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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노동 착취하는 아르바이트 시장
고용보험, 산재보험, 의료보험, 국민연금, 그리고 최저임금. 현재 고용시장에서 이 단어들과 동떨어진 채 가장 싸고 쉽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공식적인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르바이트 시장을 누비는 청소년이라고 짐작한다.
수많은 무가지와 인터넷에 아르바이트 자리는 넘쳐나지만 이들 다수는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않은 채 약자인 청소년들의 노동력을 싸게 사들이려는 자리다. 과거, 현재, 미래의 청소년들은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저렴한 노동력을 찾는 사업주들의 포획대상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받기 어려웠던 아르바이트 경험들
2003년 9월 이후 당시 최저임금은 2천510원이었다. 2천510원을 받으며 한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일을 한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은 37만6천500원. 그러나 나는 이 적은 액수에서도 7만6천500원을 뺀 30만원을 지급 받았다.
20살이 된 2004년 10월 한 서점. 하루 3시간 일하면서 시급 2천200원을 받으며 한 달에 하루 쉬었다. 처음 들어왔던 당시엔 두 명이 같이 하던 재고정리 일을, 한 사람이 그만두는 바람에 혼자 하게 됐다. 부족한 인원 충원에 대한 얘기는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장의 말에 파묻혀 어영부영 사라졌다.
그 해 11월 초 친구 부탁으로 일하게 된 카페는 늦은 밤 시간 근무임에도 불구하고 야간수당을 주지 않았다. 더구나 처음엔 시급 2천500원을 지급한다던 조건이 ‘장사가 너무 안 된다’는 사장의 일방적인 통보 이후 시급 2천200원으로 인하됐다.
이런 경험들은 지나고 보니, 어쩌다 재수 없게 심보 고약한 사장에게 걸린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시장의 일반적인 사례였다. 2004년 대학교 근처 한 편의점에서 당당히 시급 1천800원을 내걸고 사람 구하는 광고를 본 적도 있다. 2004년 9월 당시 최저임금은 2천850원이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아침 편의점을 지나며 “남/여 아르바이트 모집 시급 2천800원”이라고 적힌 구인광고를 보았다. 2006년 4월 현재 최저임금은 3천100원이다.
청소년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구입하는 행태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현재도 만연해 있다. 많은 사업주들은 청소년들을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저가의 시급으로 고용한다. 그러고 시간당 2천~2천500원의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말 잘 듣고 충실한 근로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르바이트 시장의 현실은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도 많거니와, 4대 보험은 꿈 꾸기도 힘들다.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을 아예 떼이거나 갖가지 부당한 일을 겪기도 한다. 최저임금을 근거로 시급인상을 요구하다 사장에게 ‘싸가지 없다’는 욕을 바가지로 듣고 단칼에 해고된 경험도 있다.
정당한 대가 받을 때 효율성도 오른다
아르바이트생들을 주로 이용하는 사업주들 중엔 다소 이상한 ‘사업의 효율성’ 개념을 근거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경제도 어려운 판에 장사도 안 되는데 제 값 다 주며 일을 시키면 남는 게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필자는 줄 것 다 주고 지킬 것 다 지키면서도 장사가 잘 되는 곳을 한 곳 알고 있다.
2005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경험상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며 전화를 하면 일단 찾아오라는 말만 할 뿐인데, 이곳은 전화상으로 시급과 근로조건, 시간대를 알려주고 일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당시 제시했던 조건이 시급으로 계산할 경우 시간당 3천100원, 야간근무일 경우(밤 10시~오전 6시) 4천800원을 지급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해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절반을 내가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시급이 좋은 관계로 오후 7시~11시 일하기로 했는데, 30일 기준으로 한 달에 이틀 쉬며(주말) 받은 임금은 53만8천800원이다. 일을 하는 28일 중 평일 근무인 26일은 일당 1만9천200원을, 주말 근무는 일당 2만4천800원을 받았다. 휴일과 야간근무인 경우 통상 임금의 50%+50%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고용보험의 내 부담액수가 대략 1만 원 선이어서 이를 제하고 평균 54만원을 받았다.
주유소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이 곳에서 5개월 가량 일했다. 세차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몇 년째 일하고 계셨고, 또래 학생들도 보통 6개월~1년 정도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하는 동안 짜증과 불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장이나 근무조건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나는 꽤나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돈 몇 백원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곳에 스스로 소속감을 느끼고, 그만큼 책임감을 부여해준다면, 또 자신의 노동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자연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된다.
반면 법적으로 보장된 최저임금도 지급 받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부당함을 느끼면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겐 노동을 하는 것이 고역이다. 자신의 일자리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는 가게가 잘될 리 없다. 돈 얼마 아끼고 몇 푼이라도 더 주지 않으려다가 고용주는 오히려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임금을 주되 일하는 사람들이 보다 오랜 기간 근무지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노동하는 곳과, 불법으로 임금을 깎지만 수시로 사람이 바뀌며 마지못해 일하는 곳 중 어느 쪽이 효율성이 있을까? 사업주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유진아 ⓒ여성주의 저널 일다 [취재수첩]10대 여성에게 노동의 경험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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