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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월세를 올리겠다고요?

<코로나 시대 살아내기> 자영업자로 코로나를 맞다 (은하선)


※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습니다. 지금 그리고 코로나 이후, 이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라며 기획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겠지


곧 크리스마스다. 믿기가 어렵다. 여전히 전 세계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시달리고 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적어도 작년 이맘때는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풍경 따위는 상상조차 못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 ‘왜 저 사람들 마스크 안 쓰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마스크가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몸으로 하는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일하는 내내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집에 와서도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될 것 같다는 파트너의 말을 들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왠지 씁쓸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겠다.


홍대 와우산 초입에서 작지만 귀여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은하선)


난 8년째 여성 파트너(이하 짝꿍)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같이 비건 식당과 섹스토이샵을 운영하고 있다. 경력 20년 차 요리사인 짝꿍은 요리를, 난 칵테일을 만들거나 서빙을 하고 전화를 받거나 계산을 하는 등 여러 잡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짝꿍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같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내가 강의를 가거나 방송을 하는 등 외부 일정이 있지 않는 한 거의 24시간 붙어있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일도 같이 한다.


성격이 급해서 생각하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나와 느긋하게 오래 고민하는 짝꿍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운다. 싸우다 보면 널 만나는 게 아니었다. 난 내일 당장 원룸을 구해서 나갈 거다. 가게는 네가 운영해라. 아니다. 네가 해라. 요리도 못하는데 무슨 내가 가게를 하냐. 라면만 팔라는 거냐. 라면 팔면 손님들이 좋아할 지도 모른다. 그럼 무슨 라면을 팔지. 채황을 팔까. 감자라면을 팔까. 라면 맛있겠다. 우리 라면 끓여먹을까. 이런 식으로 매번 불같았던 싸움이 귀결되는 바람에 8년이나 같이 살면서 일까지 같이 하는 생활밀착형 커플이 되었다.


다른 점도 많이 있지만 생활을 함께 하다 보니 같은 점도 많이 생겼다. 우리 둘의 커다란 공통점은 계획을 열심히 세우지 않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우리는 코로나의 문제를 남들보다 다소 늦게 체감했다.


매출 0을 찍은 날이 왔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들썩이기 시작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할 때도 ‘이러다 말 거야’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는 가게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재정 정비를 해야 될 때일지도 모른다며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밖에서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이고 되도록 집에서 마시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 얼마나 기특하고 현실적인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무모한 목표 따윈 설정하지 않았다.


엄마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며 사태가 심각해지면 마스크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질 수 있으니, 마스크를 틈틈이 여러 장씩 사두라며 신신당부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마스크가 중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입력했으나 일회용 마스크를 한번 쓰고 버리는 일이 영 찜찜했던 나와 파트너는 천 마스크를 여러 장 사서 빨아 쓰기 시작했다.


짝꿍과 나는 이렇게 같이 일도 하는 사이다. (은하선)


가게 매출 감소와 함께 달라진 또 한 가지는 가게의 외국인 손님이 확 줄었다는 점이었다. 홍대에 위치한 몇 안 되는 비건식당이라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손님을 포함한 외국인 손님들이 전체 손님의 반 이상이었고, 본의 아니게 나의 영어회화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던 와중이었는데 아쉽게도 헬로우 한마디도 할 일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비가 유난히 많이 오던 어느 날 우리는 가게 오픈 이래 처음으로 매출 0을 찍었다. 그날 우리는 전자책 리더기를 알아봤다. 요리책을 자주 보는 짝꿍은 흑백은 안된다며 컬러를 고집했다. 손님이 없는 가게는 심심하고 쓸쓸하다.


걱정이 됐는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중국인 손님을 받지 말라며, 중국인을 최대한 피하라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 가게에 원래 외국인 손님이 많이 온다. 엄마가 하는 말은 중국인 혐오와도 연결될 수 있다. 우리도 외국 나가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알 수 없는 아시안인데 왜 그러냐. 지금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 곳곳에서 아시안 혐오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엄마는 그래도 중국인을 받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언제나 일반 대중의 눈높이를 나에게 전달해주며, 온실 속 화초와 같은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시는 훌륭한 분이다. 엄마 말을 들었으면 우리는 중국인을 받지 않는 홍대 식당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을 텐데 이번에도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밖에서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이는 데 성공한 우리는 다행히 줄어든 매출로도 생활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예정된 강의도 취소되는 등 여러모로 지갑이 얇아졌지만 와인 마시던 걸 소주로 바꾸면 되는 정도의 감당할 만한 어려움이었다. 어려웠지만 여름을 대비해 에어컨도 하나 더 설치할 수 있었다. 손재주가 좋은 짝꿍은 마크라메를 사는 대신 직접 만들어서 테라스 인테리어 비용을 아꼈다. 식물을 좋아하는 짝꿍은 우리 집 베란다에도 무화과와 야자나무 등을 푸르게 가꿔놓았다. 나는 뭘 했냐고? 정말 예쁘다며 박수를 쳐줬다.


또 다시 가족회의 그리고 시작된 ‘배달’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 정말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그러나 역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전광훈 교회발 확산이 시작된 것이다. 오 마이갓. 오 주님. 마스크를 쓰고 교회에 들어갔으나 찬송을 부를 때는 마스크를 벗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교회 예배를 막는 것은 주님에 대한 모욕이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며, 천주교 신자인 나는 성호를 긋고 욕을 하며 기도를 했다. 주님,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욕은 생략.


