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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여성친화적 성생활 용품숍을 운영하며
작년 이맘때였던 거 같다.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뉴스가 2020년을 넘어 오늘까지도 모두의 일상을 바꿔놓게 될 줄은 미쳐 몰랐다.
마스크 상시 착용, 비대면 행사, 재택근무 등 이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상이 되었다. 공기로도 전파가 될 수 있다는 갑작스러운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을 지키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어느덧, 마치 늘 그랬던 것처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과 마주칠 때면 소스라치기도 하며 모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마스크와 씨름하게 된 시간들
성생활 용품점을 운영하는 나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손 소독제 비치, 주기적인 소독과 청소 등 기본적인 청결 유지는 물론, 매장 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하던 날은 정말 끔찍했다.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수시로 느껴지는 귀 뒤의 통증은 물론 숨을 쉬는 것도, 음료를 마시는 것도 모든 게 불편했다. 앞으로 이걸 종일 끼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별일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었다.
▲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작 당시 매장 출입구에 부착하기 위해 제작한 안내문. |
매장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작한 때였다. 토요일 오후, 크지 않은 매장에 두 팀의 고객이 한참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끼지 않은 손님 한 분이 들어왔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밖에서 마스크를 끼고 다니다가도 실내로 들어오면서 마스크를 내리거나 벗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 힘들다는 걸 알기에, 정중하게 마스크 착용을 부탁드렸다. 손님은 격양된 어투로 마스크가 없다고 했다. 난 정중하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매장 내 쇼핑을 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물건을 사려고 왔는데, 마스크를 끼지 않았으니 사지 말고 나가라는 건가요?”
나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네.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는 주변 손님들을 둘러보더니,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마스크는 착용하는 사람도 불편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보는 사람도 불편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황사가 심하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얼굴의 삼분의 이를 가리는 마스크의 특징상, 장소나 상황에 따라서는 마스크 착용이 타인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 황사가 심각하던 2019년, 한 유명 커피 브랜드가 드라이브 스루에서 일하던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시킨 사례가 있었다. 이유는 ‘고객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위화감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나에게도 마스크가 갖는 의미는 코로나 전과 후로 조금은 달라졌다.
‘성인용품점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예약제로 변경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실시되고 재난 문자가 실시간으로 오던 어느 날,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이태원 클럽 사건은 뉴스가 보도될수록 본질이 흐려지고 자극적으로 변해갔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에 게이라는 소수자성이 더해져,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매장도 여느 곳과 다름없이 확진자가 다녀갈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은 커피숍도 아니고 옷 가게도 아니고 무려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곳 아니던가… 혹시나 여기에 확진자가 다녀갔다가 문제가 발생한다면, 성인용품을 파는 곳이라는 점이 포커스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행여나 문제가 생겨 내 고객이 코로나 시대에 딜도를 사러 다닌다는 비난을 받을까 하는 노파심에, 매장을 예약제로만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 여성친화적인 성생활 용품숍 ‘피우다’ 외관. ©강혜영 |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막 예약제 운영을 시작하던 때였다. “예약을 안 했는데 혹시 들어가도 괜찮나요?” 어느 외국인 고객이 매장 안으로 고개만 삐쭉 내밀더니 할 말이 많다는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다른 손님이 없던 터라 흔쾌히 매장으로 안내를 했다.
“평소에 지나가면서 여기를 많이 봤어요. 드디어 들어와 보네요.” 씩씩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에너지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알겠지만 요즘 코로나로 사람 만나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나 바이브레이터가 필요한 거 같아요. 근데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고르는 것 좀 도와줄래요?”
나는 다소 농담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맞게 찾아오셨네요.”
그렇게 우리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수다라면 나도 만만치 않는데 그녀는 엄청난 이야기꾼이었다. 미국인인 그는 한국에 온 지 6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녀의 좌충우돌 데이트 어플 이야기부터 섹스토이를 써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까지 수다에 수다가 이어졌다. 그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써오던 모 데이트 어플을 한국에서도 종종 이용하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최근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어플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대화를 했던 한 남자는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STI(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 성 매개 감염병) 음성 결과지를 올려뒀더라고요”
“데이트 시장에서 자신이 안전한 상대임을 홍보하는 게 중요하긴 하죠. 어제 미국에 있는 친구랑 대화를 하는데 요즘은 프로필에 코로나 테스트 음성 결과지를 업로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 가뜩이나 흉흉한 세상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 전에 어플로 대화하던 사람이 만나자고 하길래 최근 사람이 많은 곳을 가지는 않았는지, 기침이나 발열 같은 코로나 증상은 없는지 물어봤더니 엄청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그 순간 ‘꼭 이렇게까지 해서 데이트를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예전에는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기구까지 써가며 자위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꼭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만나야 하나’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이브레이터나 사보려고요.”
