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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책장]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
※ 이 리뷰는 웹툰 <집이 없어>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집은 뭘까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 레프 톨스토이
집은 뭘까. 잘 수 있는 곳, 밥을 먹는 곳, 씻을 수 있는 곳, 쉴 수 있는 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집은 뭘까. 나의 집과 너의 집, 모두의 집은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친구의 집을 놀러가면 우리 집과는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살펴보게 된다. 너희 집 식탁은 이렇게 생겼구나, 화장실은 여기 있구나, 꽂혀있는 책은 어떻고, 식물들의 생김새는 어떻고, 냄새와 공기는 또 어떻구나. 여러 집을 알게 되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집은 뭘까. 만약 잘 수 있는 방과 침대가 있어도, 밥을 먹을 식탁이 있어도, 씻을 수 있는 욕실이 있어도, 거기로 돌아가기 싫다면 그건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집을 좋아하나? 너는 너의 집을 좋아하나? 나의 집과 너의 집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집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나.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최초의 집이 있다. 태어났을 때 나를 맞이해주는 첫 공간. 그 공간으로부터 우리 일생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그 집에서 안온함을 얻지만 동시에 증오와 경멸, 권태를 얻기도 한다.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살 수도 있지만 끔찍한 사람과 마주해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집에서 제각각 불행을 겪고, 저마다의 이유로 집을 떠난다.
▲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인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21433 |
결국 집은 뭘까.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는 최초의 집으로부터 떠나온 아이들의 이야기이자, ‘집’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2. 집을 떠나온 아이들
“깨끗한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잖아”
<집이 없어> 14화 – 백은영(4)
해준과 해준의 엄마는 귀신을 본다. 엄마는 귀신을 보는 삶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가려 하지만, 해준에게 귀신을 보는 능력 같은 건 따돌림의 이유일 뿐이다. 해준은 태평하게 귀신 이야기를 계속하는 엄마가 싫고, 귀신이 함께 사는 집이 싫다. 해준은 집을 떠나려 하고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엄마가 싫어서’라고 답한다. 뛰쳐나가는 해준을 쫓던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는다. 해준은 집에 혼자 남게 된다. 엄마가 없는 집을 해준은 견딜 수가 없다. 해준은 고등학교 2학년에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간다. 거기서 백은영을 만난다.
은영은 텐트에 산다. 은영은 중학교 1학년 때 가출을 했다. 은영은 도벽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해준으로부터 지갑을 훔치고 해준의 돈을 죄책감 없이 써버린다. 전재산을 도둑맞은 해준은 은영을 찾아가 싸움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해준은 크게 다치고 3일이 지나서야 병원에서 깨어난다. 기숙사 신청 기간을 놓쳐버린 해준은 어쩔 수 없이 구(舊) 기숙사에 들어가고 거기서 백은영과 재회한다.
계속되는 악연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 둘은 같이 살게 된다. 둘에게 있어 최초의 집은 가족이 없는 곳이다. 해준은 가장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엄마를 잃었고, 은영은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정서적,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은영은 청소를 하려고 하는 해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와난 <집이 없어> 14화. 백은영(4) 중 |
백은영: 고해준, 여기 너희 집 아니야. 그냥 잠만 자는 고시원이라 생각하고 살아.
은영에게 구 기숙사는 집이 아니다. 집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할 필요가 없다. 은영은 구 기숙사로 친구들을 부르고 쓰레기를 만들고 난장판으로 만든다. 열받은 해준은 은영에게 쓰레기를 던지고, 방문하는 은영의 친구들을 위협해 돌려보낸다. 치고받고 싸우고 난 뒤 (동시에 어떤 사정을 알게 된 뒤) 해준이 은영에게 말한다.
고해준: 학교서 돌아왔을 때 아무데나 편하게 앉고 눕고 하면 좋잖아. 집이 개끗하면 기분도 좋고... 청소는 그러려고 하는 거야.
해준과 은영은 서로가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 모르는 채로 한 집 안에서 만난다. 둘이 살아온 방식, 둘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둘은 싸우지만, 점차 서로에게 어떤 그림자가 있었는지 알아가게 된다. 그 첫 시작은 청소다.
청소는 내가 지내는 이 공간을 집으로 만드는 첫 번째 행위다. 이사를 가기 전, 들어갈 집의 먼지를 닦고 물건들을 가지런히 놓는 모든 행위들은 이름 없는 빈 공간을 집으로 만드는 일이다. 청소는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필요한 것들은 남기고, 쓰기 애매한 것들의 위치를 정해주는 일이다.
