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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성소수자 캐릭터들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시리즈 <마인>이 지난 27일, 16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것을 찾아가는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는 소개답게, <마인>은 세상의 편견을 마주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냈다.

 

특히 김서형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정서현은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해 그동안 국내 방송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냈다.

 

▲ tvN 주말 드라마 <마인> 포스터 이미지 중 ©tvN


사실 그동안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 캐릭터가 국내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단막극, 특집극 등에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해온 역사가 있다. MBC 베스트극장 <두 여자의 사랑>(1995), SBS 70분 드라마 <숙희 정희>(1997), 노희경 작가가 쓴 KBS 특집극 2부작 <슬픈 유혹>(1999), MBC 베스트극장 <연인들의 점심식사>(2002) 등은 동성애자의 사랑을 다뤘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MBC에서 방영된 성인 시트콤 <연인들> 56화 “나는 트랜스젠더를 사랑했다” 편에선 트랜스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2011년엔 KBS 드라마 스페셜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에서 다양한 세대의 여성 동성애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단편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10년, SBS에서 주말 드라마로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송창의 배우가 연기한 양태섭 역과 이상우 배우가 연기한 김경수 역이 연인 관계로 등장했다. 총 63부작이었던 만큼 태섭, 경수의 이야기는 커밍아웃을 비롯하여 동성커플의 서사를 보여주며, 당시에도 큰 관심을 받았다.

 

2015년엔 JTBC에서 14부작으로 방영된 <선암여고 탐정단>의 11, 12화에서 청소년의 동성애를 다뤘다. 여자 고등학생 두 사람의 키스 장면도 등장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키스 장면에 대해 아동 청소년의 정서함양을 해쳤다는 이유로 경고를 하는 ‘헤프닝’을 벌였다.)

 

▲ JTBC 드라마 시리즈 <선암여고 탐정단> 장면 ©JTBC


최근 몇 년 사이엔 성소수자 캐릭터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tvN 드라마 시리즈 <굿 와이프>(2016)엔 여성 양성애자가, tvN 드라마 시리즈 <가족입니다>(2020)와 JTBC 드라마 시리즈 <야식남녀>(2020)에선 남성 동성애자가 등장했다. JTBC 드라마 시리즈 <이태원 클라쓰>(2020)엔 트랜스젠더가, tvN 단막극 <안녕 드라큘라>(2020)에선 여성 동성애자가 등장했다.

 

하지만 <마인>이 조금 더 특별한 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가, 단막극보다 시청자들의 이입과 공감이 중요한 시리즈물의 주인공이었다는 점과, 마지막에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불행서사’ 단골이었던 성소수자 재현의 변화

 

성소수자 캐릭터의 등장은 이제 새로운 게 아니지만, 극의 마지막까지 캐릭터가 죽지 않거나 혹은 삶이 망가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다수의 콘텐츠에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혹은 제대로 된 마무리가 없었거나, 애매모호한 ‘열린 결말’로 끝나거나.

 

사실 이런 ‘경향’이 한국에서만 도드라지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방송 콘텐츠에서 레즈비언 캐릭터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반복되자, 시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나섰다. 이들은 캠페인을 벌이며 방송계 전반에 다양성 이슈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관련 기사: “레즈비언 캐릭터 좀 그만 죽여라!” 외친 팬들 https://ildaro.com/8463

 

≪일다≫ “레즈비언 캐릭터 좀 그만 죽여라!” 외친 팬들

※편집자 주: 성차별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미디어에서 퀴어여성의 존재는 가시화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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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행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정상 사회’의 ‘노오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도 있다. 케냐 영화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된 <라피키>(와누리 카히우 감독, 2018)가 케냐 내에서 상영 금지 처분을 받은 일이다. 케냐 영화등급위원회는 두 여성의 키스 장면이 아니라, 이들이 “동성애 행위를 후회하지 않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것을 바꾸지 않으면 상영 금지 처분하겠다고 했다. 관련 기사: 누가 ‘덜 희망적인 엔딩’을 원하는가? https://ildaro.com/8326

 

≪일다≫ 누가 ‘덜 희망적인 엔딩’을 원하는가?

올해 5월에 열린 칸 영화제에서, 케냐 영화로는 최초로 공식 초청작으로 상영되며 화제를 모은 <라피키>(Rafiki, 스와힐리어로 ‘친구’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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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에서 성소수자가 불행하다는 메시지를 자꾸 반복하는 건, 현실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일 뿐더러,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에 크게 저해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마인>의 정서현이라는 인물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걸 이루고, ‘세상의 인정’ 따위와 상관없이 ‘용기 내어’ 자신이 가장 원했던 사람, 연인을 향해 가는 결말을 얻었다는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를!

 

<마인>의 성공,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김서형 배우가 ‘한국의 케이트 블란쳇’(토드 헤인즈 감독의 2015년 영화 <캐롤>에서 동성 연인과의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캐롤 역으로 큰 사랑을 받은 배우)이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성소수자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가 금기시되는 시대가 끝났다는 건 명확하다. 앞으로도 분명, 더 많은 성소수자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tvN 드라마 <마인>에서 정서현(김서형 역)과 김정화(최수지 역) ©tvN

 

다만 그 캐릭터들이 제2의, 제3의 정서현이 되진 않았으면 한다. 정서현이라는 인물이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 그렇다. 정서현은 사회적으로 무척 성공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엄청난 부를 지녔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한 사람만을 애절하게 사랑하며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위해선 아낌없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멋진 사람이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사람.

 

정서현을 통해 ‘정상사회’가 가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뒤집어 버리는 쾌감을 느꼈지만, 이런 ‘완벽한’ 인물이 성소수자를 향한 잣대가 된다면 곤란하다. ‘성소수자니까 사회적으로 더 성공해야 해, 더 도덕적이어야 해, 더 훌륭해야 해. 그래야 성소수자인 부분이 ‘완화’될 수 있으니까’ 라며 다시금 ‘정상사회’로의 편입을 압박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법학자 켄지 요시노가 지적한 대로 “커버링(주류에 부합하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다면, 그것은 결국 성소수자에게 불평등한 사회일 것이다.

 

말하자면, 더 다양한 성소수자 캐릭터가 보여지길 원한다. ‘정상’에서 벗어난 신체를 가진 성소수자, 장애나 질환이 있는 성소수자, 집이나 직장이 없는 성소수자, 남 따위 상관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성소수자, 잘못된 선택으로 좌절하기도 하는 성소수자, 사랑이 전부가 아닌 성소수자, 멋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소수자….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성소수자만큼이나 다층적인 성소수자 캐릭터와 이야기가 드러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인>(백미경 지음, 호우야) 대본집에 나온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본다.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수식어와 꼬리표가 있지만, 저는 사람들이 그것에 묶이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수식어에 제한될 수 없는 존엄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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