그 순간, 왜 그랬는지 오래전 금연을 하게 된 내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려고 다른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더니 한겨울이라 다들 추워서 거절했다고 한다. 친구는 혼자 도서관 건물 앞에 서서 덜덜 떨면서 담배를 피웠는데,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이렇게까지 해서 담배를 피워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고 그게 내 친구가 담배를 끊는 계기였다.
우리는 위험을 감안하고 무언가를 즐기고자 할 때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이런 맥락 없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바이브레이터를 꺼려 했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파트너가 있을 때는 자위도 거의 안 하는 편이라 그런지, 바이브레이터는 왠지 파트너가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성을 향유하는 방식에 있어 젠더별 온도차를 다시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자위는 특히 더 그런 거 같다. 남성들은 파트너가 있든 없든 자위를 하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을 종종 만난다. 기구까지 구매하는 적극성을 보이는 자신을 민망해하는 사람도 꽤 있다.
▲ 여성 자위 가시화를 위해 만들어둔 이미지. ©피우다 |
난 그녀에게 내가 생각하는 섹스토이와 자위에 관해 다소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여성이 성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꼭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파트너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며, 섹스토이는 파트너가 없을 때만 쓰는 것도 아니다. 섹스토이는 다양한 형태로 성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꼭 사람의 대체품이 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도구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으며, 무엇이 맞고 틀린 것은 없다. 서랍 속에 하나 정도 평화롭게 보관해뒀다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나의 생각을 전했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있어 스스로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그 후 한 이틀쯤 지났을 때 가게 앞을 지나가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매장에 손님이 계셔서 저대로 인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얼핏 보니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난 후, 그녀가 다시 매장을 찾아왔다.
“오늘은 이 말만 하고 금방 갈게요. 그때 산 거 잘 쓰고 있어요! 코로나 걸릴 걱정도 없고 좋아요.”
당신의 가장 안전한 섹스 파트너는 당신 자신!
코로나 이후 킨제이, 하버드대, 예일대 등 저명한 연구팀에서 내놓은 성생활 관련 소식들을 종종 찾아보곤 한다. 어느 연구에서는 성관계 시에도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장하기도 하며, 외출이 잦은 사람과의 성관계를 피하며, 구강성교나 딥 키스를 자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예일대학교 연구팀에서 제안한 코로나 시대에 안전한 섹스 팁 중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당신의 가장 안전한 섹스 파트너는 당신 자신입니다.’
당찬 문구와 함께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제한하면 감염의 가능성도 줄어드니 자위를 하거나 섹스토이를 써보라’고 제안한다. ‘섹스토이 사용 전후에는 20초 동안 손과 섹스토이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실용적인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 외에도 콘돔, 덴탈댐(구강성교 시 사용하는 콘돔)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성적 활동이 되었든 그 모든 활동에 있어 파트너와의 동의가 중요하다는 것, 동의 없는 성접촉은 성관계가 아니라 성폭력이라는 내용으로 깔끔하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 코로나 이후 위생이 매우 중요해졌다. 고객이 보내준 곰돌이 젤리 모양의 비누. ©피우다 |
안전한 섹스 가이드 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섹스토이를 판매하는 입장에서 약간의 사족을 붙여본다. 사족이라기보다는 필요한 팁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
행여나 당신이 성기나 섹스토이를 알코올로 닦고 있다면 자제하는 것이 좋다. 성기를 알코올로 닦는 사람이 있나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도 괜찮냐고 간간이 문의가 들어온다. 성기로 버스 손잡이를 잡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 성기보다는 성기를 만지게 될 손이 청결한 것이 더 중요하다. 알코올로 인해 피부가 건조해지면 상처에 취약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성병 감염에 취약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섹스토이를 알코올로 세척하는 것도 주의하는 것이 좋다, 모든 제품에 해당이 되는 건 아니지만, 사용하는 딜도나 바이브레이터가 실리콘 소재라면 특히 조심하는 게 좋다. 실리콘은 위생적인 면에서는 우수하지만 알코올이 닿으면 화학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화학반응으로 인해 제품 표면이 마모되면 미세한 틈으로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랄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이 부분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지는 생리컵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성적 즐거움이 주는 의미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때론 삶의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또 삶에서 있으나 마나 한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 쪽에서는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목숨도 잃어가는 요즘, 무언가를 즐긴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안전하면서도 즐겁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콘택트와 언택트를 넘나드는 코로나 시대에서 성적 즐거움 또한 책임감 있고 안전하게 누리며 삶과 균형을 이루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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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혜영. 여성친화적인 성생활 용품숍 ‘피우다’를 운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을 긍정하며, 행복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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