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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송…국가면제 법리와 ‘여성’인권의 충돌
1월 8일,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91년 김학순의 증언 이래 약 30년 만에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법정에서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았다. 이 글은 이번 판결로 부각된 ‘국가면제’와 ‘여성’인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위안부’ 소송의 판결이 갖는 의미를 다루고자 한다.
▲ 3월에 재개될 ‘위안부’ 소송의 원고 이용수 님과 소송대리인 단장 이상희 변호사의 모습 |
‘위안부’ 소송의 역사, 이번 판결의 경과와 배경
1991년 12월, 김학순을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세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재판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소송은 모두 원고 패소로 귀결되었고, 이로써 일본의 법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길은 사실상 봉쇄되었다.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리고, 2013년에 ‘위안부’ 피해자 12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조정신청서를 수령하지 않았고, 2015년에 열린 첫 조정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타결되었다.
원고들은 2016년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일본 정부는 3년째 소장 송달을 수령하지 않고 법적 절차에는 응하지 않은 채, ‘국가면제’를 이유로 소송이 각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한국 외교부에 전달했다.
그리고 지난 1월 8일,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두 건의 손해배상소송 중 한 건에 대해 한국의 서울지방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 또 한 건의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 1월 13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판사가 선고를 미뤘고, 변론은 3월에 재개된다.(소송대리인 단장: 이상희 변호사)
‘국가면제’ 법리의 진화: 국제법의 변화 견인하는 국내법원들
이번 판결을 전후로 언론은 ‘국가면제’를 떠들썩하게 다루었다. 국가면제란 ‘국내법원이 외국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즉,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절대적인 규칙이었던 국가면제는 더 이상 고정불변의 가치가 아니다.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상행위 예외, 불법행위 예외, 인권 예외가 바로 그것이다. 상업적 거래행위와 같은 비주권적 행위, 외교관의 교통사고와 같은 불법행위, 법정지국(法廷地國)의 국내재판이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의 마지막 구제 수단인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의 관행이 생기면서 ‘상대적’ 국가면제 개념이 만들어졌다. 이번 재판은 위의 예외들 중 ‘인권 예외’에 해당하는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가면제에 관한 유럽협약, 유엔 국가면제 협약,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상대적 국가면제’ 법리를 채택하여 입법화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대법원은 국가면제를 부인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국가면제가 ‘상대적 국가면제’로, 더 나아가 국가면제 적용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법리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법상의 변화를 견인해 온 것이 다름 아닌 각국 국내법원의 판례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러한 판례들이 국제인권규범을 만들어나가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 민사부 판결문 28쪽. “국가면제 이론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다.” ©심아정 |
이탈리아 대 독일의 사례, 페리니 사건이란?
이번 ‘위안부’ 소송의 판결을 둘러싸고 거의 모든 언론사가 ‘국가면제’와 함께 ‘페리니 사건’을 언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독일군에 붙잡혀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한 이탈리아의 루이지 페리니(Luigi Ferrini)가 1998년 이탈리아의 아레초 지방법원에 독일을 피고로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국가면제로 소송 각하를 주장했다. 1심과 피렌체 항소법원에서의 2심을 거쳐 원고는 패소했지만,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독일의 행위가 강행규범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페리니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이에 불복하여 2008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이탈리아 대법원과는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이탈리아 정부와 대부분의 하급심 법원들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따랐지만, 피렌체 법원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판단을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독일의 손을 들어주었던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뒤집는다. 국가면제를 이유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탈리아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존엄성 보호’ 및 ‘재판받을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가면제 원칙에 대하여 ‘인권’을 근거로 한 예외를 설정한 셈이다. 이는 이번 ‘위안부’ 소송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고, 원고 대리인단은 이 부분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 전문가 조시현은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 전문을 번역하고 해제하는 작업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판결 자체가 가지는 역사성과 파급력, 그에 따른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는 법학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판결문이라는 특수한 문서에 대해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접근이 조금은 쉬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해제의 초점을 두었다.”(「국가면제와 피해자의 인권에 관한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판결 제238호의 해제와 번역」,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법적책임』 여성가족부, 2018년)
또한 이번 ‘위안부’ 판결의 의미는 “피해자의 권리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확보되어야 하고, 사법적 구제의 길이 국가면제와 같은 법리로 봉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도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젠더기반 폭력인 ‘위안부’ 소송은 페리니 사건과는 달라
페리니 사건에서처럼 가해국의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자국에 가해국을 피고로 소송할 경우, ‘국가면제’의 원칙과 피해자의 ‘인권’이 충돌하게 된다. 이번 ‘위안부’ 판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가면제 대 보편적 인권’이라는 대립구도를 말한다. 그러나 페리니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안부’ 소송과는 다른 문제 지형에 놓여 있다.
