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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에 가다
현대사회는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물품과 서비스를 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한편 돈을 버는 일에 매달리는 개인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만일 돈을 사용하지 않고도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은 상상에 머물지 않고 현재 세계 각지에서 지역화폐 실험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역통화로 일자리 창출, 주민 10%가 참여
지역화폐 실험은 1989년 캐나다 벤쿠버의 코목스 밸리에서 시작됐다. 코목스 벨리에서는 공군기지 이전과 목재산업 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18%로 올랐다. 마이클 린튼은 지역주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궁리하다가 ‘녹색달러’라는 이름으로 지역통화를 시작했다.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지역주민들 사이에 물건과 기술, 서비스를 서로 교환했던 것. 공개된 거래 내역에 의하면 4년 동안 지역에서 거래된 녹색화폐 총액 수는 35만 달러에 이른다.
그 결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투자나 특정자원을 개발하지 않고도 지역 내 상호교환을 통해 수입을 얻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지역화폐운동은 영국에서 약 5백여 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약 300여 건이 진행됐다. 스위스,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과 남미, 아시아에도 빠르게 퍼지는 추세다.
그 가운데 주목할만한 지역이 호주의 멜라니 지역이다. 이 곳은 초기에 일반 지역주민들뿐 아니라 고등학생, 지역 내 공공시설, 실업자들, 행정기관이나, 서비스 클럽 같은 곳에서 사업발표회를 가져서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현재 약 41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는데 지역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메리 크리스마스! ‘멜라니 크리스마스 마켓’
멜라니 지역화폐 사무실은 매월 발행하는 소식지에 회원들이 내놓는 품목과 받고자 하는 품목을 싣고 있다. 멜라니 지역화폐를 통해 각종 어학이나 학과공부 지도, 컴퓨터나 요리를 비롯한 요가나 치료, 예술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 품목들이 거래되고 있다. 지역화폐를 시작한 뒤 지역주민들의 자기개발 효과가 커졌으며 주민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실무운영 또한 지역주민 5명의 자원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리는 ‘멜라니 크리스마스 마켓’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필요한 모든 물건 - 집에서 만든 물건, 공예품, 크리스마스 선물, 직접 구운 빵, 재사용할 수 있는 것 등을 거래하는데, 돈 없이 100% 지역화폐로 거래하고 있다. 멜라니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돈 없이도 충분히 삶의 질을 누리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피바시 피너츠 지역화폐도 좋은 예다. 이 지역화폐가 만들어지기 전, 치바시 유리노끼 영세 상점가는 가까이에 들어선 대형백화점과 마켓 때문에 불황을 겪고 있었다. 30여 개 상점들은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부터 ‘피너츠’라는 지역화폐를 도입했다. 피너츠는 이 지역의 특산품인 땅콩에서 유래한 말이다.
피너츠 클럽에서는 미장원, 식당, 중화요리집 같은 상점가와 지역주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상점에서 지불하는 비용의 5~10% 정도를 피너츠로 지불할 수 있다. 피너츠를 사용한 지역주민은 지역을 위한 자원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피너츠클럽을 운영한 지 2년이 지나고 상점의 매상이 올랐으며 피너츠클럽의 상점들은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를 맺게 됐다. 덕분에 상인들은 물론 주민끼리 서로 친해져 지역에서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일본에서 쓰이는 지역화폐는 150여 가지다. ‘가나가와 바터네트'와 같이 도시에서 생활협동조합 회원들이 앞장서기도 하고, ' 지바일본유리노끼’처럼 경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상가들이 중심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혹은 전통 품앗이 형태로 운영되는 홋카이도 지역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농산물, 아기 돌보기, 병원, 강습 품앗이 등
우리의 경우 1998년에 ‘미래를내다보는사람들의모임’이 미래화폐라는 이름으로 첫 지역화폐를 운영했다. 이후 환경단체, 지역주민단체, 대안교육단체, 유기농산물업체 등의 민간 영역뿐만 아니라, 구청, 동사무소 등의 공공영역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은 대전의 ‘한밭레츠’. 2000년 2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해 540여명의 개인회원들과 약 60여 곳의 가맹업소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밭레츠의 화폐의 단위는 ‘두루’로써, 거래 품목은 요리제공, 옷 만들기, 아기 돌보기 등 ‘살림품앗이’와, 병원, 한의원, 약국, 건강강좌 등 ‘건강품앗이’, 환경농산물 및 일반농산물 등의 ‘지역생산물품앗이’ 등 다양하다. ‘배움 품앗이’, ‘강좌, 강습품앗이’, ‘취미, 문화품앗이’, ‘기술품앗이’, ‘서비스, 상담품앗이’, ‘노동력품앗이’ 도 있다.
회원들은 현금의 부담에서 벗어나 ‘두루’를 이용하여 다양한 기술과 교육품앗이들을 배우고, 강사료 또한 두루로 지급한다. 그 동안 홈페이지 제작학교, 목공교실, 도예교실, 대전지역문화유산답사학교, 전통매듭교실 등이 진행됐다. 농산물 직거래는 환경농업을 하고 있는 회원들이 농산물을 제공한다.
물품 공유소는 각자 구입하기 어렵거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회원간에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디오카메라, 디지털카메라, 행사용 그릇, 재봉틀 등이 등록돼 있다. 한밭레츠는 현재 회원수의 상당수가 중산층이며, 대부분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부분들만을 거래품목만으로 내놓고 있다. 앞으로 저소득층과 실업자 등 다양한 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의식주 등으로 거래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공동체 자생력 키워 사회 안전망 형성
지역화폐가 가지는 의미는 지역공동체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나누고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소비지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주부, 노인 등 교육서비스의 수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자기개발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높이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이렇듯 지역통화는 실업, 빈곤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며 지역공동체의 자생력을 회복시켜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효과를 갖는다. 지역화폐운동은 돈 중심의 교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정감 있는 거래를 통해 지식과 정보의 나눔 문화로 가는 문명전환을 위한 태동이라 할 수 있다. <일다> 김경화/녹색사회연구소 사무국장 [관련 일다 기사보기] 도심 속 ‘녹색 삶’: L.A 에코빌리지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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