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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시작하게 된 나의 ‘이기적’ 이유

<청년 페미니스트 예술인의 서사> 배우 손수현①


※ 2020년 ‘따로 또 함께’ 창작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청년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의 다양한 서사를 기록합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동거 고양이 이야기


나는 고양이 넷과 함께 살고 있다. 슈짱, 앙꼬, 땅, 솜사(임시보호 중). 2010년에 슈짱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왔고 2012년에 앙꼬가, 2018년에는 땅이가, 2019년 즈음에는 솜사가 우리 집에 눌러앉게 되었다. 이렇게 넷이 뭉치게 된 데에는 역사가 깊은데, 슈짱과 앙꼬의 얘기부터 해 볼까 한다.


<나를 하찮게 바라보는 슈짱>  <나를 등지고 자는 땅> ©손수현


슈짱은 2010년 여름, 내가 처음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나에게 와주었다. 원래는 슈짱이 아니라 다른 형제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철장 맨 뒤에 숨어 바들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슈짱에게 반해 갑자기 이 아이가 우리 집 슈짱이 되었다.


슈짱과 함께 지낸 지 2년 즈음이 되던 해에 슈짱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은 했으나 슈짱을 데려올 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고 있을 때, 슈짱 밥을 사러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앙꼬와 형제들을 보게 된다. 앙꼬는 동물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자주 가던 동물병원에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한 고양이가 낳은 새끼고양이가 앙꼬다. 나는 앙꼬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슈짱과 앙꼬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평화롭기만 한 날들이 계속됐다. 슈짱과 앙꼬는 서로 기대 잠을 자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먼저 일어난 앙꼬가 골골대며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슈짱은 어디 있지 찾아보면 저 멀리 뒤집어져 자고 있었다. 사이좋게 간식을 먹고 사이좋게 사냥놀이를 하다가 내 발밑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캣타워 꼭대기에서 슈짱이 잠이 들면 앙꼬는 그 밑 칸에 앉아 멍을 때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대부분 자는 기억이었지만 아무튼 행복했다. 슈짱과 앙꼬도 행복해 보였다. 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렀고 슈짱은 6살, 앙꼬는 4살이 되었다. 그리고 평화는 보란 듯이 깨졌다.


나에게 고양이 알러지가 생기기 전 평화롭던 시절 슈짱과 앙꼬 ©손수현


슈짱, 앙꼬와 떨어져 엉망으로 보낸 1년


2015년 5월, 나는 부산에 마라톤 관련 행사를 가게 된다. 퓨76ㅛㅛㅛㅛㅛㅛㅛㅛㅛㅛㅛ (앙꼬가 갑자기 올라와 타자 쳤는데 귀여워서 안 지웠다.) 아디다스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행사에 참여했던 날이었는데 그날 아침 갑자기 하얀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감기인 줄 알았다. 근데 감기치고는 몸이 하나도 안 아파서 뭘까 싶었지만, 아무튼 스케줄이 있으니 소화하기 위해 행사에 갔다. 사진을 찍고 마라톤 시작을 알린 후, 나는 계속 손수건을 들고 콧물을 막으며 광안대교 위를 건넜다. 콧물이 계속 흐르니 속은 허해지고 머리가 아파 왔다. 하루종일 그 모습을 본 매니저가 말했다. ‘너 그거 알러지 같아.’


알러지가 생겼다. 갑자기 생겼다. 너무 갑자기 생겨서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나 보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부산에서의 그 콧물이 전조 증상이었을까. 며칠 뒤, 갑자기 재채기가 났고 갑자기 눈이 부풀어 올랐으며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 목구멍과 귓속이 간지러워 어쩔 줄 몰랐는데 궁여지책으로 혀로 입천장을 긁어대니 입천장이 쓰라렸다. 알러지는커녕 비염도 없이 살아온 탓에 갑자기 나타난 알러지 반응이 처음엔 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눈 흰자가 부풀어서 무서웠다. 목과 가슴에 오돌토돌 올라오는 발진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다.


