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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피폭 위험지대에 들어오셨습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2년간의 농성
핵발전소 가동 중에도 주변지역 주민들이 이주할 수 있게 하고, 그 비용을 원전 사업자가 지원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습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에서 이주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여온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노동자 희정 님이 전달합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식당건물 옆 ‘원전지대 제한구역’ 펜스
“너무 가깝다.”
이 말이 나왔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은 게였다. ‘원전이 인접해 있으니 불안이 크다’고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말부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경주시 영남면 나아리, 논밭보다 식당이 더 많은 마을이었다. 원전 직원이나 공사를 하러 잠시 머무는 이들을 보고 하는 장사일 테다. 음식점과 원룸 건물이 즐비한 2차선 도로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마을이 끝났다. 끝나는 지점에 원전부지가 있었다.
널따란 길을 두고 원자력 홍보관이, 그 뒤편에 월성원전 부지가 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마을은 당연히도 그 자리에 있었다. 너무 가까운데. 핵의 위험성을 말하면서도, 원전이라는 것은 마을과 꽤 떨어져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외딴 바닷가에나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무지한 것인지, 원전부지가 상식을 배반한 것인지 문득 헷갈렸다.
▶ 이 연두색 펜스가 원전지대 제한구역(원전 반경 914m)을 가르는 표시다. ⓒ희정
멈춰선 내게 동행한 환경운동단체 간사가 연두색 펜스를 가리켰다. 식당건물 옆으로 붙은 펜스. 흔하디 흔한 것이라 처음에는 무얼 가리키는지조차 몰랐다. 이 연두색 펜스가 원전지대 제한구역(원전 반경 914m)을 가르는 표시라고 했다.
제한구역이라고? 펜스 바로 앞에 주차된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무엇보다, 제한구역 안에는 초등학생들도 견학을 온다는 원자력 홍보관이 있었다.
홍보관 바로 옆으로,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었다.
<당신은 방사능 피폭 위험지대에 들어오셨습니다>
나아리 주민들이 붙였다는 현수막.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은 현수막만이 아니었다. 2년째 농성장도 자리하고 있다.
‘후쿠시마에는 이제 사람이 못 산다더라’
농성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르신 몇이 앉아 계셨다. 난로를 피웠는지 온기를 간직한 농성장. 그래도 곧 겨울이다. 월요일 아침은 출근하는 원자력 직원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 선전전이라는 것이 요상하고 끔찍했다. 곡소리가 울리더니 주민들이 자신의 관을 끌고 거리로 나갔다. 월성원전 정문까지 그렇게 질질 관을 끌고 갔다. 1년째라고 했다. 매주 이 장면을 보는 직원들은 이제 무뎌졌을까? 핵발전소의 위험에도 익숙해졌을까? 아니면 진실로 안전하다 확신하는 것일까?
▶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원자력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전. 주민들이 자신의 관을 끌고 나간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주민들 생각은 달라보였다.
“농사지은 것도 안 먹어야 하는데. 시골에서 수입이 없는데 안 먹을 수가 없는 거라. 비 오는 날은 더 걱정스러운 거라.”
나아리 주민 황복희 씨는 “여긴 모든 게 오염된 거라. 사람마저도” 하며,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원전이 안전하다, 아니다 하는 논란은 이 마을에선 이주를 요구할 권리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공방이 더 크다.
“우리 손녀가 학교 갔다 와서 그러는 거라. ‘반 친구가 그러는데 원자력은 절대 사고 안 난다 해요’ 내가 ‘그래, 그 친구가 어디 사는 친구냐’ 하고 물으니까. 한수원 사택에 사는 친구라고. 그럼 그럴 수 있다. 다음에 그 친구하고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후쿠시마는? 일본 사고는 어떻게 일어났냐’고 물어봐라 그랬어요.”
월성원전이 지어진 지 35년. 요새야 어린아이들까지 원전의 안전을 의문하지만, 나아리 주민들은 30여년을 평온하게 잘 보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다. 전기 만드는 최첨단 공장 정도로 생각한 원자력발전소가 브라운관 너머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뒤를 이어 들어오는 소식. 후쿠시마에는 이제 사람이 못 산다더라.
사람 흔적 없이 버림 당한 가축만 남겨진 후쿠시마를 보며, 나아리 주민들은 안전하다던 전기공장을 의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아리 마을은 월성원전 반경 1킬로에 있었다. 그제서야 마을을 떠나려 했건만 집이건 땅이건 팔리지 않았다. 팔릴 리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온 국민이 핵발전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생을 모아온 재산의 가치가 0이 되었다. 맨몸으로 도망치지 않는 이상 꼼짝없이 마을에 남아야 한다. 어떤 의미로 사회적 격리, 아니 감금이었다.
