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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 올리는 호소의 글 황지우 총장 사퇴, 한예종의 구조조정 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22일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
5월 19일, 내가 재학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총장이신 황지우 시인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전부터 있어왔던 사퇴 압력을 황총장이 버텨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6주간의 표적감사 끝에 공금횡령(3년간 800만원의 영수증 미처리)과 주무부처의 허락 없이 해외여행을 했다면서 총장직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학생들은 현재 학교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문화계 뉴라이트 인사들로 만들어졌다는 ‘문화미래포럼’(상임대표 정진수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의 직접적인 공격대상이 된 이론과(科) 쪽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이론과(科) 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학교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론과(科) 폐지를 시작으로 결국 학교를 공중분해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지난해 촛불 이후 ‘미운 털 박힌’ 한국예술종합학교
나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용기를 내어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한예종이라는 학교를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특이하게도 ‘입시미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같은 것을 무한반복 그려서 일정 기준에 맞게 ‘잘’ 그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반미술대학 입시의 평가기준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매 학기 그렇게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내가 사립미대를 다닌다는 것은, 학자금융자를 매 학기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미술공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예종 학생들이 만든 웹툰 "ART IS OUR POWER" 중 일부
막상 들어와보니 한예종은 그냥 학교였다. 대신, 진짜 학교였다. 졸업장이 필요해서 가는 학교가 아니라, 정말로 배우고 싶어 들어가는 학교. 학생을 소비자로 만들고 장사하는 사립학교들과 달리,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학교. 그래도 새 학기마다 배움에 설레고, 수강신청기간에 듣고 싶은 수업이 너무 많아 고민되는 학교.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가 얼만큼인지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학교였다.
물론 완벽한 학교는 아니었다. 너무 바빠서 세상을 돌아볼 여유가 없게 만들기도 하고, 국립이란 이유로 ‘성과’를 내야 하는 위치에서 ‘수상내역’이나 ‘대박’ 난 작품을 자랑하느라, 소소한 것들이 묻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예종은 학생도, 교직원도 자신의 작업과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온몸을 바쳐 행동하기 때문에 자정능력 있는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촛불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에게 한예종은 눈에 미운 털이 박혀 ‘구조조정’ 위기에 놓이게 됐다. 문화계 보수인사들 입에서 ‘한예종은 문화예술분야의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예언한 것처럼, 문광부의 표적 감사가 있었고, 황지우 총장이 물러났다.
정권에 대한 저항, 예술학교다운 축제의 장 펼쳐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충열
목표는 하나였다. 교권침해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많은 의견이 나왔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 즉 ‘색깔론’에 휘말려 보수인사들이 주장하듯 ‘좌파학교’임을 증명하는 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경계심이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했으나, 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데 회의를 하는 사이, 언제 왔다 갔는지 알 수 없는 기자에 의해 왜곡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와있었다. 좌파교수들이 자신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학생들을 방패로 사용하고, 학교가 없어질 거라 겁주어 대책회의를 주도했다는 내용이다. 언급된 교수의 얼굴조차 모르는 우리, 현 사태에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려는 학생들을 졸지에 주동자에 의해 조종되는 하수인 격으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그 기사에서는 ‘투쟁’, ‘외부선전’ 등의 단어는 순수한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했다.
다음날 22일 오전 11시, 비상대책위 발족식이 연기과 학생들의 퍼포먼스로 시작됐다. ‘예술’학교 학생들답게 각자 전공을 살려 참여했다. 서사창작과 학생들은 릴레이성명서를 써 붙였고, 연극원과 전통원은 공연과 퍼포먼스를 계속했으며, 미술원은 피켓을 만들고 그림을 붙이고, 영상원은 이 과정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예술학교다운 축제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예술가로서, 기성세대의 잘못을 지적할 줄 아는 젊은이로서 땅에 발 딛고 서기 시작한 것이다.
문광부 앞에서는 1인 시위가 릴레이로 벌어지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나를 믿으라, 학교 안 없앤다’, ‘고생하지 말고 돌아가 공부나 해라’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마치, 작년의 촛불이 소수 주동자에 의해 미국소 먹으면 바로 광우병 걸려 다 죽는 줄 알고 뛰쳐나온 사람들인 양 보도하던 보수언론의 태도와 비슷하다.
한예종 학생들의 움직임은 단지 ‘학교가 없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학생이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발언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가를 기능인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에 대한 항의인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의 영향력,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어야
예술의 생명인 표현의 자유와, 그 영향력에 대한 관심을! ©이충열
한예종의 압박과 위기가 이 큰 사건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겠다. 큰 사건이 터져 여론의 눈치를 보게 된 현 정권이 압박의 줄을 느슨하게 할지, 아니면 큰 사건에 집중하는 사이 작은 학교 하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요리해나갈지.
며칠 전, 교내 클럽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도서관 쪽에 검은 띠 두르기 프로젝트 하신 분을 찾습니다. 그게 사태관련 항의표시면 관련이 없는데 노무현 대통령서거 애도의 뜻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학교 측에서 비상대책위원회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재 한예종의 현실이다. 이제 졸업을 앞둔 학생으로서, 가난한 늦깎이에게 예술을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학교에 깊이 감사하는 학생으로서, 한예종이 다른 사립대학들처럼 서열과 권력에서 우위를 차지하여 보수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예술로 경쟁한다는 발상에 경악하는 예술가로서, 예술의 생명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 싶은 국민으로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드리고 싶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예술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현 정권에서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예술가뿐 아니라 온 국민이 깨닫고 관심 가져주시기를!
또한 한예종의 위기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경험하고 예술가로서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한예종의 많은 학생들이, 만약 학교상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 하더라도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 문 닫고 눈 가리고 귀 막는 일이 없기를. 이충열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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