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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코로나 시국에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자퇴 라디오를 진행하며


※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지금 그리고 코로나 이후, 이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라며 기획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어느새 12월이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과 얼마 남지 않은 2020년을 두고, ‘내년에 2020년 1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농담이 들려온다.


한 해 동안 나는 ‘코로나’가 들어간 수많은 뉴스를 접했다. 이 뉴스들 사이에서 청소년의 삶은 또다시 입시로만 이야기되었다. 온/오프라인 수업으로의 전환과 대학 입시의 변화로 재학생이 유리해졌는지, 재수생이 유리해졌는지, 어떤 부분을 챙겨야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글이 쏟아졌다.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사람들’의 꼭 필요하지 않은 외출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들려왔다. 주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개학을 했더니 놀러 다니더라, 학원 문을 닫아도 몰래 모여서 고액 과외와 수업을 듣더라, 굳이 식당과 카페에 나와서 마스크를 내리고 음식을 먹더라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자센터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 ‘자퇴 라디오’를 진행했을 때 모습. (출처: 하자센터)


코로나 시대의 학교 밖 청소년


나는 작년 여름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학교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등교해 밤까지 보내는 학교에서 내가 하는 일은 입시를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시험과 수행평가, 과제 사이 10분이 채 안 되는 쉬는 시간마저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 입시에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가 하는 활동은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뉘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현재의 삶을 돌보고 다른 일들을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 현실은 재난 상황에도 잘 드러났다. 청소년의 삶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입시에 초점이 맞춰졌다. 교육부가 온라인 툴 이용이 낯설거나 돌봄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을 먼저 등교시킨 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과 청소년에 대한 논의에서 무엇이 우선시되는지를 보여준다.


또, 입시 위주 사회에서는 재난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에 나가고, 과외를 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현재의 삶과 다른 활동들을 모두 ‘대학 간 다음에’로 미루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입시는 ‘내년에 2020년 1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문제다. 친구는 학원을 나가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대학에 합격한다면 걸리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왜 입시는 청소년의 삶과 건강보다 중요해졌을까?


청소년의 삶이 입시로만 이야기되며 밀려난 목소리들이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지 않는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일하는 청소년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 상황 속에도 입시를 준비하는 청소년이 학교나 학원에 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하고 여러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일상은 선택적인 일로 여겨지고, 가장 먼저 제한된다. 코로나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어들며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가장 일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 역시 청소년들이었다. 대부분의 청소년 센터가 휴관에 들어가고, 자원과 지원 체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은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 학교 밖 청소년 도움센터 원예 수업 사진. ©정지원 


학내 청소년만을 청소년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청소년 센터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밖에서 활동할 기반과 함께 다른 청소년들과 네트워킹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 센터에는 독서실, 책방, 회의실, 휴게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청소년이 공간적 자원을 가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센터에서 일상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활동을 하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경험한다. 코로나 시대에 청소년이 안전하게 이용할 공간이 제한되고 사회와 연결될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청소년 공간과 지원센터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이 공간들은 필수가 아닌 선택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며 가장 먼저 제한되었다.


학내 청소년만을 청소년으로 인식하는 환경은 학교 밖 청소년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왔다. 작게는 당연시된 ‘학생’이라는 호칭부터, 이번 공적 마스크 구매 상황에서 청소년증을 신분증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 것, 공모전이나 청소년 프로그램 대상에서 제외되고 각종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는 경우까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 수업’에 대한 논의는 학교 수업을 기본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나는 매 수업 시간마다 ZOOM에 접속했지만 네일아트, 도예, 공예, 악기 등 준비물이 필요하거나 춤, 비보잉 등 실기 지도가 필요한 수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 밖 청소년 센터의 수업은 사실상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학습지원 프로그램뿐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 센터에서 진학 도움을 받던 청소년들은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졌고, 상담을 해오던 청소년들의 상황도 불안정해졌다.


식비 지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 지역 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들에게는 미지출 급식 예산이 10만 원 상당의 모바일 쿠폰으로 지급되었다. 이어서 6월,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상품권 등을 지급하라는 권고가 있었지만, 우리는 9월에야 센터로부터 3일 내로 서울시교육청으로 식비를 지원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1시 반 즈음 온 문자였는데, 전화로 신청해야 하는 시각은 당일 4시까지였다. 또 스마트폰으로 지급받은 모바일 쿠폰에 식자재 배송 주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주문이 이루어지도록 지급된 학교 안 청소년과는 달리, 학교 밖 청소년들은 기간 내에 오프라인으로 방문해 상품권을 수령해야 했다.


이러한 절차로 인해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청소년 센터에 소속된 청소년들도 짧은 기간과 절차로 인해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꿈드림 센터, 학교 밖 청소년 도움센터 등의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청소년의 경우 사실상 지원에서 제외되었다.


