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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성소수자의 안부를 묻다

일터의 위기부터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까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점점 체감으로 와닿는다. 타인과 대면하지 않을 것을 요구받는 시대에 안 그래도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이 더 파편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취약함을 드러내는 건,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이다.


질병이 있는 사람들, ‘집에서 지내라’는 메시지를 따를 수 없는 홈리스들, 노인들, 돌봄을 떠맡게 된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비정규 노동자 등. 그리고 가시화되지 않는 성소수자들도 그중 하나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제작한 웹자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코로나19 타격을 더 크게 받는다


지난 3월, 미국 성소수자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캠페인(HRC, Human Rights Campaign)은 <LGBTQ 코로나19 위기 진단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는 직종으로 분류되는 요식업, 소매업, 교육업, 의료업에 종사하는 성소수자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 미국 내 성소수자 인구로 집계되는 1천4백만 명 중 5백만 명에 해당하며, 비성소수자 비율인 22%에 비해 상당히 높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15%로 교육/의료의 7%나 소매업 4%에 비해서 특히 높다. 성소수자 중에서 웨이터나 바텐더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인데, 상대적으로 취업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요식업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확진자 수가 늘어난 이후 약 15개 주에서 레스토랑 운영을 금지했다. 많은 노동자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국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식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알바생’과 프리랜서들이 하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한국은 성소수자 인구조차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분석하기 어렵지만, 몇 가지 자료를 토대로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은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중 동성애자/양성애자와 일반 통계를 비교했을 때 정규직 비율은 낮고 비정규직과 자영업 비율이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는 총 948명(동성애/양성애자 등이 858명, 트랜스젠더 90명)으로, 전체 경제활동 인구와 비교할 때 20~49세까지 정규직 비율이 상당히 낮으며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2030 성소수자와 ‘노동’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기록한 책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희정, 오월의 봄)에서도, 성소수자에겐 “포기해야 할 직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 드러난다.


“성별 규범에 따른 꾸밈이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수행이다. 치마 하나 걸치고 화장 한 번 해주고 끝이 아니다. 여자다운/남자다운 체격과 체형, 걸음걸이, 자세, 태도 등이 요구된다. 직장 문 앞에 서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이 준비되어야 한다. (중략) 대학을 갓 졸업한 규원(지정성별 여성, 바이섹슈얼)은 프리터(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로 산다. 정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 없다. 대부분의 직장은 규원이 ‘여성’으로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중에서도 자신의 지정성별과 외모, 체형, 옷차림, 말투와 행동 등이 일치하지 않으면 채용이 거부되거나, 채용되더라도 ‘여성스러움/남성스러움’을 강요당하며 그로 인한 괴롭힘에 노출되기 쉽다. 성소수자들 중에서 정규직 임금노동자 비율이 낮은 요인에는 성별 역할 구분이 뚜렷하며 남자친구/여자친구 또는 결혼 여부를 묻는 가부장적 직장문화도 관련이 있다.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위기


노동 시장에서의 위치는 경제력으로 이어진다. 경제력과 관련한 국내 통계 자료는 없지만, 미국의 사례를 보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빈곤 상태에 놓인 성소수자 비율은 약 22%로 비성소수자의 16%보다 높다. 특히 트랜스젠더와 바이섹슈얼 여성의 경우엔 그 비율이 29%까지 올라간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살림이 어려워진 LGBTQ+를 위한 일거리 창출 프로젝트!> 홍보물 중. (출처: 비온뒤무지개재단)


지난 4월 21일,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살림이 어려워진 LGBTQ+를 위한 일거리 창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신청자가 많아 하루도 안 돼 접수를 마감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선영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국가의 지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 중에 성소수자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획되었다.


“일거리 창출 프로젝트는 다양한 고민 끝에, 신청하는 사람이 성소수자인지 혹은 생계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등을 직접 인증하게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닐뿐더러 검증하기도 어렵다는 판단하에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컨텐츠를 보내주면 사례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콘텐츠 당 10만 원씩 총 40건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24일 금요일 자정부터 오전 9시까지 80건이 넘는 신청이 들어온 탓에 긴급하게 접수를 중지했다.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선영 사무국장은 “아마 접수도 하지 못한 지원자들도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추가 지원을 위해선 모금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나거나, 폭력이 있는 집을 뛰쳐나와 알바를 하면 생계를 유지하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코로나19 이후 더 취약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을 진행하며 그들을 지원하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에디 활동가는 “코로나 이후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무급 휴가 등으로 인해 월세를 내지 못하는 등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탈가정 성소수자 청소년의 상담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은 지난 3월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지원하는 긴급 모금을 진행했고 목표액을 달성하여 마감했다. (출처: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탈가정 청소년들은 정부가 내놓고 있는 다양한 지원 제도가 ‘가구 중심’(세대주)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제를 경험하고 있는 탓에,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더 큰 막막함을 마주하고 있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위기 상황에서 계속 사각지대로 밀려나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립에 조금 더 취약한 사람들


