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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폐기물 줄이기…정치적 결단해야 할 때

[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신포장재법으로 기업에 책임 강화한 독일



분리수거, 다들 열심히 하시죠? 여러가지 생활 쓰레기 중, 가장 빨리 쌓이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마 플라스틱 포장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라면부터 채소, 화장지까지 마트에서 산 각종 생필품과 식재료를 감싸고 있는 포장재는 대부분 플라스틱 비닐이나 트레이입니다. 택배를 받아 안에서 구매한 상품을 꺼내고 나면 배보다 큰 배꼽, 상자를 제외하고도 포장 비닐이나 스티로폼 충전재가 가득 생깁니다. 이런 포장재를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한번이라도 재사용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모으기 시작하면 수납공간이 금세 부족해질 정도로 포장재의 양은 압도적입니다.


에코 소비자로 살고픈 우리를 좌절시키는 플라스틱


우리는 가히 ‘플라스틱 시대’(Plastic Age)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각국이 엄청나게 불어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죠.


장 보러 갈 때 에코백을 챙기시나요? 아, 그 정도는 기본이죠.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리필해가는 망원동 ‘알맹상점’의 단골이 되었다고요? 저녁식사를 배달시키는 대신, 밀폐용기를 들고 가서 테이크아웃 한다고요? 모두 훌륭한 실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피하긴 어려워서 ‘우리집 쓰레기통’을 채우며 에코 소비자로 살고픈 우리를 좌절시키는 플라스틱 포장재, 이번 편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베를린 제로웨이스트 마켓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에서 장보기. 곡물류, 견과류, 각종 기름, 심지어 세제도 원하는 만큼 용기에 담아서 구입할 수 있다. 유기농 및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비건 제품도 많이 팔고 있다. ©정지은


무심코 살다 보면 며칠 새 수북이 쌓이는 플라스틱 포장재는 독일에 사는 저희에게도 고민거리입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보려고 슈퍼에 가면 개별 포장된 채소는 외면하죠. 플라스틱과 종이박스로 이중 포장된 비건 돈가스는 세 번 걸러 한번만 삽니다. 토요일 오후엔 깨끗이 씻어놓은 잼병을 챙겨 들고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상점인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에 갑니다. 좀 번거로워도 마음은 편합니다.


유기농 제품 위주의 비오 컴퍼니(BIO COMPANY)나 비건 마켓 베간즈(Veganz), 엘페게(LPG)에서는 생분해성 비닐봉투만을 쓴다고 해서 찾아가 보기도 했어요. 가격이 더 비싸지만요. 플라스틱 봉투는 최근 몇 년 새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을 중심으로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 남아있는데요, 2022년 1월부터 판매가 전면 금지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실천하면서도 한계를 종종 느낍니다. 플라스틱 포장재에 관해 소비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기 때문이죠. 과감히 불매운동을 하거나, 착실하게 분리수거를 하거나, 사실상 그 정도입니다. 개개인의 실천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정부와 산업계가 작정하고 움직여줄 때 거대한 전환의 톱니바퀴가 삐그덕 굴러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움직임은 과연, 시작되었을까요?


막대한 플라스틱 포장재 방출하는 독일, 반전을 꾀하다


사실 독일은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현재 가장 많은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을 방출하는 국가입니다. 연간 약 320만 톤(1인당 약 38kg)을 발생시키고 있죠. 지난 30년간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어요.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10배 이상 증가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국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한국 그린피스의 2019년 “플라스틱 대한민국-플라스틱의 유혹”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 페트병, 컵, 비닐봉투 쓰레기는 연간 약 58만 톤, 1인당 약 11.5kg입니다. 페트병 49억 개(71,400톤), 플라스틱 컵 33억 개(45,900톤), 비닐봉투 235억개(469,200톤 종량제 봉투 20L로 한반도의 70%를 덮는 면적)인데요, 다시 말해 국민 1인 당 1년에 페트병 65개, 플라스틱 컵 65개, 비닐봉투 460개를 버리는 셈입니다.