한수원은 늘 ‘안전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아리 주민들은 정부에 이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농성장까지 차려 두 해를 넘겼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황분희 씨,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를 포함해 6식구가 함께 산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살려는 욕심이었다. 지금은 어린 손주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후회가 막심하다.
이 집 아이들 몸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작년 말, 나아리 주민 40명을 대상으로 체내 방사성 물질 피폭 정도를 검사했다. 주민 모두에게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그것도 5살짜리 손주에게서 제 아버지의 3배나 되는 검출량이 나왔다. 울산으로 출퇴근을 하는 아버지에 비해, 하루를 온전히 마을에서 보내는 아이 몸에 더 많은 방사성 물질이 쌓인 것이다. 그녀로서는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피폭조사 결과가 언론에 공개되자 한수원 측은 반박보도를 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조사에 나온 삼중수소 양(0.006mv)은 일반인 방사선량 기준치인 1mSv의 0.06%에 불과하다. 이는 엑스레이 1회 방사량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이다. 인체에 무해하다.”
그러나 한수원의 설명은 주민들을 안심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돌아온 반응은 “저 사람들은 그거조차 인정하지 않아”였다. 이미 한수원은 수많은 거짓과 은폐를 들켰고, 신뢰는 남아있지 않았다.
▶ 나아리 주민 40명의 체내 방사성 물질 피폭 정도 검사결과, 모두에게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원전 1호기 설계도면 분실 사건은 주민들을 경악시켰다. 40여년 된 월성 1호기 설계도면이 없어 2,3호기 도면으로 안전심사를 대신했다는 게였다.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동생 몸을 검사하고는 형이 건강하다고 진단 내렸다.” 농성장 주민들의 비유는 이러했다. 내진여유도 테스트마저 그러했다. 경주는 5.8의 강진이 발생한 곳이다. 한수원은 더욱 못 믿을 곳이 되었다.
그래도 요새는 지진이 나고 언론에 한수원의 잘못이 보도되면서 농성장 사람들의 말이 좀 ‘먹힌다’고 한다. 예전에는 뒤에서 다 손가락질 했다. 돈보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역구 의원이 국회에 가서 이들의 싸움을 ‘보상을 위한, 무조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반대’라고 말한 적도 있다. 주민들은 이 발언의 주인공인 정수성 전 의원(새누리당) 사무실 앞에서 며칠간 항의시위를 벌였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여기 왔다가 다들 한수원으로 들어간다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우리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방송에는 우리 이야기는 없고 저쪽 편을 드는 것 같은 거야.”
요새는 한수원으로 들어가는 기자가 없다고 서로들 말을 주고받는다.
목숨과 맞바꾼 원전‘혜택’인가?
▶ “여긴 모든 게 오염된 거라. 사람마저도” ⓒ울산환경운동연합
여론이 나아졌다 하나, 곱지 못한 시선들은 여전히 있다. 원전 혜택을 그동안 다 받고 이제 와서 이주 보상까지 해달라고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원전 혜택이란, 마을 주민들이 원전 노동자들 재우고 먹여서 벌어들인 돈을 말하는 것일 테다. 돈 한 푼 만져보기 힘든 ‘시골’에서 그건 쏠쏠한 벌이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이 상가와 가건물 가득한 낯선 땅으로 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작년에 영덕이 발전소 2개 지으려고 오만 거 다하면서, 원전 들어오면 당신들 잘 살게 해준다고 그랬어. 내가 영덕을 8번을 다니면서, 나는 환경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고 원자력 옆에 사는 주민인데. 내가 겪은 이야기를 그대로 하겠다. 월성에는 6기의 원전에 저준위방폐장까지 갖다 놨다. 이 동네가 어떻게 되어야겠냐? 그런데 어떠냐? 월성에 한번 와 봐라.”
원전 공사를 담당한 협력업체와 건설노동자들이 떠나자 마을은 금세 쇠락했다. 곳곳에 깨진 건물유리가 지금을 말해준다. 장사를 하러 온 이들의 많은 수가 타지인이었다. 장사가 뜻대로 안 되자 마을을 떠난 이도 꽤 된다.
물론 더 큰 원전 ‘혜택’도 있다. 한수원이 입막음 용으로 뿌리는 몇 억원대의 보상금. 그것을 두고, 황분희 씨는 말했다.
“우리는 이주를 시켜 달라 하는데,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여기를 잘 살게 해 달라. 아니 이렇게 방사능이 나오는데 누가 이 동네 들어온다고, 잘 살게 해 달래.”
저 사람들이란 양남발전협의회와 같은 핵발전소 유치 문제를 다루는 주민협의회 위원들. 농성주민들의 한수원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진 것은, 월성 1호기 재가동 결정을 앞두고였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당시 양남면 마을 22곳 중 17개 마을이 재가동을 반대를 했다) 양남발전협의회 위원들이 보상금을 받으며 월성 1호기 재가동에 합의한 것이다. 농성 참여 주민들은 이를 한수원과의 결탁이라 말한다.