코로나19 시대에는 대면 활동을 삼가고 ‘물리적 거리’를 두도록 요구받는다. 그런데 커뮤니티 활동이나 모임이 단순히 취미나 놀이가 아니라 소통의 유일한 창구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물리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고립을 의미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겐 자가격리의 의미가 단지 집에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와의 단절을 뜻하기도 한다.


2014년 발표된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한국게이운동인권단체 친구사이)에 따르면, 자신의 정체성(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을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 중 “아무도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20.3%로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났다. “거의 모른다”(27.6%), “어느 정도 알고 있다”(32.9%), “모두 혹은 상당수 알고 있다”(19.3%)로 답했다.


직장동료의 경우엔 “아무도 모른다”는 응답이 57.7%로 올라가고, 학창 시절 친구나 교사의 경우 중 “아무도 몰랐다”는 응답 47%와 “거의 몰랐다”는 응답 31.6%로 약 80%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과 직장동료에게 커밍아웃한 비율(위) 직접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비율과 신고율(아래) (출처: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욕구조사 최종보고서, 2014, 한국게이운동인권단체 친구사이)

커밍아웃하지 않은 이유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응답자의 과반수인 66.4%가 혈연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폭력이나 학대, 방임이 ‘자주’ 또는 ‘종종’ 일어난다고 답했다. 또한 67.7%가 직장 내에서 LGBTI에 대한 조롱이나 차별, 폭력이 ‘자주’ 또는 ‘종종’ 발생한다고 했고, 13.3%만이 ‘전혀’ 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겪어도 “나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67.4%), 심지어 “신고해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61.9%)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공권력조차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조차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외로움과 고립을 의미한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팀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2017년 공동으로 연구한 <한국 성인 LGB(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건강 연구> 결과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가 이성애자에 비해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7.51배 높고, 자살을 시도한 비율이 9.25배 높다.’ 우울 증상 또한 약 4.76배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은 성소수자들에게 커뮤니티, 공동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고립이 되지 않도록,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더라도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망이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기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 “고립되지 말고 검진받자”


5월 초, 서울 발생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며칠간 나오지 않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고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황금연휴 시기에, 이태원 클럽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전국이 비상이다.


빠른 방역이 중요한 때에, 몇몇 언론은 특정 장소들과 게이 집단을 연결시키며 확진자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등 질병 확산을 막기는커녕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무책임한 보도를 내놓아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태원 클럽 일대가 남성 동성애자들만의 전유 공간이 아님에도, 질병에 대한 공포를 성소수자 집단에 투사하는 여론이 확산되자 코로나19 검진 대상자들에게 검진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긴급하게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를 꾸려, 12일 오전 한국게이운동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본부는 지자체와 방역당국과 공조하면서, 검진대상자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검진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후 자가격리와 치료 기간에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검사 과정을 안내해주고, 혹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상담과 개인정보 노출 등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문의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한국청소년청년감염커뮤니티 알,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가능하다.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의 창구 활동가는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특정 업소명을 언급하지 않고 ‘이태원’, ‘논현동’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서 검사를 받는 경우,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하여 핸드폰 번호만 남기고, 보건소만의 고유번호를 부여받은 상태에서 익명으로 검사할 수 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홍보 자료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는 “서로를 지지하는 연대의 힘이 간절히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면서 “고립되지 말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혐오와 비난 앞에서 서로 충분히 마음으로 끌어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날, 건강하게 웃는 모습으로 잘 지냈냐는 흔한 안부 인사와 함께 다시 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나영정 활동가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서 너무나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지만, 위기에 대한 대응을 함께 해나가면서 비로소 성소수자가 동등한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과정을 겪으면서 성소수자는 더욱 용기를 내고, 결국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 구태의연한 낙인찍기와 배제의 시대를 뒤로 하고 서로의 안전과 인권을 위한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도 여전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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