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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트랜스젠더 여성, 에디가 사는 동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20. 7. 7. 08:30

트랜스젠더 여성, 에디가 사는 동네

<주거의 재구성>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의 요건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집’의 의미를 묻는 글의 제안을 받고서 나는 ‘집’에서 나오던 순간을 떠올렸다. 내게 있어서 집은 한 마디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고, 개인적인 물건들, 필요한 물품들을 마음 편하게 둘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다.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집이 집이라니,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에어비엔비처럼 푹 쉴 수 있는, 내가 직접 꾸민 방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을 결심한 건 25살 즈음이었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트랜지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지금 집은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속옷, 치마, 화장품 등은 트랜스젠더 여성인 내가 원하는 젠더 표현을 하기 위해 꼭 필요했지만, 이것들은 또한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아들’이 갖고 있으면 안될 물건들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큰 결심을 했지만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모를 무언가를 살 때도 이걸 집에 놔둘 수 있는지 없는지, 부모님에게 안 들키기 위해 몰래 숨겨두어야 하고 들키지는 않았는지 늘 확인해야 했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집이었다. 내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고, 옷장에 어떤 옷이 들어있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2013년 겨울쯤이었다. 아직 구하지도 못한 직장을 무기 삼아 서울에서 일을 다녀야 하니 부모님께 당장 얼마 정도만 빌려줄 수 있을지, 앞으로 돈을 벌어 보태겠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집을 구한 곳은 이태원이었다.


왜 이태원이어야 했냐고 물으면, 사실 다른 생각을 해볼 여지가 없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찾아갈 때도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모임은 항상 이태원에서 열렸다. 게이 친구들을 따라간 클럽도 항상 이태원에 있었다. 이태원은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 내가 안심할 수 있는 동네였다. 나의 정체성인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나를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곳.


퀴어, 장애인, 이주민,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공존하며 이웃사촌이 되는 동네가 많아지길 바란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내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지역에서 편하게 이웃과 만날 수 있을까?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을까? 이태원에서는 가능했다.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동네 이태원에서 5백만 원을 가지고 집을 구했다. 보증금뿐만 아니라 이사 비용, 복비, 가구 등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한참 발품을 팔았다. 당시 나는 직장이 없었고, 사실 정체성 때문에 정규직이나 서비스직은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내 사정을 이해하는 직장을 찾기 위해서는 단기 알바처럼 문턱이 낮은 일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생활은 유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월세는 반드시 낮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건물이 굉장히 낡은 집이었다. 반지하였는데 신발 신고 나가야 화장실이 있고, 한쪽 방은 벽에 물이 세서 온통 시커맸다. 집주인과 거래를 했다. 여길 내가 자비로 고쳐서 쓸 테니, 원래 400/40이 아니라 200/20으로 해달라고. 이렇게 매트릭스 하나 들고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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