“그 돈으로 마을 사업을 하라 그러는 거야. 사업을 해서 이익금 난 것을 지역이 가져라. 양남면에 목욕탕을 120억인가 들여서 지었어. 내내 적자야. 또 스포츠센터를 짓는데. 여기 바로 가까운 데 큰 게 있는데 또 짓는다고. 도로 포장하고, 건물 짓고 그런데 돈을 다 써.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과정에서 책임자들이 다 주머니에 넣는 거야. 발전협의회 책임자들이 전부 한수원의 하수인이 돼가지고 있는 거야.”
이주대책위에서 조장이라 불리는 김해준 씨의 말이다. 후쿠시마 사고가 아니었다면, 70여년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을 ‘원전마피아’라는 단어를 쓴다. 돈은 지역을 가르는 좋은 도구로 활용된다. 마을 주민들만 서로 찢긴다.
나아리 주민들은 핵발전소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는 주민들에게 묻는다. “이것이 나와 내 자식들의 몸을 방사능으로 해치고 얻을만한 발전이냐.” 그들은 돈과 목숨을 맞바꾼 게 아니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이주를 요구받다, 이주를 요구하다
갈리고 찢긴 마을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것은 대다수 예순, 칠순의 노인들. 70가구가 시작한 대책위는 이제 20여 가구로 줄었다. 20여 가구에는 5대째 선산을 머리맡에 두고 살아온 이도, 박정희 정권 때 월성 1호기 짓는다고 내쫓겨 나아리로 들어온 이도 있다. 또 다시 그 땅을 비워야 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이주를 요구한다. 자식들이라도 내보내야겠다고 한다. 이주를 요구하지만, 실은 ‘요구 받은’ 것이다. 한편으로 자신들은 ‘이주를 요구할 자격’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 경제가 발전했다고 해. 맨날 하는 말 있잖아. 싼 전기로 제품을 만들어가 외국에 팔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다는 한단 말이지. 그런데 그 싼 전기 하나 만들기 위해 발전소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희생을 하고 사는지 아냐. 기업은 전기세 싸게 해줘서 번 돈으로 저그 손자들, 뱃속에 있는 아까지 다 돈 노나 갈라주면서. 왜 정작 전기를 만들어 피해를 보는 국민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느냐 이거야.”
▶ 이주를 요구하며, 월성원전을 향해 자신의 관을 끌고서 선전전을 벌이는 주민들. ⓒ희정
농성을 한 뒤로, 집에 가면 전기코드부터 빼놓기 바쁘다는 주민들. 이들에게 전기는 더는 풍족한 혜택이 아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 주변 지역이 어떤 희생을 치러야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니 겪었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누군가는 쉽게 말하지만 희생을 요구받은 당사자들에게는 잔인한 이야기다.
우리는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용인했고, 결국 그 욕망은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는 원자력을 만들었다. 그 사실을 일본 재앙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2026년까지 총 36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계획은 변함없다.
대안이 없어도, 과제는 계속 생겨난다. 핵을 쓰는 대가다.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핵폐기물)는 2019년이면 포화상태다. 반감기가 10만년이라는 핵폐기물의 처리는 생존과 직결된 과제이다. 5.8 강진이 발생한 경주는 이미 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로 낙점됐다. 한반도가 더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방사선량이 저준위폐기물의 50배라는 고준위폐기물을 묻을 지역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갈등, 아니 희생의 시작이다.
원전이 가동되는 한, 핵폐기물은 만들어진다. 핵을 멈추지 않는 한, 핵을 옆에 두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늘어난다. 이들의 대책마련 요구를 언제까지 일부 지역의 보상 문제로 국한지을 수 없다.
발전소 주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법안
올해 9월 나아리 주민들은 국회에서 자신들의 문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농성 2년 만에 처음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들어 방사능 기준치 미만의 무해함을 주장했다. 이들은 주민들의 불안을 과학적 무지라 치부했다. 환경운동단체나 다른 측 전문가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피폭 계산식 자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기준치 미달이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일축할 수 없으며, 인근지역 주민의 갑산성암 증가와 같은 실제 피해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다. 주장을 접는다면 양쪽 다, 잃을 것이 크다. 한쪽이 잃을 것은 연 20조원 단위의 원자력사업이고 다른 한쪽이 잃을 것은, 삶이다. 내 삶터. 건강. 그리고 내 자식의 목숨. 어느 손실에 눈을 두어야 하는가. 지난 달 22일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개정법률안’이 발의(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대표발의)됐다. 후자가 잃을 것에 눈을 두는 이들이 국회에 있길 바란다. (희정/ 기록노동자)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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