인 입니다.

 

직접행동 참가자들은 형사재판을 받을 수 있고, 징역형 또는 벌금 선고를 받을 수 있어요. 가령, 첫번째 범칙금은 월 순이익의 30분의 1 정도, 혹은 6시간 사회봉사나 하루 수감형이 일반적입니다. 공무원의 경우 해고를 당할 수 있죠.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의 경우, 체류권 심사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합니다.

 

또, 회사는 주요 시위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요. 보통은 사전에 합의를 통해 해결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최대 25만유로(한화 약 3억4천만원)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엔더 겔랜더의 행동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없고요, 관련 기업들이 3명의 시위자에게 각각 750유로(약 100만원)를 손해배상 청구하고 합의한 사례는 있습니다.

 

기후운동을 ‘국가의 적’으로 봐선 안돼…원내 정당도 지지

 

이같은 시민운동이 기후정치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할 겁니다. 직접행동이 제도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죠. 우선, 독일에서는 녹색당(Bundnis 90/Die Grünen), 좌파당(Die Linke)과 같은 원내 정당들도 엔데 겔랜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합니다. 녹색당은 청년녹색당을 중심으로 원정단을 꾸려 매년 액션에 나가고 있죠. 좌파당도 옵저버 역할로 참여합니다. 원내 기성 정당의 공식적인 지지는 큰 힘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9년 11월, 작센주 쉴린하임 갈탄광에서 석탄회사 미브라그(Mibrag)가 액션 참가자들을 무단침입으로 형사 고발했을 때, 작센주 좌파당은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시위는 기후재앙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당한 수단”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2020년 5월에는 독일 연방헌법수호청(VS)이 연례 보고서(2019)에서 엔데 겔렌더를 “헌법의 가치를 위협하는 극좌주의 활동”에 포함시켰죠. 그 때도 녹색당과 좌파당이 합동으로 “기후운동을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타게스슈피겔 2020)

 

독일 정치권이 ‘탈석탄’으로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시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시민사회의 기후 캠페인이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메르켈 정부(기민당과 사민당 연정)는 갈탄 발전소를 운영하는 3개 에너지회사(RWE, Vattenfall, Mibrag)와 2.7GW 규모의 갈탄발전소 1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합의했죠. 2038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한다는 계획은 2019년에 나왔어요. 기후운동 단체들이 2038년은 너무 늦다며 2030년을 주장했고, 연방 환경부 슐체 장관은 “EU 기후목표 및 탄소 배출권 거래제 도입 등으로 독일의 석탄화력발전 중단이 8년 빠른 2030년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습니다.(2021년 4월)

 

▲ 엔더 겔랜더 활동가들은 갈탄광 입구를 몸으로 막아서거나 채굴장 안에 진입해서 생산 시설을 중단시키고, 석탄발전소로 가는 도로 또는 채굴된 석탄이 운반되는 철도를 점거하기도 한다. 현재 유럽의 천연가스 확대 정책을 ‘기후사기’라고 비판하며, 화석연료 자본주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을 벌이고 있다. (Ende Gelände 페이스북 페이지)


석탄 대신 천연가스? ‘기후사기’ 반대하는 대규모 액션 준비 중

 

올해 대규모 액션은 오는 7월 29일에서 8월 2일에 독일 브룬스뷔텔(Brunsbüttel) 수입 기지 건설 현장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유럽 정부들이 재생에너지 체제로 완전 전환하기까지 천연가스 수입량을 대폭 늘려 석탄을 대체하는, 이른바 ‘브릿지 연료’(bridge fuel)로 쓰려는 움직임에 반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스도 추출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파괴나 탄소 발자국은 다른 화석연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스가 더 깨끗하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거죠.

 

게다가 가스를 땅에서 추출해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유통시키는 업계 방식은 ‘식민주의의 연장선’이라고 비판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수압파쇄법(fracking)은 지하수를 오염시켜서 많은 유럽 국가들에선 금지됐는데, 외국에서 생산된 가스는 적극 사들이고 되팔아서 수익까지 내려고 하니까요. 네덜란드, 영국,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페인, 이탈리아 다국적 기업들이 북미 토착 원주민 영토나 남반구 국가들에서 이런 방식의 가스 생산을 확대하면서, 현지에는 인권 문제와 환경오염, 지역공동체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이런 논리에서 유럽의 천연가스 확대 정책을 ‘기후사기’라고 부릅니다. ‘No fracking! No fossil gas boom! Shut down colonialism and fossil fuel capitalism!’(수압파쇄 반대! 천연가스 반대! 식민주의와 화석연료 자본주의를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집니다.

 

기후위기도, 부유한 유럽 국가들 간의 공모도 국경을 넘는 만큼 엔더 겔랜더도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2018년 시작한 ‘Ende Gelände Goes Europe’(egge, 엔더 갤렌더가 유럽으로 간다) 캠페인은 네덜란드, 체코,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등의 기후정의 단체들의 시민불복종 운동을 지원합니다.

 

기후위기 대응 느린 한국, 어떤 직접행동이 필요할까

 

세계자원연구원 자료(2020년)로 추산했을 때, 2019년 기준 한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세계 4위이고, 이대로라면 10년 뒤에는 1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체 배출량으로는 작년에 9위를 기록했죠.

 

1980년, 세계에서 5번째로 헌법에(제35조) 명시된 ‘환경권’. 그 내용이 명료한 만큼 현실과의 괴리도 커 보입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국 시민들의 위기 의식이 높다는 점이겠죠. 그린피스가 국내 유권자 1,0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응답자 85%가 기후위기를 주요 정치 의제로 인식하고 86.5% 이상이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자료가 있습니다.(2020년 2월) 그 해 6월 ‘환경의 날’을 맞아 전국 226개 지자체가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언했죠.

 

그러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변화는 더디게 느껴집니다. 특히나 국가가 성장중심의 담론에서 갇혀서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사회 정의를 제때 실현하지 못해왔기 때문이죠. 이러한 위기감이 무기력한 감정으로 우리를 잠식하지 않게, 앞으로 얼마큼 어떻게 어떤 행동에 직접 나서야 할 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 분석 일을 하고 있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으며, 베를린의 녹색정치,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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