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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더 ‘퀴어’하게 만드는 방법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대중문화 퀴어링하기>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방영된 JTBC 드라마 시리즈 <이태원클라쓰>, 1월 방영된 단막극 <안녕 드라큘라>, 6월부터 7월까지 방영된 tvN 드라마 시리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그리고 스트리밍 플랫폼 웨이브에서 공개되고 8월 MBC에서 방영된 단막극 <우주인 조안>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퀴어 서사가 등장했다는 거다.


<이태원클라쓰>엔 트랜스젠더, <안녕 드라큘라>엔 레즈비언,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엔 게이 캐릭터가 나왔다. 각 작품 속에서 이들은 잠시 스치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인공이거나, 서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캐릭터로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2020년의 한국 방송이 드디어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기엔 아직 미비한 수준이지만 다양한 퀴어 캐릭터가 등장한 건 분명 의미가 있다. 더구나 요즘 같이 실질적인 대면이 어려워진 상황에선 미디어가 보여주는 작은 희망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소개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9월 10일 개막한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중인 <대중문화 퀴어링하기>(Queering the script, 가브리엘 질카 감독, 2019)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대중문화 퀴어링하기>(Queering the script) 중


영화는 미국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퀴어팬덤의 역사를 훑고 팬덤 문화운동을 기록한 자료이자, 미디어업계 관계자들에게 ‘대중문화를 퀴어링’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퀴어 캐릭터와 퀴어 서사에 관심을 가진 미디어업계 종사자들에게 꼭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대중문화 퀴어링하기>에서 알려주는 방법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봤다.


▷ 퀴어팬덤의 목소리에 주목하라


이 다큐멘터리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퀴어팬덤이다. 팬덤의 문화운동이 ‘클렉사콘’(SF드라마 시리즈 <원 헌드레드> 등장인물 클락과 렉사의 커플명을 붙인 퀴어여성 팬들의 컨벤션 행사)을 탄생시킨 배경을 들여다 본다.(관련 기사: “레즈비언 캐릭터 좀 그만 죽여라!” 외친 팬들,  미국의 ‘퀴어. 여성. 미디어. 팬덤’ 축제가 남긴 것들) 그리고 팬덤의 팬픽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특히 동성 간의 관계를 다루는 팬픽이 팬덤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한다.


팬들이 캐릭터를 ‘쉬핑’(Shipping,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 중 두 캐릭터를 엮는 것. 극 중에서 두 캐릭터가 커플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으며 캐릭터 간의 관계와 긴장감이 더 중요함)하는 것이 팬덤과 미디어 사이에 어떤 상호작용을 불러왔는지도 살펴본다.


<대중문화 퀴어링하기>가 퀴어팬덤에 주목하는 이유는 관객, 시청자, 소비자이기도 한 팬덤의 존재가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탄생 이후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생기면서 팬덤의 움직임은 즉각적이며 가시적이 되었고 그 범위도 커지고 있다.


여성퀴어 캐릭터를 제한적인 이미지와 서사로 재현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대대적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목소리 높이고, 미디어의 이러한 행태가 퀴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리기 위해 4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 2억원을 모금해 ‘트레버 프로젝트’(미국의 비영리단체로 퀴어 청소년을 지원)에 기부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그리고 팬덤을 넘어서 콘텐츠 제작자, 연구자들을 한데 모아 서로 소통하는 장인 ‘클렉사콘’을 만들기까지. 퀴어팬덤의 요구는 명확했으며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무시되어서도,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 퀴어 캐릭터 재현이 미치는 영향에 책임감을 가져라


렉사의 죽음 이후 생긴 비영리단체인 ‘LGBT Fans Deserve Better’에서 만든 캠페인 영상에선 미디어가 보여주는 퀴어 캐릭터가 얼마나 적은지, 그리고 그 캐릭터들의 많은 비율이 죽거나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출처: https://youtu.be/5CWHo_72a-g)


퀴어팬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비단 그들이 ‘소비자’이기 때문이거나 집요하게 목소리를 냈기 때문은 아니다. 왜 그렇게까지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제작자에게 있다. 오랜 기간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 퀴어 재현의 문제가 반복되어 온 건, 제작자들이 그 문제를 주요하게 인지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렉사콘’을 탄생하게 만든 논란의 드라마 시리즈 <원헌드레드>(The 100)에서 레즈비언 캐릭터인 렉사가 죽는 장면이 담긴 에피소드를 쓴 작가 하비에르 그릴로-마르슈아크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오만했다”는 걸 인정한다. 스스로 꽤 진보적인 헐리우드 제작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다양한 이슈에 열려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디어가 퀴어 캐릭터를 어떻게 소비해 왔으며 그게 퀴어 커뮤니티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는 몰랐다고.


해당 에피소드 방송 이후 SNS와 유튜브를 통해 퀴어팬덤이 외치는 절망적인 목소리를 접하게 된 작가는 퀴어팬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솔직한 의견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팬들이 보낸 메시지들을 보며 자신의 잘못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퀴어팬덤은 “우리는 퀴어 캐릭터가 불멸인 걸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스토리 전개에 따라 캐릭터가 죽을 수도 있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이다. 퀴어팬덤이 말하는 건, 퀴어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불행하게 혹은 어이없게 죽이고 소비하는 일,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퀴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을 그만하라는 거다. ‘창작은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은 제작자들의 무지한 행태가 퀴어 커뮤니티와 개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명백하니까, 적어도 그 정도 책임감은 가지라는 거다. (전체 기사 보기: 대중문화를 더 ‘퀴어’하게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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