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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의료인에게 닥쳐온 코로나19

<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학생간호사, 안전을 묻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지금 그리고 코로나 이후, 이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라며 기획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020년의 출발은 너무 좋았다. 10년이라는 단위에 부푼 꿈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했다. 특별한 과정 없이. 우리는 그저 시간의 움직임에 함께하면 됐다. 어떤 선택을 다행스러워하거나 후회하며, 무언가를 잘하거나 또 기대보다 못해내는 과정들과 함께.


코로나19 초반, 가장 큰 슬픔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과 즐거움이고 치유이자 연대와 동질감이었다. 그런데 이 신종 감염병은 만남을 방해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이유가 돼버렸다. 나는 무기력해졌다. 어렵사리 가까운 사람들과 힘들게 함께할 때면 한명 한명의 친구가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었다.


평소 집에 있는 시간이 일절 없던 나인데,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잦은 방콕은 추억을 포함한 수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게 했다. 거미줄처럼 꼬여버린 일상. 오늘 당장에 스트레스가 밀려오지만 이내 미래에 대한 걱정의 파도가 훨씬 높다.


체온 섭씨 37.5도. 이제는 코로나 19의 절대적인 분류 기준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체온측정은 필수가 되었다.


코로나를 맞이한 학생간호사


나는 올 2월 졸업을 앞둔 간호학과 학생이다. 깊은 고민을 사유할 틈 없이 시작된 2020학년도 1학기는 그야말로 코로나 전쟁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대한민국 면허 간호사는 간호교육 인증평가 기준 제도에 따라 간호학과 졸업 시점까지 1,000시간의 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코로나 시대 학생간호사의 모습은 어떠할까? 코로나는 임상 간호사의 열악한 현실뿐만 아니라, 준비되지 못한 간호 교육의 불확실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간호학과는 면허 간호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대부분 간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숭고한 생명윤리를 바탕으로 고도의 전문지식을 교육받아 4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간호사가 되는 것을 떠올린다.


그렇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간호학사는 전문직 간호사로서 그 역할을 존중받아야 마땅할 학위이다. 하지만 간호대학의 수면 아래에는 수많은 폐습과 폭력, 비민주성의 문제가 깔려있다. 감염병 시대에도 간호학과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민낯을 보여주는 결과가 되었다.


간호학과는 학사과정 내내 교육기관으로서의 본질은 실종된 채 폭력적 교육방식만을 고수하는 실정이다. 학생을 위하여 움직이고, 학생간호사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간호대학이 반대로 재학생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간호학과 4년…군기 문화, 동원과 강요, ‘태움’


간호학과 4년간의 생활은 타학과 학생들의 대학생 시절과 사뭇 다르다. 간호학과는 새내기 시절부터 간호계의 ‘태움’이라 불리는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된다. 3월 입학 시즌만 되면 <페이스북 간호사, 간호대 대나무숲>에는 끊임없는 고발이 올라온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새내기를 억압하는 간호학과 ‘군기 문화’는 오래전부터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더욱이 해가 갈수록 폭력성은 구체화되어 인사 강요, 개인 SNS 규제, 인사말 규제, 화장실 사용법, 화장 범위 제한, 타과 인사 금지 등 엽기적 행각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악습 중의 하나인 군대식 화법 ‘다나까 말투’ 강요는 애교에 가까울 수준이다.


이렇게 심각한 수준의 폭력성을 가지고 시작된 간호학과 생활은, 결국 면허를 부여받아 간호사로서 업무를 할 때까지 이어진다. 직장 내 괴롭힘은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되었지만, 변화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2학년, 나이팅게일 선서식은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걸 간호계 모두는 알고 있다. 임상 현장으로 나가기 전, 학생간호사로서 간호 윤리와 의료인으로서 사명을 갖기 위한 선서식이 아니라 학교의 대외 홍보용 강제동원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학교에서는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연습’하도록 강요한다. 적게는 일주일에서부터 많게는 한 달까지. 선서식 직전에는 수업까지 빼가며 연습에 의무적으로 참석시키며, 선서식을 돕기 위한 1학년 후배들까지 강제동원한다.