첫째,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계는 식민지와 종주국의 관계가 아니었다. 둘째, 페리니 사건은 ‘여성’의 인권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사례에는 식민지적 관점과 젠더적 관점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안부’ 판결과 다른 층위에 있다. 젠더 관점에서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식민지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이번 판결의 지평도 달라지지 않을까.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사들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틴 친킨은 ‘위안부’ 소송이 여성과 여성아동을 상대로 한 젠더기반 범죄이자 성폭력 사건임을 강조하면서, 페리니 사건은 성폭력이나 성노예제를 다루지 않았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도 국가면제에 관해서는 성이나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를 다룬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페리니 사건에서 젠더 문제가 고려되지 못한 이상, ‘위안부’ 소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친킨은 국가면제의 법리에서 상업적 행위를 고려하여 재평가하고 예외를 두었듯이, 성평등과 성범죄에 대한 국제법이 발전해왔다는 것을 고려하여 ‘젠더의 렌즈를 통해서도 국가면제의 법리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서울지방법원에 제출된 친킨 의견서 No.54)
성폭력에 대한 ‘불처벌’과 ‘면책’이 끊어지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폭력을 의미하는 ‘젠더기반 폭력’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개념화하여 차별의 한 형태로 정의한 바 있다. 물리적/정신적 또는 성적 피해나 고통을 가하는 행위와 위협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여성’을 생물학적 범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성에 대한 젠더기반 폭력의 금지는 국제관습법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폭력에 대하여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밝혔다. 친킨은 젠더기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러한 폭력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전제하에 국가책임과 배상책임에 관한 법리가 발전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강간 및 다른 형태의 성범죄는 이제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적으로 ‘인도에 반하는 죄’를 구성하게 되었다.(친킨 의견서 No.32).
이 지점에서 ‘위안부’ 소송은 강제징용 재판과도 다른 결을 갖는다. 원고들은 “그래야만(승소해야만, 그리고 일본이 판결을 수용해야만) 전쟁이 끊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단언은 피해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 “그래야만 젠더기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한 ‘비/불처벌’과 ‘면책’이 끊어진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이 끝나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위안부’ 여성들의 마음과 피해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n번방 피해자들의 마음이 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필자와 ‘위안부’ 세미나를 함께 하는 동료 이지은이 했던 말이다. 지금-여기를 살아내는 여성‘들’에게 ‘위안부’ 판결이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과거사나 한일관계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상의 안전한 삶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젠더적 관점으로, 국가면제의 부당성 주장하기
친킨은 의견서에서 인도에 반하는 죄로서 성노예, 강간, 인신매매 사건에서 국가면제가 적용되면 ‘불처벌’과 ‘면책’의 효과를 가져와 ‘젠더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므로, 국가면제 원칙은 오늘날 더 이상 법적으로 유효한 주장이 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젠더적 관점 없이는 국가면제가 전시의 남성들의 행위나 국가들 간의 이해관계만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제껏 국가면제에 관한 법리는 상업적 행위와 같은 일부 남성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적용된 반면, 여성인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된 바 없다. 따라서, 이번 소송에서 젠더적 관점으로 국가면제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친킨 의견서 No.60)
이번 소송은 어떤 면에서는 김학순의 증언 이후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전 세계 여성들의 분투가 겹겹이 반영된 국제법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3월에 재개될 재판의 원고 대리인단 류광옥 변호사는 “재판부가 국제법으로밖에 규제가 안 되는 전시 성폭력의 문제를 국내법정에 가져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여성 평화 안보 결의 |
2000년 이후로 유엔안보리에서 채택된 여성과 평화 안보 관련 결의는 무려 10건에 이른다. 주요 의제는 성폭력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특히 비/불처벌의 관행을 종식시키고 집단학살, 여성과 여성아동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폭력을 포함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기소책임을 모든 국가가 지고 있음을 강조한 결의 제1325호(2000년)는 이러한 범죄가 사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결의 제2467호(2019년)에서는 국가의 관할권에 초점을 맞추고, 회원국들에게 분쟁 및 분쟁 후 성폭력에 대한 수사와 기소,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법접근성 등을 강화하도록 촉구했다.
