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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세상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드러냈다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처한 위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전염병 때문에 지금 다 힘들다’는 말이 들려온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재난 상황 속에서 우린 모두 다 피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난을 동등하게 겪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14일 저녁 7시, 청소년과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목소리 낸 활동가였던 故 육우당17주기를 맞이하여,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재난>이라는 기획토크쇼가 4.16연대 사무실에서 열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서는 전염병이라는 재난 앞에서 더한 불평등을 마주하게 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공동 주최한 기획토크쇼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재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철균 활동가의 사회로 4.16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사람들


“코로나19와 일반적인 재난의 가장 큰 차이는, 코로나 시국에선 우선순위가 명확히 정해지고 장애인은 후순위가 된다는 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변재원 정책국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재난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 없이 전세계를 초월하며 모두가 감염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잖아요. 보통은 특정 지역에서 어떤 기후 재해가 발생해서 그 안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지역민들끼리 분쟁이 생기는 등의 일이 일어나죠. 그런데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영토가 없는 개념이라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우선순위 매기기가 나오고 있어요.”


변재원 정책국장은 “스페인 마드리드 요양시설 내에서 사망한 장애인이나 질환자가 6천5백명 정도라고 하고, 프랑스의 경우도 사망자의 1/3이 요양시설에서 나왔다고 한다”며 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례를 보면서 ‘시설에선 왜 많이 죽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시설이 후순위가 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마스크를 배급하는 부분도 살펴보죠. 이 배급이 ‘길가에 다니는 사람이 약국에서 구입하는 체계’로 되어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접근이 가능한 자 vs 접근이 불가능한 자’로 나뉘게 되는 거에요.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가 나뉘는 거죠. 수동적인 자는 무언가를 수급 받을 수 있는 상황까지 기다려야 하는 반면, 능동적인 자는 자기 권리를 자기가 쟁취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후순위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재난은 소수자의 어려움이 발화되기 어렵다는 특징도 있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이해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요. 어떤 식의 이야기를 해도 ‘야, 너만 어려워? 지금 다 어려운데’라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거죠. 이게 낫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엔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그래도 장애인은 좀 도와줘야지’ 이런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거에요. 동정과 시혜를 바란다는 게 아니라, 생존의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 확실하게 더 어려워졌다는 거에요. 그게 과거의 재난과 코로나의 큰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도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대처 능력은 동일하지 않으며, 불평등하다는 점을 짚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미국의 부자들이 섬 하나를 통째로 사서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바이러스 없는 청정 지역으로 만들어서 풀장에서 놀고 자전거도 타고 다닌다는 거에요. 이렇듯이 지금 위험이 닥쳤다는 인식은 똑같은데 실제로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은 권력 배분에 따라 완전히 달라요. 부자이거나 혹은 인종적으로나 성별로 특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대처 능력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에요.”


명숙 활동가는 “다른 재난과 달리, 감염이라고 하는 위협은 ‘나도 감염될 수 있을지 몰라’라는 두려움을 제공하고, 이게 타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그리고 혐오로 발전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자 우려되는 점이라고 짚었다.


“평상시에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했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국가 간에 봉쇄가 생기는 등 타인을 경계하고 혐오를 부추기기 쉬워졌죠.”


그러나 코로나19가 완전히 새로운 재난은 아니다. 명숙 활동가는 “이 재난 상황 이전에도 사회적 소수자는 위험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나 위험에 늘 처해있었어요. ‘위험의 외주화’라고 얘기하잖아요. 가난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안전장치도, 안전장비도 없이 위험한 작업에 내몰렸었죠. 코로나 이전에도 재난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건 재난이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게 이전과는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재난지원금마저 사각지대에 놓인 홈리스, 빈곤층


모두가 어렵다고 하지만 오히려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그로 인해 차별과 배제, 혐오를 겪기 쉬우며, 되려 불평등함에 대해 지적을 하기는 어려워진 상황. 코로나19라는 재난이 가진 특징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명확히 드러났다. 활동가들은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했다.


빈곤사회연대 이재임 활동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홈리스들이 직면하게 된 문제들을 설명했다.


“매주 거리 홈리스를 만나는 아웃리치를 나가는데, 그때마다 교회나 봉사단체에서도 치킨이나 음료를 나눠 주는 걸 봤었거든요. 근데 그게 뚝 끊기더라고요. 홈리스 분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단체들) 안 온지 한참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고요. 그게 그들의 유일한 끼니였던 걸 생각하면 우려되는 지점이죠. 노숙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소도 문을 닫거나 삶은 계란이나 컵라면으로 간소화되었고요. 기본적인 삼시세끼조차 해결하기 어려워진 거에요.”


