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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도 잡히지 않는 ‘추방된’ 결혼이주여성들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그녀들은 왜 자국으로 돌아갔을까?


 

L을 만난 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였다.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한국 남성과 결혼했던 L은 일상적으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때리고 나서 강간을 하곤 했다. 그녀는 탈출하듯 필리핀 친정으로 도망쳤다.


L은 필리핀 법원에서 남편을 상대로 폭력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고, 승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L의 한국인 남편이 필리핀이 입국할 경우 바로 체포해 처벌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물론 남편은 필리핀에 오지 않았고, 따라서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L은 남편이 한국에서 처벌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 조사팀을 만나 도움을 얻고자 마닐라까지 먼 길을 달려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정폭력과 부부강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남편의 신상 정보는 영문 이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한글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한국에서 살던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했다. 남편을 특정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처벌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보고 활발히 사회운동을 펴고 있는 필리핀 여성단체 <가브리엘라>에 방문해, 귀환 이주여성들의 실태에 대해 듣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출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 사회가 ‘쫓아낸’ 여성들


당시 내가 참여했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조사팀은 한국으로 오는 결혼이주여성들의 현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리핀에 갔던 참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곧 한국으로 갈 여성들을 위한 정보 제공 프로그램에 참관하던 날, 필리핀으로 되돌아온 결혼이주여성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전부터 한국에 있는 이주여성 쉼터에 와 있던 이주여성들 중에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한 사례를 들어왔었는데, L을 직접 만나고 귀환 이주여성의 존재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 지도 10년이 더 지났다.


그 후로도 아시아의 이주 송출국에 갈 때마다 한국으로 갔다가 돌아왔다는 여성들 이야기를 마주하곤 했다. 우리의 조사 목적이 귀환 이주여성에 대한 게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들이 한국으로 다시 입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송 등의 법적 처리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주여성인권센터 측에서 위임을 받아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대다수의 귀환 여성 사례는 한국 사회가 “쫓아낸” 경우였다.


여기에서 ‘귀환 이주여성’이란,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여러 사정으로 본국으로 되돌아간 여성들을 칭하는 용어로 쓰려고 한다. 오랜 숙제처럼 남아있던 귀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들어보자고 계획하게 된 것은 전주에서 발생한 한 베트남 여성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에는 복잡하고 긴 여정이 담겨 있다.


2018년 10월 17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정춘숙 의원실,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현황과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인사하는 필자 모습. (출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여름의 일이다. 남편의 계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었다. 사건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었는데, 그 안의 내용은 더 복잡했다.


이 사례의 당사자는 베트남 소수 민족 출신의 여성이다. 그녀는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하기 전에 베트남에서 납치혼을 당해 14살에 출산을 하고 고향을 떠났다. 성인이 되어 한국 남성과 결혼했는데, 그 후 남편의 계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성폭력을 피해서 쉼터에 입소한 후, 베트남에서 있었던 납치혼 당시 출산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남편으로부터 혼인 무효 소송을 당했다. 그녀는 두 차례나 대법원에 상고한 끝에, 결국 혼인 취소가 확정되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계속) 


■ 전체 기사 보기: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그녀들은 왜 자국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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