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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경기보조원, 최초로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 인정받아 
 
학습지교사, 간병인,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그리고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 사람들은 실제로는 소속된 회사가 있는 노동자임에도, 형식상으로는 위탁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왔다.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과 최저임금, 복지, 그리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열악한 지위에 놓여있다. 더욱이 현 정권 들어서 실업대란과 함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되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부당노동행위와 대량해고 사태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캐디가 근로기준법 상 권리를 처음 인정받았다. ©전국여성노조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적인 노력과 법의 공정한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이 시기, 노동위원회가 골프장 캐디(경기보조원)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정을 내려 사회적으로 환영을 받고 있다.

 
경기보조원들로 구성된 전국여성노동조합 88CC분회에 대해 노동조합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결정(4월 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과,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키고 해당기간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주문(4월 16일 중앙노동위원회)이 잇따라 나온 것. 최근 공개된 판정문을 통해 그 의의를 살펴본다.
 
노동위원회, 88컨트리클럽 캐디 ‘부당해고’ 구제결정
 
용인에 있는 88CC에서는 지난 1년간 58명의 조합원이 제명, 출장유보 등 사실상 집단해고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국여성노동조합 88CC분회는 합법적인 노조로 10년간 활동해왔고, 공기업인 국가보훈처가 위탁 운영하는 88관광개발㈜과 노사협의도 몇 차례 성사시켰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사측은 노조탈퇴를 종용하며 작년 7월부터 조합원 부당징계를 통해 압박을 가해왔다. 급기야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등의 이유로 조합원을 제명, 대량 출장유보 징계를 내렸다.
 
이에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조합원들에 대한 출장유보조치에 대해 취소하고, 정상적으로 출장했더라면 받았을 수입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상의 노동자로서의 권리(조합원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사측에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거나 회유한 행위를 중단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판정은 중앙지방위원회의 ‘부당해고’ 관련한 결정이다. 사측이 지난해 9월 24일 제명처분을 한 사건에 대해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원직에 복직시킬 것과 해고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지급하라고 한 것. 이는 한국에서 경기보조원에 대해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것이다.
 
고경섭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한 것은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연장근로를 하려면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회사가 그만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실제로 거기까지 나갈 수 있을지 봐야겠지만, 일반근로자들처럼 퇴직금도 지급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도 근로기준법 보호받을 수 있어야
 

작년 9월 국가보훈처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정연호씨의 모습 ©전국여성노조 제공

‘캐디가 노동자인가’ 논쟁은 지난 10년 간 지속되어왔다. 우리 법은 경기보조원들이 손님들에게 받는 돈인 ‘캐디피’를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회사 쪽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의 지위를 부정해왔다.

 
이번 판단은 “회사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경기보조원들의 역할과 “캐디피를 얼마나 받을지 회사가 정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캐디피가 실제론 ‘임금’과 같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기존 판결보다 획기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중노위의 결정이 모든 경기보조원들의 근로자성에 대해 인정해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이다. 고경섭 노무사는 “88CC는 이미 노사간 단체협약도 체결한 적이 있고, 회사 내 경기보조원의 근로조건을 규정한 수칙이 있어 모집이나 휴가 등 조건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보다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캐디라고 해서 근로자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사실관계를 조금 더 들여다봐서 근로자에 가까우면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는 것 정도는 (법적으로) 구성됐다”고 평가했다.
 
국가보훈처에 “노사간 대화의 채널 마련” 요구
 
나아가 이같은 판정은 근래 몇 년간 변화하고 있는 대법원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전 대법원 판례를 보면, 경기보조원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는 해당(1993)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1996)고 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대법원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판단에 있어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11일 박선숙 의원실에 보낸 의견서에서 “(대법원의) 과거 판례들이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근로자성을 판단해왔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인정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대법원의 태도가 선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예로 “근로자에 관한 여러 징표 중 근로조건에 관한 일부 사정이 결여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유만으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시”(2001)한 것과, 고정급이나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사회보장제도 등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요인”을 통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부인해선 안 된다(2006)고 한 것을 들었다.
 
민변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판례이론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경기보조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은 “타당”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한편, 소송당사자인 88cc분회 조합원들은 노동위원회 판정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며 13일부터 국가보훈처 앞에서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김은숙 전국여성노조 88cc분회장(37세)은 “지난 10년간 법적인 다툼보다는 노사화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며, 88cc의 실제소유주인 국가보훈처가 “대화의 채널”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숙 분회장은 “경기보조원이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다른 경기보조원들에 대해서도 (88cc분회 조합원들이) 상징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이여울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주목할 소송] “임금차별은 존엄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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