알러지 검사 결과, 고양이 알러지 최대 단계라고 했다. 고양이 알러지를 빼고는 다른 알러지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인 걸까. 아무튼 그 당시 나에게는 최대의 불행이 닥친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알러지 반응이 나타났고 그러면 바로 처방해온 약을 먹었다. 작은 알약 몇 개를 삼키면 미칠 것 같은 증상들이 5분도 안 되어서 사라졌다. 당시에는 그 자체도 무서웠던 것 같다.


이 주 정도를 매일같이 약을 먹었다. 모르겠다. 평생 알러지 약 먹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이 주 정도가 지나자 몸이 급격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얕게 쉬어져 서 있는 게 힘들고 똑바로 눕는 것도 숨이 차서 엎드려 있어야 간신히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약 먹는 게 무서워져 집을 두고 근처 모텔에 가 잠을 자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는 최대한 늦게 들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금이 필요해 방을 빼야 하는 일도 생겼다. 투룸으로 이사 가서 슈짱과 앙꼬와 분리해 지낼 수 있다면 제일 좋았을 테지만 경제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본가로 슈짱과 앙꼬를 데려가자니 본가는 비좁았고 더군다나 엄마한테도 심한 알러지가 있다. 슈짱이 어렸을 때 잠시 본가에 들어가 한 달 정도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에게 갑자기 알러지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알러지가 있었는데 모르고 살다가 슈짱과 한 달을 생활하자 알러지가 발현된 것이었다.


별생각을 다 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근처 고시원을 빌려서 슈짱하고 앙꼬만 지내게 할까. 친구에게 잠시 맡아달라 부탁해볼까.(실제로 부탁도 했었다.) 보증금 없는 원룸을 구할 수는 없을까 등등. 그 당시에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법이 없는 막막함과 고양이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갑자기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가 서울에 사무실 겸 출장을 왔을 때 지낼 수 있는 투룸을 구한다고 했다.


정말 한 줄기 빛 같았다. 나는 친구에게 월세를 반 정도 낼 테니 방 하나를 고양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겠느냐 물었고, 친구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해주었다. 그렇게 일 년여간 동안 나와 고양이들의 분리된 생활이 시작된다.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슈짱과 앙꼬의 집(?)에 방문했다. 정말 말 그대로 방문이었다. 밥을 채워주고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장난감으로 조금 놀아주다가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도 15분을 넘기지 못했다. 시간이 되면 또다시 알러지 반응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방문을 닫고 나올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사육사가 된 기분이었다. 슈짱과 앙꼬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와 떨어져 지낼 당시 슈짱과 앙꼬 ©손수현


그렇게 엉망으로 보낸 시간이 1년이나 흐르고 나는 다시 혼자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더이상 원룸에서는 지낼 수 없었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고양이와 함께 지낼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투룸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집에 살 수 있었지만, 여전히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를 통틀어 15분 남짓이었다. 나는 그때 그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한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분명 더 노력할 수 있었다. 아니, 더 빨리,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 했다.


채식을 하면 알러지가 사라지려나?


그렇게 다시 집을 합쳐(?) 같이 살게 된 지 1년여쯤 지났을 때, 나는 우연히 1년여간 채식을 한 뒤 원인 모를 알러지가 사라졌다는 사람의 사례를 듣게 된다. 사실 알러지가 생긴 후 얼마 되지 않아 채식에 도전했던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떤 확신이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본능(?)적으로 채식을 하면 알러지에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태어나 한평생 육식을 하며 육식 위주 식단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갑자기 육식을 끊는다고?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진퇴양난인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페스코(붉은 육류, 가금류를 소비하지 않는 단계)라도 실천해 보려고 했던 거다. 하지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던 것만큼, sns에 이틀 만에 돈가스가 먹고 싶다는 망언을 공공연히 남기며 쉽게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슈짱, 앙꼬와 영원히 이렇게 지낼 순 없었다. 완치(?)의 사례까지 들었으니 희망을 품고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육식에 익숙했던 나는 영양학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적당량 섭취하지 않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에 학습된 상태였다. 역시나 모든 육류를 끊는다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기력이 떨어질 때면 혼자서라도 육식을 하러 가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단 붉은 육류를 끊기로 한다. 붉은 육류를 끊기로 결심한 다음 날 아침, 배달 어플을 켰다. 한참을 들여다봐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거의 모든 음식에는 육류가 함유되어 있었고 나는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어플을 한참이나 들여다봐야 했다. 비건(vegan, 식물성 음식 외에는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을 지향하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먹을 것이 되게 많았을 것 같은데, 아무런 정보가 없던 그때는 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한 시간은 흐르고 나는 점점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한 건 순전히 사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끔 힘들 때면 닭을 섭취했지만 나는 스스로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가끔 섭취하는 닭은 어떤 맥락 안에서 섭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돼지와 소, 양 등은 먹지 않으면서 닭은 먹는다는 것의 모순됨. 하지만 외면했다.