국내법원들의 판례가 쌓여, 국제인권법적인 측면에서 국가면제에 관한 법리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번 '위안부' 소송의 승소는 일견 고립되어 보일지 몰라도 ‘여성’인권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송'의 승소가 ‘겨우 시작’이긴 하지만 ‘매우 선구적인’ 의미를 갖는 것 아닐까.
이는 ‘국가적/외교적으로 당혹스럽다’라며 난색을 표할 문제도 아니고, ‘국가적인 성취’로 횡령되어서도 안 될 문제다. 이번 판결은 국적을 넘어서 젠더기반 폭력, 성폭력에 맞서 싸워온 '여성들의 기쁨'으로 말해져야 한다. 이제는 사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한 소송이 끝났을 때, '위안부' 운동의 향방은 어떠해야 하며, 이 문제가 어떻게 인식되고 다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또한 시작되어야 할 때다.
이상희 변호사, “피해자들은 국제질서를 만드는 주체”
위와 같은 관점을 견지하면서, 3월 재개될 ‘위안부’ 소송에서 변론을 맡은 이상희 변호사와 나눈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이상희 변호사는 한일과거사 관련 소송 외에도 이른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여성 피해자 재심을 담당했다.
▲ 3월 재개될 ‘위안부’ 재판에서 원고 대리인 단장을 맡은 이상희 변호사. |
Q. 원고들은 이제 평균 93세의 고령이 되었다. 이번 승소 판결에 대해서 원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원고들의 의견은 그분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유추해 봐야 한다. 판결문의 제일 앞에 나오는 ‘주문’만 보면,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고 되어있는데, 금전 문제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강제집행’ 여부에 온통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강제집행을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판결문에는 위안부 피해사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고, 어떤 점이 위법한 것인지 조목조목 정리되어 있다. 이것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면 지금까지 30년 동안 원고들이 주장해 왔던 사실의 인정과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원고들은 그래야만 ‘전쟁이 끊어진다’고 말한다. 이번 판결로 문제가 끝났다고 보는 게 아니라, ‘법원이 이렇게 판결을 했으니 이제 일본이 이어받아라’하는 관점으로 보는 것 같다.
Q. 이번 소송에서 지금까지 어떤 원고도 ‘강제집행’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2018년 강제징용 재판과 ‘위안부’ 소송을 연속선상에서 다루면서 강제집행을 할 것인지 여부에 치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보도는 곧장 ‘사법부가, 혹은 위안부 ’소송‘이 “한일관계를 파탄낸다”는 주장으로 직결된다. 이런 주장들 때문에 이번 소송에서 가장 부각되어야 하는 것들을 못보고 있는 것 아닌가.
“강제집행에 대한 논의는 ‘강제징용 재판의 트라우마’라고 일컬어진다. 언론이나 한일 양국정부는 ‘위안부’ 소송이나 강제징용 소송이 으레 한일관계에 균열과 파탄을 가져올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 위에 서 있다. 한일관계가 경색된 건 강제징용 판결 이후 강제집행을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과 일본의 기자들이 강제집행 가능성을 물을 때마다, 일본 정부가 이 판결의 주문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지, 불이행을 전제로 강제집행 여부나 묻고 있냐고 반박한다. 원고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을 끊어내는 것, 그러한 목적으로 일본 정부에게 사실 인정과 공식적 사죄를 바라는 것이다.
이 판결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온전한 ‘시민권의 확보’라고 생각한다. 법이 추상적인 인권 개념에 숨을 불어넣어야만 비로소 인권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인권이 추상적인 언어에 불과하고 정작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 ‘재판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입장이다. ‘재판청구권’과 ‘배상청구권’은 다르다. ‘배상청구권’이 있어도 일본 법원에서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재판청구권’이 없다면, 원고들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 한국 법원에서조차 재판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원고들은 시민이지만 시민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이번 판결로 원고들은 비로소 법원에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온전한 시민이 된 것이다. 해방 이래 ‘위안부’라는 낙인 속에서 사실관계를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살다가, 뒤늦게 말했지만 규범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는데, 이번 판결을 통해서 그러한 보호가 이루어졌다.”
