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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기후편지] 무한정 찍어내면 탄소중립 가능할까?
한국에서 오랫동안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는 한 친구가 자신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최근 테슬라 자동차를 몰기 시작했답니다. 도시간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자가용을 사용해왔지만, 이용하던 디젤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전기자동차로 바꾼 것이지요. 개인 소비자로서 탄소 배출량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아마 많은 전기차 이용자들이 이러한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친구는 직장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입니다. 전기차 인프라가 높아지면 자신의 편의성뿐 아니라, 전기차의 보급률도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요. 실제로 정부는 2023년부터 기존 아파트나 대형마트, 공공시설에 전체 주차대수 중 2%에 해당하는 만큼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고, 신축 건물에는 내년부터 전체 주차대수의 5% 이상 규모로 충전기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는 풍경, 연상이 되나요? 그렇게 되면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문제가 한결 완화될까요?
▲ 국내 대형유통체인 이마트가 자사 전기차 충전소 브랜드인 ‘일렉트로 하이퍼 차져 스테이션’을 유튜브로 소개했다. (출처: 이마트LIVE 유튜브) |
전기차, 수소차 확대 보급 내세우는 각국 정부들
한국 정부가 전기차와 수소차 등 이른바 ‘저공해차'를 수송 부문의 대안으로 낙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책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올해 저공해차 13만6천 대를 보급하기 위해 신차 구입시 전기 승용차는 최대 1,900만원, 수소 승용차는 최대 3,75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지요. 기존 석유(가솔린, 디젤) 차량 운전자들이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할 시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업이 보유하고 있거나 임차하고 있는 차량도 전기차나 수소차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며, 대기환경 개선 효과가 특히 높은 상용차(전기버스, 수소버스, 전기화물)에 대한 전환 지원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저공해차를 확대 보급하는 것을 기후위기 타계책으로 삼는 것은 유럽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 그린딜’(2019년 12월 발표)에서 2050년까지 교통분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1990년 대비 90%나 됩니다. 세부 내용에는 운송수단의 다변화, 스마트 교통관리 시스템, 교통요금과 연료가격 조정뿐만 아니라 ‘대체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장려하는 계획’이 있는데요, 2025년까지 유럽에 1,300만 대 제로배출 및 저배출 차량(zero- and low emission vehicles)을 보급하고, 약 100만 개의 공공 충전소(전기차 충전소와 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하도록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독일의 경우, 운송·수송 분야에서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0.6퍼센트밖에 감축하지 못했기 때문에(2019년 기준) 2030년까지 약 42%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2030년까지 전기차를 700만~1,000만대까지 보급하고, 모든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전기차 충전소 100만개 확보,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PHEV) 구매 및 생산시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죠.
[*기존 내연기관 차에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한 차가 하이브리드 차(HEV)라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모드에서 하이브리드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차입니다.]
독일 정부는 신규 등록된 4만 유로 이하의 전기차(Batteiefahrzug)에 대해 최대 9,000유로(기존 정부부담금 3,000유로를 6,000유로까지 인상+완성차 기업부담금 3,000유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PlugIn-Hybrid)에 대해 최대 6,750유로(기존 정부 부담금 2,250유로에서 4,500유로로 인상+완성차 기업부담금 2,250유로)까지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4만 유로 이상 전기차에 대해서는 총 7,500유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는 총 5,625유로까지 지원할 예정입니다.
▲ 2021년 말까지 계획된 독일 정부의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지원금 (출처: 독일연방관리수출청) |
독일에서 현재 저공해차 이용자는 3% 가량밖에 되지 않는데요. 독일에 등록된 승용차 4,824만8천584대 중 전기차는 30만9천83대, 하이브리드차는 100만4찬89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는 27만9,861대이고, 수소차는 507대에 불과합니다.(2021년 3월 독일연방 자동차청 통계) 내연기관 자동차산업 강국이라 기존 구조를 쉽게 바꾸지 못했고, 친환경 자동차 분야에 뒤늦게 합류했죠. 또한 친환경 자동차 필수 부품(리튬-이온 배터리 등)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발 늦게라도 이 경쟁에 뛰어들기로 선언했고, 국가수소전략(Nationale Wasserstoffstrategie) 등의 정책(2020년 6월)을 통해 수소차 개발에 막대한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의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종류로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태양광 자동차, 천연가스자동차 또는 클린 디젤 자동차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12만 8,258대, 수소차는 1만 41대로 집계됐습니다.(국토교통부 2020년 10월) 하이브리드 차(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 장착)는 62만 8,164대입니다.]