고해준과 백은영 사이의 만남은 그들에게 있어 처리하기 애매한, 미뤄두었던 먼지 쌓인 감정들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해준은 엄마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은영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집의 소중함을 새로 깨닫는다. 서로에게 이 허름하고 으스스한 집조차 없다면 갈 데가 없다는 것을 아는 둘은 점차 마음을 열고 마음을 심는다. 집은 깨끗한 곳. 깨끗해서 계속 머물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3. 새로운 집이 필요한 아이들
마리야, 너는 어디든 갈 수 있어
<집이 없어> 54화 – 김마리(15)
마리는 아빠와 오빠와 같이 산다. 마리가 열 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마리에게 전화를 해 이제부터 네가 아빠랑 오빠를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마리는 열 살 때부터 요리를 하고 빨래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마리는 이제 기숙사에 가려 한다. 아빠는 허락을 망설이고 오빠는 기숙사에 가지 못하게 막는다. 마리에게 최초의 집은 챙기는 곳, 돌봄노동의 역할이 자연스레 주어진 공간이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는 딸이 엄마가 된다.
마리에게는 고모가 하나 있다. 고모는 마리에게 지속적으로 오빠는 잘 있는지, 혹시 힘든 일은 없는지 마리에게 묻는다. 마리는 왜 고모가 오빠의 안부를 묻는지 의아해한다.
신문부 부장인 마리는 기숙사에 가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고, 누군가가 피해를 입고, 마리는 그 피해를 방치한다. 자신이 이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마리는 끈질기게 아빠를 설득해 허락을 얻어내고 곧 자기가 집을 떠난다는 사실을 오빠에게 말한다.
김기영(마리의 오빠): 와... 씨... 진짜 끝까지 지 생각만. 야. 아빠랑 나랑 둘이 남으면 씨x 둘이서 어쩌라고? 미친x아
오빠는 마리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아빠는 그런 폭행을 모른척하거나 남매싸움 정도로 일축한다. 마리의 가정폭력 피해를 늘 의식하고 있던 고모는 마리의 오빠와 아빠를 차례차례 만나 묻는다. 마리를 계속 때려왔냐고, 마리가 맞는 걸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냐고. 오빠와 아빠는 대답을 회피하거나 궤변을 늘어놓는다. 마리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빠는 사실 마리가 기숙사에 가길 원치 않는다. 아빠는 계속 마리가 자신과 오빠를 챙겨주길 바란다. 마리는 그런 아빠와 고모의 대화를 엿듣고 절망한다. 마리는 지쳤다. 아빠와 오빠는 자기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번져가고 있다.
▲ 와난 <집이 없어> 54화. 김마리(15) 중 |
마리: 거긴 애초에 내가 갈 곳이 아니었어. 난 그냥 집에서 사는 게 맞아.
고모는 그런 마리를 붙들고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이번은 그냥 운이 나빴던 거’라고 말한다. 고모는 마리처럼 어렸을 때 자신의 오빠, 즉 마리의 아빠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고모는 마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마음일지 짐작할 수 있다. 고모는 마리에게 집을 떠나도 된다고 말해준다. 가족 그게 뭐라고. 가족이 너를 힘들게 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가족이 나를 힘들게 하면 가족을 떠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한국에서는 잘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나 청소년은 소위 ‘정상가족’이라고 하는 형태에서 벗어나는 순간 극심한 빈곤의 상태로, 경제적으로나 안전상으로나 아주 취약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네 맘대로 할 거면 나가!’라는 부모의 말이 절대 ‘너에게 선택지가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없는 이유이다. 마리에게는 고모가 있었지만 마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늘 고모가 있지는 않다.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현행법은 가해자(부모)와 피해자(아이)를 적절히 분리시키고 자립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스템은 피해자(아이)를 다시 가해자(부모)에게 돌려보낸다. 국가는 한 사람을 시민으로 길러내는 노동을 상당 부분 가족에게 위탁하고,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방관한다. 더 많은 마리들이 가족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으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마리에게는 새로운 집이 필요하다. 마리의 새로운 집은 아무도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곳,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곳이다.
4. 우리는 집에서 집으로 간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의 집은 세계의 전부다. 부모와 형제자매도 역시 내가 아는 사람의 전부이다. 그 전부가 불행하든 행복하든 그것이 나의 일상이 되고 규칙이 된다.
백은영: 어렸을 때는 집이 전부잖아. (83화 中)
처음으로 태어나 만지고 머물던 그 집이, 그 가족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우리들은 새로운 집으로 간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마리처럼 가족을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낄 수도, 해준처럼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는 사람 없는 시간을 감내해야 할 수도, 은영처럼 받아본 적 없는 환대에 적응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모습들에 눈물이 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고 있다. 나의 이야기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르지도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집을 미워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집과 싸우고 성장해낸다. <집이 없어>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와난 작가는 전작들부터 꾸준하게 사람들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갈등들을 용기 있게 드러낸다. 이 갈등을 뚫고 나가는 와난 작가의 해결책은 언제나 단 하나다. 사람들과의 연대, 믿음이다. 우리는 집에서 집으로 간다. 내가 나일 수 없는 곳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필자 소개: 노창석. “유니브페미 활동가. 책을 만들고 글을 씁니다. 소하연이라는 이름으로는 시를 씁니다.”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기획으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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