오이는 토마토, 감자 다음으로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야채다. 수분이 많아 무르기 쉽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비닐 껍질을 씌워 판다. 그동안 많은 환경단체들이 비닐 포장을 폐기하라는 캠페인을 해왔고, 몇몇 대형 슈퍼마켓 체인을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Charles/Unsplash


이와 관련해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움직인 사례가 있습니다. 독일의 프랜차이즈 할인 마트인 알디(ALDI)가 2019년 4월부터 유럽 전역의 매장에서 오이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팔기 시작했는데요, 당시엔 이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어요. 비닐 포장된 오이가 더 오래가고, 손상이 잘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죠. 그래도 결국 포장 공정은 없어졌고, 그것만으로도 연간 120톤의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 절감 효과가 납니다.


또다른 슈퍼마켓 체인점인 레베(REWE)도 유기농 오이 제품에 비닐 포장을 중단했지만, 플라스틱 소재의 접착 라벨은 여전히 붙인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재활용률은 높이고 폐기물은 줄여라


이미 발생한 포장재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도 주요 쟁점입니다. 독일 자연보호연맹(NABU)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 중 55.2%가 재활용되고, 44.4%가 소각, 0.4%가 땅에 매립된다고 합니다. (한국은 재활용 22.7%, 소각과정에서 에너지 발전 39.33%, 단순소각 33.4%, 매립 4.6%임. 한국 그린피스, 2019)


재활용률은 2019년 전까지만 해도 50% 미만으로 유럽국가들 중에서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이후로 많이 개선됐습니다. 소각할 때는 그 과정에서 바이오 가스 등 재생 에너지를 만들어 씁니다. 대기, 해양 및 토양 오염을 일으키는 단순 소각이나 매립은 지양해야 할 폐기물 처리 방식이죠.


2019년 독일 플라스틱 폐기물은 전체 630만 톤에 달하고, 그 중 플라스틱 포장재가 차지하는 양은 320만 톤이다. 독일인 1인당 연간 76kg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으며, 그 중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은 38kg에 달한다. 이 중 55.2%는 재활용되며, 44.4%는 소각, 0.4%는 매립된다. (출처: NABU)


플라스틱을 포함한 포장재 폐기물과 관련해 주요 쟁점으로는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 외에도 폐기물의 양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도 있어요. 국내에서 최근 환경부가 새로 도입한 택배 상자 수거 및 재사용 제도나, 하나 둘 늘고있는 포장 없는 가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폐기물 재활용에 드는 비용을 어떤 주체가 얼만큼 어떻게 분담해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지도 중요한 논점입니다. 제조사나 유통사가 재활용부담금을 내고 공병을 수거하는 한편, 시민(개별 가구)들은 종량제 봉투를 구입하거나 아파트 분리수거 관리비의 형태로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요. 소매자구매가에 포장재 가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로서 분담하고 있는 비용도 있는 셈이죠.


제조사와 유통업체에 더 큰 재활용 책임 묻는 ‘신포장재법’


독일은 2019년 1월 1일자로, 기존 포장재법과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를 강화한 신포장재법(VerpackG, Verpackungsgesetz/German Packaging Act 2019)을 실시하고 있는데요, 쉽게 말해 포장재를 제조 및 유통하는 주체들이 폐기처분과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겁니다. 이른바 ‘완전성 선언’을 의무화했습니다. 


어떻게 책임을 지냐고요? 각 유통업체와 제조사는 이 법에 따라 먼저 자사에서 쓰는 모든 포장재 관련 정보를 데이터 뱅크인 LUCID에 등록해야 합니다. 포장재 재질부터 수량, 생산 및 폐기 장소 등이 필수로 등록해야 할 데이터입니다. 다음으로 듀얼 시스템(Dual System)에 속한 민간 재활용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자사의 포장재 폐기 및 재활용을 관리하게 됩니다. 새로 설치한 연방 중앙기관(Zentrale Stelle Verpackungsregister)에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완전성 선언을 합니다. 플라스틱 포장재의 경우, 폐기량이 기준치인 3만 킬로그램을 넘으면 별도로 신고도 해야합니다.


이렇게 데이터 뱅크에 등록된 자료 및 보고서는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전에도 지역 상공회의소에 폐기물 완전성 선언을 해야 했지만, 중앙기관이 생기면서 보다 투명하고 일관된 관리가 가능해진 겁니다.