먹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안전한 집에서 머무를 것을 제언”하지만 머무를 집이 없는 홈리스는 오히려 ‘안전’을 이유로 그들이 생활 공간으로 이용해 왔던 곳에서 내쫓기고 있다.


취약계층의 당장의 어려움과 경제적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재난지원금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자체적으로 서울역 근방 홈리스 약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무려 77%가 지원금을 신청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를 보면 ‘서울에서 노숙하는데 주소지가 멀어서’ 27%, ‘신청 방법 자체를 들은 적이 없어서’ 26%, ‘거주불명등록자라서’ 23%였어요.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신청을 포기한 경우도 있고, 주소지가 제주도라 제주도까지 가서 신청해야 하는데 갈 돈이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이재임 활동가는 지원금 사용이 한정적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일세나 월세를 내야 하는 분들한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게 주거비용인데, 현금으로 내야 하는 거에요. 그래서 지역화폐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죠. 생활용품이라도 사두라고 하지만 물건을 쌓아둘 방도 없고요.”


2018년 4월 13일 장애단체들이 모여 “장애인 재난감염 가이드라인을 만들라”는 법원조정을 거부한 복지부를 규탄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장애여성공감)


장애인들이 마주한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지체장애인은 이동권 문제를 겪고 있고, 시각장애인은 재난 정보 접근성에 문제가, 청각장애인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며, 발달장애인은 공적 돌봄 체계가 마비된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신장애인들은 시설 안에서 완전히 갇혀 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보건복지부 때문이며, 매뉴얼이 없는 게 문제”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번에 시설을 원천차단한(코호트 격리) 공무원에게 적극행정상을 줬는데, 저는 이것이 고도의 발전된 행정이 아니라 국가가 장애인을 포기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르스 때도 비슷한 일들이 있어서 감염병 대책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고 소송도 진행했다”는 것. 변 국장은 “법원도 보건복지부의 잘못을 인정했지만, 보건복지부가 매뉴얼 제작을 거부했다. 메르스는 이미 지나갔고 비용도 많이 들고 일도 많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의 매뉴얼 부재는 결국 개인 희생으로 이어졌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났을 때, 공적돌봄이 끊기고 장애인들이 홀로 남겨졌을 때 나선 건 시민단체였다. “활동보조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결국 (장애단체) 활동가들이 활동보조를 했습니다. 국가가 장애인이 자가격리 되거나 감염 확진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평등의 감수성’을 잃지 말고, 연대의 힘 키워야


명숙 활동가는 “코로나 위기가 동일하게 오진 않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라고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스크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상황에 놓였죠. 특수고용 노동자는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을 수도 없고, 그건 예술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죽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정부가 기업에게 경영상 위기가 있다고 하면서 구조조정 할 수 있는 여지를 줬어요.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 위기가 높아질 수 있는 거죠. 노동자들의 위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 질 거에요.”


5월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코로나19 인권 대응 시민사회 기자회견’ (출처: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명숙 활동가는 “사람들이 평등의 감수성을 잃게 되는 게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를 제한해도 되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해도 되고, 개인 정보를 노출하거나 또 제한되는 괜찮다고 하는 마음이 내재되는 게 가장 염려되는 지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평등 감수성을 늘리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평등의 크기를 완화시켜야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웅 활동가는 “시민권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누가 시민이고 아니냐, 성소수자의 시민권은 무엇이냐 등을 이야기해야겠죠. 이태원 집단 감염 이후, 일부 언론에서 클럽이나 찜방 이야기를 신나게 가쉽으로 소비하고 있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내부에서도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위기 속에서 우리가 엮고 있는 공동체나 사회를 재정의해야 할 필요를 느껴요.”



“코로나가 세상을 바꿨는가?가 아니라 코로나가 세상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변재원 정책국장은 “코로나를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해 왔던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명징하게 드러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별하고 배제하는) 인간의 행태도 달라진 게 아니라 더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아픔과 상처가 더 자세히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변인과 연대할 수 있는 용기가 추가적으로 필요해진 것 같다. ‘내가 같이 해야 하는 문제구나’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코로나 시국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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