코로나 이전, 학교 밖 청소년 인권에 관한 오프라인 부스 활동 모습. ©정지원


코로나19 상황에 제기된 여러 문제는 허술했던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체계를 잘 보여준다. 학교 밖 청소년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학교 밖 청소년을 고려하지 않고, 지원금과 프로그램은 재학생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비수도권의 경우, 학교 밖 청소년 센터와 프로그램 자체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청소년은 학교를 포함해, 어떠한 기관에 소속되지 못하는 상황에 있거나, 소속되지 않기를 원하더라도 교육권을 포함하여 청소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입시가 가장 시급하다는 말 아래 외면되어온 청소년의 다양한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


청소년의 공간


코로나19 상황 속 ‘젊은 세대’의 ‘불필요한 잦은 외출’이 문제적이라는 보도가 종종 눈에 띄었다. 그 보도들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카페나 식당, 거리로 나온 많은 청소년을 보았고, 나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카페와 식당, 거리에 청소년만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공간의 ‘젊은 세대’가 조명된 것은 청소년의 회의와 활동이 비청소년에 비해 비전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청소년의 학교, 학원을 제외한 외출은 불필요한 것으로 이야기된 맥락 속에 있다.


과연 청소년들은 이용 공간이 제한되어 안전해졌을까? 재난 상황 속 청소년들이 외출 외에 ‘안전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할 일이다.


코로나 시대의 다양한 취미와 안전한 외출이 유행처럼 SNS에 업로드 되고 있는 만큼, 자신의 공간과 충분한 자원이 있다면 헬스장이나 공원 대신 집에서 ‘홈트’를 하면 될 것이고, ‘홈 베이킹’, ‘홈 케어’ 심지어는 ‘홈 노래방’과 같은 새로운 취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을 포함하여 모든 사회 구성원이 넓고 방음이 잘되는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차가 있다면 안전하게 이동하거나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자동차들이 모여서 즐기는 야외 영화 상영이나 콘서트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공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은 이러한 자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나 모텔 등의 공간을 대여할 자격조차 가지지 못한다. 심지어는 청소년 센터가 휴관에 들어선 상황 속에, 청소년이 이용하는 공간들은 이용 대상인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더욱 제한되었다.


코로나 이후 청소년 센터가 문을 닫은 탓에, 카페에서 나의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을 이어갔다. ©정지원


결국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 상황 속 청소년의 공간을 ‘가정’과 ‘거리’로 양분하여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외출이 줄어들며 가정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정은 많은 청소년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지지 못했다.


최근 하자센터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자퇴 라디오>를 진행하며, 코로나 시대에 ‘갈 곳이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사연을 많이 전달받았다. 라디오 진행이 끝난 뒤에는 실시간으로 참여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라디오에서 소개된 활동 공간 정보를 요청했다. 초중고등학교 진로 탐색 시간에 코로나 상황으로 ‘공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을 때, 심지어는 학교 밖 청소년 센터에서도 학교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 입시를 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사회와 더욱 단절되는 집단은 어디일까? 과연 ‘불필요하게 잦은’ 외출을 하는 청소년들이 그것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외출부터 청소년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문제에서 청소년들의 선택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 코로나 상황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던 이들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안전한 장소와 자원, 공동체가 필요해


코로나19로 드러난 청소년의 삶의 문제들은 사실 이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수많은 논의를 거쳐 나온 방안들이 청소년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이유는, 이들을 배제하고 이루어진 논의이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 개학을 포함해 코로나19 상황의 교육에 대한 논의에서조차 당사자인 아동과 청소년들의 의견은 조명되지 않았다.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기까지 교육부는 교원과 학부모의 입장만을 조사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에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의 의견을 청소년이 아닌, 친권자(학부모)에게 묻고, 청소년의 삶의 선택권을 청소년이 아닌 친권자가 가져온 것의 연장선에 있다. 여전히 청소년은 야간 자율 학습과 은행 업무부터 진학, 자퇴 등 자기 삶의 문제들이 친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청소년 혼자 결정한 것은 유효하지 않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또한 가구 별로 세대주에게 지급되어서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수령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청소년을 배제한 결정들이 청소년의 삶을 섬세히 고려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교육부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어야 했다. 언제까지 청소년의 삶이, 당사자를 제외한 채 논의되어야 할까?


나는 학교에 다니거나 혹은 다니지 않으면서, 청소년인 지금 나의 권리를 누리며 안전하게 살고 싶다. 청소년의 삶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다양한 상상이 필요하다. 지금이 차별과 혐오가 드러난 시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시기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우리에게는 안전한 공간과 자원, 공동체가 필요하다. 청소년의 삶에 맞닿아있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정지원. 학교 밖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잘 살고 싶은 사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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