‘저공해차'가 최선일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최소 25%에서 최대 80%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고 합니다. 전과정 분석(LCA, Life Cycle Assessment)에 따라 자동차의 동력원료, 배터리 및 차체 제조 및 가공 공정, 수송 및 유통, 사용, 재활용, 최종 폐기 등 모든 과정을 따져보아도, 전기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내연기관보다 약 3배 정도 적게 발생한다는 것이죠.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로 충전되더라도 전기차는 6만km 이상부터는 가솔린 엔진보다 기후친화적이고, 8만km 이상부터는 디젤 엔진보다 기후친화적이라고 합니다.(독일환경기술 연구소 2019년 4월)
이런 연구 결과들이, 전세계 많은 정부가 전기차, 수소차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안으로 삼는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무공해차,’ ‘친환경차’, ‘제로배출차’ 라는 그린 브랜딩과 함께요.
▲ 독일 폭스바겐은 직접 자사 차량의 생산, 사용, 재활용 3단계 전과정 분석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동일한 차량 모델의 경우 내연기관 보다 전기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탄소발자국이 적다고 발표했다. 제품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출처: 폭스바겐) |
전기차나 수소차가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기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한계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자원과 에너지, 노동력을 들여 자동차라는 복잡한 물건을 대량으로 새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물이 ‘탄소배출 제로’일 순 없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생산 과정은 우선 차지하더라도, 전기차나 하이드리드 차를 운행하는 데는 전기가 필요합니다. 전기 생산은 여전히 많은 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고요. 이 부분에서 온실가스가 지속적으로 배출됩니다. 또한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을 생산하는데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죠. 특히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은데요. 리튬, 코발트 등 희토류 소재로 만들고, 광물 채굴 및 제련 과정에서 오염 물질이 나오며,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필요로 합니다. 쓰고 나서 폐기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에선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문제점도 있죠.
수소차는 어떨까요? 전기 배터리 없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친환경차로 각광받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보입니다. 수소차 운행에 필요한 수소 원료는 현재로선 천연가스와 석탄을 분리해서 만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수소 연료의 녹는점(영하 259.2도)이 천연가스, 석유가스보다 훨씬 낮아 액화하지 못한 채 부피가 큰 기체 상태로 파이프 속에서 운반됩니다. 그리고 수소차에 달린 연료 전지가 뜨거워져서 냉각수로 계속 식혀줘야 하기 때문에, 이 때 에너지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 영국의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수소전지차, 전기차, 내연기관차의 가격과 주행거리, 온실가스 배출여부, 연료 충전 시 소요시간 및 가격을 비교해놓았다. (출처: 하우덴 Howden) |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환경차’들의 이런 문제점과 한계는 앞으로 기술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내연기관차보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다는 점에 만족하며, 무한대로 새로 생산해서 타고 다녀도 되는 걸까? 그렇게 해도 탄소중립사회가 가능한가?
전기와 연료는 어떻게 얻을 것인가?