Q. 이탈리아 대 독일의 사례와 관련하여 국제사법재판소는 무력충돌 수행과정에서 ‘국가면제’를 적용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불법점령)라는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이지 무력충돌 수행과정(전쟁, 내전 등)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탈리아와 독일의 관계는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와 다르며, 국제사법재판소도 “법원의 재판은 당사자 간에 또한 그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갖는다”고 했으니, 이 판결이 한일 사이의 소송에 직접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애초에 국제사법재판소를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대법원에서 세계 최초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고, 독일이 이것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서 판결이 뒤집혔다. 그래서 사실 국제사법재판소가 달갑지만은 않다. 국가면제가 우선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이후에 이탈리아 정부는 국제질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으니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며 판결 이행을 위해 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으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결국 우리는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주목한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주류 국제법 학자들의 의견을 따르고 있고, 그래서 문제도 많다. 주목해야 할 것은 3명의 소수의견이다. 주류의 국제법 학자와 소수의견 사이의 간극, 그리고 소수의견에서 어떤 근거가 제시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왜냐면 언젠가 그들이 주류가 될 테니까.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의견에서는 이탈리아 사례를 무력충돌을 전제로 하여 판결을 했는데, 이번 판결문에서 판사(서울중앙지법 민사 34부)도 ‘위안부’가 놓인 당시 상황은 무력충돌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무력충돌 상황에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을 의식한 것 같다.”
Q. 이번 판결로 원고들이 온전한 ‘시민권’을 확보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라는 표현으로 바꿔 말해보고 싶다. 시민권은 시민이 아닌 사람들을 뒷전에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권리란 어떻게 가능할까. 판결문을 읽다가 이와 관련해서 생긴 질문이 있다. 판결문 28쪽에 보면, “당시 한반도는 전쟁의 장소가 아니었다. 따라서 일본제국이 ‘위안부’ 동원을 위하여 원고 등을 기망, 납치, 유괴한 행위는 ‘무력분쟁 수행과정 중’에 발생한 것이라도 보기 어렵다”고 언급되어 있다. 식민지 조선은 무력분쟁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제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혹여 중국, 동남아시아, 남양군도 등 태평양전쟁의 전선에서 즉, 무력분쟁상황에서 성노예로 고초를 겪은 점령지 여성들의 권리를 구제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위안부’ 경험을 가진 여성들 간의 분리를 넘어선 법적인 논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번 판결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한 것은 ‘강행규범’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행규범’은 국제법상 상위 절대규범으로서 어떠한 국가도 위반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법이다. 그러나 국제법에서는 전쟁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기 때문에 무력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망, 상해 등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전쟁행위라 하더라도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강행규범’ 위반으로 본다.
그래서 무력분쟁의 상황에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요건이 점령지 여성들을 뒤에 남겨두더라도, 다른 한편 ‘강행규범’ 위반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해 볼 수 있다. 무력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反)인도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도 강행규범 위반으로 본다. 따라서 ‘강행규범’의 적용으로 피해자 여성들 간의 분리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Q. 국가면제 논쟁이 젠더적 관점이 누락된 채 진행된 것 같다. ‘여성’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의 국제인권조약은 피해자의 인권구제를 위한 절차 또는 그것을 천명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 발전의 경로에 여성인권 문제가 있다. 전시성폭력도 이전의 국가 중심의 국제법 질서에서는 전쟁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피해라며 당연시되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크리스틴 친킨의 의견서에는 ‘위안부’ 소송이 만약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코멘트가 있다. 친킨은 페리니 사건과 ‘위안부’ 소송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성인권’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최근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은 국제사회에서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위안부’ 소송은 페리니 사건과는 다른 결론이 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어찌 보면 남성들이 당연시했던 전쟁수행에서 여성의 피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이라는 것이 이 판결에서 비로소 별도의 아젠다가 되었고, 그러한 아젠다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위안부‘ 운동이 큰 기여를 했던 건 사실이다. 이번 소송에서 국가면제 법리의 극복을 통해 이러한 아젠다를 완성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국가폭력에 있어서 여성피해자들이 국제질서 속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를 만드는 주체라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 기사 내용은 지난 1월 8일 재판의 판결문, 서울지방법원에 제출된 크리스틴 친킨과 키이나 요시다의 의견서, 전후보상 재판의 원고 측 대리인으로 관여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국제법 관련 내용은 2000년 여성법정에서 남북공동검사단으로 활약했고, 강제징용 재판과 ‘위안부’ 소송에 관여해 온 조시현 국제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
[필자 소개: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 여성, 폭력, 가해자성을 키워드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위안부X국제법 세미나, 화성외국인보호소 면회활동 마중,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 연구소(FIPS) 활동을 시작했다. 지역 농가를 방문하여 성-종-자본-군사주의의 복잡한 관계를 듣고 쓴다. 동료들과 함께 번역한 『일본인 ‘위안부’-애국심과 인신매매』(논형, 근간)가 곧 출간된다. 수요평화모임(수평회)을 통해 대학 안팎을 오가는 공론장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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