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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편견을 통해 노 전대통령 평가절하
 
 
동아일보는 5월 27일, 덕수궁 대한문 앞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초반-30대 초중반의 여성’’이라며, 그 이유를 추적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성차별적인 편견에 근거해, 조문에 참여한 여성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盧전대통령 조문객 중 신세대 여성이 많은 이유>라는 제하의 기사는 여성조문객이 많은 이유에 대해 가장 먼저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비극적 상황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여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너무도 드라마틱한 상황 자체가 여성에게 강하게 어필한다는 얘기다.”
 
‘비극에 대한 공감’ 자체는 나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기사의 문제점은 여성들의 조문을 오로지 ‘감성적인 행동’으로만 한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데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시민분향소에는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일다 www.ildaro.com

기사는 앞서 주장에 “그의 정치적 이력이나 업적과 무관하게 비극적 결말에 연민을 느껴 한참 눈물을 흘렸다”는 한 시민의 말을 근거로 들면서, 여성들이 분향소까지 찾게 되는 행동의 이유가 다분히 이미지나 감성에 치우쳤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여성들의 정치적 행동은 감성적?
 
다음으로 꼽는 이유는 이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부채질한다. 여성조문객이 많은 또 다른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친화적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친화적’이라. 언뜻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는 말인가 싶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밝히는 ‘여성친화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DJ나 YS는 군사정권에 저항한 ‘남성적 이미지’”이었던데 반해,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치적 역경에 맞닥뜨렸을 때 아파하는 모습, 혹은 모자라는 모습을 직접 드러내면서 대중과 감정적으로 교류한 ‘여성 친화적’ 지도자였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동아일보가 말하는 여성친화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통념상 ‘여성적’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다. 즉, 기사의 논지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빈소를 찾는 많은 이들 중 상당수는 여성이고, 그들은 주로 연민이나 감성적인 이유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문을 오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기사는 ‘여성들은 정치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이미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성차별적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저항=남성’, ‘감정=여성’이라고 누가 그랬나? 그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편견에 불과하다. 한 사람을 두고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라는 평가 내리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동아일보 기사는 그러한 평가를 내리는 근거조차 허술하기 그지없다.
 
언뜻 ‘감정적 교류’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듯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역경에 부딪히고 아파한다거나 모자란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군사정권에 저항’이라는 말과 대비시켜 ‘유약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에 저항’했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노 전대통령 서거로 수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추모하며 고인의 삶과 한국정치를 돌아보고 있는 이때, 동아일보 기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품고서 이를 내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까지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 모욕적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여성들이 많은 ‘진짜 이유’
 
동아일보 기사에서 보도하고 있는 대로, 실제 대한문을 찾는 젊은 여성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많다. 그렇다면 덕수궁 대한문 분향소에 여성들이 많이 찾는 ‘진짜’ 이유는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촛불을 밝힌 이들이 누구였던가를 돌이켜보면 될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라는 현실적인 계기를 통해 여성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촛불’ 이후로 각 지역에서 확산되는 자치의 흐름들을 눈여겨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를 주도하고 이어나가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보라.

5월 27일 저녁 정동극장 일대에서 열린 시민추모제에서 많은 촛불이 경건하게 타올랐다. ©일다 www.ildaro.com

동아일보는 기사 첫 부분에서 여성들의 조문행렬이 “‘여성은 덜 정치적이다’, ‘젊을수록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정치판의 통념과 대치되는 현상”이라고 전제하면서, 결과적으로 정치판의 통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강화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것이 기사의 가장 핵심적인 오류다. 그 ‘정치판의 통념’이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기사는 놓치고 있다.

 
또한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그 동안 여성들이 정치적인 주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였던 것은, 그만큼 정치가 여성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반영하지 못했고 여성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뼈아픈 반성이 요구되는 일이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시민들에 의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지형을 못 읽는 것인가, 안 읽는 것인가, 아니면 읽고도 눈감는 것인가.
박희정 기자여성주의 저널 일  [관련 기사] ‘자치의 촛불’ 번져간다(200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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