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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변화는 어디에나 있다

성교육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냐고?

 

2년 전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여했던 교장이 강의 중 이렇게 따져 물었다. 

“원론적으로는 강사분 말씀이 다 맞지만, 이렇게 교육을 한다고 사람들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네,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변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만 해도 많이 변했고요.”

 

“그래서, 그 마을에는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앞으로 한 건도 안 일어날 거라고 장담하십니까?”

 

순간 기가 막혔다. 교장은 재차 장담해보라며 추궁하더니 강의 중간에 자리를 떴다. 아마도 평생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해왔을 테고 그 경력의 끝에서 최고관리자 위치까지 오른 사람이 왜 이 교육의 효과에는 회의를 품고 적의를 보일까?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도덕 교육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고, 폭력을 행사하면 인권 교육이 쓸모없어지는 것인가?

 

그가 내 강의 내용에 동의한다고 한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동의했다면, 교육의 효과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그는 질문을 가장한 채 자신이 기존의 차별적인 젠더 질서에 동의하며,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셈이다.

 

이렇게 성차별과 성폭력의 존속을 믿고, 심지어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을 교육 현장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육은 계속되어야 하며 나는 그 교장과 다른 의미에서 교육의 효과를 믿는다. 사람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공기는 바꿀 수 있다고. 성교육 활동의 발자국들이 그 증거이자 믿음의 씨앗이 되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준 마을 성교육

 

처음 성교육 강사 활동을 시작하며 누구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다, 내가 사는 지역의 청소년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시작했다. 마을에서 페미니즘 캠페인을 시작한 지 2년째라, 교육이 동반되면 성평등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청소년 교육은 학교와 협의해 수업으로 들어갔는데, 주민 대상 교육은 누가 왜 올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 2017년 문화기획달에서 처음 기획한 마을 성인주민 대상 성교육 현장.   ©문화기획달

시범적으로 연 첫 회에 마을에 사는 여성주민 십여 명이 모였다. 젠더를 주제로 한 성교육 시간에 참가자들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농촌 마을에 살며 겪고 느낀 성차별 경험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성교육에 참여하며 새롭게 느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현실에서 바꾸어 풀어나가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동안 마을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행사를 할 때 아빠들이 공연 준비를, 엄마들이 음식 준비를 맡아왔는데 성역할을 바꿔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얼마 후 성교육에 참여한 어린이집 양육자들의 제안으로 실제로 행사가 그렇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이 현실과 만날 때,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누군가 나의 불편함에 공감하고 그에 응답해줄 때, 변화는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일어났다. 마을 안에서 이런 시도와 경험이 쌓이면 성역할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른부터 아이까지 함께 배울 수 있다. 경험과 실천은 강의에서 머리로 채울 수 없는 영역의 공부인 것이다.

 

여성주민들로만 이뤄진 성교육이 아쉽다는 의견이 솔솔 들려와, 얼마 후에는 성인남성 대상 성교육을 별도로 열었다. 기존에 페미니즘 공부모임을 함께했던 남성주민이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첫 회와 마찬가지로 ‘젠더’를 주제로 하여 성교육을 진행하면서 성과 성고정관념에 대한 서로의 인식을 살펴보고 남성으로서 자신의 생각과 삶을 돌아보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또 마을 안에서의 ‘젠더 그물망 찾기’ 작업을 해보았는데, 젠더 관점으로 볼 때 마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공간이 어디인지, 그곳을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 토론하는 활동이었다. 각자의 집에서부터 마을회관, 회의 장소,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우리가 머무는 곳 어디도 이분법적 젠더의 규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날 남성 참가자들은 일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의 약속을 하나씩 만들었고, 페미니즘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후속 모임을 꾸준히 진행했다. 성교육을 통해 마을 남성들과 성평등에 관해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 2017년 문화기획달에서 개최한 남성을 위한 섹슈얼리티 워크숍 현장.  ©문화기획달

누군가 들어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내가 마을에서의 성교육 사례를 소개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건 특수한 경우라고 선을 긋는다. 정말 특수해서 그렇다면, 이곳은 무엇이 달랐을까. 여기엔 말할 수 있는 장이 열렸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뿐이다. 성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나는 어린이집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몰랐고, 이웃 남성들도 성차별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몰랐던 세계를 배웠고, 듣는 사람들이 있어 고립감과 냉소를 떨치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성을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거나 무엇이 가장 좋은 성교육인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교육이 서로를 통해 ‘일어날’ 때 우리 삶에 가장 가까워지고, 거기에 변화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꾸준히 목격했기에,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에 대해 말하고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믿을 뿐이다.

 

몇 년 전, 백 명이 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혼자 손을 들고 용감하게 이야기한 어떤 여성이 기억에 남는다. 공공기관의 성인지 교육 시간, 마을에서의 페미니즘 활동과 이웃 간의 연대에 대한 강의를 마무리하고 질문을 받으려던 참이었다. 어떤 청년 여성이 손을 들더니 ‘말하기’를 시작했다. 마을에서 활동하며 성희롱 당했던 경험, 조직 내의 성차별 관행, 젊은 여성의 외모를 대상화하는 문화 등을 하나씩 나열하며 자신과 같은 청년 여성들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성문화가 바뀌어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강의가 끝날 거라 생각하고 짐을 싸던 그의 동료와 상사들은 어느 순간부터 동작을 멈춘 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의 ‘말하기’가 끝나고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 마을의 ‘말하기’는 다른 지역의 ‘말하기’로 이어졌고, 그 소중한 목소리를 통해 그가 속한 지역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한 뼘씩 나아간다.

 

청소년 성폭력 예방교육을 할 때 내가 가끔 질문하는 것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친구가 되고 싶나요? 들어주는 친구? 아니면 침묵하게 만드는 친구?”

 

모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들을수록 우리는 내 몸 바깥의 세계와 접촉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불러오는 배움이고, 성교육이 가르칠 수 있는 윤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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