친환경차의 몇몇 문제점들은 기술과 인프라 발전을 통해서 보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터리를 비롯한 차량 생산 시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높이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겠죠. 또, 배터리 같은 주요 부품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기술이 나오면 제품생애주기가 길어집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률은 최대 83.4%정도입니다. 전기차에 충전하는 전기도 탈탄소와 탈핵, 즉 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바이오 연료 연구가 계속 진척되고 있는 것도 향후 친환경 수송과 교통 분야에서 희소식이죠. 바이오 에탄올은 옥수수와 사탕수수에서 만들어 낼 수 있고, 바이오 디젤은 식물성 기름과 동물성 지방에서 나오는데, 둘 다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인 석유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에너지나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것 역시 무조건 환영할 일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양광 난개발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그린뉴딜’을 발표하며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금융지원 및 설비지원 등 집중 지원을 하자, 수익성을 좇아 너도나도 태양광발전 사업에 투자하면서 무분별한 산림 벌목과 농지 훼손으로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숲을 파괴하고 농지가 사라지며 시골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얻는 재생에너지가 ‘친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이오 연료도 마찬가지지요. 바이오 연료 개발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팜플렌테이션을 통해 진행됨으로써, 원시림이 사라지며 지역민들이 고통 받고 화전(火田) 등으로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한다는 지적이 십 수년 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땅 잃고 건강까지… 팜 농장 여성들 https://ildaro.com/4532) 또한 그로 인해 식량작물의 재배면적이 축소되고, 결국 국제 곡가가 상승해 최빈국들의 식량위기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데요. 때문에 재생에너지 사용에서 중요한 것은 ‘원료가 무엇이냐’만이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개발한 것인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관련 기사: 착한 바이오 연료를 확대하려면 https://ildaro.com/4553)
지역순환을 중심으로 한 설계, 생태다양성을 해치지 않고 식량 재배와 경쟁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생산 매커니즘이 개발되면, 바이오 연료는 중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연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바이오에탄올 생산 및 소비, 분해 과정을 보여주는 도표.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바이오에탄올을 태울 때 나는 에너지로 발전을 하고 연소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옥수수의 광합성에 이용된다는 순환사이클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Lilli Ambort,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환경연구소) |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자동차는 앞으로도 이동과 수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특히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지 않은 지역 거주민들의 이동권과 물류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서 자동차가 필요하죠. ‘녹색 전기’로 충전되는 전기차, 물 만으로 연료를 만드는 수소차는 그래서 지금 여기 현실의 대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사회가 언제까지 얼마나 더 많은 차를 생산할 수 있을까요? 전기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채굴하는 원재료는 언제까지나 고갈되지 않을까요?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 시스템은 생태계 파괴, 지역공동체 붕괴, 기후 불평등 문제의 근본 원인입니다. 때문에 기후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친환경적인 차를 많이 만들어서 수익을 거두고 소비를 촉진해 경제도 성장시킨다는 담론(성장 담론)에서 벗어나, ‘탈성장 녹색전환’을 꾀하는 것입니다.
올해 9월 연방선거를 앞두고, 독일 녹색당은 국책기관인 프라운호퍼 건축물리학연구소(IBP)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는데요. “전기자동차 생산은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보다 60%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것이었죠. 전기자동차가 풍력이나 태양 에너지 등 녹색 전기로 충전해도 약 3만 킬로미터를 운행한 뒤에야 비로소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친환경적이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전기차 생산보다는 공유자동차(car sharing) 이용을 늘리고, 자가용 여행도 자전거나 기차여행으로 대체하라고 강조합니다.
한국도 지금까지처럼 끊임없이 도로를 건설하여 자동차 중심의 물류체계를 공고히 할 것이 아니라, 철도와 대중교통을 통해 차량 운행량을 감축하고 사회적 인식도 그쪽으로 개선하는 방향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전기차 구입을 고려 중인 당신, 마음 속을 잘 들여다보세요. 혹시라도 ‘새 물건’를 가진다는 욕망, ‘새 차를 뽑는다’는 설렘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닌지 말이죠. 이번 기회에 자가용을 없애고 일상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는 없을지 한번쯤 고민해봐요. ‘불편함이 주는 부지런함’과 ‘무소유가 주는 홀가분함’을 누리는, 의외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채식.비건 식단을 어떻게 하면 보다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꾸릴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 분석 일을 하고 있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으며, 베를린의 녹색정치,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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