매출이 말 그대로 반으로 줄었고 우리는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됐다. 뭘 할 수 있을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고로 우리 집에는 복순이와 까미라는 고양이 둘이 살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들어가니 나와 같이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장님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역시 배달이 답일까요. 배달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배달 용기 어디서 사죠. 카페에 올라와 있는 많은 게시글이 배달 관련 글이었다. 배달?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2018년 영업신고증을 받고 기뻐하며 찰칵 (은하선)


우리 가게는 정말 작은 가게다. 가게 전체 수용 가능 인원이 13명 정도다. 가게가 작아서 한 팀당 최대 4-5명까지만 받고 있고,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는 웨이팅이 생기는 경우도 잦다. 짝꿍 혼자서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요리를 하는 관계로 주문이 두 테이블만 있어도 그다음 손님이 음식을 오래 기다리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우리 가게 상황에서 배달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포장 용기 문제도 간과하기 어려웠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지구에 나까지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직접 가지고 오시는 손님에게만 포장을 해드린다는 방침으로 가게를 운영했다.


그런 우리에게 배달을 시작하는 일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아무리 친환경 포장 용기를 쓴다고 해도 쓰레기가 나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친환경 포장 용기는 일반 포장 용기보다 가격이 2배가량 비싼데 괜찮을까. 일회용 수저는 친환경으로 구비하는 게 어려운데 어떡하지. ‘배달의 민족’ 리뷰 관리로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닐까. 시작했는데도 매출이 늘지 않으면?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부에서는 가급적 식당에서 먹지 말고 포장을 하거나 배달을 하라는 지침을 매일 같이 뉴스를 통해 전달했다. 코로나가 올해가 아닌 내년 어쩌면 내후년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배달과 포장을 시작하기로 했다. ‘배달의 민족’에도 입점 신청을 했다. 워낙 많은 업체가 신청을 해서 적어도 2주 이상 걸린다는 사연을 전달받았을 땐 우리가 너무 안일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요즘 누가 음식점 하면서 배달을 안 하냐며 집에 돈이 많냐고 물었다. 같은 말을 해도 유난히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차여차 배달 어플 입점에는 성공했지만 배달 대행업체 선정도 쉽지 않았다. 어떤 업체는 코로나 이후 배달 물량이 너무 많아져서 당분간 신규 업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업체에 문의 전화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게 오픈 2년 차에 이런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웃기면서도 슬펐다. 2년은 역시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드러나는 것들


우리가 혼란의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가게 재계약 날짜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지만 설마 이런 상황에서 월세를 올리자고 하겠어라며 무한 긍정 에너지를 내뿜던 어느 날, 건물주가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분위기가 쌔했다. 월세를 올리겠다는 소식이었다.


월세를? 올리겠다고? 건물주는 이게 다 중국인들 때문이라며 자기는 올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는 익숙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바로 그 화법을 사용했다. 올리겠다는 금액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눈치챈 나는 납득할 수 있는, 법의 테두리가 허용하는 수준의 금액을 말씀드린 후, 자영업자를 위한 눈물그만상담센터(농담이 아니라 센터 이름이다)에 글을 올려 상담도 받았다.


월세를 올리겠다는 말을 할 때만이라도 “아가씨”가 아니라 “사장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사장이어도 사장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비운의 운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젊은 여자를 사장이라고 부르면 엉덩이에 뿔이라도 생기나 보다. 어찌 됐건 다행히도 월세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짝 올린 상태로 재계약을 하는데 성공했다. 건물주는 자기가 만든 법도 아닌데 지켜야 된다면서 불만을 내보였다.


배달과 포장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가게가 활력을 찾았다. 코로나가 살짝 주춤해진 시기에는 가게에 와주시는 손님들도 다시 늘어났다. 단골손님들이 오랜만이라며 찾아주실 땐 그 어느 때보다 반갑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배달 어플의 리뷰를 보며 하루의 피로를 잊는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 중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한다는 건 복이다. 여전히 가게 일은 쉽지 않고, 짝꿍과 난 여전히 자주 싸우고, 코로나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인생이 흥미롭다. 포장 용기 증가로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는 뉴스를 본 날, 유난히 바쁜 주말을 보내고 파김치가 된 채로 집에 돌아와 배달 어플 속 귀한 비건 음식을 찾아 주문하며,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인간이 사라져야 친환경인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배달어플에 올라온 리뷰를 읽으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일인지 여전히 난 잘 모르겠다. 사는 건 힘들고 재미있다. 이태원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 보도로 내 직장 동료가 호모포비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사건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들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코로나 이후 조용해진 우리 가게에 방문한 귀한 손님으로부터 동성애 혐오 발언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주의를 드렸을 텐데, 망설여졌다. 결국은 말씀드린 후 사과를 받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마음의 여정이 험난했다.

 

모두가 살기 힘든 현실 속에서 약자를 향한 혐오는 확산되고 또 드러난다. 문제의 원인을 특정한 누군가에게 돌리는 건 쉬운 일이다. 문을 닫은 어느 가게 앞에 붙어있던 메모가 떠오른다. “우한 폐렴”으로 인해 당분간 문을 닫습니다.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혐오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물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필자 소개]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 홍대 와우산 초입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 따뜻한 햇살과 바이브레이터를 좋아한다.



한국계 미국 이주민 '성'의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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