이러나저러나 이기적으로 시작한 채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도 생각이 닿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어류와 해산물, 유제품과 달걀 등의 모든 비윤리적 착취에 대한 것들이 그러했다. 나는 그렇게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닭과 닭알, 유제품 등을 섭취하는 단계)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았지만 슈짱, 앙꼬와는 빨리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주변에는 함께 폴로를 지향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폴로에 안주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 A는 더 나아가 비건을 지향해 보는 방향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동물성 단백질 신화에 사로잡혀 있었고 항상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근데 나는 아예 다 못 먹으면 쓰러질 것 같은데. 최대한 줄이고 그래도 가끔씩 어쩔 수 없을 때는 섭취하자.’ 하지만 A는 멈추지 않고, 상황이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모든 육식을 끊어보는 건 어떨까 제안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뭘 생각해보겠다고 한 걸까.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끝이 났다. 또 시간은 흘렀다.


비건 타코야끼를 만들어 먹는 내 모습 ©손수현


육식은 건강한 식단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S라는 친구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당시 논-비건이었던 S가 갑자기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냉장고에 있던 치즈가 필요하면 가져가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고맙다며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물었다. ‘갑자기 왜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 친구는 말했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봤는데 이제 고기 못 먹겠어.’ ‘그래? 제목이 뭔데?’ ‘왓 더 헬스(What The Health).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궁금증에 S가 말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제목 그대로 이 다큐멘터리는 건강에 근거하여 육식의 지양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당연히 건강하기를 원한다. 다 필요 없으니 아프지만 말라는 말을 바람처럼 건네고,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다.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개학이 미뤄지며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재택근무를 권고하게 되는 것. 공장들이 멈춰서며 산업 체계를 마비시키는 현상 등 모든 상황의 표면적 원인은 바이러스의 창궐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결국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막연한, 혹은 이미 닥쳐있는 두려움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동시에 어떻게 이런 육식 위주의 산업 구조가 건설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를 진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동물권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도 살짝 버무려져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아닌 듯 보였다. 얼핏 보면 ‘나를 위해서 비건을 시작하자’라는 것처럼 읽힐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그때는 그렇게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서’ 비건을 시작하기로 했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나의 모든 선택은 이기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알러지를 견디기 힘들어서, 슈짱 앙꼬와 함께 지내고 싶어서, 육식이 결코 건강한 식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이유에는 아무런 감수성이 없다. 내가 계속해서 나의 이기심을 꺼내놓는 이유는 솔직함을 빙자해 스스로에 대한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를 위해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은 언젠가 바뀔 수도 있다는 믿음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손수현. 배우. 2013년에 데뷔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최근 작품으로는 <마더 인 로>, <프론트맨> 등이 있다. 서울 연희동 언저리에서 세 마리의 고양이 가족과 오손도손 살고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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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파란머리 저는 비건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고기보단 비빔밥을 좋아해서 굳이 비건이 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며 그런 이유로 가끔씩 고기를 먹는 거니까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도. 하지만 동물을 좋아해서 관련 다큐를 보고 싶어도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칠까봐 애쓰며 외면하는 저의 모순을 간혹 봅니다. 수현님의 글을 읽으며 또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듭니다. 아마 당장은 변함없는 저의 일상이겠지만 이런 건강한 증언들은 제 안에 차곡차곡 쌓여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어떤 방향점을 제시하겠죠. 고맙습니다. 2020.05.1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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