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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가는 열린 공동체

[페미니스트의 책장] 백소영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페미니스트에게 기독교는 불편한 존재다.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유명 교회들, 퀴어퍼레이드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세력, 교인들의 생애 전반에 대한 가부장제-이성애 중심적 개입. 그래서 페미니즘 행사에서 종교와 관련한 주제가 화두에 오르면 ‘탈기독교’ ‘탈교회’ 이야기를 으레 듣곤 했다.


페미니스트들이 꺼내놓은 다양한 담론과 경험담 안에서 교회는 언제나 걸림돌이자, 뛰어넘어야 할 크고 두꺼운 벽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는 신앙을 버렸다. 또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잊어버리고 산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혼자만의 예배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누군가는 교회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진 못했고 헌금을 적게 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평등과 사랑을 말하는 일, 즉 ‘예수 정신’이 곧 페미니즘이라고 믿으면서도, 성경 속 여성혐오와 가부장적 기독교 문화 그리고 종교공동체의 벽에 부딪혀 많은 ‘믿는 페미니스트’들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도망친 페미니스트들은 다시 평등을 말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 방황하기도 하고,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자신만의 관점으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투쟁을 이어가면서, 신앙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은 평등과 사랑을 말하는 일을 성경을 통해 풀어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백소영 지음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젊은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을 위한 길라잡이) 뉴스앤조이, 2018


백소영이 쓴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젊은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을 위한 길라잡이, 뉴스앤조이, 2018)에 나오는 내용은 이런 노력의 산실이다. 성경과 기독교에 켜켜이 쌓인 여성혐오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털어 엎어버리고, 깨끗이 복원하고자 한 여러 여성주의 신도들의 이야기는 성경을 다시 읽고자 하는 페미니스트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아주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한 화자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청중이 되어, 나보다 앞서 고민한 이들의 고찰을 들여다본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메리 데일리부터 엘리자베스 피오렌자까지


제도로서의 종교를 넘어서고자 한 메리 데일리(Mary Daly, 미국의 신학자. 1973년에 급진적 페미니즘 철학의 고전 『하나님 아버지를 넘어서』를 썼다)의 탈성경/탈기독교 페미니즘은 하나님 신성을 남성중심적 유산이 아닌 여성들의 언어에서 재발견한다. 존재를 발견하고, 여성적 신성으로 드러내는 작은 동사들의 과정을 통해 큰 동사인 신성, 하나님에게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남성문화는 배격한다. 데일리는 가부장적 기독교를 넘어선 여성들만의 시간/공간에서 새로운 공동체 신앙고백을 제안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여신’으로, 남성 이미지로 상징화되고 예배된 명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신성의 테두리를 확장한다.


다시 보기를 주장하는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 유니온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미국의 성서신학자로 여성신학과 문학비평을 결합하여 구약을 다시 읽는 독특한 ‘수사비평’으로 유명하다)은 ‘여성신학적으로 성경을 재조명’한다.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여성의 것이 아니었던 성경을 여성의 시각으로 읽어 여성의 것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창세기의 ‘도움’과 아담의 존재, 뱀이 여성에게 말한 이유 등을 재해석하며,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없는 성경의 본문을 성경 저자들의 수사학적 의도에 집중해 풀어낸다.


여성신학자 필리스 트리블, 다이안 립셋이 편집한 책 『Faith and Feminism: Ecumenical Essays』 표지 이미지, 2014


‘재해석 이상의 해석학’을 주장하는 엘리자베스 피오렌자(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루마니아 출신으로 하버드 신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3년에 출간한 『그녀를 기억하며: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관한 여성신학적 재건』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재건하고자 했다)는 성경을 ‘신화적 원형’이 아닌 ‘역사적 모형’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본문이 기록된 당시의 문화권 속 의미를 고려해 현재에 적용 가능한지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 그 의미를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의미를 당대의 노예제도 하에서 인격적 관계성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하며, 하나님만을 아버지라 칭하고 다른 ‘아버지’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들에게 부여된 가부장적 권력과 존경을 거부해 평등한 자녀인 인간들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 탈식민의 시각으로 성경의 억압적 본문과 해방적 본문에 드러난 주변부의 존재들이 겪는 경험을 읽어낼 수도 있고, 살리고/지키며/보호하는 본문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해방적’ 읽기의 방법론은 문자적 성경을 넘어선 살아있는 성경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다시 읽어낸 성경(聖經)은 새롭게 다가온다. 혐오 이외의 의미를 찾을 수 없던 ‘경줄’을 집어내 가부장제-남성중심적 ‘위줄’을 들어내고, 행간의 의미를 채워 넣는 과정은 페미니즘이 가질 수 있는 해방적 상상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러 사회문화적 맥락과 구조상의 억압 속에서, 정상성의 규범 아래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를 찾아 서발턴(하위 주체)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간다.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는 가장 면밀하고 정확하게 구조의 약점을 고발한다. 다양한 갈래의 페미니즘 운동과 담론에서 많은 대안이 제시된 근간에는 언제나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에 대한 의지’가 존재했듯, 여성혐오로 읽혀온 성경 역시 주변부로 밀려난 낮은 곳의 목소리를 통해 평등을 향하는 해방적 기치를 세우는 신앙의 근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문자 속에서 영성을 다시 살려내, 현재로 감각하게 하는 실천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의 신앙이란, 그 어떤 문자적 교리보다 개혁적인 실천일 수밖에 없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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