독일의 신포장재법은 1991년 처음 시행됐던 포장재법(VerpackV; Verpackungsverordnung)을 2019년부터 대체한 것인데, 기존 법은 제조사 및 유통사에게 폐기물 처리 의무를 지운 첫 번째 법이었어요. 이에 따라 프랜차이즈 슈퍼마켓에 공병회수기계가 들어서고, 제조업체들이 공동으로 투자해 민간 재활용 업체들과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듀얼 시스템 말입니다.


포장재 폐기물을 관리 감독하는 신설 기관(ZSVR)에서 유튜브에 발행한 인포그래픽 동영상의 한 장면. 신포장재법과 관련된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Zentrale Stelle Verpackungsregister 유튜브 채널)


포장재 폐기물 억제, 재사용 재활용 촉진…환경단체들 지지


신포장재법은 이 등록 시스템을 따라야 하는 주체를 총 4가지로 분류하는데요, 제조사, 유통사 외에도 수입사, 온라인 유통사입니다. 온라인 유통사가 명시된 것이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상품을 독일로 처음 인도했느냐에 따라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다국적 온라인 기업에도 일부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거든요. 또, 독일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경우라면 수입회사로 분류되어 독일 현지에 재활용 업체와 직접 계약을 해야만 통관 후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포장재는 상품을 파는 과정에 필요한 부수적인 도구에 불과하지만, 신포장재법이 시행됨에 따라 훨씬 까다로운 부분이 됐겠지요. 미등록 포장재를 쓴 상품은 아예 판매할 수 없고, 위법 시 최대 20만 유로(한화 약 2억7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이 법안은 환경단체들도 널리 지지했습니다. 포장재 폐기물 관련 전 과정을 관리 감독하는 포괄적인 정책으로써, ‘포장재 폐기물 생성을 억제하고 재사용, 재활용, 회수를 촉진한다’는 목표에 부합하는 법으로 평가한 것이죠. 1996년 처음 시범 시행된 순환경제법(Kreislaufwirtschaftsgesetz) 23조에 나온 ‘폐기물 제품 책임주의’를 반영해, 포장재 폐기물 시장의 투명성 및 비용 분담의 공정성을 높이고자 의도한 점도 있습니다.


유럽연합 ‘포장재 폐기물’ 지침에 따른 각국의 다양한 행보


독일의 신포장재법은 2018년 7월 유럽연합이 개정해 발표한 <EU 포장재 및 포장 폐기물에 관한 지침>을 개별 회원국에서 법제화한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법제화 과정에서 흔히 채택된 정책으로는 보증금 환불제도, 포장재 생산자 책임제도, 재사용 포장재 수거 제도 등이 있어요. 유럽연합은 플라스틱 포장재 폐기물의 재활용률을 2025년에 50%, 2030년에는 55%까지 높이고자 합니다.


전면 금지나 규제가 아닌,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독일 법에 비해 급진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카판노리(Capannori)시는 유럽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도시로, 2007년부터 일부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 중이에요.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을 보이는 국가인데, 류블랴나(Ljubljana)시는 2014년 이래 대대적인 폐기물 감축 및 재활용 캠페인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 도시’라고 불리게 됐어요.


자연 브랜딩으로 찍은 인증마크를 달고 판매되는 채소와 과일들 (출처: Nature & More)


이 편지를 쓰면서 또 하나의 뉴스를 접했네요. 채소와 과일에 붙은 플라스틱 스티커의 대안으로 ‘자연 브랜딩’(natural branding)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에요. 레이저를 사용해 표면에 인증 마크를 찍는 방식입니다. 아보카도와 고구마에 맨 처음 적용했고, 이제는 비닐옷을 벗는 오이에도 찍힌다고 하네요. 이는 일부 기업들이 주도한 자발적인 혁신안입니다.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지뢰를 피해 다니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드는 정부와, 연구개발과 혁신 경영을 통해 이에 발맞춰보려는 산업계. 이들의 행보를 매의 눈으로 지켜봅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 분석 일을 하고 있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으며, 베를린의 녹색정치,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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