어디 강제 연습뿐일까. 선서식 준비 비용을 학생들에게 강제로 납부하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선서식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규제하고, 도우미로 참여하게 되는 후배들에겐 블라우스와 치마 등의 정장을 요구하고, 없으면 개인이 마련하도록 협박한다. 학생들은 간호학과에서 요구하는 복장 길이와 머리와 외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인권을 침해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간호사의 꿈을 꾸게 된 날. 2014년 4월 19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부근에서 취재했다. (형광돌이)


3학년, 임상 실습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실습에 나가면 현직 간호사들은 학생간호사를 ‘태운다’. 이 직장 내 괴롭힘의 바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실습생 신분인 간호학과 학생들을 교육할 교육전담 간호사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크게 한몫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가 매우 높은 임상 환경에서 학생들의 실습까지 책임져야 하는 환경이니, 교육은 고사하고 실습은 병풍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유 없이 의자에 앉지도 못하게 만들거나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게 만드는 환경이다. 실습 본연의 임무가 아닌 청소, 탕비, 개인 심부름, 수액박스 수송 등 간호 직렬 업무와는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숱하게 시킴으로써 병동 보조 인력으로 전락시킨다. 간호교육의 질적 실습과 이론교육의 깊이는 표준화되어야 하고, 그 표준을 지키기 위하여 한국간호교육평가원이 설립되었지만 실제 환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4학년, 졸업반이 되어도 학과의 폭력에 제대로 된 항의 한번 못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취직과 직결되어있는 특성 때문에 4학년은 교수 눈치 보기 바쁘다. 게다가 ‘간호인증평가’로 불리는 한국간호교육평가원의 학교 평가인증 시기와 겹치면, 간호학과 학생들은 강제로 평가인증에 동원되며 이는 방학이나 개인 사정하고는 관계없이 진행된다. 간호대학 4년의 스케줄은 학교의 강제동원, 의무참석의 병폐 속에 지나간다. 지난해 간호정책 선포식 또한 각급 간호대학이 강제 동원한 쇼에 불과했다.


코로나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학생 안전


간호학과는 크게 교내실습과 임상 실습(병원 실습)으로 나뉜다. 비교적 가벼운 교내실습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안전에 대한 개념이 실종되어있다. 실습기구들 자체가 날카롭고 깨지기 쉬운 물품들이 많은데, 안전사고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는 구급상자조차 실습실에 마련되어있지 않다.


실습 도중 손가락이 찢어졌는데, 붕대나 거즈는커녕 밴드조차 없어 운 좋게 같은 실습실에 있던 학생 개인이 가지고 있던 의료용 테이프가 있어 급히 ‘때우고’ 응급실을 향했던 학생이 있었다. 간호학과 실습실에서 다친 학생이 최소한의 응급처치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가 된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 이전엔 감염관리와 위생 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했다. 모든 실습기구는 수십 수백 명이 수천 번 돌려쓰며 닦거나 소독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일회용 물품들은 물자 절약이라는 이름으로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돌려쓰고를 반복했다.


병원 현장으로 직접 나가는 임상 실습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학생의 안전은 본인 부담이었다. 학교에서는 마스크 한 장조차 지원해주지 않았다. 실습은 교육과정이었지만 사고는 개인 책임이었다.


학생간호사들은 실습 병원의 요구와 감염 예방을 위한 예방주사와 항원 항체 검사를 받는데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 이상의 비용을 들였다. 실습복은 보통 한두 벌 있는데, 바쁜 교대근무 해야 하기에 매일 세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검체와 혈액이나 비말 등이 묻은 채 며칠을 버텨야 한다.


안전과 매뉴얼이 지켜지는 실습은 언제쯤 가능할까?


코로나 이후에는 바뀌었을까? 코로나 이후 간호계, 간호학과는 많은 부분이 개선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거나 오히려 역행한 부분도 적지 않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간호계는 신종 감염병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속상한 지점이다.


응급실이 얼마나 중요한 사회 공공망 역할을 하고 있는지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전 국민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공공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응급실은 민간병원이 운영한다. 공공의료기관 자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응급실은 결코 개인의 영역이 아니므로 우리가 모두 더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공간이기도 하다.


‘자대 병원이 있는 학교에 다니는데 이번에 교수님이 비대면 실습은 자대 병원 없는 학교만 그런 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스크 한 장 안 주면서요.’ 이런 이야기는 SNS 간호사·간호대학생 커뮤니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글 중 하나이다. 간호학과 학생들이 감염병이 무서워 실습을 비대면으로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 일반적인 실습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안전은 전혀 없는 수준이었고,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은 늘 존재했다.


결핵 환자가 있는 병실을 출입할 때 간호사는 N95 마스크를, 학생간호사는 일반 마스크를 쓰는 사례도 단편적인 예시다. 공기 감염성 질환 환자를 접촉해야 함에도 실습 학생들에겐 지급하지 않았다.


