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5년간 어둠 속에 있었던 내가 만난 ‘작은 기적’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⑧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저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저 어둠 속에는 어떤 불빛이 숨어 있을까? 어두워져도 시야가 완전히 흐려지지 않는 암반응에 기대어 나는 어둠 속에서 사물들의 윤곽을 찾아보려 애쓰고 있다. 어쩌면 빛에 대한 감각이 이 어둠을 불안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둠은 점점 짙어가고 더 깊어가며 내게서 멀어져간다. 마치 닿을 수 없는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저 멀리로 저 멀리로 까마득히 사라져간다.


나는 조현병 당사자다. 15년간 집 밖을 나오지 못하고 서른에서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남들이 고뇌하고 분투하며 때로는 웃고 행복을 느꼈을 30대를 나는 갖지 못했다. 대신 계속되는 환청과 망상으로 대문 밖으로 한 발짝을 떼기 어려웠다.


그런 나는 내가 불행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관계가 끊겨버려 비교할 만한 대상에 대한 자조 섞인 실망이나 회한조차 없던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타자에 대한 책임도 알지 못했던 15년. 그저 하루를 견뎌내면 그것으로 고마울 뿐, 삶이 빠르게 지나쳐가도 소진되는 삶이 안타깝지 않았다. 삶에 대한 기대로 빽빽이 채워진 계획표라는 건 내 인생에 없었다. 그렇게 죽어간대도 나는 끝내 내 삶의 의미를 묻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난간을 잡을 때, 그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픽사베이)


올해 코로나19로 정신요양시설에 계시던 많은 정신장애인분들이 돌아가셨다. 청도대남병원의 첫 코로나 사망자는 20년 가까이 병원에 유폐되어 있던 정신장애인분이었다. 무연고자. 그에게는 삶이 어떤 빛깔이었을까. 나는 어쩐지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갇혀서 외출조차 쉽지 않은 삶을 살며 그저 밥 먹고 잠자고 약을 먹으며 살아도 억울하지 않은 삶. 그는 자유를 꿈꾸었을까. 친구를 가질 수 있고 아내와 함께 살 수도 있고 세상에는 수만 가지 빛깔이 있다는 것을 안 뒤에도 그는 그렇게 소진되는 삶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제야 절망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된다.


조연호 시인의 시 중에 <왼발을 저는 미나>라는 시가 있다. “방문을 열면 죽은 미나가 흉한 냄새로 사람을 반기곤 했다. 아무도 네 어린 딸이 울고 있다고 미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로 끝나는 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문밖에서 울고 있다고 얘기해 주면 우리는 죽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서 사람에게 닿는다. 하지만 다른 생이 문밖에서 울고 있다고 내게도 그에게도 말해주는 사회는 없었다. 아마도 파시즘 체제를 겪어낸 그는 사회에서 더 철저히 소외되고, 사회는 그에게 나에게보다 더 깊이 침묵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티켓 안내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다른몸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damom.action


유폐된 자에게 세상을 열어주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왔을 때, 나는 다른 종류의 침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안의 침묵이었다.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낸 숱한 날들이 남긴 것은 삶에 대한 무감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사람은,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도 마음이 아픈 존재다. 누군가 아주 모르는 사람의 임종이라도 지나쳐 갈 때 눈물이 맺히는 존재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는 닿지 않는 아픔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는 일에 혼자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일들이 잦았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오래 응시한 일도, 감정의 오고 감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일들도 없었다. 그저 내 작은 삶을 살아왔을 뿐. 견뎌왔을 뿐. 모임의 자리에서 모임에 속한 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가지는 것조차 어려웠다. 혼자인 것 같았고, 아득한 곳에 유폐되어 있었다.


그러다 조한진희 선생님이 기획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연에 함께하게 되었다. 3개월 정도의 연습 기간 중 연출인 빠빠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뛰고 구르고 소리쳤다. 그리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현의 가느다란 멜로디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곡을 완성하듯 내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선율이 있었다. 처음 듣는 그 소리는 낯선 만큼이나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 하지만 늘 웅크리고 회피하고 도망치던 나는 그 선율에 붙들려 세상 속에 기입되었다. 한 줌의 용기를 얻었고 불편함을 견뎌낼 힘을 가졌다.


혼자 웅크리고 있던 나를 감싸는 사람들. 이들의 온기로 인해 나는 삶을 얻었고, 그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누군가 뒤따라올 사람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걸어가는 삶을 알았다. 늘 아래로만 향하던 시선이 당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작은 기적. (사진: 김덕중)


연극에서 마지막 나의 대사는 이러하다. “나는 이제 그렇게 어룽거리는 한 점 빛이 되고 싶어.” 왜 어룽거리는 빛일까. 그건 물에 반사된 빛이기 때문이거나 아주 가늘게 눈을 떴을 때 어른거리는 빛의 잔상이기 때문이다. 100%의 빛이 아니라 어딘가를 돌아나왔거나 빛에 눈이 부셔서 눈빛을 가늘게 떴을 때 맺히는 빛이라는 말이다.


나는 오래 떠돌다 미약하게 돌아온 빛의 일부, 겨우 열어놓은 가는 틈을 통해 속삭이는 빛이고 싶었고 그것이 주는 평화이고 싶었다. 그렇게 빛이 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빠가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준 “환청은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내 마음이었을 거야. 망상은 소외된 꿈들이 짓는 몹시도 뜨거운 희망”이라고 말할 때 벅차오르던 눈물처럼.


기적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러나 어둠. 불가해한 어둠이 있었다. 빛이 닿으려 하지만 자꾸만 멀어지는 어둠이거나 빛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어둠이 있었다.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자 1위인 나라, 일 년에 1천여 명이 산재로 죽어가는 나라, 자살률 1위인 나라, 그렇게 숫자로 매겨지는 삶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얼마나 검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그 죽음들이 견뎌야 했을 고독을 생각하면 숨이 막혀 왔다. 그리고 내 곁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지인들의 눈물을 떠올릴 때, 나는 그 어둠에 다가서지 않고는 삶을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기사가 계속됩니다) 

 

 이어진 전체 기사 전체보기: 15년간 어둠 속에 있었던 내가 만난 ‘작은 기적’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일다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서 보세요!  일다 뉴스편집판 구독 신청!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