실습의 실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면허 간호사를 양성하는 간호학과의 질적 문제는 각급 학교뿐만이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너무나 심각한 차이를 겪고 있다. 서울권 모 대학병원에서 실습할 땐 강원도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 원거리 실습을 오곤 했다. 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실습임에도 숙박부터 시작해서 실습에 필요한 어떠한 제반 사항을 학교에서 지원해주지 않았다.


지방학교의 실습 병원 부족으로 발생하는 초장거리 실습 실태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병원은 그대로인데, 실습을 해야 할 간호대학생 인원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련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병원까지도 무리하게 간호학과 실습을 추진하고, 결국 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간호사들에게 전가된다. 학교와 실습병원 배치에 따라, 어떤 학생들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과 같은 특수간호 영역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안전과 매뉴얼이 지켜지는 제대로 된 고품질 실습이 균형 잡힐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존재할까. 지금의 간호학은 오직 1,000시간의 사전적 실습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마다 들쭉날쭉한 임상 실습의 질적 교육과 평가 방법, 학교 교육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현장에 교육전담 간호사가 부재하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왜 숙련된 간호사는 늘 부족할까?


1차 팬데믹부터 3차 팬데믹까지. 처음 대구경북 지역에 팬데믹이 발생할 때부터 안정된 간호인력 수급과 더불어 전문성 있는 간호사를 확보하는 것은 재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과업이라는 것을 정부와 의료계뿐 아니라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이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숙련된 간호사는 늘 부족하고, 간호대 정원을 확대하는 게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수없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간호사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간호대 정원 확대를 말한다.


확진자가 점점 늘어가며 재난문자는 쉴 틈 없이 울리는 와중에, 오늘도 SNS 간호사·간호대학생 커뮤니티에는 간호학과의 안일한 방역 문제와 정부지침 미준수 사례가 끝없이 올라온다. 학생의 안전을 3차 팬데믹에서까지 행정 편의와 한국식 안전불감증으로 마무리 지려고 하는 것이 지금의 간호의료인 양성 시스템이다.


올해의 간호사 국가시험 원서 접수증. 3차 팬데믹 이후 간호사 면허발급 앞당겨 코로나 현장에 조기 투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간호사가 부족한 걸까, 간호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간호사가 많은 걸까, 뼈아프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다람쥐 쳇바퀴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제61회 간호사 국가시험을 10여 일 앞두고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전문직 면허 간호사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는 간호학과 4학년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이 간호사가 되어 의료현장의 실태에 질려 재빨리 그만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오래 간호현장에 남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숙련된 질 높은 간호사로 성장하도록 말이다.


보건의료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유무형의 두려움으로 온 세상이 흔들리는 시기를 어렵게 건너고 있다. 우울과 폭력의 장기전에 무기력한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울 때가 있고, 아무 일도 아닌데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될 때도 있다. 요즈음 부쩍 눈물이 많아졌는데, 매일 반복되는 해와 달의 시간처럼 강렬하고 진한 삶의 과정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스스로의 응원과 위로를 해본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바라보았을 때 두려움보다 행복이 더 큰 하루였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가득했던 2020년을 추억 할 때 좀 더 괜찮은 시간의 조각으로 기억하면 조금이나마 따스할 테니까.


※ 마지막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의 장기화에 따라 독자 여러분께 꼭 부탁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 19> 의심 증상 발생 시 질병관리청 콜센터 1339로 전화해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손소독제 사용을 생활화해주시고, 마스크 등 개인위생에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감염으로부터 나와 이웃을 함께 지키기 위하여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원의 문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길 간절히 요청합니다. 구급대원을 비롯해 응급구조사, 간호사, 의사 등 일선 의료진들은 여전히 폭언·폭행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보건의료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힘써주세요. 응급실은 빠르게 진료하는 곳이 아닙니다. 의학적 판단에 따른 위급환자가 우선하여 조치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불편하시더라도 우리 사회의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하여 시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이해를 온 마음 다하여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자 소개] 형광돌이.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프로듀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여러 해 재난취재를 하며 생긴 매너리즘에서 탈출하고자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다 간호학과의 문을 덜컥 열어버렸다. 간호직에 입문하여 카메라와 펜을 적당히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응급실 간호사가 되어서도 기록의 끈을 놓지 않고자 뛰어다니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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